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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처음난 것의 죽음
이제 마지막 남은 재앙으로 애굽을 치게 될 때에는 바로가 이스라엘을 쫓아 보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여 이웃들로 하여금 은, 금 패물들을 받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국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에게 심히 크게 뵈었더라”(3절)고 했다. 이는 분명 하나님께서 일하신 결과이다. 만약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은혜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은혜를 베푸는 일에 도구가 된 사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은혜를 베푼 당사자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이 고정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여기서 모세는 애굽 사람들에게서 큰 권위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모세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친히 행하셨을 따름이고 모세는 다만 시키는대로 수종들었을 뿐이다(하나님께서 하라는대로 한 것이 모세가 한 일인가?). 그런 모세를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큰 권위가 있는 자로 보이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자기가 높아지고 자기를 크게 보이고자 하는 일이 목표가 되고 있다. 그것이 인간의 자존심이다. 인간의 자존심 때문에 나오는 탐욕은 끝이 없다. 그 탐욕을 채우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남에게 수많은 피해를 입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고 주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눅 16:15).
예수님이 가셨던 길이 바로 이러한 길이었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셔서 주로 삼으셨던 것이다(빌 2:6-11).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빌 2:11). 이러한 진리를 한국 교회의 교인들은 모르고 있다. 하나님을 위해서 거창한 행사를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곧잘 우리가 잘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망상일 뿐이다.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있는 자리, 주어진 환경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감사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장자를 죽이는 마지막 재앙은 여호와께서 친히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감”(4절)으로 시행된다. 하나님이 애굽에 대해 친히 행하시는 심판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은총을 베푸실 것이다(7절). 애굽에 대해서는 심판이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구원이라는 은총이 주어진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와 같이 심판이라는 행위와 동시에 일어나는 구원이다.
여기서 심판의 대상은 애굽이고, 구원의 대상은 이스라엘이다. 그러면 어떤 자가 애굽이고, 어떤 자가 이스라엘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찾아오실 때에 드러나게 되어 있다. 즉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체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심판과 구원의 기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으로 심판받을 자와 구원받은 자가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7-18).
출처: 천성을 향하여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 군대
11 장 접전을 위한 준비
1.바로가 나감을 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가지 재앙을 더 하신다. 그 목적은 그냥 보내는 것이 나니고 “여기서 정녕 다 쫓아 내는” 것이다. 완전한 바로의 항복을 받고 난 후에 그의 백성을 구원하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
2.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애굽백성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고 크게 뵈게 하심으로 쉽게 구할 수 있었다(요셉의 경우와 비슷한 아이디어). 그동안의 노역의 대가가 아니겠는가?
3.“밤중에 들어가리니”-내려온다는 뜻이다. 바벨탑 사건, 출애굽 사건, 초림,재림사건과 연결된다. 심판과 구원을 선포한다.
3.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취하시기로 하신다. 이것은 기력의 시작을 멸함을 뜻한다(시105:36)
4.이스라엘 자손을 철저히 구별하신다.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은 알게 될 것이다.
5.왕과 모든 신하가 모세에게 절하고 난 후에 나오겠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의 신을 삼으신 목적을 성취하는 사건이다.
6.9번째 재앙 후 10번째 재앙 사이에 많은 재앙을 더했음을 본다(9-10). 그만큼 10번째 재앙이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회개의 기회를 충분히 주신 하나님의 사랑도 볼 수 있다.
*특주* 「10재앙 연구」
1.재앙들의 목적
1)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을 공적으로 나타내기 위함이다(출9:16). 8:19에서 애굽의 술객들이 바로에게 고백하고 인정했다.
2)히브리인들에 대한 탄압과 고역에 대한 바로와 애굽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형벌의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다(출10:16)
3)애굽의 사신들(귀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민33:4).
4)여호와는 모든 신들 위에 가장 높고 전능하신 신이심을 나타냈다. 이것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에 의해 고백되었다(출18:10-11)
5)그것들은 인간의 책임을 완전히 시험한 한 시험물이었다. 이것은 그 재앙의 숫자에서 드러났는데 10개의 재앙들은 10계명의 내용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6)그것은 하나님ㄲ「서 이스라엘을 저주한 그들에게 저주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다른 국민에 대한 경고이다(창12:3). 이것은 여리고의 라합에게서(수2:8-9)와 블레셋 족속에 의하여 입증되었다(삼상4:8)
7)이 이적적 재앙들은 분명히 이스라엘을 시험하기 위하여 준비되었다.
참고. 신4:33-34
출15:11
2.재앙들의 배열은 하나님의 법과 계획을 잘 나타낸다.
1)10번째 재앙은 모든 다른 족속들로부터 구별하여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그들을 구원하심을 보여준다.
2)다른 아홉개는 세개씩 세 그룹으로 배열되어 있다. 세 부분으로 구분되고 각 부분은 세 재앙들로 구성되어 있다.
(1)첫째 둘째 재앙에는 경고가 있으나 세번째에는 경고가 없다. 하나님이 항상 애쓰시지 않음을 깨닫게 해 주며 반복된 경고에도 유의하지 않음에 따라 갑작스럽고 혹독한 심판이 이르고 말것이다.
