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모습은 내가 만듭니다
74년째 목회 활동을 하는 방지일 원로목사님은 벌써 백 살의 나이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합니다. 그분께 그 비결을 물었더니 명쾌하게 답했습니다. “녹스는 게 두렵지, 닳아 없어지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든 기계든 사용하지 않으면 반드시 녹슬고 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닳아버리는 걸 두려워합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삭아버리는 게 육신이고 정신이고 인생인데 말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특별합니다. 그 특별한 능력과 재주를 사용하지 않아 녹슬게 하는 건 자신을 보잘것없게 만들고, 스스로를 모독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사람은 두뇌와 타고난 재능을 대체로 1퍼센트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공하고 출세하고 널리 존경받는 사람들은 비교적 자신의 두뇌와 재능을 1퍼센트 이상 사용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닳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성공합니다.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녹슬게 하는 건 허수아비처럼 그냥 꽂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젊은이라면 허수아비에게 혼을 불어넣어 웃으며 춤추게 할 수 있는 정열이 있어야 합니다.
영어의 ‘프리젠트(present)’에는 ‘선물’이라는 뜻도 있지만 ‘현재’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과거와 미래는 선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난 일에 매달리지 말고 앞으로 닥칠 미래의 일들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난 일들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고, 현재의 내 행동이 미래의 내 모습을 만든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내일 선물을 받고 싶다면 오늘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더구나 비싸고 좋은 선물을 받고 싶으면 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세상이 변화되기를 고대합니다. 남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내가 움직여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게 훨씬 쉽고 빠릅니다. 남을 파랗게 물들이려면 내가 먼저 파랗게 물들어야 합니다. 내가 파랗게 젖은 채 다가가면 남들도 조금씩 파랗게 물들기 마련입니다.
억지로 상대를 물들이려고 물감을 뿌리면 달아나버리게 됩니다. 반대로 내가 물들었을 때 상대가 다가오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늘 가슴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상대가 기웃거리다가 한 발짝 슬쩍 넘어도 보고 되돌아갔다가 다시 올 수도 있을 만큼 활짝 열어두어야 합니다. 정말 남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나를 바꾸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감동시키는 게 어찌 쉽겠습니까. 그래서 지금의 내 모습부터 찬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금이 내 모습은 남이 만든 게 아니라 내가 만든 것입니다.
누구나 밥과 반찬은 씹다가 꿀꺽 삼키지만, 알약을 삼킬 때는 고개를 젖힙니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음식은 그냥 삼키는데, 몇 알 안 되는 알약을 삼킬 때 고개를 젖히는 것은 오랜 세월의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 먹기 싫다는 느낌이 있어서입니다. 물을 마시거나 알약을 먹는 건 배운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어려서부터 부모가 강제로 떠먹이거나 삼키게 했기 때문에 거부감이 앞섰던 것입니다. 경황없이 바쁘거나 급할 때는 알약을 입에 넣고 물 한 모금만 마셔도 꿀꺽 넘어가지만 이게 넘어갈까 안 넘어갈까 생각하면 그 순간 목에 딱 걸립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려면 순조롭지 않습니다. 포기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슬쩍 생각을 바꾸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즐겁게 하자’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야 합니다. 인체에는 다른 사람의 표정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되는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가 있다고 합니다. 웃고 끄덕이고 호응하면 긍정적 신호로 인식하고, 찡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표정이 굳으면 부정적 신호로 인식하게 됩니다. 내 인생은 내 마음이 좌우합니다.
예전엔 등산장비가 비싸고 귀해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산을 좋아해서 자주 산행을 했는데, 그리 높지 않은 경우에는 바위를 타기도 했습니다. 바위는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어렵습니다. 몸이 가볍다는 소리를 듣던 저는 한번은 멀리 돌아가는 게 귀찮아 바위를 조심스럽게 타고 내려왔습니다. 올라갈 때는 별로 가파르지 않은 듯했는데 내려올 때는 아차 싶었습니다. 중간쯤 내려오자 손발에 힘이 빠졌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했습니다.
이대로 미끄러지면 크게 다치거나 영영 산에 올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앞섰습니다. 이럴 때는 겁을 먹고 당황하기 십상이고 그래서 사고가 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 절박한 순간에 선배의 말 한 마디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손톱의 힘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난 등산가의 이야기가 제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무사히 바위를 타고 내려온 뒤 손톱을 보니 다 부서지고 닳아 엉망이었지만 제게는 엄청난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다.
저를 구해준 것은 손톱만큼의 힘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희망과 행복과 기쁨은 손톱만큼의 힘만 있으면 획득할 수 있습니다. 힘겹고 어려울 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 나를 바꿀 수 있습니다. 가능성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희망과 미래도 모두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첫댓글 신부님의 글은 묵상하기에 참으로 좋은글 들입니다만 이세상것에 취해 있다보면 신부님의 글을 건성으로 읽을때도 있지요 이글을 처음에는 적당히 읽었는데
오늘 다시한번 5번을 읽고 보니 참으로 저에겐 약중에도 보약입니다.오늘 하루 이글을 묵상하며 저의 삶과 주님과의 관계를 따지고 또 묵상하렴니다.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