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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우리 생일을 맞이한 우리 옆에 있는 분들과 우리 생일 축하합니다.
인사 나눠볼까요?
네 오늘 본당에 생일상 냄새가 지금 잔뜩 들어와가지고 여러분들 육적으로 좀 많이 배가 고프실 텐데 영적으로도 우리가 이 시간 갈급한 마음으로 함께 배를 채워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한번 제목을 너무 조그마하게 만들어 놨죠. 9주년 밑에 제목입니다. 시작
아멘 어떻게 9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날 수 있을까요?
9년 여러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우리 교회에 수빈이가 9살이더라고요. 보니까 수빈이가 얼마나 똑부러지는지 수련회 같은 데 성경학교 같은 데 가면요. 1당 100이에요. 다른 교회 애들 10명이 있어도 제가 이겨 먹더라고요. 교회에서도 얼마나 역할을 잘해주고 있는지 몰라요.
여러분 한창 자랄 나이이고 한 가정으로만 생각을 해도 9년이라는 시간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길고 변화와 성장이 있을 시간들입니다. 지난 9년의 시간을 이렇게 되새겨 보면 이곳을 오고 간 분도 계시고 또 새로 온 분들도 계시고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곳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난 분도 계시고요. 또 어떤 분은 세례를 받기도 했고 또 어떤 분은 결혼을 하기도 했고 자녀를 출산하기도 했고 또 믿음으로 성장한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은 응답을 경험한 분도 계시지만 또 어떤 분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계신 분들도 계셔요. 어떤 분은 웃으면서 이 자리에 있지만 또 어떤 분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가슴을 치며 눈물 흘리며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도 계십니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기쁜 일도 많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된 일도 있지만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시간들이 흘러온 것들도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분명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의 고백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한번 같이 따라 해볼까요?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아멘 여러분 자녀들 자랄 때 키가 쑥쑥 자랄 때 집에서 한쪽 벽면에 뭔가를 체크해 놓지 않으셨나요?
아이들이 이렇게 키를 키를 이렇게 해놨어요. 예전 시골집 가면은 나무 이렇게 한 기둥에다가 이렇게 해놓고 얘 옆에다가 연도 몇 월 며칠 이런 거 써놓고 그러면 나중에 야 너 이렇게 자랐어 막 이렇게 우리가 이걸 보면서 알기도 하잖아요. 이것은 그 선들 하나하나를 보면서 이게 아이가 이렇게 자랐다고 하는 걸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또한 부모가 그 기간 동안 이 아이가 자라는 것을 함께 지켜보고 함께 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여기다 대놓고 이렇게 그리는 애들 없잖아요.
그렇죠 우리 교회도 오늘 교회의 문설주에 선한 안을 긋는 날입니다. 9주년 그리고 그 눈금 옆에 그렇게 기록하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 어쩌면 지난 9년의 시간 우리가 맞이하면서 우리가 이런 일을 했습니다. 저런 일을 했습니다. 이런 거 아쉬워요. 저런 거 아쉬워요. 이런 다양한 말들을 할 수 있지만 그보다 가장 우리의 고백 가운데 하나의 고백으로 모여져야 할 것 바로 주님께서 여기까지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무엘이 바로 그 고백을 하고 있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그리고 그곳에 돌을 세웁니다. 에벤에셀이라고 하는 돌을 세워요. 그 돌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고 하는 신앙의 고백과도 같은 돌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9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러한 도를 세우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이 돌이 얼마나 놀라운 돌인지 본문을 좀 더 깊이 봐야 우리가 알 수 있는데요.
잠시 사무엘상 4장의 내용으로 돌아가 보면 사사기 말기에 이스라엘은 블레셋이라고 하는 강력한 나라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4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에벤에셀 곁에 진을 쳤다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에벤에셀이라는 말이 지금 등장한 단어가 아니라 과거에 이미 4장에서 나왔어요.
근데 이때 사용된 에벤에셀이라고 하는 말은 결코 좋은 말은 아닙니다. 승리의 자리가 아니에요.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했거든요. 놀란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직접 들고 전쟁터에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마치 부적처럼 이거 가지고 가면 이길 거야라고 생각을 하고 나아갔어요.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더 처참하게 졌습니다. 심지어 언약궤마저도 빼앗겨버려요. 보병은 3만 명이 죽고 언약궤는 빼앗겼고,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었고, 이 소식은 이 소식을 들은 늙은 제사장 엘리도 쓰러져 죽었습니다. 비나의 아내는 해산하다가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 이런 이름으로 자기의 자녀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처참한 패배 그 현장이 바로 에벤에셀입니다.
