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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초(海圖抄)
전 광 용
1948년 6월 상순.
그러니까 그 어마어마한 일이 저질러진 다음다음 날인 10일 새벽 나는 경 비선을 타고 포항(浦項)을 떠났다.
밤차의 고달픔이 온몸을 휩싸여 머릿속도 개운치 않았으나 좀처럼 긴장이 풀리지 않는 내 마음은 하루 종일 갑판에 나를 얽매어 놓은 채 선실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번 사건이 내 가슴에 던져준 충격도 크려니와 내가 서울을 떠나던 전날 과도 정부 비서실에서 벌어진 기사 취재에 대한 패배감 같은 꺼림칙한 감정이 아직도 내 몸뚱어리 전체를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피 주재원 B씨와 함께 있었다. 앞으로 박두한 민국 정부 수립에 관한 중요한 자료의 캐치에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는 때였다.
기본 요강 결성의 암시를 받은 나는 비서실에서 부장실로, 심지어는 고문관실까지 쏘다니면서 이미 성안이 다 되었을 새로운 기사의 취재에 몸둘 바를 모르고 날뛰었다.
비서관은 내일 아침 정식으로 발표하게 되었으므로 오늘은 할 수 없다고 능숙하게 발설을 회피하였다. 나는 부득이 수긍하면서도 약간 미적지근한 기분을 안은 채 사에 돌아왔다.
그러나 내가 오후에 다시 출입처로 나가려는 직전, 통신 제5편에 벌써 유피 통신은 정부 수립에 대한 기본 윤곽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여왔던 것이 아닌가.
편집부에서는 당황하여 이미 마감한 기사의 일부를 삭제하고 조판 계획을 변경하여 그것을 톱기사로 싣는 응급조처를 취하는 등 한참 동안 소란대었다.
나는 무색하기 짝이 없었다. 분하다기보다 국내 기자에 대한 어떤 굴욕감 같은 것이 엄습해옴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이번 특파에 별 이견(異見)을 내지 않고 선뜻 출발하게 된 것도 이런 굴욕이나 울분 같은 텔리킷한 감정의 소치이기도 한 것이었다.
외근 출입처에서 돌아온 나는 편집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 총총히 기사를 만들어 내려가고 있었다.
벌써 기사를 끝내버린 동료들은 자리를 비웠고, 몇몇은 테이블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잡담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편집국 정면에 달려 있는 전기 시계를 쳐다보면서 이날 따라 시간 늦게 폭주했던 기사를 하나씩 끝내는 대로 부장 데스크에 내밀었다.
갑자기 방 안이 어수선하여지면서 편집국장 테이블 옆에 국원들이 모여 섰고, 의아스러운 침통한 분위기 속에 부장급을 중심으로 한 편집국 내의 구수회의가 벌어졌다.
백주에 독도(獨島) 근해에 무차별 폭격이 감행되어 무수한 인명의 피해가 있었다는 현지의 무전 급보가 전달되었달 뿐 상세한 내용은 아직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뜻하지 않게 사에서의 현지 특파원으로 결정이 된 나는 어리둥절한 속에서도 어떤 분노와 흥분에 겹쳐 야릇한 호기심마저 솟구침을 걷잡을 수 없었다.
울릉도의 동해안 앙상한 낭떠러지의 바위로만 된 낯선 포구에 닿은 것은 다음 날 저물녘이었다.
바위성칼의 옹졸한 나루터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떼를 지어 웅얼대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기적 같은 구원의 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울음섞인 고함을 터뜨리며 뱃전으로 몰려들었다.
바다에서 방금 들어서는 이 새로운 배에서 그들은 무슨 색다른 소식이라도 얻으려는 듯이 겹겹이 둘러쌌으며 공포와 불안이 찬 눈들이 오들오들 떨면서 상륙자(上陸者)의 입만을 지키고 섰는 것이었다.
