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지금으로 부터 4년전 그러니까 2003년 5월쯤 기억됩니다,
등산학교 수료후 동문 선후배들과 야영합숙을 해 본 사실이 없다가 영암 월출산으로 원정 합동등반을 한다기에 합류하게 되었었는데......
이때가 제 나이 환갑이 되던 해 였습니다,물론 후배들과 같이한 등반 이였기에 제가 제일 나이가 많은 셈이죠,
바람폭포에서 출발하여 사자봉정상에 오른뒤 하산을 하게 되었는데 출령다리에서 수많은 워킹족 산행객이 구경을 하고난뒤 통천문 가까이에 이르려 하강하는 모습을 볼때 까지만 하드라도 제가 2~30대 젊은이로 알았던 모양입니다,그러나 하강하는 모습을 보더니만 모두 놀라는게 아니겠습니까?아마 저보고 "늙은이가 미쳤나벼!"했을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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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 경포대의 울창한 동백군락!
그리고 암석을 풍화하고 잠식하면서 시시로 바위 봉우리를 면사포로 가려주는 안개풍치!
‘고산 윤선도’가 요걸 보고 홀딱 반한 나머지 시조에 이르기를
<월출산이 높더니마는 미운 건 안개로다,
천황봉을 일시에 가려 외다,
두어라 해 퍼진 뒤면 안개 걷으랴,>
산중신곡에 아침 안개노래(朝霧謠)라는 제목이 붙은 이 시조는 이 산의 정취를 그대로 꿰 뚫었다 할 것이다,
월출산(812.7m)은 지리산까지 뻗어온 소백산맥의 잔 맥이 그 여세를 몰아 남서로 뻗히면서
승주의 봉두산(735m), 모후산(919m),그리고 조계산을 일구고,그 끝머리에 이 월출산과 두륜산을 앉힌다,
바람폭포의 좌우로 용립하는 장군봉 능선과 사자봉능선!
바위 벽을 둘려 치고 성벽을 쌓은 듯이,
그리고
창칼이 번쩍이는 듯 뾰쭉하고 험준하게 솟아있는 사자봉!
지금은 철 사다리를 가설해 놓았지만,
신라 때 어떤 스님이 밧줄에 매달려 새겼다고 전해지는 시 한수
<사해무가병비구(四海無家病比丘)>
도에 병든 비구에게는 온 세상에 집이라곤 없느니,병은 물론 몸의 병이 아니다,
도를 닦느라 고행하는 수도자는 스스로를 도에 병들었다고 자처함이니,그 에게는 도의 높이일 뿐,
일체 세속에 뜻이 없다는 말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 암벽에 매달리는 클라이머의 그 정신을 방불케 한다,
등산학교 수료전에는 월출산을 오를때마다
구름다리위에서 깎아지른 절벽밑을 아찔한 감정으로 내려다 보면서 가끔 현기증을 느껴 왔었다,
그런데
이제 등산학교를 수료한지 벌써 8년을 거치는 동안에 월출산 암벽에 내 손바닥을 문질려 보게 될 이번 기회는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동문들과는 단 한차례도 야영을 같이한 사실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야영을 같이 하게 된것이 무엇보다 반갑고도 기뻤다,
"선배님! 지금 마악 출발 했심더"
서울 삼성역에서 2003년 5월17일 오후4시15분에 출발한 일행이 호남 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에서 나를 만난 시간은 6시 40분 이었다,
달리는 버스속에서 서로의 반가운모습을 확인하면서 전두성강사의 소개에따라 간단한 인사가 있었다,
착석을 하기가 바쁘게 김영호 동문이 뭔가를 건넨다,
등산학교 일 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고 계신다는 촬영팀의 김영호 동문이 그 동안의 기록물을 테이프에 담아 선물로 전한 것이다,
그 기록 영상물을 편집한 테이프가 벌써 세개나 되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정읍 휴게소에 들려 저녁식사를 해결한 일행은 광산 나들목으로 진입하여 13번 도로를 따라 영암에 도착을 하니 시계바늘이 10시에 조우하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일행들의 능숙한 텐트조립이 끝나자,
내 나이 어릴적 타작마당에서나 흔히 볼수있었던 낭만적인 "호야"가 빛나는 멋진 자리가 마련 되었다,
나도 좋은자리(?)에 앉아볼 양으로 번개(?)같이 텐트속에 놓아둔 매트리스를 가져다 펴고 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양옆에 여성동문들이 인정사정(?) 볼것없이 붙어앉는다,
결국 나는 포위(?)가 돼 버리고, 이선화님이 뒤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보인다,
별수없이 벌떡 일어난 나는
"선화씨 이쪽으로........"