그 후에 언약궤는 기라 여아림에 머물게 되었고, 7장 2절 말씀에서 이제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으로 돌아왔을 때 2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니까 처절한 패배를 한 이후에 20년의 시간이 흘렀어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 같은 시간, 블레셋이라고 하는 강력한 민족에게 눌려 있었던 시간 그 긴 어둠 끝에서 사무엘이 일어나 말합니다. 이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12절에 사무엘은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고 부릅니다. 학자들은 이 장소가 4장의 에벤에셀이라고 하는 곳과 같은 곳이거나 가까운 지역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죠. 패배의 자리였던 이 에벤에셀이라는 장소가 이제 눈물의 자리가 기념의 자리로, 패배의 자리가 승리의 자리로, 20년 전에 쓰러졌던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를 새기는 돌이 세워지는 자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지난 9년의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면서 이 시간 감사의 도를 세우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앞으로 나아갈 길들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걸어가기를 결단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네 여러분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은 굉장히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고 우상을 섬겼고 그리고 블레셋의 압제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사무엘이 오늘 본문 초반에 이렇게 말을 하죠. 3절을 보시면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와라. 그러려면 이러이러한 것들을 제거해라. 그리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겨라. 사무엘은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로 모여서 그곳에서 여호와께 물을 길러 여호와 앞에 붓고 종일 금식하며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 고백합니다. 물을 땅에 붓는다는 의미는 마음을 쏟아붓는다. 전심을 다하여 기도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한마디로 변명하는 게 아니라 이래서 내가 어쩔 수 없어서 내가 그렇게 죄를 저지른 거예요. 제가 이래서 이런 상황 때문에 핑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근데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니까 이렇게 미스바에 모여서 그 우상들을 버리고 철저하게 회개하는 이 과정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쫙 회복하는 순간이 되면 참 좋은데 그때 바로 블레셋이 공격합니다.
이상하잖아요. 하나님께 돌아왔는데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결단했는데 일이 잘 풀리고 오히려 블레셋이 그냥 쳐다도 안 봐야 되는데 오히려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 이때가 중요한 거예요. 위기가 찾아왔을 때 이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8절을 보면 백성들이 두려워하여서 이 사무엘에게 말을 하죠.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을 찾는 거예요. 부르짖는 겁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이 이야기를 듣고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취하여 번제를 드리는 장면으로 나오고 그 번제를 드리고 부르짖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10절에 이어지는 말씀에서 이 번제를 드릴 때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죠.
큰 우뢰를 발해서 어지럽게 함으로 이스라엘이 승리케 하십니다.
여러분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이긴 거예요. 하나님이 이기신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셔서 그 강력한 블레셋을 한순간 무질러주셨어요. 여기서 사무엘은요. 이 전쟁의 승리를 자기의 공로로 돌이키지 않습니다. 자기가 지금 리더니까 정말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어요라고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영광을 취하는 그런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12절을 보면 사무엘이 돌을 취해서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하면서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기념하는 도를 세웠다. 내가 잘해서 우리가 잘해서 지금 이런 모양이 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도 오셨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바로 에벤에셀입니다.
여기에서 여기까지라고 하는 이 단어가 히브리어로 앗 헨나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요. 지나온 길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겨져 있고 또 하나는 여기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도우셨다고 하는 고백이 담겨져 감사와 고백이 여기까지라는 단어에 담겨져 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자기 가문에게 약속을 주셨을 때 비슷한 표현을 씁니다. 사무엘하 7장 18절에 다윗이 고백한 내용을 보면 주 여호와여 내가 누구이기에, 내 집이 무엇이기에 나를 이만큼 인도하셨나이까 다윗은 자기가 왕이 된 이후에 자기가 한 일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가 선 자리를 볼 때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수고해서 이렇게 왔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여정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발견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근데 왜 하필 돌을 세웠을까요?
돌은 말이 없습니다. 또 오래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은요 흐려져요.
