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일본 선거가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나, 평화헌법 개정, 즉 전쟁 포기를 명시한 전후 헌법이 사실상 개정되고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일본이 재탄생할 기반이 닦였습니다. 그때 봇물처럼 신문사에서 기사가 쏟아졌는데요, 바로 직후에 일본 천황이 양위를 하겠다는 뜻을 비추었지요.
여기에 대해서, 일본천황이 평소 아베총리의 공격적 대외정책에 불만이었으며, 친한파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조선일보의 한 기사는 아베와 개헌 움직임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양위 의사를 내비친 것이라고 보도를 했습니다.
그 기사를 읽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곧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는데, 아시다시피 너~무 덥고 너~무 잡일로 바빠서 오늘 잠시 짬을 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나는 일본천황의 양위 기사를 보자마자, 정말 개헌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양위가 나오는 천황가의 개인적 배경으로 보자면, 현재 황태자가 딸밖에 없어서 여황 문제가 걸려있다는 사정, 의학혁명으로 평균수명이 비약적으로 늘면서 정상적인 사망 후 왕위 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는 일본천황 자신이 자신이 물러나야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아베나 일본사회가 사실상 바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일본천황은 대단히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중요한 존재는 서력을 쓰는 우리와 달리, 아직까지도 일본사회가 연호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이전 천황인 히로히토, 쇼와천황은 연호가 쇼와이므로, 사람들은 그의 치세를 "쇼와 시대"로 기억합니다. 쇼와 시대는 1926년부터 1989년까지로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일본사의 가장 역동적인 시대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의 강자로 부상하여 중국 대륙과 동남아시아까지 침략하여 영토를 최대로 넓혔고(이를 일본은 "진출"이라고 봅니다), 미국과 태펻양전쟁에서 대등하게 겨룰 정도로 군사강국이었습니다. 전후 폐허에서 재출발해야했지만, 쇼와 시대는 또한 전후 일본의 찬란한 경제적 부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쇼와 천황이 사망하는 1989년 1월 7일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띠게 되는 시점입니다.
바로 그 직전까지 일본은 버블경기가 최고점에 달하면서 넘치는 엔화로 미국을 상징하는 건물, 부동산, 회사를 사재기하면서, 미국인들에게 "일본 경제적 점령"이란 공포감을 주었습니다. 태평양전쟁에서 지고 점령까지 당했던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개헌과 재무장 논의가 다시 부상하던 시기입니다. 미국 역시 소련과의 냉전으로 인한 국방비 과다와 재정 적자때문에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던 때입니다.
그러던 중에 쇼와천황이 사망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천황, 아키히토 천황이 뒤를 이으면서 "헤이세이(평성)" 시대가 시작됩니다. 일본인에게 "헤이세이"는 어떤 시대인가요?
이듬해인 1990년에 일본의 거품경제가 꺼집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일본의 불황은 "헤이세이 불황"이라고 불리는 공전의 디플레이션을 가져옵니다.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입니다. 이 기간 동안 한국경제가 맹진하고, 중국이 대두하더니 세계적 대국으로 성장합니다.
이제 일본은 아베노믹스하에서 헤이세이 불황을 막대한 공적자금 투하와 환율 인하라는 마치 2차대전 직전에 쇼와공황과 대공황을 고도의 국가개입정책으로 이겨냈던 것과 유사한 형태로(그 후에 만주사변, 중일전쟁이 나지요) 가까스로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또 중국 대두에 따른 국제정치 지형의 변화를 근거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마침내 개헌과 재무장의 고지 턱 밑까지 왔습니다. 그랬는데 계속 "헤이세이"라구요? 아닙니다. 심리적 일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천황의 상징성이 강한 만큼,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를 강하게 어필하려면 새로운 연호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곧 개헌 논의가 진전되어, 개헌을 선포하는 시점과 때를 맞추어 새로운 천황의 교체(양위)와 새 연호의 선포가 이뤄지리라 예측합니다.
과연 일본은 원하던 대로 전후 체제를 완전히 극복하고, 전전의 "대국"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시도 내지 회복이 과연 일본 자신에게나 주위의 타국에게나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요. 두고 볼 일입니다. 남의 일이 아니니까요. 한반도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니까요.
첫댓글 깊이 동의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때맞추어 도쿄올림픽까지 하지 않습니까? 1964년 도쿄올림픽은 전후 패전국의 이미지를 씻고 화려한 부활을 알려기 위해 잘 기획된 올림픽이었지요. 이제 4년 뒤의 2020년 도쿄 올림픽도 한 번 지켜봅시다. 코드가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