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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Jaba)·보르네오(Borneo)·말루쿠(Maluku)등은, 倭들의 故鄕 [4편]
소국(小國) 일본(日本), 왜(倭)를 병합(倂合)하다 [제4편]
2023년 01월 30일
○ “왜(倭)=왜노국(倭奴國)과 일본(日本)”에 대해 “1편∼3편”까지를 설명(說明)했는데, 대략(大略) 어디에 “왜(倭)=왜노국(倭奴國)과 일본(日本)”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4편’에서는 ‘해국도지(海國圖志)’를 기준(基準)으로 그 위치(位置)를 더욱 좁혀보기로 하자.
(28) 海國圖志 卷十七 日本島國錄(凡前史無關海防者不錄):
➊ 《明史 曰 :日本,古倭奴國。唐咸亨中,改日本,以近東海日出而名也。地環海,惟東北隅大山。: 명사(明史)에서 이르기를 : 일본(日本)은, 옛 왜노국(倭奴國)이다. 당 함형(咸亨) 간에 일본(日本)으로 고쳤는데, 해가 뜨는 동(東)쪽에 가까워 이름이 되었다. 땅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데, 유일하게 동(東)쪽과 북(北)쪽 모퉁이에 큰 산이 있다.》고 하였고,
➋ 俞正燮, 癸巳類稿:《萬曆中,台灣為日本倭所據,末年荷蘭紅毛人自西洋來,欲據香山不可,則據澎湖,又不可。乃南據美洛居,及葛留巴。 : 유정섭(兪正燮)의 계사류고(癸巳類稿) : 만력(萬曆)중에, 대만(台灣)에 일본(日本) 왜(倭)가 의거하였는바, 말년(末年)에 화란(和蘭)의 홍모(紅毛)인이 서양(西洋)으로부터 와, 향산(香山)에 거(據)하려 하였으나 불가(不可)하여, 팽호(澎湖)에 거하려 하였으나, 또 불가하였다. 이에 남(南)쪽의 미락거(美洛居)와 갈라파(葛羅巴)에 거하였다.》고 하였다. 【俞正燮(1775年∼1840年), 字理初,安徽黟縣人,清代學者】
‘대만(台灣)과 대만(臺灣)’은 같은 땅을 말하고 있을까? 결코 같은 땅일 수 없다는 것을 ‘해국도지(海國圖志)’가 말해 주고 있다.
➌ 皇清通考·四裔門:《日本,古倭奴國.唐咸亨初,更號日本。 : 일본은, 옛 왜노국(倭奴國)이다. 당(唐) 함형(咸亨) 초에 일본으로 고쳤다. 或云日本乃小國,為倭所並,故其號。國在東海中,東北限大山,其地東高西下,勢若蜻蜓。古亦曰蜻蜓國。혹은 전하기를, 일본(日本)은 소국(小國)이었으나, 왜(倭)를 병합(倂合)한 바 그렇게 불렀다. 나라는 동해(東海) 가운데에 있고, 동(東)쪽과 북(北)쪽은 큰 산에 한계(限界)하는데, 그 땅은 동(東)쪽은 높고, 서(西)쪽은 낮다. 기세가 잠자리(蜻蜓)와 같다. 옛 부터 청정국(蜻蜓國)이라고 일렀다.》고 하였다.
옛 부터 청정국(蜻蜓國)이라고 일렀다고 하였는데‥황청통고(皇清通考) 사예문(四裔門)에서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사서(史書)는?
