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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초등 합격 수기> 전공 47점, 교육학 14점, 면접 97.17점
우선 저는 ‘오랫동안 꿈을 그리면 마침내 꿈을 닮아간다’라는 프랑스 시인인 앙드레 말로의 유명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면접 준비하면서 이 말을 계속 되뇌며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13년 전 임용 실패 후 포기했던 꿈을 올해 나이 40에 이루었습니다. ^^;; 여러분들도 간절함의 정도만 조금 더 올린다면 누구나 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13년 전과 지금의 차이를 굳이 분석하자면 전략과 간절함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1) 개인적 상황-02졸업 후 1년 7개월 대학병원 micu 1년 7개월 근무 후 제가 번 돈으로 공부 시작, 05 대비 경험 삼아 공부했고 06대비 때 매일 12시~6시 잠을 자고 기차를 타고(1시간 정도 기차로 통학, 기차 타고 다니며 암기) 대구 학원과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함(이때 전공, 교육학 둘 다 대구 직강이 있었음)
13년 전만 해도 전체적으로 뽑는 인원도 적고 제가 원하는 경북은 티오 자체가 없었음. 그래서 경북과 가까운 대구 지원하여 1차는 합격했으나 최종 불합격함. 실패 원인은 저를 믿지 않고 2차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컷 근처에서 붙어 뒤집지 못함. 물론 그 때는 2차 변별도 거의 없었지만 최종 불합의 충격으로 응급실 행을 하고 난 뒤 그 다음해부터 더 이상 공부할 힘이 안 생겨 포기하게 된 것 같아요. 그 후 결혼을 하고 기간제 생활을 시작하게 됨. 그 이후에도 중간 중간 몇 번씩 시도를 해 보았으나 육아와 기간제 생활을 병행하면서 공부를 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티오가 많으니 도전해 보라는 신규 발령 받은 선생님의 권유로 18년 2월 기간제를 정리하고 3월부터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용기와 기대가 엄청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영 샘도 수업 중간 중간에 늘 ‘본인이 천재라고 생각해 보세요’라고 격려를 끊임없이 해 주셨던 게 마인드 컨트롤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2) 공부 시간과 스터디-20대 때는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도 가능했으나 나이 40이 되니 체력이 안 따라주고 빈혈과 회전근개염, 심담허겁증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요상한 병들에 걸려 오전 10시에 시작하기도 하고 오전 9시에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8시간 이상은 잠을 자려고 했고 공부 계획한 진도는 가능하면 따라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오후 5시 전화 스터디(예를 들어, 모성, 성인 돌리면) 밤 11시 전화 스터디(지역, 정신 돌리기) 이런식으로 시간과 분량을 정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 날에 최대한 머릿속에 넣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밴드 스터디는 5명이서 하루에 문제를 2개씩 내면 저녁 9시까지 풀고 사진 찍어 올리면 다른 사람의 표현을 배우기도 하고 문제를 풀면서 제가 안다고 착각했는데 모르고 있는 부분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문제 풀기 스터디를 하면서 컨닝을 하기도 하고 답 없이 비우기도 했는데 11월쯤 되니 안 보고 써지더라고요. 같이 밴드스터디 하는 샘들도 신기하다고들 했습니다. 인당 2문제이지만 서브로 달린 문제가 보통 4개 정도가 되어서 다 풀자니 많이 버겁더라고요. 그래서 본인이 낸 문제는 풀고 싶으면 풀고 대신 나머지 4명의 문제를 다 풀어서 인증하고 일주일 중 하루는 쉴 수 있도록 규칙을 정했습니다. 문제 내고 푸는 스터디는 타 강사의 문제를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문제를 동시에 푸니 강사들이 공통으로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을 알 수 있어 좋았으나 조금 헷갈리는 부분도 있어서 기본은 항상 기영샘 이론서와 목차를 기준점으로 잡았습니다.
