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에서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는 망해암에 올랐습니다. 올 한 해 수고한 태양을 보내며 내일 더 밝고 깨끗한 빛을 보내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기 위해서지요. 저 자신에게도 2004년 잘 달려왔다고 격려해 주고픈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 해 마지막인데 오늘 망해암에는 사람이 많겠지요?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서둘러 올랐습니다.
안양시 동안구 비산사거리, 대림대학교 뒤편에 위치한 아파트 숲을 헤치고 올라가자 차 한 대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포장길 나타납니다. 바로 망해암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그 길을 따라 구비구비 올라가니 안양 시내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절 주차장을 찾지 못해 산의 정상까지 올라갔습니다. '정상까지 차가 올라가다니?' 이곳에는 '안양항공무선표지소'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도 동쪽 산에서 올라오는 일출을 감상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일몰도 이곳에서 보는 게 더 시야가 트여 좋을 것 같고요. 하지만 사람들이 안양 제 1경으로 뽑은 이유가 있겠지 싶어 차를 돌려 망해암으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주차장이 좁습니다. 대략 10대 정도 세울 수 있습니다) 내려서 절을 바라보니 아직 신축건물이 공사 중이라, 어지러운 마당이 먼저 눈에 들어와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안양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은 좋더군요. 말 그대로 시원합니다.
시간을 보니 아직 해가 지려면 한 30분 정도 남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이네요. 아직 일러서 그런가봅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안양 사람들이라면 많이 찾아오겠지요. 장갑에 목도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조금 남는 시간에 절집을 먼저 보러 내려갔습니다.
'망해암(望海庵)이라? 암자에서 바다가 보이기를 바란다는 뜻인가?'
여기서 보니 서쪽은 산으로 꽉 막혀있는데 그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이 절 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이야기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종임금 때 남쪽지방에서 조세로 받은 양곡을 실은 여러 척의 배가 인천 팔미도 근처에 왔는데 갑자기 거센 풍랑을 만나 위기에 처했답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스님 한 분의 덕으로 위기를 넘겼다고 합니다. 뱃사공들이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십니까?'라고 묻자 '관악산 망해암에 있소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 | ▲ 바위 형상이 마치 부처님의 귀를 닮았습니다. | | ⓒ2005 방상철 | | 배가 무사히 육지에 닿자 그 뱃사공들 중 몇 명이 망해암을 찾았으나, 그 스님은 없고 대신 스님을 닮은 부처가 모셔져 있음 발견하고, 부처의 자비로 자신들이 살았다며 그 사실을 임금님께 알렸습니다. 세종대왕은 이를 가상히 여겨 매년 한 섬의 공양미를 이 망해암 불전에 올리도록 분부했는데, 그 공양미가 그 후 4백년간이나 계속 되었답니다. 그때 그 스님(부처님)이 서해바다까지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뜨라고 절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은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 | ▲ 삼성각 | | ⓒ2005 방상철 | | 삼성각 앞에 오르자 사적비가 보입니다. 사적비에 의하면 망해암은 봉은사말사지에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이 지은 가람고에도 기록이 되어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세월에 비하면 절은 정말 초라합니다.
 | | ▲ 안양망해암사적비, 한글로 이 절의 연혁과 전설이 적혀있습니다. | | ⓒ2005 방상철 | | 주 법당인 석조미륵불을 모신 용화전과 삼성각, 범종각 그리고 요사채가 전부이지만 지금 공사 중인 건물이 완공되면 좀 다른 모습을 갖게 되겠네요. 많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 ▲ 석조미륵불이 모셔진 '용화전' | | ⓒ2005 방상철 | | 용화전을 둘러보고 아래 계단을 타고 내려와 범종각에 서서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봤습니다. 15분 정도만 지나면 붉은 노을이 물드는 일몰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야 사람들도 조금씩 모이고 있습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인원이지만 함께 마지막 태양을 보낼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위안은 됩니다. 전 혼자 쓸쓸히 지켜볼까봐 걱정했었거든요.
 | | ▲ 범종각 | | ⓒ2005 방상철 | | 조금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하자 절 위로 올라가 전망이 가장 좋은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망졸망 흩어져 있던 사람들도 모이기 시작했고요. 한 가족이 모두 나온 가정을 보니 참 부러웠습니다. 오늘은 사정상 저 혼자 올라왔거든요.
“저 해가 넘어가면 너도 한 살 더 먹는단다.”
아이의 손을 다정히 잡고 이야기하는 아이 아빠의 목소리가 감상에 젖어 있습니다.
“야! 이제 해가 들어간다!”
 | | | | ⓒ2005 방상철 | | 모두들 잠시 말을 잃고 정신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붉은 노을이 앞산을 물들이는 사이에 태양 주위로 구름이 몰려들었습니다. 잠시 드는 아쉬움, 그러나 그 구름마저 붉게 물들이며 이 한 해의 마지막 태양이 지고 있습니다. 저도 조그만 소망을 빌었습니다.
‘내년에도 열심히 살터이니, 도와주세요.’
 | | ▲ 2004년, 마지막 태양이 지고있습니다. | | ⓒ2005 방상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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