나는 착륙 제일신(第―信)의 보도를 장식할 수난자들의 첫 인상을…… 하는 직업의식을 혼자 뇌면서 카메라에 손이 갔다. 그러나 순간 이 참혹한 얼굴들을 뉴스 밸류의 구경거리 대상으로 내걸기 위하여 성급하게 학대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자책 같은 것이 치밀어 슬그머니 카메라에서 손을 떼었다가 결국 셔터를 누르고 말았다.
배에서 내리는 길로 경찰서를 찾았다. H서장은 도세(島勢)에 대한 개략 설명을 끝낸 다음 괘씸하다는 듯한 표정을 억지로 누르면서 말을 이었다:
“이것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어부들이 때마침 출어(出漁)나간 배에 구조되어 돌아왔기에 망정이지 그들까지 없어졌다면 영영 알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흥분으로 입술에 침을 튀기면서 나의 공명을 구하는 듯한 어조였다.
“언제인가 미군이 독도를 무인도(無人島)라고 해서 폭격 연습지로 사용한다는 말을 들은 듯한데, 어느 나라 비행기인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하여간 우리나라 섬을 외국 비행기가 폭격 연습지로 사용한다는 것부터가 못마땅한 일입니다.”
핏기를 올린 그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
나는 모든 일을 제쳐놓고 우선 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목격자를 찾기로 하였다.
향나무가 비비 꼬아 얽혀진 비탈길을 더듬어 모시개〔苧洞〕로 건너갔다. 풀잎의 이슬이 발목을 감아들어 축축하여왔다.
두 사람의 생존자 중에서 늙은 어부는 아직 의식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젊은 기관사만이 물음에 겨우 대답할 정도였다.
등잔불의 심지가 타 들어가는 어유 냄새가 매캐하게 코를 찔렀다.
우중충한 방 안에 시력이 익숙하여짐에 따라 누워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 점점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스름한 불빛 속에서나마 거인을 연상시키는 굵직한 골격에 흐트러진 윗도리 사이로 내미는 검붉은 피부가 아직 그렇게 탄력을 잃지는 않았다고 느껴졌다.
눈과 머리에는 온통 봉대가 감겨져 있다. 모로 누워 있는 그의 왼쪽 허벅다리와 궁둥이께로 국방색 작업복 바지에 피가 배어 엉겨져 있다.
간헐적으로 몸을 비틀고 신음하면서도 왼쪽 골반을 관통한 상처 때문에 돌아눕지도 못하고 안간힘 만 빠드득빠드득 쓰고 있다.
번열이 난다고 가슴을 헤쳐놓은 환자는 팔을 휘저으면서 물을 찾는다.
나의 안내 격으로 동행했던 이 섬의 단 하나의 의사 R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환자를 응시하고 있다. 그는 탈지면에 물을 묻혀 환자의 입에 물려주었다. 환자는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솜을 빨면서 콧구멍을 뚫고 나오는 신음 소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의사는 한 시간 전에 다녀갔다면서, 환자의 몸 붙이지 못하는 꼴을 보다 못해 진통제를 한 대 더 찔러 놓는다.
숨결은 거칠망정 환자의 몸뚱어리가 약간 고정되어감을 짐작한 의사는 들릴락 말락 하게 내 귓전에 속삭였다.
“관통상이 중상인 데다가 오래도록 한데에 방치해두었으니까 출혈이 너무 심했어요.”
그는 담배를 꺼내어 나한테 먼저 권하고 나서 불을 그어 붙여 길게 빨아 내뱉으면서 절망적 인 낯빛을 보였다.
“수혈을 하면 어떨까요?”
“하, 여기는 시설이 없습니다.”
나의 물음에 의사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제발 목숨만이라도…….”
여인의 목소리는 끝이 흐렸다. 환자의 옆에 핏기 없이 앉아 부은 눈언저리가 눈물로 번들거리는 이 여인이 환자의 아내임을 짐작하면서도 나는 환자의 움직임에 눈을 박고 아직 한 마디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나는 바닷가로 나갔다.
