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시작할까?
아이가 돌 무렵부터 단어카드를 보여주며 한글 떼기를 시도하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만 알려주어도 된다며 느긋한 엄마도 있다. 유아기는 언어 발달에 있어 결정적인 시기다. 두 돌 전후로 어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한두 개의 낱말로만 모든 의사소통을 하던 아이가 세 개 이상의 낱말로 문장을 구사하게 되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다. 언어란 단순히 ‘말’만 일컫는 게 아니라 ‘글’도 포함된다. 유아교육 학자들의 연구 결과,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문자에 대한 호기심과 문자를 배우고 싶어하는 욕구를 갖게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유아기는 말과 글을 익혀나가는 적기라고 할 수 있다. 한글 떼기에 조급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글을 읽으면 다양한 책을 스스로 읽을 수 있어 사고력도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글을 읽는다고 내용까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혼자 책을 읽게 두면 아이는 단순히 글만 읽는 것일 뿐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한글 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나이는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다음 중 한 가지라도 아이에게 해당되는 것이 있다면 한글떼기를 시작해도 되는 적기라고 볼 수 있다.
● “물컵 가져올래?”라고 말하면 물컵을 가져온다
말귀는 다 알아듣는데 도통 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의외로 많다. 하지만 한글 떼기는 아이가 말을 잘하는 것보다 엄마의 말을 잘 이해하고, 사물을 어느정도 인지하느냐가 중요하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라도 엄마가 말하는 사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그 사물에 대한 낱말을 익힐 준비가 된 것이다.
● 그림책을 매일 읽어달라고 조른다
그림책을 좋아하고 많이 본 아이들은 한글떼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다 보면 아이가 달달 외워버리게 된다. 아이가 외울 정도가 되면 스스로 글자를 읽어보게 한다.
● TV프로그램의 제목을 보고 프로그램명을 말한다
<뽀롱뽀롱 뽀로로>를 좋아하는 아이가 TV 화면에 나오는 제목을 보고 프로그램명을 말한다면 그와 관련한 그림책이나 장난감 등을 활용하여 한글 떼기를 시도해보도록 한다. 단, 주의해야 할 것은 캐릭터나 내용을 보고 제목을 말하는지 제목을 보고 읽는지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 과자나 아이스크림의 포장지를 보고 무슨 과자인지 말한다
포장지만 보고도 정확하게 무슨 과자인지 안다면 포장지에 쓰인 글자를 읽어보게 시킨다. 아이가 정확히 답한다면 다른 한글도 배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 동화책의 표지만 보고도 책의 제목을 말하고 가져올 수 있다
엄마가 “<사과가 쿵!> 읽어줄게 가져와”라고 말했는데 책을 직접 가져온다거나 책장 앞에서 책등만 보고도 제목을 줄줄 말한다면 그림책의 다른 글자도 스스로 읽어보게 한다.
● 사물 그림이나 카드, 책을 통해 많은 사물을 보아왔다
글을 떼기 위해 무엇보다도 많은 사물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림책이나 단어카드를 통해 사물의 이름을 많이 알고 있다면 그 사물에 해당되는 낱말을 보여줄 차례.

그림책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처음부터 그림책으로 한글 떼기를 시도해도 좋지만, 낱말 카드로 한글 떼기를 시도한 아이라면 문장 구조를 익히기 위해서라도 그림책을 접해야 한다. 간혹 아이는 그림책에 큰 관심이 없는데 엄마의 욕심으로 많은 그림책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이때 ‘우리 아이는 그림책을 좋아해’라고 착각하여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아이가 먼저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거나 엄마에게 조를 때 그림책으로 한글 떼기를 시도하도록 한다.
▶ 어떻게 읽어줄까?
1. 재미있게 읽어준다 그림책을 읽어줄 때 감정을 실어 재미있게 읽어주는 것이 포인트다. 목소리는 등장인물의 성격에 맞게 하고, 구연할 때는 표준어로 한다. 문장을 짧고 간결하게, 약간 느리다 싶을 정도의 속도가 좋다. 발음은 크고 정확하게 하며, 목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하면서 구연한다.
2. 문장으로 읽어준다 그림책으로 한글을 익히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의성어나 의태어로 문장을 익힐 수 있다. 의성어나 의태어는 아이에게 사물에 대해 좀 더 생동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돕는데, 여기에 엄마가 감정을 실으면 아이는 그 문장을 훨씬 쉽게 이해하게 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문장이 여러 개의 낱말로 쪼개진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낱말을 배울 때 낱말을 하나의 덩어리로 배우는 것처럼 문장도 마찬가지로 인식해야 한다. ‘아기 쥐 찍찍 어디로 가나요’에서 “준모가 아는 단어 있네. ‘쥐’ 알지? ‘쥐’ 여기 있네”와 같이 문장 속의 낱말을 따로 떼내어 가르치지 말자.
