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 4장 13절 – 18절
오늘 우리는 법을 잘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법은 사회의 안정성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법을 잘 지키는 것에 집중하게 되면 이는 잘못됩니다. 법의 목적을 상실하고 단지 법을 지키는 것에 주목하게 되면 법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압제하는 수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도 그러한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을 이스라엘백성들은 이를 잘못이해하여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해 놓고서 이를 잘 지키면 의롭다고 하고 남들보다 더 착실한 신앙인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는데 단지 규정된 법규를 잘 지키는 것에만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들이 자신과 같지 못하면 강제수단을 동원하여 자기처럼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정립과 발전인데 이를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우리는 항상 우리의 자원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한계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은혜로 이끌고 나아갑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은 은혜를 보지 못했습니다. 자기자원에 집중하고 그 결과 신앙의 우월성과 열등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이 철저하게 거짓신앙에 빠져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신앙의 이해가 바리새인들 즉 이스라엘사람들과 같아서 거짓신앙체계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우월감과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 규칙을 잘 지키고자 노력하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앙이 종교화 되어서 하나님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복주의는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버립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시대에 신앙의 회복과 부흥을 예배하십니다. 바로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진리가 재발견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면 우리는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자신을 앞세우게 됩니다. 은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께 대가를 요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 하나님께 헌신하면서 대가를 요구하고 섭니다. 바로 믿음이 무너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자원으로 되지 않습니다. 이는 은혜로 되어지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만 되어집니다. 그 때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회복과 부흥을 갈망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이 있기 전에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지만 동시에 은혜의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듣는 것이 습관적이었고 건강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뜻을 보이시면 언제라도 자기의 뜻을 내려 놓았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이 독자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은혜로 그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믿음으로 행하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으로만 사는 자는 은혜가 은혜임을 알기에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공로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