둥글둥글한 곱돌 자갈이 발을 옮길 때마다 맞부딪는 소리가 고요한 주위에 파문을 던졌다. 거세지 않은 파도가 밀려왔다가 쓸려 나갈 때는 자갈들이 소리내어 울었다.
보름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달이 수평선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다. 온 바다가 새벽 동이 트는 것처럼 밝아온다. 달빛으로 짜낸 한 폭의 무늬가 끝없는 바다를 거쳐 달에까지 이르렀다.
아득한 세월을 두고 그렇게 수많은 생명을 삼켰으면서도 바다는 알은체를 하지 않고 단조로운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
준구의 붕대로 처맨 얼굴과 작업복에 엉겨 붙은 핏자국이 내 눈앞을 가렸다.
그 다음에는 출입처에서의 취재에 대한 불쾌했던 감정이 다시 솟구쳐 일어났다.
대체 외국 통신에 먼저 알리고, 외인 기자를 국내 기자 몰래 초정하여 제 나라 일의 중대한 이야기를 먼저 토하고, 정작 그 새로운 정책의 직접 관계가 될 자기 나라 기자에게는 은폐하려는 것이 무슨 심정들일까 하고, 나는 명 (明)나라 때의 조공(朝貢) 시절이나, 일제 시대의 침략자에 대한 아첨과 자기들끼리의 모함 분열을 되풀이하던 못난 조상들의 지난 일을 곱씹 어보는 것이었다.
이번 일은 꼭 이러한 오랜 타성이 가져다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참변인 것만 같게 여겨졌다.
여사(旅含)一로 돌아왔다.
남녀의 혼성된 유행가가 흥에 겨워 숟가락 장단에 섞여 건너편 음식점에서 들려왔다. 웃음과 박수가 간간이 섞였다. 육지에서 오징어 떼를 찾아온 선주(船主) 패들이라고 한다.
그들의 큰 배들은 섬에서 나는 미역과 오징어를 싣고 육지로 떠나가버린다. 그러면 갯가의 사람들은 그들이 돌아오는 날 다시 고리(高利)의 장리변을 얻어서 한겨울을 난다. 다음 해 봄부터 다시 큰 배에 붙어 품팔이 사공질을 해야 한다.
똑같은 일이 그대로 해마다 되풀이될 뿐이다.
준구도 이 섬에서 나서 그러한 풍토 속에서 자랐다. 그의 소원은 발동선 선장이 되는 것이었다. 선주의 일만을 해주는 것 같은 품팔이 사공을 면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의 꿈은 지금 첫 단계를 밟아, 그는 징용에서 돌아오자 발동선의 기관사로 제 기술에 자신을 가지고 버티어가는 것이었다.
팔십 년 전 흉년을 만나 어쩔 수 없이 이 섬까지 이민해 왔다는 할아버지의 무능을 나무라고는 섬을 떠나려는 일념으로 이를 깨물고 벌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죽음 앞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폭풍우의 천재지변도 아니고, 제 손으로 저지른 잘못도 아닌 포악 속에서 실신 상태로 누워 있다.
허물어져가는 방파제는 해방 후 손을 댄 것 같지 않다. 물결이 밀려와서는 시멘트 조각을 허물고 스르르 부서진다.
아침 일찍 나는 다시 준구의 집을 찾았다.
어제 저녁보다는 경과가 약간 좋아져 혼수상태에서 깨었다고 한다.
눈이 보이지 않아 몹시 갑갑한 모양으로 옆에 앉은 아내에게 바다 물결이 잦았느냐, 날씨가 맑아졌느냐, 바다에 배가 보이느냐 하고 안타까운 질문을 연거푸 계속하며 무엇인가 자꾸만 말하고 싶어 한다.
나는 겨우 때를 만났다 생각되었다.
준구는 물음에 띄엄띄엄 대답하다가는 가끔 격분하는 어조로 몸을 벌떡 일으키려는 듯이 한쪽 팔로 땅바닥을 짚으면서 고함 비슷하게 큰 소리를 외치는 것 이었다.