➍ 李言恭撰《日本紀國》… 《去遼東遠而閩浙邇,史稱從帶方至倭國,循海水行,曆朝鮮國,乍南乍東,渡三海,曆七國,凡一萬二千里,然後至其國。: 요동(遼東)은 멀리 떨어져 있고, 민절(閩浙)은 가까이에 있다. 기록(記錄)된 문서(文書) 즉 역사(歷史)에서는, 대방(帶方)을 따라가면 왜국(倭國)에 이르는데, 바다(海)와 물(水)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가면, 조선국(朝鮮國)을 거쳐, 남(南)쪽으로 갔다가 다시 동(東)쪽으로 가 3개의 바다(海)를 건너, 7개 나라를 지나는데, 무릇 1만(萬) 2천리(千里)인데, 그런 연후(然後)에 그 나라에 다다른다. 又言去樂浪郡,及帶方郡,並一萬二千里,在會稽東,與儋耳相近,; 人物秀麗,氣候與江浙齊。 : 또 말하기를 낙랑군(樂浪郡)을 떠나서 대방군(帶方郡)에 이르며, 나란히 1만(萬) 2천리(千里)며, 회계(會稽)의 동(東)쪽, 담이(儋耳)와 서로 가깝다. 所統屬國,北為對馬島,與朝鮮接,南為薩摩州,與琉球接。對馬島與登州直,薩摩州與溫台直,長崎與普陀東西對峙。: 그 나라에 소속된 나라들은, 북쪽으로 대마도(對馬島)는, 조선(朝鮮)과 접해 있고, 남쪽은 살마주(薩摩州)인데, 유구(琉球)와 접해 있다. 대마도(對馬島)는 등주(登州)에서 곧바로, 살마주(薩摩州)는 온태(溫台)에서 곧 바로이고, 장기(長岐)는 보타(普陀)와 동서(東西)로 대치【對峙 : 서로 마주 대하여 버티고 있는 것】하고 있다.》
➎ ➤➤➤《澳門紀略》曰:《日本國禁天主教最嚴,其海口葛羅巴馬頭石鑿十字架於路口,武士露刃夾路立,商其國者,必踐十字路入。: 오문기략(澳門紀略)에서 말하기를 : 일본국(日本國)은 천주교(天主敎)를 가장 엄하게 금지하였는데, 그 해구(海口) ‘갈라파(葛羅巴)’ 마두(馬頭)에 돌을 깎아 만든 십자가(十字架)가 길 입구에 있는데, 무사(武士)가 협로(夾路)에 칼을 들고 서 있으면서, 장사치나 그 나라 사람들을, 필히 십자로(十字路)에 들어가게 하였다. 如回避者,立斬之。又捏耶穌石像於城閾,以踏踐之,故西洋夷船,不敢往商其國。 이를 따르게 하여 이리 저리 피하는 자는, 곧 참수(斬首)해버렸다. 또 성궐(城闕)에 야소(耶蘇) 석상(石像)을 꾸며놓고, 발로 짓밟으며 유린하였는데, 무릇 서양(西洋) 오랑캐의 배들은, 장사를 위해 그 나라를 감히 가지 못하였다.》 고 하였다.
➨➨ “왜(倭)=왜노(倭奴)=일본(日本)”에 관한 기록(記錄) 중에서 하이라이트[highlight]는 바로 “오문기략(澳門紀略)”이다.
‘澳門’[Macau]은, 즉(卽) ‘마카오(Macau)’다. 여기에서, 《‘갈라파(葛羅巴)’는 ‘자바(Jaba)섬’이다. ‘미락거(美洛居)’는 ‘말루쿠[Maluku]’섬이다.》 이때의 “일본국(日本國)”은 바로 이곳 “자바 섬(Jaba, 島)” 을 중심(中心)으로 여러 섬(諸島)에 나누어 살고 있었다는 뜻이다.
즉(卽) ‘오문기략(澳門紀略)’에서 말하고 있는 위의 구절(句節)은 당시(當時)의 “일본국(日本國)”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알려주고 있는 아주 중요(重要)한 내용(內容)이라고 판단(判斷)된다.
