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오콘의 정의
미국 정당들의 성향을 볼 때 대체적으로 공화당은 민주당보다 보수적이며 국제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그런데 공화당에는 '강경'이라는 총론은 같지만 각론에서 차이를 보이는 세력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들을 대외정책의 측면에서 다시 크게 구분하면 전통적 보수주의자와 신보수주의자( neoconservative, 줄여서 네오콘) 로 나눌수 있다.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은 국제문제에 선택적으로 개입하는 일종의 '방어적 현실주의'를 표방한다. 반면 네오콘들은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팍스 아메리카나 라는 세계를 지배하는 논리로 선제공격을 통해 새로운 미국이라는 제국을 건설하려는 세력이다. 네오콘은 '온건 보수파'와 반대되는 뜻으로 '강경 보수파'라고 불린다. 딕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도 포함되지만 엄밀히 구분하면 이들은 네오콘은 아니다. 두 사람은 네오콘의 영수로 알려져 있으니 사실은 이들의 후원자이자 정신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 그들은 누구인가
네오콘은 누구인가? 그들은 대부분 유대인이며 뉴욕 등 동부지역의 명문대학을 나온 엘리트로서 군사,외교, 학계, 언론들의 분야에서 서로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는 일종의 클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부시 행정부에 들어가 국방부와 국무부, 국가안보회의 등에서 외교, 군사정책을 주무르고 있는 실무자들이다.
네오콘의 핵심인물은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축으로 리처드 펄 국방정책 자문위원, 윌리엄 크리스톨 '위클리 스탠더드' 발행인,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 에이브럼스 대통령 특별보좌관 및 NSC 중동 담담 국장. 로버트 케이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 연구원과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도 중요한 인물이다.
학계에는 도널드 케이건 예일대학 학장,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 홉킨스대학 국제문제 고등 연구원 원장, 리처드 파이브스 하버드 대학 교수, 언론계에는 찰스 크로서머 '위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등이 있다.
특히 네오콘의 이데올로그이며 지도자격인 올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사실상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인물임에도 국내에는 덜 알려져 있다.
* 네오콘의 기원
네오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반전운동이 휩쓸었던 1960년대 말 민주당의 좌파에서 비롯됐다.
초기 네오콘 들은 당시 좌파 진영의 견해나 키신저의 세력 균형론 모두 거부하고 미국이 힘을 통해 세계의 도덕적 선을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기 네오콘들중 상당수가 한때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 패배와 민주당 내 반전,평화주의에 좌절했고 공화당의 반공, 반소 노선을 지지하면서 우파로 돌아섰다. 네오콘의 대부 어빙 크리스톨의 표현을 빌리면 이러한 전향은 [현실세계를 배워가면서 눈을 뜨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유대인의 총본부 뉴욕
미국은 19세기 이후 유대인들이 모여든 보금자리다. 2천년에 걸쳐 유럽대륙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박해가 있을 때마다 대서양을 건넜다. 20세기 들어 유대인들이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대거
도피해오자 미국은 유대인에게 '제2의 가나안' 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을
무역과 자본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 암스테르담 런던 등을 거치면서 부를 축적했다. 유대인들이
마지막 종착역인 미국에 도착해 주로 정착한 곳은 뉴욕이었다.
뉴욕은1723년 미국 최초의 유대교회가 설립되는 등 유대인들의 중심지가 됐다. 미국 유대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행사는 뉴욕 맨허튼 5번가에서 열리는 매년 5월의 이스라엘 건국 기념 퍼레이드이다.
뉴욕 시 인구 700만명 중에 유대인은 약 250만명이다. 미국 전체 인구의 2%가 유대인인데,
뉴욕에 상당수의 유대인이 모여 있는 셈이다. 911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는 말 그대로 뉴욕의 핵심이었으며 유대인의 자본과 부의 상징이었다.
국제금융자본의 본거지 세계무역센터 뒤에는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로스차일드 가로 대표되는 유대인이 있다. 로스차일드 가는 로열더치 셀, 로스차일드 은행, 골드만 삭스, 록히드 마틴 등 굵직한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는 등 국제금융과 석유부분에서 세계최고의 재벌가라 할만하다.
*네오콘의 브레인 '미국기업연구소'
보수주의자들은1973년 헤리티지 재단을 만들었으며 레이건 행정부는 이 재단의 연구원들을 상당수 끌어들여 고위 각료로 입각시켰다. 이 재단은 1981년 취임한 레이건 대통려에게 기업에 대한 탈규제 정책을 비롯, 국방비 증액 정책안, 사회보장 예산 등 이른바 레이건 독트린의 기본틀을 제공했다.
미국에서 싱크탱크는 입법, 사법, 행정, 언론에 이해 제 5부라고 불린다. 비영리민간단체를 표방하면서 싱크탱크들은 국가정책의 입안과 수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헤리티지 재단에 이어 현재 부시 행정부의 브레인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기업연구소는 특히 클린턴 대통령의 8년 집건 동안 적극적으로 민주당 행정부의 외교, 국방 정책을 비판해왔다. 정부 역할의 축소'와 '자유시장의 옹호'를 목표로 한 미국기업연구소는 특히 기업 이익을 적극반영하는 정책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당시 부시행정부에서는 레이건행정부와 호흡을 같이 했던 헤리티지 재단이 맹활약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자유시장경제를 내세우는 미국기업연구소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 네오콘의 자금줄
각종 우익 재단들은 네오콘들의 싱크탱크는 물론 대학 등에 매년 상당한 액수의 돈을 기부한다. 밀워키의 린드와 해리 브래들리 재단이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기업연구소에 제공한 자금은 1,450만달러에 달한다. 이 재단외에 코흐 가족 재단, 울린 재단 등도 대표적인 자금줄이다.
그밖에 리처드 맬론 스카이프라는 부호가 있느데 워싱턴 포스트는 그를 '보수주의에 물적 기반을 제공한 대부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그는 미국기업연구소등 우파 싱크탱크 4속에 약 14억 달러를 지원해왔다. 그는 레이전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바 있다.
유대인 재력가는 물론 군산복합체도 네오콘의 주요 자금줄이다. 네오콘이 지원받는 자금은 대략 10억달러 규모라는 설이 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미국기업연구소의 2000년 자산규모는 3,600만 달러이고 수입은 2500만 달러이다. 워싱턴 연구소의 경우 2000년 자산귬는 1100만 달러였으며, 중동 포럼의 경우 2000년 수입은 150만 달러였다. 싱크탱크들은 이 돈으로 연구원을 채용하고 각종 정책자료들을 발간한다. 그들의 저서나 연구 프로젝트는 언론(로스엔젤레스 타임스, 예수살렘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 타임즈 , 데일리 텔리그래프, 뉴 리퍼블릭) 을 통해 대서특필된다.
/ 이장훈 '네오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