3)첫째 재앙과 열째 재앙이 조화(죽음의 상징과 실제적 죽음)되고, 둘째와 아홉째(밤의 피조물인 개구리와 실제적 흑암), 세째와 여덟째(술객들이 하나님의 권능 인저, 바로가 득죄하였다고 인정), 네째재앙(고센 땅 제외)과 일곱째 재앙(고센땅 제외), 다섯째와 여섯째(애굽사람들의 가축만 침해) 등으로 되어있다.
3.재앙들의 점진적 성격
1)첫 세가지는 애굽인 생활의 안락을 훼방. 첫째, 먹고 씻는 물 더럽힘, 둘째, 집 침입, 세째, 이의 공격
2)두번째 세가지는 그들의 소유에 내리심
3)마지막 세가지 직접적인 하나님의 손을 입증하는 황폐와 죽음을 가지고 옴
3.이 재앙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함이었다.
재앙들이 하나 하나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모세에게서 애굽에 임할 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놀라움과 감사와 감격과 환희에 넘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더욱 여호와를 의지했다. 또 절대 순종하게 되었다. 그것은 열째 재앙에서 드러났다. 그들이 모세의 지시에 신종했기 때문이다.
4.이 재앙들은 미래에 하나님의 세상 심판에 대한 예언을 보여준다.
1)야곱의 고난의 때에 이스라엘이 다시 압제와 고통을 당할 것이다(사60:14, 렘30:5-8)
2)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고, 또 여호와께서 듣고 응답할 것이다(렘31:18-20).
3)하나님은 그들의 압제자들에게 “그들을 내 보내라”하리라(사43:6).
4)하나님은 그들의 대적 앞에 이적을 행하기 위하여 두 증인들을 보낼 것이다(계11:3-6)
5)그들의 원수들이 또한 이적을 행할 것이다(계13:13-15)
6)하나님은 세상을 홀로 심판하실 것이다(렘25:15-16).
7)하나님은 원수들에게서 자기의 백성을 보호할 것이다(계7:4, 12:6, 14-16)
8)물이 다시 피로 변할 것이다(계8:8, 16:4-5)
9)사단적 개구리들이 나타날 것이다(계16:13)
10)황충의 재앙을 보낼 것이다(계9:2-11)
11)하나님께서 악하고 독한 독종을 보낼 것이다(계16:2)
12)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질 것이다(계8:7)
13)무서운 어두움이 있을 것이다(계16:10, 사60:2)
14)바로의 마음이 완강한 것 같이 악한 자의 마음이 완악해질 것이다(계9:20-21)
15)죽음이 큰 무리에게 임할 것이다(계9:15)
16)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슥14:3-4, 롬11:26)
출처: 천성을 향하여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 군대
유월절과 쓴나물
출 11: 1-14
어떤 나라나 종족이라도 그들 나름의 역사와 문화가 있습니다. 그중에도 고유한 명절이 되면 그 명절의 의미를 담은 음식문화, 놀이문화와 같은 전통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월 초하루에는 설빔이라고 하여 아이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하며 덕담을 나누는가 하면, 음식으로는 주로 떡국과 만두국을 먹습니다.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을 먹고 쥐불놀이와 달집을 태우는 행사를 합니다. 한식날에는 쑥떡을 먹고 조상의 산소에 성묘를 하며, 단오절에는 수리취 절편을 만들어 먹고 여인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았습니다. 추석 한가위 명절에는 송편을 빚고 강강술래와 같은 전통적인 놀이를 즐깁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전통적인 명절이 있었습니다.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출 23:14-17).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절기에 참여하되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 모일 것이요 그 때는 빈손으로 오지 말고 그 힘대로 예물을 드리게 하였습니다(신 16:16-17).
이 명절들에는 고유한 의미를 담은 다른 이름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령 무교절은 유월절로, 맥추절은 칠칠절, 또는 오순절로,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 부릅니다. 이상의 명절 중에도 유월절이 가장 큰 명절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이스라엘이 유월절에 행할 의식과 그때 먹을 음식에 대하여 규정한 율법이 있습니다. 그중에도 무교병과 쓴나물은 유월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오늘 우리나라 현대사에 가장 큰 국경일인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옛날 하나님의 백성이 유월절에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었던 것을 생각하며 신령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I. 유월절의 유래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생활을 하던 애굽에서 탈출해 나온 해방 기념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 백성 대대에 지킬 유월절의 규례를 선포하면서 자손들에게 이 날의 유래를 잘 전하고 이를 지키도록 당부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2:26-27에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1) 이스라엘의 노예생활
야곱과 그 가족 칠십 명이 당시 애굽의 총리로 있던 요셉의 초청을 받고 애굽으로 이주를 하였습니다(창 46:8-27).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오랜 계획가운데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도 맺은 언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창세기 15:13-14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8-22에 보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즉위한 후로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매일 같이 애굽의 국고성을 쌓는 공사현장에 끌려 나가 노역을 치러야 했고, 감독자들로부터 매를 맞으며 온갖 박해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남자는 모두 물에 던저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출 1:22). 출애굽기 2:23에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긍휼
출애굽기 2:24-25에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 고난의 현장으로부터 이끌어 낼 지도자로 모세를 불러내셨습니다. 모세가 호렙산 불꽃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출 3:9-10).