즉(卽), ≪澳門紀略 曰:日本國禁天主教最嚴,其海口葛羅巴馬頭石鑿十字架於路口,武士露刃夾路立,商其國者,必踐十字路入。오문기략(澳門紀略)에서 말하기를 : 일본국(日本國)은 천주교(天主敎)를 가장 엄하게 금지하였는데, 그 해구(海口) ‘갈라파(葛羅巴)’의 마두(馬頭)에 돌을 깍아 만든 십자가(十字架)가 길 입구에 있는데, 무사(武士)가 협로(夾路)에 칼을 들고 서 있으면서, 장사치나 그 나라 사람들을, 필히 십자로(十字路)에 들어가게 하였다. 如回避者,立斬之。又捏耶穌石像於城閾,以踏踐之,故西洋夷船,不敢往商其國。 : 이를 따르게 하여 이리 저리 피하는 자는, 곧 참수(斬首)해버렸다. 또 성궐(城闕)에 야소(耶蘇) 석상(石像)을 꾸며놓고, 발로 짓밟으며 유린하였는데, 무릇 서양(西洋) 오랑캐의 배들은, 장사를 위해 그 나라를 감히 가지 못하였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당시(當時)의 ‘일본국(日本國)’이 바로 ‘자바(Jaba)섬을 중심(中心)으로 말루쿠(Maluku)’등지(登地)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문기략(澳門紀略)은, 『청(淸), 印光任、張汝霖所編撰,於1745年完成了 初稿, 1751年 完成』되었다고 전해진다.
《“갈라파(葛羅巴)”는, 오늘날의 인도네시아[Indonesia] “자바 섬[Jaba, 島]”이고, “미락거(美洛居)”는, “말루쿠 제도(Maluku, 諸島)”》다.
“왜(倭)=왜노(倭奴)”는, ‘남아세아(南亞世亞)’계로, 이곳으로부터 기독교(基督敎)을 앞세워 야금야금 세력(勢力)을 확장(擴張)해 오는 서구(西歐)세력(勢力)들에 밀려나 계속(繼續) 북동진(北東進)하면서, 드디어 필리핀[呂宋]과 대만(臺灣)에 까지 밀려 버티다가 마침내 분노(憤怒)를 억누르며 유구(琉球)를 거쳐, 열도(列島)에 이르는 인내(忍耐)의 세월(歲月)을 견뎌냈다고 하였다.
※ 아세아(亞細亞) 지도(地圖) : 남아세아(南亞世亞)의 여러 섬들을 살펴보자.
이들이 열도(列島)까지에 이르러 토착민(土着民)들을 정복(征服)하고, 체제(體制)를 정비(整備)한 다음, 더 이상(以上) 갈 곳이 없자, 마침내 반도(半島)를 탐(貪)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정한론(征韓論)’이 대두(擡頭)된 것이다. 반도(半島)는, 주인(主人)없는 땅이 아니라, 옛 한국(韓國 : 三韓)의 땅에 속(屬)했다는 증거(證據)다.
➏ 《外國史略曰 : 女裳與男不異,麵目多同呂宋,而異中國。: 외국사략(外國史略)에서 이르기를 : 여자들의 치마는 남자의 것과 다르지 않고, 얼굴의 생김새(麵目)는 많은 부분이 여송(呂宋)과 같으며, 중국과는 다르다.》고 하였다.
《萬國地理全圖集》曰 : 《日本人與漢人不同,其面貌話音亦異,雖然藉中國之字,學唐人之禮,但其意見迥異,身體不高,眼深鼻扁。隻剃前首,其後發生長,縛劄短編,安於頭上。其衣長袍,並不著褲,足躡革履。: 일본인(日本人)은 한인(漢人)과는 같지 않으며, 그 얼굴모양(面貌)과 말하는 음(音) 또한 기이하며, 중국(中國)의 글자를 비록 문서라고 여길지라도, 당인(唐人)의 예를 배우는데, 다만 그 의견은 통하나 다르며, 신체(身體)는 키가 크지 않고, 눈은 깊게 들어가 있고, 코는 납작하다. 한쪽의 앞머리를 깎고, 그 후에 난 머리를, 짤막하게 동여매어 내리고, 안(安???)은 머리위에 있다. 그 사람들의 옷은 긴 도포인데, 바지(褲)는 불분명하며, 발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닌다.》고 하였다.