여러분 9년 전의 일이 지금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기억이 때로는 왜곡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달라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해가지고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꽤 많거든요.
심지어 기억을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돌은 사라지지가 않는 거야. 그 자리에서 그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서해도 요단강을 건너고 난 이후에 강바닥에서 12개의 돌을 가져다가 길가를 세우고 후일에 자손들이 이 돌들이 무슨 의미냐라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요단강 물을 끊으셨다고 말해주는 뜻이라고 말을 합니다.
한마디로 세워진 이 돌은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질문을 기다리는 설교의 시작점이라는 거예요.
에베네세레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돌 큰 돌이 세워져 있는데 이 돌은 도대체 뭐예요라고 물을 때 여기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심을 기념하는 돌이야 그때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는 그런 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제 9주년을 맞이했으니까요. 지난 9년을 뒤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질문을 좀 바꿔야 합니다. 9년 동안 우리가 뭘 했지 라고 하는 질문보다 9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무엇을 하셨지 우리가 교회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세워 온 것 같지만 하나님이 하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우리 동력자들을 붙들고 함께해 온 것 같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시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정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할 힘을 주셨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봉사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섬길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고비 고비를 우리의 다짐과 결단으로 이겨낸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의 말씀처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하나님이 하신 줄 믿습니다.
오늘은 마음껏 하나님께 감사 찬양 기쁨을 드렸으면 좋겠어요. 에벤에셀이라고 하는 이 단어를 떠오르면 이렇게 생각나는 찬송가가 있는데요. 복의 근원이라는 찬송가입니다.
여러분 복의 근원 잘 아시죠?
복의 근원 강림하사 이 찬양의 작사가가 영국의 로버트 로빈슨이라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1758년 스물을 갓 넘긴 청년 때에 기록한 가사가 이 복의 근원입니다. 근데 어떤 상황이었냐면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이 청년이 굉장히 방황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방황하는 과정 속에 조지휘필드라고 당대의 정말 유명한 설교가를 만나고 그 설교를 듣고 회심하게 되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근데 이 찬송시에 아주 솔직한 고백을 넣어놨어요. 복의 근원 그 찬송가를 한번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바로 그 안에 어떤 고백이 담겨져 있는 거냐면 나는 쉽게 떠나기 쉬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기 쉬운 마음, 은혜를 잊기 쉬운 사람 그것을 너무 잘 알았던 거예요. 그래서 이 찬송가의 자기의 고백을 마치 에벤에셀의 도를 세우고 기록하듯 이 사람은 그 찬송가의 에벤에셀을 기록한 겁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주님께서 도우심입니다. 이렇게 노래로 새겨놓지 않으면 마치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자기가 이 순간에 이 은혜를 잊어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천 명의 고아를 돌보았던 조지밀로 정말 기도의 응답의 유명한 대표 주자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도 기도한 내용에 응답받은 날짜와 응답받은 내용을 늘 꼼꼼하게 노트에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만 번 응답받았다는 걸 우리가 그런 걸 통해서 알게 되잖아요. 근데 이 조지 밀러도 믿음이 좋아서 걱정이 전혀 없고 그냥 무조건 늘 믿음으로만 구했던 것은 아닙니다.
응답을 늘 기록하면서 늘 기도하고, 또 그 기도의 응답을 기록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더욱 굳게 세우는 기억하는 장치가 바로 이 노트의 기록이었다는 거예요. 이 노트의 글자가 바로 이 조지 밀로에게는 에벤에셀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요. 가만히 뒤돌아보면 은혜를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10번을 도와주셨어도 한 번만 어려운 일이 나에게 다가오면 그때 묻죠.
하나님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왜 나는 지금 이렇게 힘들까요?
지난 9번의 은혜는 그냥 잊어버립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말해요. 시편 103편 2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한마디로 우리는 잘 잃어버리는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기억해야 될까요?