3. 5~6권의 책으로 시작한다 한글을 떼기 위해 너무 다양한 책을 보여주는 것보다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 5~6권의 책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감정을 실어 구연동화처럼 자주 읽어주다 보면 아이가 그림책을 달달 외울 수준이 된다. 이렇게 외운 다음 스스로 책에 나온 글을 읽도록 유도한다. 이때 엄마가 한 글자 한 글자를 정확히 짚어가며 아이에게 읽도록 유도해서는 안 된다.
4.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한다 일부 엄마들은 아이가 한글을 읽을 줄 알기 때문에 혼자 그림책을 보게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글자를 하나하나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보다 패턴으로 문장을 읽어나가면서 그 뜻을 알고 전체적인 줄거리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초등학생 중에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문제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문제를 이해하며 읽기보다는 그저 글자만 읽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줄거리와 내용을 이해하며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책을 통째로 외워 한글을 떼는 아이는 사실상 많지 않다. 대부분의 아이는 낱말카드로 한글 떼기를 시도한다. 영유아들의 특징 중 하나가 대상을 패턴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우리 엄마 코는 낮고, 입술은 작아”와 같이 분석하면서 보지 않는다. 엄마 얼굴의 전체적인 느낌과 이미지를 보고 다른 사람의 코와 입술과 다르다고 구별한다. 낱말로 한글을 떼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가방’이라는 낱말이 ‘ㄱ’+‘ㅏ’+‘ㅂ’+‘ㅏ’+‘ㅇ’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처음에 ‘가방’이라는 패턴에 익숙해지다 보면 ‘가지’라는 낱말을 보았을 때 아이가 기억하는 ‘가방’을 떠올리며 ‘가’자를 스스로 알게 된다. 낱말로 한글 떼기를 시작하는 이유다.
▶ 어떻게 놀아줄까?
1. 다양한 놀이로 낱말을 경험하게 한다 아이는 자신이 아는 사물에 대해서만 낱말을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할 수 있다. 아이가 가장 빨리 배우는 ‘엄마’, ‘아빠’를 비롯해 ‘우유’, ‘물’, ‘차’와 같이 자신이 많이 경험한 단어에 대해 낱말을 보여주었을 때 한글을 빠르게 익힌다. 따라서 한글 떼기를 잘하려면 낱말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다양한 사물을 경험해야 한다. 낱말놀이에 앞서 사물을 이용할 수 있는 놀이를 충분히 익혀보는 것도 좋다.
2. 한 주에 최대 10개의 낱말은 넘기지 않는다 낱말을 익히는 데 한 주에 4~8개 정도가 적당한다. 아이가 잘 따라 한다고 너무 많이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아이가 잘 따라 하는 것은 정말로 한글놀이가 재미있을 수도 있고 호기심이 자극되어 한글 세계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또한 단순히 놀이가 재미있어서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자꾸 낱말 양을 늘리다 보면 오히려 부담되고 낯설어 싫증을 내기 시작한다. 따라서 양을 늘리려고 한다면 아이의 반응을 잘 관찰해야 하는데, 아이가 새로 보여주는 낱말에 관심을 보일 때 천천히 그 양을 늘리도록 한다.
3. 아이가 거부하면 억지로 보여주지 않는다 책 읽기는 좋아하지만 낱말카드는 보려 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인지 발달이 뒤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유독 한글을 기피하는 아이가 이 경우다. 이런 아이는 그림을 보고 싶고 그림책은 좋은데, 엄마가 한글이라는 기호를 의도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니 싫은 것이다. 일단 엄마의 욕심을 버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고 그 내용에 대해 아이와 충분히 이야기한다. 그림책을 가까이하다 보면 그림뿐 아니라 글자에도 서서히 관심을 가질 것이다.
4. 아이와 함께 낱말카드를 만든다 시중에서 쉽게 낱말카드를 살 수 있지만, 대부분 크기가 작고 모양이 일관되어 아이가 싫증을 빨리 낼 수 있다. 한글놀이에 필요한 낱말카드는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낱말카드를 만들 때 처음에는 A4 용지 크기 정도로 큰 카드를 만들어 보여주고, 어느 정도 친숙해지면 크기를 다양하게 변화시켜준다. 양면으로 사물 그림과 낱말이 있는 형태보다는 사물 그림 위에 낱말을 덮는 형태가 더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낱말놀이 초기에는 낱말카드와 사물카드를 따로 만들어 사용하다가 차츰 양면으로 만들어 활용한다.
5. 사물 그림은 어떤 그림이든 상관없다 엄마표 낱말카드를 만들다 보면 사물 그림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엄마라면 직접 그려주고, 그렇지 않다면 그림책을 비롯해 신문, 잡지, 카탈로그, 광고 전단지, 학습지 등에 있는 그림을 오려 낱말카드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