3) 월별 계획-전공은 3월에 한 명의 스터디원과 기영샘 진도에 맞춰 공부 후 밤 11시에 묻고 답하기 식으로 하다가 5월쯤에는 두 명(오후 5시, 오후 11시)으로 하다가 7월 부터는 밴드 문제 풀이 스터디를 추가했습니다. 온라인 스터디는 이런 식으로 하고 오프라인 스터디는 3월부터 3명이서 토요일마다 대구 시내에서 만나 기영샘 문제 풀이반 진도에 맞춰 모의 고사 문제 한 셋트씩 만나서 시간 정해서 풀고(조금 더 악조건 속에서 연습을 하려고 시간을 조금 부족하게 잡았습니다.) 서로 답을 생각한 이유와 쉽게 암기하는 법 등을 공유했습니다. 9월에는 스터디원 1명을 더 모집하여 2명씩 짝을 지어 기영샘 책을 범위를 정해 묻고 답하기 식의 스터디를 하루 종일 하였습니다. 시간은 거의 오전 9시에 만나 밤 9시 반에 헤어지고 강도 높은 스터디를 진행을 했습니다. ^^;; 장소는 도서관 식당 한 켠에서 하기도 하고 스터디룸을 잡기도 하고 카페에서 하기도 하고 다양하게 옮겨 다녔습니다. ^^
교육학은 3월에 일요일마다 타 과목 샘(체육, 미술, 기술가정 등)들과 모여 문제 5문제씩 만들어 와서 스터디룸에서 풀고 해설하기 4월? 5월?쯤 스터디 해체 되면서 전화 스터디 매일 아침 30분씩 묻고 답하기를 하다가 이것도 못하게 되면서 밴드로 매주 1편씩 논술 써서 인증하는 스터디를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7월 부터는 전화스터디가 잘 안 구해지고 논술 한 편씩 쓰는 것도 너무 부담스러워서 밴드 스터디에 ㅇㅅㅎ(여) 문제 풀이 수업 진도를 따라가면서 4명이서 문제를 3개씩 내고 매일 풀어서 인증하고 올리는 스터디를 했어요. 저는 교육학을 엄청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ㅇㅅㅎ(여) 샘 모의고사를 풀면 만점을 받기도 하고 13점 이상은 항상 나와서 평균 이상만 받고 전공을 끌어올리자는 전략으로 교육학은 스터디를 쉬지는 않되 1개씩만 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육학도 강의를 따라가면서 상반기에는 일주일에 화,목을 교육학 하는 날로 잡고 한 바퀴 돌린 시점에서는 목요일만 하고 9월 정도부터는 매일 30분 정도 전화스터디를 하던 혼자 보던지 해서 매일 조금씩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4) 건강관리-상반기까지는 제가 좋아하는 배드민턴을 하였습니다. 상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매일 하지는 않았고 일주일에 두 번 정해서 저녁 7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배드민턴을 즐겼습니다. 그 날은 정해진 분량을 다 소화해 낼 수 있도록 보다 집중을 해서 공부를 했더니 오히려 공부가 재밌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유일한 즐거운 거리를 하나 만들어서 그날만을 고대하면서 하루하루 충실하다보면 고시생의 생활이 그리 지옥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빈혈이 와서 매일 어지러웠는데 처음에는 빈혈일 것이라 전혀 생각을 못했고 한약, 홍삼, 영양제(밀크시슬, 임펙타민, 우루사민?)등을 챙겨 먹어도 호전이 없어 혹시나 하고 갔더니 헤모글로빈은 거의 정상인데 페리틴 수치가 조금 낮더라고요. 시험 치기 두달 전에 철분약을 복용했는데 미리 갔더라면 하는 후회가 살짝 되더라고요. 그 이외에도 오미자청(머리를 맑게 해 준대요. ^^), 아로니아 액기스(눈을 덜 피로하게 한 대요.), 들깨가루 꿀에 재운 것(수험생에게 좋대요), 보신탕 등 몸에 좋다는 것은 온갖 것을 다 먹었어요. 이러다 급성 간염이 올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요. ^^;; 2차 앞두고는 피부 관리 한다고 곤약 알약? 피부에 좋다는 알약과 다이어트 알약도 챙겨 먹었답니다. 그런데 1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면서 신경이 예민해져서인지 보신탕으로 쪘던 살이 저절로 빠졌습니다.