● “왜노(倭奴)=왜(倭)=일본(日本)”인은, ‘남방계(南方系)’로, ‘동남아세아(東南亞細亞) + 서남아세아(西南亞世亞)’계열(系列)의 전형적(典型的)인 체형(體形)을 갖고 있으며,
특히 여송[呂宋 : Philippines]과 ‘거의 같다’는 것은, “일본(日本)·왜(倭)가 이곳 여송[呂宋 : Philippines]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을 증거(證據), 고증(考證)하는 말이다.
사가(史家)들은, ‘중국(中國) 또는 한인(漢人)과는 다르게 생겼다’ 고 하였다. 여기서 중국(中國)이란 “조선(朝鮮)”을 다르게 기록(記錄)한 것이다. 또 한인(漢人)이라고 해 놓고는, ‘당인(唐人)의 예를 배운다’고 하였다.
역사통설(歷史通說)에 의하면, “한인(漢人)은 당인(唐人)과 같아야 함에도 한인(漢人)과 당인(唐人)을 구분(區分)했다.”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특히 「身體不高,眼深鼻扁 : 신체는 작고, 눈이 움폭 들어가 있고, 코는 납작하다」는 말은, ‘서남아세아(西南亞世亞)+동남아세아(東南亞細亞)’의 일부 종족(種族)들으 전형적(典型的)인 체형(體形)이며, 특히 “여송(呂宋)인들과 같다.”고 한 것을 눈여겨 보아야한다.
➨ ≪일본인(日本人)은, 얼굴의 생김새는 많은 부분이 여송(呂宋)과 같으며, 한인(漢人)과 서로 같지 않고, 그 얼굴모양과 말하는 음(音) 또한 기이하며, 신체(身體)는 키가 크지 않고, 눈은 깊게 들어가 있고, 코는 납작하다. [日本人與漢人不同,其面貌話音亦異,身體不高,眼深鼻扁]≫고 하였는데, 이는 전형적(典型的)인 남아세아(南亞世亞) 계(系)의 특징(特徵)과 면모(面貌)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➐ 《蓴鄉贅筆》曰: 先是西洋人以天主教誘其國人,各授以秘術,民間閨閫,多為所亂。: 선시(先是) 서양인(西洋人)이 천주교(天主敎)로 그 나라 사람들을 유혹(誘惑)하면서, 민간(民間)의 규방(閨房)안에서, 여러 비술(祕術)을 가르쳐 주니, 그로 인해 많은 어지러움이 있었다. 一入其教,死生不易。主者遂肆奸術,糾眾怙亂,其國大發兵撲滅之。: 한 사람이 그 교[天主敎]에 들어가면, 생사(生死)를 생각하지 않는다. 간사한 수단으로 이루게 하고, 무리들이 얽혀 우두머리를 믿고 어지럽히니, 그 나라에서는 크게 군사를 일으켜 모조리 없애버렸다(撲滅). 自是痛絕西人,以銅板鏤天主形,置通衢。凡各國人往者,必使踐踏而過。: 서양인(西洋人)들은 통절(痛絶)하자, 동판(銅版)에 천주(天主) 모양을 만들어 놓고, 사거리에 두었다. 무릇 여러 나라의 왕래하는 자들은 필히 짓밟고 지나가야 한다. 衣囊或攜西洋一物,或西洋畫冊,搜得,一船皆誅。見張遴白《奉使日本紀略》。: 옷에 붙어있는 주머니 혹은 서양(西洋)의 한 물건이거나, 혹은 서양의 화책(畵冊)등을, 찾거나 얻으면, 보통 모두 목을 베어버렸다. [장린백(張遴白)의 봉사일본기략(奉使日本紀略)을 봐라.]하였다.
