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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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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만에 다시 부활하는 60년대 젊은이들의 소리 *
1966년 7월에 기획했던
앨범의 기획 의도와 뒷 얘기를 해설하게 된 것은 분명히 운명적일 것이다.
음반이나 가수, 연주자들에 관한 가치성의 연구 발표라면 현재의 누구라도 관계없는 일이지만, 이
나라 가요가 대변혁을 맞이하던 60년대의 얘기이고 그 이야기들이 진위에 관계없이 그저 흥미 위주로만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것이 안타까웠고
또한 동호인들이나
연구가들에 의해 복원 발매되는 한정판 리메이크 앨범에 이 쟈니리. 키보이스의 앨범이 선택된 것이 감격스러운
것은 필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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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8군
댄스가수 쟈니리와 키보이스, 일반 무대로 본격 진입 *
1966년 여름, 나는 광화문에
있던 '아카데미 음악 감상실' (현재, 코리아나호텔 자리)에서 팝송 DJ를
하고 있었다.
종로의 '디쉐네', 명동의 '시보네' 음악 감상실을 거친 3년 차 DJ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친구의 소개로 신세기레코드사 문예부에서 일하던 강창호를 만나게 된다. (강창호는 신셰기 강윤수 사장의 아들이었다)
강창호가 나에게 부탁한
것은 당시 음악감상실에서 인기가 좋은 팝송의 리스트였다. 그것은 신세기의 레코드사에서 발매하던 외국가요의
번안곡 시리즈인 '노래의 성좌'에 녹음할 곡을 찾기 위해서였다.
12곡을 선곡해 주고 2곡의
가사를 쓰면서 가요계에 작사가라는 새로운 명함을 내밀었는데, 그 2곡
중 한 곡은 당시 세계 영화 시장의 판도를 뒤바꿔놓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황야의 무번자' 1편의 주제곡 '방랑의 휘파람'이었다.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이름 지어진 이 영화의 주제곡은 노래가 없는 경음악이었다. 엔리오 모레꼬네의 서글픈 멜로디와 휘파람
소리 -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릴 것같은 가수로 나는 쟈니리를 추천했다.
당시 미8군 무대에서 노래하던 쟈니리는 아카데미 음악감상실의 라이브 스테이지 프로그램에서 구면이었고 또 당시 일반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한 미8군 쇼 출신의 가수인 이태신, 정원,
박인수 등 신세대 가수 중에서 가장 출중했었다.
쟈니리는 '방랑의 휘파람' 의 히트로 신세기레코드사에 전속 가수가 된다. 그 때 나도
스카웃되어 전속 작사가 겸 문예부 기획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기획한 것이 바로 이 앨범이다.
이 때 함께 기획한
강창호에 의해 키보이스를 만나다. 키보이스는 2년 전인 1964년, 이미 '그녀
입술은 달콤해'와 '정든 배는 떠난다'를 신세기에서 발표 했었다. 앨범 구성을 위한 선곡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쟈니리와 키보이스의 컬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어차피 쟈니리나 키보이스
역시 뚜렷한 개성으로 8군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었고 다만 그 때마다 쇼가 원하는, 혹은 미군들이 원하는 곡들을 연습해서 노래하고 연주했기 때문에, 음반에
선곡되는 곡들은 대중 취향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댄스
가수였던 쟈니 리가 컨트리 넘버인 돈 깁스의 'Oh Lonesome Me!'를 '오! 우짤꼬' 라고 노래했고
또 자신의 18번인 엘비스 프레스리의 'What'd I Say' 를
정말 열정적으로 부르기도 했다.
반면 키보이스는 당시
전세계를 석권한 '비틀즈'를 표방한 구성으로 연주하면서도 Solo Singer 차중락은 엘비스 프레스리의 노래만을 전담했고 드럼을 연주하던 윤항기는 흑인가수 레이 찰스의
모창을 기가 막히게 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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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배는 떠난다' 에서 국내 가요계 최초로 '전자올갠' 도입 *
그리고 중요한 것은 키보이스가 '정든 배는 떠난다" 에 미련이 강했고 이 곡을 자신들의
타이틀로 원했던 것이다. 이미 발표했었던 '정든 배는 떠난다" 의 리메이크에서 키보이스는 당시 국내 가요계에 처음 도입된 '전자올갠'을 사용했다.
그룹 사운드로서는
처음으로 녹음해서 사용된 이 전자올갠은 단음 밖에는 연주할 수 없는 초기 방식이었지만 리듬 기타를 연주하던 옥성빈이 잘 소화 했었다.
'Blowing
In The Wind' 를 개사한 '바람아 너는 아느냐'가 개인적으로는 지금 들어도 좋다. 훗날 평화를 메시지로 하는 반전가요였느니 어쩌니 했지만 당시 국내 팝계에선 그저 포크송으로 분류될 뿐이었다.
중앙정보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공화국' 시절 반전, 반미, 체제 비판등의 단어는 방송매체, 활자매체 어디를 봐도 전혀 언급 될 수 없었고 'Blowing In The
Wind' 는 다만 고운 선율의 로맨틱한 노래일 뿐이었다.
이 노래를 사촌형제였던 Solo Songer 차중락과 Basist 차도균이 감미롭게 잘 불렀다.
의욕이 앞섰던 이
앨범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한 장의 음반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탄탄한 기획과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가를
절실히 느꼈다.
그러나 이 음반 이후에
쟈니리는 '뜨거운 안녕'으로 스타가 됐고, 키보이스의 차중락 역시 '그 밤과 같이' 앨범에서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으로
스타가 된다.
결국 이 앨범은 두
명의 걸출한 대중음악사의 스타를 배출한 시금석이 된 음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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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지명길 -
첫댓글 몇년전에 발매했었는데 다시 재발매인가요?
그녀입술은 달콤해는 2003년에 다른 회사에서 발매된적이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