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 1
바람 차다
온몸에 새순 돋는다
새들이 우짖는다
터파기 굉음이 시끄럽다
쓰레기산 난지도
통일전망대 가는 길.
새봄 2
삼월
온몸에 새순 돋고
꽃샘바람 부는
긴 우주에 앉아
진종일 편안하다.
밥 한술 떠먹고
몸아픈 친구 찾아
불편한 거리를
어칠비칠 걸어간다.
세월아 멈추지 마라
지금 여기 내 마음에
사과나무 심으리라.
새봄 3
겨우내
외로웠지요.
새봄이 와
풀과 말하고
새순과 얘기하며
외로움이란 없다고
그래 흙도 물도 공기도 바람도
모두 다 형제라고
형제보다 더 높은
어른이라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지요.
마음 편해졌어요.
축복처럼
새가 머리 위에서 노래합니다.
새봄 4
아직 살아 있으니
고맙다.
하루 세끼
밥 먹을 수 있으니
고맙다.
새봄이 와
꽃 볼 수 있으니
더욱 고맙다.
마음 차분해
우주를 껴안고
나무밑에 서면
어디선가
생명 부서지는 소리
새들 울부짖는 소리.
새봄 5
꽃 한번
바라보고 또 돌아보고
구름 한번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봄엔 사람들
우주에 가깝다.
새봄 6
꽃 사이를
벌이 드나들고
아기들
공원에서 뛰놀 때
가슴 두근거린다.
모든 것 공경스러워
눈 가늘어진다.
새봄 7
우주의 밑바닥에서
목련이 피어오른다.
푸른 새순 돋는가
온몸 쑤시고
우울의 밑바닥에서
우주가 떠오른다.
마음에 나직한
새 울음소리
외로움이 외로움과 손잡고
나무가 나무와 얽히는
바람부는 작은 봄 공원
나는 없고
우울의 얼굴만
하늘로 높이 떠오른다
거기 쓰여 있다.
사람은 영생
사람은 무궁이라고
우울은 어느덧
자취없이 사라지고
나비 한 마리
하늘 하늘 난다.
새봄 8
내 나이
몇인가 헤아려보니
지구에 생명 생긴 뒤 삼십오억살
우주가 폭발한 뒤 백오십억살
그전 그 후 꿰뚫어 무궁살
아 무궁
나는 끝없이 죽으며
죽지 않은 삶
두려움 없어라.
오늘
풀 한 포기 사랑하리라
나를 사랑하리.
새봄 9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김지하-
봄날과 여름날의 경계에서 시인은 떠났고,
봄날과 여름날의 경계인 이 작품은 남아 있다.
시인은 사라져도 남는 것을 남기는 사람이다.
蛇足
남색 교복을 입던 고교 시절, 수피아여고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던
라일락과 목련이 마냥 좋았었지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자목련의 아름다움 역시 봄날을 찬란하게 함을 알았답니다.
봄날, 언젠가 지고 말 목련을 보며 몸이 아픈 친구들이
많아져 허무한 인생이라 생각됩니다. 그저 건강하세요~
첫댓글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 ."
까까머리에 남색교복을 입고 부르던 기억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