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을은 언제쯤일까? 인생이란 무대에 진정 가을이란 계절은 존재하는 것일까? 삶에 대한 화두와 철학이 순서 없이 등장하는 계절이다. 누군가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더니 맞는 말 같다.
일상이 단조롭다. 아침에 직장에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저녁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반복된 일상에서 저문 들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계절의 한나절을 뜨겁게 달구던 무더운 여름은 어느새 저편 언덕으로 사라졌다.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흰 구름을 벌겋게 데우고 산등성을 데면데면 넘어가는 석양의 황금빛. 천지사방 어디를 바라봐도 아름다움과 풍성함이 가득하게 들어온다. 가로수가 줄지어 선 보도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면 먼 곳에서 불어오는 갈바람이 느껴지고,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의 수런거림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읽게 된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소망에 한적한 거리로 나섰다. 삶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나이가 들어 근원을 찾아가는 순환의 과정이다. 그런 순환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계절이 몇 번 바뀌고 육신에 나이테라는 잔주름만 늘려간다.
평범한 일상에 잔잔한 변화를 주는 것은 자연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온몸을 화려하게 태워 가는 단풍을 바라보며 인생의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추락하는 낙엽을 바라보며 인생의 끝자락을 반추해본다.
나뭇잎이 화려하게 물들어가는 단풍잎 사이로 사람과 건물과 공간이 어우러져 삶의 구조를 이룬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전원 교향곡이 울려 퍼지고 무리를 지어 사무실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면 내 삶의 시계추도 덩달아 빨라진다.
사람이나 나뭇잎이나 가을이면 알 수 없는 목적지를 찾아 떠난다. 빌딩 옆에서 자라는 은행나무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열매와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이 찾아가는 목적지는 어디일까. 그간 살아오면서 겪은 기쁨, 슬픔, 이별, 사랑, 고독 등이 바람에 휘감겨 거침없이 다가온다.
내 삶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고, 미래라는 희망보다 돌아가야 할 귀향을 꿈꾸고, 거친 삶보다 안온한 삶의 회귀를 소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것 같다. 오늘따라 계절 속으로 침잠해 가는 은행나무의 자태가 더없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사람이 제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도 나무가 연출해내는 색과 모습을 따라갈 수는 없다. 나도 저렇게 멋진 모습으로 청춘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언제 저렇게 푸른 모습으로 남들 앞에서 당당한 삶을 살아간 적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은행나무처럼 생을 인내하며 살아내지는 못했다. 그 절반이라도 따라가면 좋으련만 미련과 아쉬운 마음만 가득하다.
가을은 생명의 의미를 소중하게 되새기는 계절이다. 자연은 날마다 새로운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기운으로 아침을 맞이하며 질서와 순환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을에는 사람들이 단풍잎처럼 삶에 그리움과 희망을 노래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더불어 삶의 질서와 순환에 순응하며 생을 찬양하고 평범한 일상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풍성한 수확의 계절에 맞이하는 한가위. 벌써 몇 번째 맞이하는 한가위인가. 한가위를 맞이하는 햇수가 늘어갈수록 의미가 진해져야 하는데 퇴색이라는 단어가 친숙하다. 한가위를 맞이하는 마음은 풍성하지만, 몸으로 맞이하는 한가위는 빈한하다. 가는 세월에 마음이 무디어져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피부에 와닿는 강도와 의미는 미미하고 초라하다.
텅 빈 허공에서 대지로 소리 없이 낙하하는 애벌 낙엽의 춤사위. 감나무 가지 끝에 풋풋하게 매달린 주황색의 싱그러운 감. 가을을 맞이하는 주변이 성숙하게 갈색으로 익어가는 모습만 바라봐도 마음은 풍성해진다. 갈 길 모르고 추락하는 낙엽보다 하늘을 바라보며 청청한 꿈을 꾸는 나뭇잎이 부럽기만 하다. 덤불숲에서 자라는 농익은 감보다 풋풋한 향기를 안고 생을 감내하는 땡감이 더 정겹게 눈에 들어온다.
이번 가을에는 이름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펜을 들어 그리운 사연을 전하고 싶다. 내 편지를 받아주는 이가 없어도 좋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하소연과 일상의 푸념을 소소하게 적어 보내고 싶다.
가을만 되면 벗이 그립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받아줄 마음 편한 사람이 그립다. 남에게 보여줄 것도 없는 일상에 대하여 그저 헤픈 웃음과 마음으로 넉넉하게 받아줄 수 있는 절친한 벗이 그립다.
오늘따라 내게 그런 벗이 몇이나 되는지 자신에게 묻고 싶다. 단 한 명이라도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면 허름한 선술집에 초대해서 애송하는 시구와 삶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세월을 노래하고 싶다.
첫댓글 허름한 선술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눌 친구가 생겨날 것 같군요.
요즘은 하루 해가 참 짧다는 걸 느낍니다. 낙엽 쏟아지는 이맘 때면 더 그렇죠.
세상을 발갛게 물들이던 가을이 저물고 있네요.
서둘러 낙엽에 쓴 편지를 띄우고, 마음 편한 친구와 막걸리 한잔 기울이면 좋은 날입니다.
차분하고 힐링 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