(29) 大學衍義補 卷155 : 《日本在東海之中,古稱倭奴國,或云惡其舊名,故改名曰日本,以其近日所出也。: 일본(日本)은 동해(東海) 가운데에 있는데, 예부터 왜노국(倭奴國)이라 칭했는데, 혹은 그 옛 이름이 좋지 않아, 고로 일본(日本)으로 개명(改名)하였는데, 그 가까이에서 해가 나온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본시(本是)의 “왜(倭)=왜노(倭奴)=일본(日本)”은, 이민족(異民族)이다. 《일본인(日本人)은, 얼굴의 생김새는 많은 부분이 여송(呂宋)과 같으며, 한인(漢人)과 서로 같지 않고, 그 얼굴모양과 말하는 음(音) 또한 기이하며, 신체(身體)는 키가 크지 않고, 눈은 깊게 들어가 있고, 코는 납작하다. [外國史略曰:女裳與男不異,麵目多同呂宋,而異中國.日本人與漢人不同,其面貌話音亦異,身體不高,眼深鼻扁]》이라고 하였으니, 당연(當然)한 것이다.
○ ‘왜(倭)와 일본(日本)’의 변천과정(變遷過程)과 이동로(移動路)를 따라가 보면, 또 하나는 ‘역사서(歷史書)의 기록(記錄)과 그 시대적(時代的) 변천과정(變遷過程)’을 들여다보면 :
“왜(倭)와 일본(日本)”의 대략적(大略的)인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즉(卽) 《‘왜(倭)는 왜노(倭奴)’였으며, ‘동왜(東倭), 북왜(北倭), 남왜(南倭)’등으로 구분되기도 했으나, 8-9 세기(世紀) 경에 ‘일본(日本)’이라는 소국(小國)에게 병합(倂合)되어 “일본(日本)”으로 알려지게 된 것인데, 이들은 ‘갈라파(葛羅巴)’를 거점지(據點地)로 주변(周邊)의 여러 섬(諸島)에 나누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 “동서남북(東西南北) 수천(數千)리, 동북(東北)쪽의 대산(大山)등의 지리적(地理的)인 위치(位置)로 보면 : 보르네오[Borneo]와 자바[Jaba], 스마트라[Sumatr] 등지(等地)가 적격(適格)이다.” 그러나 이들은 계속(繼續) 밀려나 이동(移動)한 것으로 보면 시대(時代)에 따라 그 영토(領土)가 달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위의 지도(地圖)에서 보는 곳 즉(卽) “남아세아(南亞世亞)”가 바로 “왜노국(倭奴國)=왜(倭)=일본(日本)”의 고향(故鄕)이다. 또 기록에서 지적(指摘)하고 있는,
『‘갈라파(葛羅巴)’는 ‘자바[Jaba]섬’을, ‘미락거(美洛居)’는 ‘말루쿠[Maluku]제도’』를 말하는 것인데, 『왜(倭)는, “말레이반도(半島)·자바·스마트라·보르네오·말루쿠 등지(等地)의 여러 섬(諸島)에 살고 있었던 해상부족(海上部族)들을 총칭(總稱)한다.”』는 것으로 판명(判明)된다. [제5편으로 계속(繼續)] 2023년 01월 30일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다음 [5편]에서는 "왜"의 이동로를 따라갈 볼 예정입니다.
반도 땅엔 "토착왜구"는 분명 존재합니다. 단어선택이 올바른 것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일본"편에 서서 "한국"을 바라보는 자(者)들이 있다는 것은 속일 수 없는 현실입니다. 또는 옛 일제 식민지 시절을 회상하는, 열망하는 이런 분도 계시다는 사실은 또한 속일 수 없습니다. 특히 먹물이 배여있다는 학자들 중에서 특히 "옛 식민지 시절을, 옛 일본제국을 회상하는 자(者)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맹목적적 "친일"을 주장하는 사람들, 무작정 "친일"을 주장하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함께 "토착왜구"는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웃국가로써의 친일, 일본을 이겨야한다는 극일(克日)"을 떠난 "무작정, 무대포, 맹목적 친일은 친일의 이유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경우입니다." 특히 반도를 둘러 싼 지정학적인 위치를 생각해 보면 "무작정 친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사고(思考)는 인간이 하늘(조물주)로부터 받은 가장 큰 은혜입니다"
열도의 일본이란 나라는 반도외(外), 어떤 곳으로든 진출이 불가능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것은 불변입니다.