자리를 양보(?)한후 선배답게(?) 물러섰다,
둘러앉은 동문들의 얼굴들이 램프불빛에 반사되고 있었다,그리고 다른 불빛이 내 눈을 쏘아댄다, 바라보니 카메라맨 김영호님이 취재차 활동중이다,
누군가가
"저 달좀봐라!" 하는게 아닌가
"어디!"
"저 소나무 가지 사이에"
월출산 하면 꼭 달을 들먹이게 되는데, 사실 나는 달 구경하기는 틀린것으로 결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빛이 사방에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달이 뜨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파티는 계속되고 있었고 밤 기온이 차가운 탓인지 환한 불빛에도 불구하고 벌레가 꾀이지 않는다.
둘러앉은 하나하나의 동문들을 살펴보니 신선세계의 선인들이 모두 이곳에 모인듯하다.
구김살없이 헤 맑은 표정들이 자연 속의 순진함이 베어 있는 그대로였다,
모닥불 연기가 아닌 스토브와 코펠 바닥에서 구수한 냄새와 고기굽는 연기가 풍겨 나온다.
요리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동문! 잘 잡수시는 동문들!
계속해서 나오는 식사메뉴가 왕성한 식욕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순식간에 비워지는가 싶드니 입가심으로 딸기가 상자떼기로 나타난다,
이웃 텐트에서 주신 것이다. 산 노래로 감사의 보답을 한다,
산 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뢰한이나 다름없는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어야 했다,
제길헐! 게으름 피우지 말고 배워 두는 건데........
박철규님은 등산학교에서 계속 산 노래만 연습을 했나? 목소리도 힘차게 불려댄다,
"아이브갓 식스펜스 졸리졸리 식스펜스........."
독채에서 주무신(?)나는 새벽4시30분에 등산일정이 되어 있음을 알고 4시쯤 기상 완료했다,
물론 완전 준비까지 끝내 놓았다,암벽장비,간식,땀수건,등을 작은 배낭에 쑤셔박고
"기상!"하고
명령신호가 있기 만을 기다렸다,
기상과 동시 전두성강사의 일정에 관한 설명이 있은 후에 김홍식강사에게 이몸의 배려를 부탁한다,
그리고 선발대에 편입이 되는 영광(?)을 주었다,
"출발!"
워킹조와 암벽조가 나뉘어 두개의 코스를 이용하되.
암벽조의 등반 모습을 한눈에 바라 볼수 있는 구름다리로 워킹조가 오르게 되어 있었다, 암벽반은 바람폭포로 오르고........
나는 암벽조의 선발대로 바람폭포를 향해 계곡을 거슬려 오르게 되었다,
철 다리를 건느고 바위사이로 요리조리 나 있는 등로를 따라 바람폭포까지 갔다,
목을 추기고 장비착용에 들어갔다,
모두 장비착용이 끝나 지금부터 본격적인 사자봉 릿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현재시각5시5분,
중간쯤 오르니 고도감을 느낄 수가 있었고, 발붙임이나 손놀림이 쉽지가 않다,
평소 워킹 위주로만 산행을 하다 보니 홀드 찾기도 제대로 안되고 째밍도 쉬워 보이지가 않다,
내가 뒤에 느낀바 실전등반을 통해 끝임 없는 기술연마가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실력향상으로 평소에 갖추어야 할 마음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사실 나는 훼이스보다 침니나 크랙을 쉽게 본다,
버티기나 레이백으로 처리하는 게 훨씬 수월하게 생각한 탓이리라,
체력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내 입장에서 까다로운 코스가 앞을 막아선다,
높이가 10여 미터쯤에 중간에 팔뚝크기의 잡목 한그루가 있는 사이로 올라야 하는데
습 먹힌 훼이스직벽이 좀 어려워 보인다,
어센더를 이용하여 오르는데 어센더 활용에 무치한 나로써는 어센더와 하니스 사이 확보줄 간격을 제대로 할 리가 없었다,
어센더의 확보줄 간격은 암벽의 상태에 따라 수시로 조정 되어야 한다는 전두성 강사의 말이다,
로프에 어센더를 걸고 오르기로 하고 중간 지점쯤 오른 뒤 문제가 생겼다,
어센더에 걸어 안전벨트에 묶어둔 연결 줄이 늘어 나면서 손 높이가 맞지않아 어센더를 놓치고 말았다,
발로 버티고 오른 뒤 어센더를 붙잡고자 하였으나 허사였다,
대충 발로 중심을 잡고 점프하듯 겨우 어센더를 잡기는 하였으나 순간 놓치고 말았다,
동시에 손이 로프에서 떨어짐과 동시 내 몸은 공중잡이로 매달리는 단계에 이르렀고 안전모도 쓰지 않아 하마터면 골로(?) 갈 뻔 하였다,
그러나 사자봉은 날 버리지 않았다,
중간에 서 있는 나무 가지 덕택에 벽면에 부딪치는 위기를 면할 수가 있었고,
감나무에 감이 달린 것처럼 매달리는 모습의 시범(?)을 후배동문께 보여 줄수가 있었다,
"하이고 선배님 잠깐만 그대로 계셔요, 괜찮은게........"