유월의 첫더위가 등을 거세게 쬐던 그날은, 바람이 숨 죽어 밝은 날씨였다. 바다는 무늬마저 잃은 듯 잠잠하고 허공에 맴을 도는 갈매기 떼를 거쳐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의 가는 오리가 두드러지게 선명했다.
새벽녘에는 한두 척밖에는 보이지 않던 배가 한낮이 되면서부터 사오십 척의 집단을 이루어 독도 바위섶을 뺑 둘러쌌었다.
준구는 발동을 끄고 기관실에서 나왔다.
수경(水鏡)을 물속에 잠그고 들여다보니 검푸르게 밝은 바다 속에 한 발씩이나 되는 미역 오리가 너울거리고 그 사이로 고기떼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배마다 선소리를 쳐가며 갈퀴로 따 올린 미역을 한 아름씩 안아서는 끌고 온 뎀마선에 싣고 있다.
몇 시간의 작업으로 거의 만선이 된 배들은 새로 딴 미역을 바위 위 양지볕에 펴서 물기를 찌게하고 있다.
준구는 배의 위치가 이동될 필요를 느낄 때마다 기관실에 내려가 발동을 걸었다. 마스트의 태극기가 부드러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면서 그는 흐뭇한 기분으로 담배에 불을 댕기었다.
며칠만 이렇게 만선을 해 가지고 들어가면 지난해 진 빚을 물고 오래간만에 여유 있는 살림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뒤를 예측할 수 없는 바다 일이기에, 오후에 또 바람길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아무 배에서도 누구 하나 쉬지 않고 바닷속에 눈을 파묻은 채 손을 세차게 움직이고 있다.
오랫동안 폭풍우가 계속되다가 겨우 고요한 날씨를 만난 이날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오징어 철에는 첫추위가 접어들 때까지 신통한 수확이 없이 허탕을 치고 겨우내 죽지 못해 살아왔다.
준구는 얼마 가지 않아 해산(解産)을 하게 될 아내를 생각하여 본다. 가엾기 짝이 없다.
순산이나 하면 포항이나 부산쯤이라도 옮길까 하는 계획을 다시 뒤져본다.
별안간 비행기의 폭음이 들려왔다. 준구는 선뜻 머리를 치켜들었다.
동남쪽에서 비행기 두 대가 이쪽을 향하여 직선으로 날아오고 있다. 삼팔선 쪽으로 가겠거니 하고 등한히 보아 넘겼다.
그러나 폭음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각도를 돌리지 않고 곧장 이쪽을 향하여 급강하를 하고 있다.
어부들의 시선은 모조리 비행기 쪽으로 쏠렸다.
순간 검은 덩어리가 줄지어 떨어지면서 바위에 와 폭음을 내고 부서졌다.
배꾼들은 당황하여 바위 뒤쪽으로 피하여 흩어졌다.
준구는 얼른 기관실로 내려갔다.
뱃머리를 돌렸다. 파편이 배 왼쪽 옆에 와 부딪쳐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는 다시 뛰어나왔다. 분명히 총알이 날아왔다. 기총 소사였다. 나가사키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연합군 비행기가 까마귀 떼처럼 몰려와서 총알을 퍼붓던 일이 생각났다. 잠자던 두려움이 거센 물결처럼 밀려왔다. 무슨 착각이리라 싶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그는 웃내복을 찢어 벗어 들고 고함을 치며 내흔들었다. 발악 같은 애걸이었다. 막무가내다. 아무 소용도 없다.
비행기 몇 대가 더 오고 있다. 전쟁이 터졌나 싶었다. 본능적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어갔다.
폭풍에 바닷물이 솟구쳐 배겨날 수가 없다. 배가 급작스레 가라앉는다. 헤엄쳐 바위섶으로 나왔다. 동굴로 기어가 엎드렸다. 같은 배의 선장은 땅에 머리를 박고 거꾸러졌다. 콧구멍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다. 총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성난 파도 위에 몸부림을 치면서 배들은 거의 바닷속으로 까라지고 있다.
