여름 낮에 꾼 꿈 / 빗새
더위에 가위 눌려 한가한 일요일
책상 모서리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그날 우리가 처음 만났던 꿈을 꾸었습니다
당신은 여인인 것 같기도 했고
나를 닮은 남자인 것 같기도 했었지요
나는 몇 시간째인지 당신을 따라 다녔습니다
당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나를 데리고 다녔는데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걷고 있었습니다
가끔씩 앞서 가던 당신은 나를 돌아보았고
그때마다 당신은 내 어머님이셨다가
때론 아버님이기도 했고
때론 일찍 세상을 떠난 절친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끝없이 좇아다니다가
갑자기 당신은 홀연히 사라졌지요
내가 가위에 눌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가족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무슨 꿈을 그렇게 요란하게 꾸셨어요
하지만, 나는 압니다
나를 데리고 다니던 당신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지 않으려는
단호한 마음이 나를 이곳에 남겨둔 것이라는 걸
첫댓글
빗새님 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