5) 면접-13년 전 면접에서의 고배를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물론 그 때는 1차 시험에서 교육학이 객관식이고 2차가 교육학 논술과 면접으로 유형이 달랐지만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후회하지는 말자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1차 시험 후 딱 하루만 쉬고 바로 수상한과 윤승현 면접책을 가지고 스터디를 구성해 바로 실전연습을 했습니다. 4명이서 문제를 실전처럼 만들어 와서 뽑기를 해서 한 명이 실전처럼 말하고 나머지는 면접관이 되어 세세한 것 하나하나 피드백을 해 주었습니다. 함께 했던 4명 모두 최종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영샘이 수강생 혜택으로 주신 면접 시뮬레이션에 참석해서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 때 엄청 떨렸었는데 이러한 연습을 충분히 해서인지 저는 실전에서는 하나도 떨리지가 않았습니다. ^^;; 그리고 대부분의 문항을 서론본론결론의 형식을 갖추어서 말하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아마 이러한 태도로 인해 고득점을 받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경북이 변별이 없기로 전국에서도 유명한데 올해는 변별을 철저히 주어서 점수대가 77점대에서 97점대로 다양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오히려 경기도는 2차 변별이 없는 편이었고 평가원 지역이 2차 변별이 큰 것을 보고 앞으로도 1차 뿐만 아니라 2차 대비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면접 방법은 39명을 1차에서 1.5배수로 뽑은 뒤 2개의 조로 나누어 각 조의 같은 번호를 뽑은 사람끼리 10분 간격으로 호명되면 구상실로 이동하여 구상한 뒤 1조의 1번은 1조 면접실로 2조의 1번은 2조 면접실로 들어가서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을 보고 있는 동안에 그 다음 번호는 구상실에 와서 구상을 하고 살짝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면접이 진행되는 느낌이었습니다. ^^;; 제가 들어간 곳은 남자분1명, 여자분2명의 면접관이 계셨고 계측관(시간 타이머 작동하시는 분)이 좌측에 있었습니다. 여자 한분이 팔짱을 끼고 끝까지 주시하시면서 쳐다 보았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행동을 예의 바르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그 전의 해에는 면접관 3분인 면접실도 있고 4분인 면접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점수대가 95에서 99 분포이며 최하는 88점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카더라 정보입니다. ^^;;) 타이머는 우측 벽에 카운드 다운 형식으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가원 지역의 문제는 구상형 3문제, 즉답형 1문제를 10분간 구상 후 10분간 말하는 방식이었는데 올해는 구상형 문제도 각 문제당 2분 이내로 말하는 방식으로 조건을 더 추가가 되었습니다. 이런식으로 면접도 조건을 계속 달면서 변별을 높이겠다는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 면접에 대한 합격수기를 찾으려고 해도 정보가 없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면접에 관한 내용도 적어 보았습니다. 면접에 대한 내용은 1차 시험 후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지금은 1차를 고득점으로 붙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1년 안에 반드시 끝낸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수석으로 붙는다는 마음으로 공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6) 꼭 드리고 싶은 말씀-저는 13년 전에는 이 시험이 어렵고 초수에는 붙기 힘들다고 하니 3년만 해보고 안 되면 접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 때 제가 지금과 같은 생각이었다면 1차 시험 후 바로 면접을 준비했을 것이고 혹여나 최종합격이 되지 않았더라도 그 다음 해에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해 봅니다. 올해 저는 다양한 밴드 스터디를 하면서 밴드 스터디 이름을 ‘보건합격’, ‘최종합격’, ‘수석합격’, ‘우리는 보건교사’이렇게 지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수석은 아니지만 거의 상위권인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제가 발령 받은 시에서는 1등을 했더라고요. ^^ 생생하게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는 vivid dream~~!!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 보셨을 R=VD의 법칙을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믿음 속에서 힘들지만 꿈이 이루어지는 가슴 벅찬 순간을 상상하며 이왕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한해를 보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2020년에는 인생의 주인공이 되시길 기원 드립니다. -이정화 드림-
첫댓글 멜로 온 수기 입니다. 오랫동안 꿈을 꾸면 그 꿈이 이루어진다라는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