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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무에타이, 킥복싱, 프로 격투기 원문보기 글쓴이: 카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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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0 오전 11:55:03 | |
▩ 격갤러 ‘합기도맨’ 님이 올려 주신 글입니다. 한국 합기도의 뿌리가 일본의 대동류합기유권술이라는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합기도도 이런 사실을 굳이 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싸이뉴스 편집팀)▩ 결론적으로 일본의 대동류합기유권술에서 나온게 합기도다. 그리고 일본에선 아이키도라고 하는데 이게 합기도와 다른게 아니라 발음만 틀린 것이다. 즉 한자표기가 같다는 것이다. ‘合氣道’를 한국말로 읽으면 ‘합기도’, 일본말로 읽으면 ‘아이키도’. 한국에 대동류합기유권술을 전파한 사람은 잘 알려진대로 최용술씨다. 경상도 출신으로 양주공장 하는 집이었는데 최용술 도주가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건너가 대동류합기유권술을 배워서 한국에 전파했단다. 일제시대 이후 일본에서 대동류합기유권술을 짧게 줄여서 ‘아이키도(합기도)’라고 말했는데 이것에 영향을 받아서 한국에서도 합기도라고 하게 된 것이다. 대동류합기유권술은 발차기는 없고 관절기, 조르기, 급소지르기에 의한 호신술만 있었는데한국에선 다양한 발차기를 섞어서 오히려 아이키도 보다 기술이 더 많아졌다. 국술이니 뭐니 다 합기도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일본 무술은 띠 색깔로 실력을 구분했는데 이런 문화는 중국 남부지역의 어느 무술에서 왔단다. 그 무술은 지금도 중국에 있다고 한다. 참고로 중국엔 수백수천가지의 이름을 가진 무술이 넓려있다. 이 중국 남부의 무술이 바다를 건너 오키나와에 전해졌고 그것이 카라테가 되었다. 오키나와는 원래 일본이 아니었고 지금의 제주도가 예전엔 ‘탐라’라 불렸던 독립된 왕국이었듯 오키나와 역시 독립된 왕국이었다가 일본으로 통합된 것이다. 이때 오키나와 카라테의 문화가 일본 근대무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특히 띠 색깔로 구분하는 것이 뿌리내렸다. 이렇게 발전된 카라테는 조선 식민시절 한반도에 들어왔고 당시 한국인은 카라테의 한자표기를 한국식으로 읽어서 ‘당수도’라고 했단다. 지금도 우리 어른들이 나도 왕년에 당수 좀 했지 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는데 이 당수가 바로 카라테다. 당나라당을 썼던 카라테였는데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중국까지 공격하면서 당나라당을 버리고 한문을 ‘공수도’로 바꾸었단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공수도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당수도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어떤 이들은 당수도와 공수도가 다른 무술이라고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렇게 카라테를 배웠던 한국인들이 해방 이후 각자의 관을 만들면서 형이 조금씩 차이가 났다. 그때 군장성이자 카라테 고수이던 최홍희 장군이 몇몇 가라데 사범들과 하나로 정리해 나갔고 이걸 ‘태수도’라고 부르다가 다시 ‘태권도’가 되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최홍희 장군과는 껄끄러운 상대가 되었고 결국 최홍희 장군은 캐나다로 망명을 했고 거기서 ITF 태권도를 만들고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김일성의 초대를 받아 북한에 가서 태권도를 전수했다. 이때문에 최홍희는 한국에서 이북을 도와준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결국 입국금지라는 조치를 당함으로써 최홍희는 다시는 한국에 올 수 없었다. 최홍희가 죽기 전 한국땅을 밟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한국 정부에서 허락하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북한을 다시 방문했고 몇년후 사망했다. 최홍희가 캐나다로 망명간 이후 한국의 태권도는 김운용이 이끌게 되었고 김운용은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이기도 했다. ID: 합기도맨 / 글번호: 20048 (본 게시물의 저작권과 그에 따른 책임은 저작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본 게시물은 디시인사이드의 제휴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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