그곳에서 대규모 지진, 화산폭발등의 자연환경적 이상상태가 발생한다거나, 지진대의 이상변화는, 어느 때를 불문하고 그들은 "반도 땅"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 것은 또한 "불변"입니다. 그들의 인구는 우리의 몇 배요, 국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엔 민주국가, 법치국가로 보이지만 실상은 국가주도의 변형적인 민주국가, 법치국가입니다. 그들은 삼권분립은 우리나라의 사정과 전혀 다릅니다. 사법부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국가(정부, 정권)가 나서서 부레이크를 걸거나 엑세레타를 밟을 수 있습니다.
정부주도의 힘의 우리보다 휠씬 강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국론통일은 우리들의 국론통일과는 또 다릅니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국론을 모으며, 여기에 국민들은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씨스템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안다고 하면서도 과소평가를 한다는 겁니다. 무작정 친일이 이래서 무서운 것이고, 토착왜구들은 이를 이용하여 좀벌레가 갉아먹듯이 조금씩 조금씩 우리들을 갉아먹습니다. 이건 분열이요, 혼란입니다.
반도 땅은, "대륙의 중국과 러시아, 열도의 일본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끔식 잊는 것 같습니다.
언제든지 포화가 쏟아질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시진핑'의 중국은 북한의 이상사태가 발생시 북한 영역으로 진격합니다. 이건 변할 수 없는 정책이라고 합니다. 그럴 때 '미국과 러시아, 일본'은 무엇을 할까요? 무조건 한자리를 낍니다. 특히 일본은 미국과 한편이 되어, 한반도 방어를 목적으로 한 팀이 되어 북한 땅으로 진입할 것 또한 변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전시작전권이 없습니다. 미국의 허럭없이는 군대를 진군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 결국 북한 땅은 1948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겁니다. 여기는 일본의 자위대가 미군과 함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결국 1945년 이전의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건 세계의 유명 정치가, 연구소의 학자들이 내어 놓는 '가능성이 가장 큰 시나리오'입니다. 우리나라 군대는 뭘 할 수 있을까요? 세계 몇위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군대를 이용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하는 문젭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하였습니다.
'헌법이 북한 땅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허락이 없는 한, 북한 땅에 우리 군대를 진군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 몇 위가 필요합니까? 내 땅에 도독놈들이 들어오는데도 구경만 하는 것이 대한민국 군대입니다.
도대체 대한민국 정치가들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 걸까요?
"친일"에 목을 내는 것은 가장 어리석고, 무책임 한 자(者)들입니다. "친일에 힘을 쏟고, 목을 달기보다는 미국과 짝짜꿍이 되어 작전권을 되찾아오는 것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열도 "기시다"의 행동을 보면 참 여우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윤 아무개"와는 전혀 다른 약싸빠른 정치를 펼치고 있습니다. 지들이 얻을 것은 소리없이 상대국으로부터 얻어내고 있습니다. 이게 정칩니다"]
"전 정권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을 출세시켜 준 자들에게 보복이나 일삼는 짓은 소인배나 배신자들이나 할 수 있는 파렴치한 짓입니다." 그런 시간에 "기시다"처럼 조용하게 할 것을 다하는 그런 정치가 바로 나라와 국가를 위한 정치를 펼치는 것입니다.
얻어낼 것을 다 얻어내는 정치, 이게 진짜 정치가 아닐까요! 기시다가 부럽습니다
그래서 왜노들이 열대인의 의류처럼 보이는 훈도시를 입네요
안녕하세요. "러브 선"님!
인간의 삶은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운 날씨에,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