모세가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하였으나(출 7:16), 바로 왕은 마음이 강퍅하며 이를 거부하였고 더 심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열 번이나 재앙으로 징치하셨고 그들은 할 수 없이 이스라엘을 내어 보냈습니다.
(3) 유월절과 어린양
유월절의 상징물은 어린양입니다. 본문 말씀 3절에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찌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7절에는 그 피를 양 먹을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하였습니다. 9절에는 그 고기는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13절에는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이 애굽 사람에게는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이 죽임을 당하는 심판의 밤이었지만 양의 피가 묻어 있는 이스라엘 집에는 생명과 해방의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이후부터 유월절의 어린양은 대신 죽어주는 속죄의 어린양으로서 기독교의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Ⅱ. 유월절의 신학적 의미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은 애굽 바로 왕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방과 자유의 기쁨을 안겨준 절기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와 죽음 아래 얽매인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베푸시는 신약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갈 5:1).
(1) 하나님의 언약이 실천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신명기 7:9에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고 이행하십니다.
옛날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완성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면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천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고 하였습니다(대하 6:14).
모세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과 맺은 약속을 지키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7:8에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나타냅니다.
유월절 곧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피를 흘리고 죽어간 어린양이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제물로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29).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엡 1:7). 고린도전서 5:7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벧전 1:18-19). 이는 모두 유월절의 중심이 어린양이요 그 어린양은 곧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3) 신약교회의 비전입니다.
교회(ἐκκλησία)는 부름 받은 사람의 집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마귀에게 사로잡혀 죄와 죽음에 종노릇 했던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시고 교회의 회원이 되게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해방의 모델이 되는 출애굽 사건이나 바벨론 포로에서의 해방도 이와 같은 신약적인 교회의 의미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1-2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는 성령께서 지배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명의 성령에 의하여 죄와 마귀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또한 교회 생활을 통하여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얽매임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해방의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을 회고하면서 그들이 모두 바다 길을 통과하였고, 하늘의 떡 만나를 먹었으며, 반석을 쪼개고 솟아나온 물을 마셨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0:1-4).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이적들은 모두 오늘날 교회가 지니고 있는 신비로운 특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Ⅲ. 무교병과 쓴나물
출애굽기 12:18에는 “정월에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은 정월 곧 유대 월력으로는 아빕월(신 16:1) 십사일부터 일주일간 지키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율법에 명시된 제물로 불태워 화제를 드리게 되며 민가에서는 누룩 없는 떡(無酵餠)과 쓴나물을 먹었습니다(8절).
(1)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민족이나 집단이든지 오늘의 번영과 발전을 이루기까지에는 힘들고 어려웠던 수난의 역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나라의 국경일이나 중요한 절기가 되면 옛날에 선인들이 겪었던 고난의 날들을 되새겨 보면서 기념하려고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킬 때 반드시 누룩 없는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게 한 것은 애굽에서 탈출해 나오던 그날의 일을 상기하게 하자는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의 대표적인 음식인 무교병과 쓴나물은 고난의 상징입니다. 11절에 보면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무교병은 발효되지 않은 반죽으로 만든 떡을 의미합니다. 신명기 16:3에는 이를 “고난의 떡”이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을 탈출해 나올 때 반죽을 하다가 미처 누룩을 넣지 못하고 그냥 뛰쳐나왔던 급박했던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며, 쓴나물은 당시에 겪었던 고난을 부분적이나마 체험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2) 오늘을 반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사람들은 지난날에 겪었던 일들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명절이나 기념일을 맞이하여 옛사람들이 행하였던 일들과 의식을 재현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생활과 비교하면서 각성을 갖게 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6. 25나 광복절 같은 때 서울역 근처에서 젊은이들을 상대로 소금에 절인 주먹밥을 먹게 하거나 그 당시의 풍물을 체험하게 하는 것도 그런 뜻의 하나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발전한 문화나 잘살고 번영하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조상들이 그 어려운 환경가운데서도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왔던 그 정신을 망각하지 않아야 됩니다. 신명기 8:16에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17절에는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혹시라도 교만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배은망덕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3) 미래에 대한 꿈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유월절 절기는 이스라엘 민족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분깃점이 됩니다. 바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시대의 비전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월 십사일에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수 5:10-12). 이것은 애굽에서 종살이 했던 불행한 역사를 굴려 보내버리고(수 5:9), 찬란한 가나안 시대의 새 역사를 열어가는 전환점으로 삼고자 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에게는 과거의 슬픈 역사보다도 미래의 희망적이고 환상적인 축복의 역사가 열려지는 것입니다. 유월절 사건의 주역인 모세는 사십 년간 광야 여행과 함께 그 인생을 마감하였지만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서 이루게 될 미래의 꿈을 내다보았습니다. 신명기 1:10-11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케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 같이 많거니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하고 축복을 선언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