숨을 돌리려고 다시 머리를 드는 순간 폭풍이 눈을 휩싸고 달아났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캄캄하다.
아우성 소리만 요란하다. 손으로 더듬어 억지로 기었으나 손에 찬물이 닿았다.
“그 뒤는 모르겠어요. 까무러친 모양이야요.”
준구는 콧등에 땀이 배지지 괴었다. 마른 입술을 몇 번이나 빨고 있다.
우는 것인지, 상처에서 나오는 핏기인지 눈을 싸맨 얼룩진 붕대가 더욱 젖어 있었다.
나는 그 이상 물을 용기를 잃었다. 그의 증상이 악화될까 염려되어 더 묻지를 못하였다.
다만 그의 생명이 구출되기만 기원할 따름이었다.
그의 국방색 미군 작업복에 배어 있는 피의 자국, 그리고 내 몸뚱어리에 걸친 탈색 바지와 토마루²에 벗어놓은 미제 군용화 등, 모두 다 남의 물건으로 싸여진 자신의 몰골을 대조하여 보면서 나는 허황한 쓴웃음을 씻을 수밖에 없었다.
준구의 신음 소리는 다시금 애처롭게 들려왔다. 전신이 경직해가는 듯한 경 련을 일으키더니 피를 한 사발이나 토했다.
남편의 입을 훔치고 요강을 옮기고 난 아내는 흐느끼고 있다.
준구의 머리맡에는 해도(海圖)가 구겨진 채 그대로 뒹굴고 있다.
군데군데에 동그라미, 삼각형, 화살표 따위가 색연필로 진하게 표시되어 있다.
검푸르게 얼룩진 바다 빛깔 위에 좁쌀알이 굴러가듯 섬이 흩어져 있다.
북위 37도 14분
동경 151도 52분
이 땅의 동쪽 한끝에 팽개치듯 떨어져 있는 섬이다.
부둣가 바위 절벽에 역사적인 첫 선거의 낡은 포스터가 폐병(廢兵)의 녹슨 훈장처럼 애잔하게 남아 나의 시선을 쓸쓸히 이끌었다.
깨끗한 한 표를 긁어모은 주인공들이 정말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여 우리 모두들 잘살 수 있는 새 나라를 이룩하겠는지 하고 입속으로 뇌면서 막연한 기대를 나는 걸어보는 것이었다.
준구의 붕대로 싼 얼굴과, 만삭이 된 그의 아내의 퉁퉁 부은 얼굴이 나의 눈앞을 다시 가렸다.
나는 참사 현장을 보기 위하여 배에 올랐다.
배 속에서도 준구의 모습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섯 시간의 항행에 나는 퍽 지쳤다.
동독도와 서독도 두 섬 사이에 배를 대었다. 바위를 띄엄띄엄 건너서 동굴에 들어섰다. 동굴이래야 물이 통하는 수로(水路)에 불과하다.
폭격과 기총 소사로 이끼 낀 바위 조각이 떨어진 자리에 새 돌이 나타난 곳이 여기저기 보일 뿐, 거센 물결에 휩싸여간 바닥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동떨어진 암초 위에 물개가 날씬한 몸을 나타냈다가 물속으로 숨어버리고, 하오의 태양 아래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있을 뿐이다.
검푸른 바다가 오히려 곱고 밝기만 하다.
나는 다시 모시개로 돌아왔다. 가슴속이 허전하기만 하였다.
R의사가 준구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비행기, 아, 저기 양키 비행기가……”
이것이 그의 마지막 비명이었다는 것이다.
안개가 짙 갔다.
그래도 바람기가 없기에 배들은 언젠가 떠나갈 희망을 품고 닻줄을 감고 있다.
마치 그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끝-
2016년 7월 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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