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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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 폴 틸리히는 오직 한 분뿐이신 주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두고 “궁극적 관심”이라고 부르며, “종교란 궁극적 관심에 붙잡힌 상태(Religion is a state of being grasped by an ultimate concern)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궁극적”이란 삶 전체에 온전히 관여하면서 개인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좌지우지 되지 않으면서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는 총체적이고, 무조건적이며, 무한하다는 특성을 가리킵니다. 한편 그리스도인은 삶 전체를 걸고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에 참여하면서도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로부터 오는 강력한 힘과 의미에 붙잡혀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폴 틸리히가 종교를 정의하면서 “궁극적 관심에 붙잡힌 상태”라고 말한 것을 그리스도교 신앙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궁극적 대상으로 삼는 것들은 돈, 사회적 지위, 개인의 명예와 인정 욕구, 남을 지배하는데서 오는 쾌감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절대로 궁극적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마음이 휑합니다. 이룬 듯 하지만 허망한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궁극적이지 못하고 일종의 사치품이나 악세사리, 또는 취미활동에 머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헌신, 참여와 경외가 없습니다. 진지함에 대한 추구가 옅어지면서 그리스도교는 타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의 마음속에 오직 한 분뿐이신 하나님이 계신지,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자세는 어떠했는지 진지하게 물을 일입니다.
*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가 헛된 것에 눈길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봅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살아갔던 것 회개합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오직 한 분뿐이신 주님을 온전히 따르게 하여 주소서. 말로만 사랑이 아니라 삶으로 열매를 맺는 사랑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폴 틸리히는 오직 한 분뿐이신 주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두고 “궁극적 관심”이라고 부르며, “종교란 궁극적 관심에 붙잡힌 상태(Religion is a state of being grasped by an ultimate concern)라고 말합니다.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궁극적 대상으로 삼는 것들은 돈, 사회적 지위, 개인의 명예와 인정 욕구, 남을 지배하는데서 오는 쾌감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절대로 궁극적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마음이 휑합니다. 이룬 듯 하지만 허망한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궁극적이지 못하고 일종의 사치품이나 악세사리, 또는 취미활동에 머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헌신, 참여와 경외가 없습니다. 진지함에 대한 추구가 옅어지면서 그리스도교는 타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의 마음속에 오직 한 분뿐이신 하나님이 계신지,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자세는 어떠했는지 진지하게 물을 일입니다.
첫댓글 폴 틸리히는 오직 한 분뿐이신 주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두고 “궁극적 관심”이라고 부르며, “종교란 궁극적 관심에 붙잡힌 상태(Religion is a state of being grasped by an ultimate concern)라고 말합니다.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궁극적 대상으로 삼는 것들은 돈, 사회적 지위, 개인의 명예와 인정 욕구, 남을 지배하는데서 오는 쾌감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절대로 궁극적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마음이 휑합니다. 이룬 듯 하지만 허망한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궁극적이지 못하고 일종의 사치품이나 악세사리, 또는 취미활동에 머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헌신, 참여와 경외가 없습니다. 진지함에 대한 추구가 옅어지면서 그리스도교는 타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의 마음속에 오직 한 분뿐이신 하나님이 계신지,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자세는 어떠했는지 진지하게 물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