그 기억들이 우리의 믿음을 형성하는 좋은 씨앗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믿음이 흔들릴 때 어제 있었던 은혜를 기억하면 오늘을 이겨낼 힘이 생깁니다. 이스라엘에게 에벤의 셀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지난주에 우리가 창립 9주년을 맞이하면서 감사 나눔 질문지를 쓰고 거기에 9년의 시간 동안 지내면서 가장 감사한 일은 무엇입니까라고 하는 질문을 던졌어요. 내신 분도 있고 못 내신 분도 계신데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분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힘들 때 교회가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가족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좋은 믿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기도했던 응답되어서 감사합니다. 힘들 때 위로받은 것을 감사합니다. 자녀들이 교회에서 믿음으로 자라나는 것을 감사합니다. 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물론 어떤 분은 지난 9년의 시간 속에 특별히 감사한 게 떠오르지 않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되새겨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거 당연한 것 아니에요. 이 자리에 예배드리고 싶어도 예배드릴 수 없는 환경에 처했던 우리 동력자들 기억하지 않으시나요?
지금은 하나님 나라에 가 계시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1년 6개월, 그 긴 시간 동안 예배의 자리를 얼마나 사모했던 그분들의 음성이 여전히 귀에 맴 맴돕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도 오늘 내 옆에 성도들과 함께 식사하고 교제하고 함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 이것은 당연한 것 아니고 은혜입니다. 물론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다 좋은 일들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픔을 억지로 좋은 일로 생각해라 이런 말이 아닙니다. 눈물은 눈물이고, 이별은 이별이고, 응답받지 못한 그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 에벤에셀이라고 하는 고백은 그 일이 좋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야곱은 훗날 자기의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 환란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 환란 중에도 하나님은 그 길 위에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거예요. 오늘 이 시간 우리 하늘 소망 교회의 에벤에셀을 세우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힘들 때도 있었고 좋을 때도 있었고, 그 어떠한 상황 가운데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셨음을 감사합니다. 응답받은 날도 있었고, 또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겨드립니다. 만남도 감사합니다. 헤어짐 속에서도 우리를 붙드셨음을 감사합니다. 기쁨을 감사합니다. 눈물 가운데 함께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모든 순간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을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에벤에셀이라고 하는 말이 과거만 바라보는 그런 단어로 우리가 인식하면 안 됩니다. 이 에벤에셀을 세운 이스라엘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에요. 역사가 이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계속 그 역사가 이어지지 창립 기념 주일은 단순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으로만 보내는 날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교회, 어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가 현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5절을 보면 사무엘이 말합니다.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한 사람 한 지파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모이라고 했습니다. 20년 동안 흩어져 살았던 철저하게 실패의 자리에 살았던 서로 다른 사연, 서로 다른 상처, 서로 다른 생각, 그것들을 가진 사람들이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모인 이유는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서 우리는 교회라고 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거예요.
교회는요 건물이 아닙니다. 프로그램이 아니고 행사의 숫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 되었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3절에 평안에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힘써 지키라.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인데요. 그 선물은 그냥 가만히 놔두면 되는 게 아니라 힘써 지키라고 말하고 있어요.
왜 힘써 지키라고 말했을까요?
공동체의 그 하나 됨을 깨뜨리는 것은 너무 쉽게 자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상처받지 않습니까? 작은 오해로 관계가 멀어지지 않습니까?
서로의 생각이 조금 다르다는 마음으로 거리가 멀어지고 마음을 닫잖아요. 내가 옳다는 것을 거 증명하려고 하다가 사랑이 식어져버리는 경우들도 있지 않습니까?
시편 133편 1절 말씀처럼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예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은 자기와 다른 사람은 밀어내고 나와 비슷한 사람만 당기고 그렇게 함께하려고 하는 그런 모습들이 얼마나 가득합니까?