그대로 계시고 어쩌고 할 형편이 못된다,
체중이 85키로의 거구(?)가 팽팽한 로프에 어센더가 꽉 물린 상태에서 수직벽에 발붙임이 좋지않아 어떻게 할수가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마침 동행 등반일행이 후배 동문이라 구조응용에 신속하게 대처가 되지 못했다,
할 수없이 나는 편하게 매달린 상태에서 중심을 잡아 몸을 바르게 한 후에
도르레 원리를 응용 하기로 하고 밑에 쳐진 나머지 로프를 끄집어 올린 후에
나무가지 뿌리부분에 걸쳐서 밑에서 있는 후배들에게 당기도록 한 후 몸을 올려 어센드를 회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확보 줄에 걸려있는 어센더의 줄 간격을 짧게 매고 올라 서는데 성공했다,
계속해서 어려운 코스의 연속이 있었고,
이미 펌핑으로 팔의 힘은 모두 빠져나가 하켄에 걸어놓은 슬링을 움켜 쥐는것 조차 힘들게 한다,
10여 미터의 암벽 모서리를 싸고 도는 난코스에 이르려
우측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23층빌딍에서 내려다 보는거보다 고도감이 더한것 같다,
사자봉 정상에 무사히 도착을해서 식빵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하강을 하는 시간이 좀 늦어지게 되어 도갑사까지 오후 2시쯤 도착하기로 한 계획이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네가닥 로프를 이용하여 신속하게 하강을 끝내니 이것으로 사자봉 릿지등반은 끝난 셈이다,
이 후로는 오로지 워킹 산행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천황봉을 향한 일행이 정상에서 모두 한자리에서 만나,
웃음꽃으로 중식을 해결하게 되었고 기념사진도 한판하고 하산을 서둘려 구정봉으로 가게 되었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은,
예전에는 양쪽으로 철계단이 없어서 겨울에 이곳까지 왔다가 되돌아 가기도 하는곳이 바로 천황봉 앞의 이곳이다,
천황봉을 지나 날씨가 워낙 더워서 땀이 비오듯 한지라 바람이 조금만 살랑거려도 기분이 째졌다,
비탈길을 내려서서 사면을 휘도는 바위 절벽면의 홈이 진 곳으로 아담한 곳에 이르니 계속되는 시원한 바람을 만날 수가 있었다,
"선화씨! 여기다 매표소 하나 만들어 돈 좀 법시다"
"바람한번 쒜는데 얼마 하고....."
"외상 헙시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모두 시원한 바람덕택에 기운을 차린후
구정봉을 거쳐서 시원한 샘물을 만나 목을 축인 후에 도갑사까지 하산 완료했다,현재시간 오후 3시40분,
일행 모두 정류장 앞집으로 몰려 들어가
도토리안주와 함께 시원한 막걸리잔치를 하였다,
그리고 불참동문들도 함께 자리를 해서 서로의 추억에 남았드라면 얼마나 좋았을꼬............
하다못해 작설차 한잔씩 이라도 나눠 마신다면 그 운치 그만인 것을...............
<도갑산계 작설차>
(道岬山寺 雀舌茶)
(甕村籬落 雪梅花)
(也應知我 思鄕意)
(說及南州 故事多)
도갑사의 작설차와
옹촌 울타리 아래 설매화는
응당 내 고향 생각하는 뜻 알게하니
남쪽의 지나간 많은 일 말해 주려므나,
_ 신숙주 -
도갑사 계곡에서 나는 차(茶)는 품격(品格)이 뛰어나서
옛부터 애음해 왔는데 조선 세조때 수미왕사(도갑사 증수 함,세조의 왕사)가 일찍부터 세연(世緣)이 있던 신숙주에게 도갑사에서 생산한 차를 선물한 일이 있었다,
차를 받은 신숙주가 수미왕사에게 위와 같은 시(詩)한수를 지어서 보답했다고 한다,
헤어지기 섭섭한 가운데 전주가 가까워지고 있었으며,
일부 잠이든 동문들에게 단잠이 깨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용하게 하차하기를 바랬는데 모두 잠이 깨고 말았다,
"선배님 안녕히 가십시요, 그리고 다음에 또 뵙기를 기대합니다"
첫댓글 완벽하게 완성된 책을 읽은것 같습니다.저는 왕초보라서 산에 오르기도 숨이차서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따라갔다 내려오면 사흘은 후유증으로 고생하는데 비해 님의 산행일지를 보니 산행도사로만 여겨져서 한숨만 나옵니다..언제쯤이나 저는.......여러가지 역사와 사연을 실감나게 적어주시니 많은 공부가 되오니 계속 올려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