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학산 광명동굴은?
개요
광부들의 땀과 마을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은 일제 약탈 현장이자 근대 산업발전의 동력이 되었던 공간으로, 수도권 유일의 금속폐광산이라는 가치가 있는 곳이다. 세월이 흘러 문을 닫은 광산은 2011년 지역주민들과 함께 광명의 문화유산이자 역사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동굴 아쿠아월드, 동굴 예술의 전당, 황금폭포, 황금길과 황금궁전 등 동굴의 웅장한 풍경과 문화 예술이 함께 하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출처1 [네이버 지식백과] 광명동굴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좀 더 알아보기
가학광산동굴은 갱도의 총연장이 7.8km, 깊이가 275m다. 그중 1km가량이 40년 만에 일반에 공개됐다. 동굴 초입은 옛 광산을 묘사한 그림과 탄광열차, 광산의 역사를 알려주는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광산동굴은 단순히 갱도의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니다. 동굴의 초기 역사는 일제강점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산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01년 전인 1912년이다. 시흥동 광산으로 운영되며 1972년까지 금, 은, 동, 아연을 채굴했다. 60여 년간 전성기를 누렸는데, 종업원이 500여 명에 이르고 채굴량이 하루 250톤이 넘었던 수도권 최대의 금속 광산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광부로 근무하면 징용이 면제됐던 서민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곳에 삶터를 마련했다. 가학산 일대는 안산, 소래 지역에서 소금을 팔기 위해 서울로 넘어가던 관문이자 물자를 운반하던 도고내고개가 있었다. 광산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난을 떠나지 못한 마을 사람들의 피난처 역할도 했다. 폐광이 된 이후 오랜 기간 닫혀 있다가 최근 5년간은 소래포구의 젓갈을 보관하는 지하저장고로 사용됐다. 젓갈 보관소에서 동굴관광지로의 변신은 꽤 이례적인 일이다.
동굴의 다사다난한 사연만큼이나 천장이 울퉁불퉁하다. 폭 2~5m, 높이 1.5~4m.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냇물을 이룬다..
가학광산동굴은 동굴탐사라는 기본체험 외에 문화와 예술을 더했다. 막다른 길에서 이색 전시회가 열리고, 영화관과 공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굴 전시관에서는 동굴문명전도 열린다. '엘도라도-황금을 찾아서'라는 테마로 중남미 잉카제국과 이집트 문명의 유물들을 전시한 바 있다. 갱도를 따라 내려서면 젓갈을 보관했던 지하저장고로 연결된다. 지하저장고는 향후 와인을 저장하고 와인체험을 할 수 있는 와이너리로 이용될 계획이다.
동굴 탐방의 막바지 코스는 국내 최초의 동굴 안 예술의 전당으로 연결된다. 동굴 예술의 전당은 350석 규모로 각종 음악회와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제법 넓은 공간이다. 동굴 안에서 클래식 공연을 보고 가수들의 무대를 만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독특하다. 대형 가수가 초청공연을 펼쳤으며, 보석&패션쇼가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지도 했다. 동굴 내 패션쇼 역시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됐었다. 쩌렁쩌렁 울리는 사운드는 동굴 안이라 더욱 효과 만점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프러포즈 데이를 마련해 동굴 안에서 깜짝 사랑 고백과 이벤트를 펼칠 수 있게 했고. 청소년들을 위한 동굴 탐사 프로그램과 동굴 과학캠프도 연중 진행된다.
100년 역사를 간직한 가학광산동굴에는 더 이상 광부도, 금 덩어리도,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도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아름다운 선율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동굴 구경 후에는 입구 옆 나무 데크를 따라 가학산을 오르거나 동굴에서 흘러나온 물줄기가 만나는 냇가에서 동굴 탐방의 여운을 즐겨도 좋다.
출처2 :[네이버 지식백과] 예술이 숨쉬는 희귀한 수도권 동굴, 광명 가학광산동굴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첫댓글 명수형? 형이 아니었음 이런 곳을 어찌 알겠습니까?
감사하고 건강한 모습 보기에 좋네요.
꼭 한번 근일에 가 보리다.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맞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