그런데 교회는 나와 다른 사람을 품어주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해요. 세상은 상처받으면 나 끊을 거야 하고 떠나버립니다. 하지만 교회는 상처 입은 사람을 더 품어주고 상처 입은 사람을 붙들어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서로 경쟁하지만 교회는 함께 손잡고 함께 채워가는 곳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늘 소망 공동체가 하나님의 돌을 세우는 공동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평가하지 말고 서로를 세워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누군가 힘들어 할 때 누군가 좀 뭔가 연약함을 보일 때 저 사람 왜 저래 평가하지 마시고 제가 기도할게요. 혹시 무슨 기도 제목이 있으신가요? 누군가 넘어졌을 때 누군가 반복적으로 실수할 때 저 사람은 안 돼라고 말하지 마시고 먼저 손을 내밀어 함께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라고 말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누군가 교회에 처음 나와서 어색한 상황 속에 처해 있다면 나도 어색해라고 멀리하지 마시고 잘 오셨습니다. 우리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나아갑시다. 여러분 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품다고 하는 그 말 속에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교회, 사람을 세우는 교회 더욱더 말 한마디 하더라도 사람을 세우고 살리고 격려하고 기도 한 번을 하더라도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을 품고 따뜻한 관심으로 외로운 사람에게 가족이 되어주는 우리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하늘 소망교회에 와도 저 교회는 뭔가 따뜻해 뭔가 다른 것 같아 정제하지 않고 늘 품어주는 교회야 이런 그런 소문이 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 하나 우리 교회가 다음 세대를 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이제 창립 9주년을 맞이했는데요. 9주년 다음에는 몇 주년일까요?
네 10주년이에요. 왠지 10주년 하면 좀 뭔가 좀 생각이 좀 다양하게 더 일어나는데요. 우리가 보통 이렇게 의미 부여를 하잖아요. 5년 10년 100년 여러분 10년 후에 이 자리에 계실 분도 계시지만 또 못 계실 분도 계실 수도 있어요.
그렇죠 10년 20년 그 이후에 이 자리를 지키고 이 자리에서 신앙생활할 이들이 누가 있을까?
우리 자녀들과 다음 세대들이 이곳에서 함께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이 에벤에셀이라고 하는 돌을 세운 사무엘 사무엘도 혼자 그렇게 대단한 사람으로 세워진 게 아니에요. 한나라고 하는 눈물의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 아이를 하나님의 은혜로 얻고 그 아이를 하나님께 내어놓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서 제사를 드릴 때마다 아들에게 주었어요.
여러분 그 아들이 된 사무엘은 그 옷을 입을 때마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셔 나를 생각하고 나를 챙겨주셔라고 하는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 사무엘을 세운 한 사람은 바로 엘리 제사장입니다. 물론 자기 아들들을 제대로 훈육하지 못해서 최후가 참 실패로 끝난 인생이지만, 사무엘 3장을 보면 밤중에 자기를 부르는 음성을 듣고 자기에게 찾아온 사무엘에게 세 번째 됐을 때 하나님의 음성임을 깨닫고 아이에게 방법을 가르쳤던 인물이 바로 엘리 제사장입니다.
에벤에셀을 세운 이 사무엘 뒤에는 기도하는 눈물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고요. 또한 길을 가르쳐준 늙은 엘리 제사장. 물론 그들의 삶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믿음을 건네준 어른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도 디모데를 향하여 동일한 말을 하죠. 이 믿음은 먼저 너희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의 유니계 속에 있었는데 이제 내 속에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믿음이 세대를 거쳐서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는 모습들을 성경에서는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신앙의 아주 강력한 본보기들인데요. 교회에 열심히 나가라라고 애들한테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여러분들이 그 무엇보다 주일 예배를 우선순위로 신앙의 여정을 공예배를 드리는 데 우선순위를 두는 그 모습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그 모습이 아이들에게 강력하게 예배 생활을 가르치는 겁니다. 기도해라. 어떤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라라고 말하는 것보다 부모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강력한 증거입니다.
서로 사랑해라라고 말하는 것보다 먼저 용서해 주고 먼저 사랑으로 품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강력합니다. 아이들이 이 돌은 뭐예요라고 물을 때 답변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믿음의 어른이 되겠습니다. 결단하는 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시간을 내십시오. 관심을 가지십시오. 물질을 사용하십시오. 무엇보다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 보이십시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다음 세대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우리 교회 가면 진짜 나를 관심 갖고 사랑해 주는 우리 어른들이 계셔, 나를 지원해 주고 응원해 주는 분들이 계셔, 내가 실패해도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어른들이 계셔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우리는 9주년 오늘 예배를 끝나고 나면 이제 9년이라는 시간은 끝난 거예요. 이제는 몇 년 차를 향해서 갑니까?
10년 차입니다. 네, 여러분 10년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꼭 10주년 됐으니까 뭘 대단한 걸 뭘 이뤄야 된다 이런 개념으로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지난주에 감사 질문지에 여러분들에게 앞으로 하늘 소망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길 바랍니까라고 하는 질문을 던졌는데 이렇게 썼더라고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가족 같은 교회, 하나님의 기쁨 되는 교회 공동체, 성도들이 세워지고 서로 격려하고 돌보는 교회, 다음 세대가 많이 자라는 교회, 서로 격려하고 세워주는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 시선이 지역사회와 이웃을 향하고 그들과 함께 선교 공동체 교회나 재정 크기보다 성도들의 성숙함과 내면이 든든히 서가는 교회, 찬양이 넘치는 성령 충만한 교회 등등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무엘이 돌을 세운 그 자리를 보십시오. 12절에 보니까 미스바와 센 사이라고 말을 합니다.
출발한 곳과 도착할 곳 사이에 에벤에셀이라고 하는 돌을 세운 거예요. 그러니까 이 에벤에셀은 여정의 끝에서 이제 결론을 내면서 세운 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던 길 중간에 이정표로 세운 거예요. 이 뒤로도 계속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이어집니다.
그들은 이 사무엘도 베델과 길과 미스 미스를 순회하면서 계속 백성들을 돌보거든요. 그러니까 오고 갈 때마다 이 돌을 보았을 거예요. 이 돌을 볼 때마다 기억하고 또 그 의미를 되새겼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근데 돌을 세웠다고 잊어버리지 않는다 아닙니다. 이 에벤에셀 돌을 세운 이스라엘 백성들 어떻게 해야 될까요?
8장을 보면 사무엘상 8장에 사무엘이 나이가 들어 늙으니까 그때 일어났던 일이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해요.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해달라. 아니 에베에셀이라고 하는 돌을 세우면서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습니다고 고백했던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왕을 구하고 있는 거예요.
도를 세웠다고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아닙니다. 은혜 받았다고 우리 안에 불안함이 사라지고 우리가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돈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9년 전에 지금 현재의 모습을 이미 알고 개척을 시작하시거나 또 우리 교회에 등록하신 분들 여러분들의 생활이 이렇게 될 걸 알고 등록하고 생활하셨습니까?
아무도 몰랐죠. 어떤 사람을 만날지 또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할지 어떤 기쁨을 경험하게 될지 우리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어요.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목적지를 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나아갔던 그 모습처럼 우리들도 앞으로 10년을 우리가 10년 아니라 1년 뒤도 우리는 모르잖아요. 아니 1년 뒤에 아니라 한 달 뒤 아니 내일도 우리는 모르잖아요.
근데 그것을 우리가 다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다 아는 하나님만 알면 돼요. 하나님만 의지하면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어제의 은혜가 오늘을 살게 하고 오늘의 은혜가 내일을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10년을 허락하신다면 아니 나는 10년이 더 인생이 남았는데 10년, 아니 그 뒤에 또 10년을 또 이제 생각해야죠.
10년을 허락하신다면 우리는 뭘 해야 될까요?
우리 하늘소망교회에게 10년을 더 허락하신다면 뭘 해야 될까요?
교회를 더 사이즈를 키워 우리 성도들의 인원을 더 늘려 그런 것들이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꿈꿔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기뻐하는 우리가 이곳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무리하면서 짧게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말씀을 정리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교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배가 살아 있고 기도가 살아 있고, 말씀이 살아 있고 사람 만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동력자들을 만나는 그런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 함께하는 우리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교회 안에 나는 혼자야라고 외로움 타는 이들이 없도록 힘들 때 찾아가고 기쁠 때 함께하고 슬플 때 함께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다음 세대를 정말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이 아이들이 교회의 미래라고 하는 생각 속에서 말로만이 아니라 그들 앞에서 믿음의 본이 되고 정말 그들을 이끌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이 지역사회에 우리가 있으므로 우리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또 하늘 소망교회가 이곳에 있기에 참 좋아라고 하는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우리가 조금씩 이렇게 지역사회를 위한 어떤 일들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것들이 작은 이제 발걸음이 시작되었지만 점점점점 확장되어서 이 지역사회를 위해 기도하고 또한 어려운 가운데 정말 신음하는 이들을 찾아가고 그들을 온전히 위로하고 세울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우리 안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국내 또 해외의 선교회 현장에 찾아가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복음이 필요한 곳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기꺼이 헌신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