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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쿄신문(聖敎新聞)」을 읽다보면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프리 기사’가 아닌 기사(유료회원 전용)를 게재하는 것은 ‘저작권 문제’가 있어 곤란합니다. 고민 끝에 이렇게나마 다이제스트(요약본)로 발췌, 내용의 마지막에 기사의 타이틀과 날짜, 링크(출처 확인용)를 표기하여 업로드를 간간이 하려 합니다. 많은 분이 함께 연찬을 통해 힘을 내실 수 있으면 무엇보다 기쁠 것 같습니다.
- MIDO(美道) 드림 -
〈제4회 본부간부회〉 하라다 미노루(原田稔) 회장 인사 (요지)
‘동고의 정신’을 넓히는 것이 광선유포
사은(師恩)에 보답하는 민중의 승리를
一, 현재 광포부원(廣布部員) 신청이 진행 중입니다. 진력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일찍이 이케다(池田) 선생님께서는 소설 『인간혁명(人間革命)』, 『신·인간혁명(新·人間革命)』 등의 집필에 대해 언급하시며 지도(指導)해 주셨습니다.
“매일의 연재(連載)는 힘들다. 피곤해 붓(筆)이 움직이지 않아(붓을 들 수 없어) 아내에게 구술필기(口述筆記)를 해달라고(부탁) 한 일도 종종 있었다. 남모를 펜의 투쟁(鬪爭)을 부부가 함께 계속해 왔다. 도다(戶田) 선생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열심히 했구나.’라고, 칭찬해 주셨을 것이다. 그 원고료(原稿料)도, 인세(印稅)도 광포(廣布)를 위해 교육(敎育)을 위해 바쳐 왔다. 아내도 ‘그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도다 선생님, 마키구치(牧口) 선생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학회원들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늠름(凜凜)하게 찬성(贊成)해주었다. 사사(私事)로운 일이지만 미래(未來)의 지도자(指導者)를 위해 남겨두고 싶다.”
이케다(池田) 선생님의 생명(命, 목숨)을 깎는 듯한 격투(激鬪)에 의해, 이 학회(學會)는 구축되었습니다(세워졌습니다). 선생님의 그 마음을 이어받아 불의불칙(佛意佛勅)인 학회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가 몸을 바쳐 가는 일은 은혜(恩)를 알고, 은혜를 보답(報答)하는 제자(弟子)의 길(道)입니다.
아무쪼록 한 분 한 분께 정중한, 진심어린 말씀을 잘 부탁드립니다. (중략)
60년이나 되는 연륜(年輪)을 새긴 공명당은 그야말로 일본을 지탱하는 대수(大樹)로 자랐습니다(성장했습니다). 그리고 환력(還曆, 환갑)을 맞은 지금, 다시 한번 처음부터 새로운 공명당을 구축한다(만든다)는 결심(決心)으로 결연(決然)히 일어서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이케다 선생님께서 당의 창립자로서 제시하신 세 개의 ‘바람(願)’을 확인해 두고 싶습니다.
一, 그 첫 번째는 ‘단결제일(團結第一)’입니다.
이매망량(魑魅魍魎: 온갖 도깨비)이 준동하는(꿈틀거리는) 세계의 한복판(가운데)에서, 어떻게 서민(庶民)의 보루(堡壘, 요새)를 구축할 것인가. 그 요체(要諦)야말로 “이체동심(異體同心)이면 만사(萬事)를 이루고 동체이심(同體異心)이면 제사(諸事)가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어서신판1953·전집1463)입니다. 지금까지 권력(權力)의 마성(魔性)에 물리고 찢겨 이상(異常)해진 의원(議員)을 보면 대다수가 스탠드 플레이어(박수갈채를 노리는 연기를 하는 사람, 세간의 주목을 받으려고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였습니다.
두 번째는 ‘대중직결(大衆直結)’입니다.
“대중(大衆)과 함께 이야기하고, 대중과 함께 싸우고, 대중을 위해 싸우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며, 대중 속에서 죽어간다.” - 그것은 한 의원(議員)이라는 입장(立場) 등을 초월(超越)한 사람으로서의 ‘삶의 자세’의 문제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용퇴(勇退)한 의원이 학회 조직의 최전선에서 홍교(弘敎)·확대(擴大)에, 동지의 격려에 남모르게 땀 흘리는 모습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저도 각지를 돌면서 그런 분들을 뵐 때마다 정말 머리가 숙여지는 느낌입니다.
최후의 최후까지, 학회(學會) 외길, 광포(廣布) 외길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도록 매일 염지(念持: 부처의 공덕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는 일, 마음속에 두고 늘 생각함, 염원함)하며, 자신의 사명에 살아감으로써, 분연히 다투어 일어나는 기심(己心)의 마(魔)를, 타파할 수 있습니다.
어성훈(御聖訓)에는 “현인(賢人)은 팔풍(八風)이라 해서 팔종(八種)의 바람에 침해(侵害)당하지 않음을 현인(賢人)이라 하느니라.”(어서신판1565·전집115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공명당 의원에게는 ‘역풍(逆風)’이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일본 사회에 확고(確固)한 존재감(存在感)을 확립(確立)한 오늘날에는 ‘순풍(順風)’ 또한 위협(威脅)입니다. 명문명리(名聞名利)는 물론, SNS 융성(隆盛)인 작금(昨今), ‘좋아요’의 뒤편에는 자기승인욕구(自己承認欲求)라는 마물(魔物)이 도사리고(숨어) 있다는 것도, 꿈에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자기연찬(自己硏鑽)’ - 바꿔 말하면(즉) ‘인간혁명(人間革命)’입니다.
그 열쇠로서 선생님께서 ‘청년’으로부터의 신뢰(信賴)를 드신 의의(意義)는 큽니다. 청년으로부터 바보 취급을 받는 의원, 청년으로부터 경멸(輕蔑)을 받는 의원, 청년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의원은 공명당 의원으로서 실격(失格)입니다. 만심의 싹이 트는 것을 간파해 떨쳐내고(쫓아버리고), ‘나 이외의 모두가 나의 스승’이라는 마음으로 겸허(謙虛)하게 모두에게 배우는 자세에야말로 청년은 신뢰를 보내줍니다.
선생님의 이러한 바람(願)을 되돌아볼 때, 그 근저(根底)에 있는 것은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애(一生涯)를 통한 행복(幸福)’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얼마나 깊은 자애(慈愛)와 엄애(嚴愛)을 갖고 당(黨)을 창립하셨는가. 얼마나 감사한 창립자이신가.
이케다 선생님의 이 대은(大恩)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하나, ‘승리(勝利)’밖에 없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 자기 자신이 창립자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일본의 기둥을 더욱더 굵고, 더욱더 강하게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중략)
자, 이케다 선생님의 1주기(週忌)가 되는 ‘11·15’ 그리고 학회창립기념일인 ‘11·18’을 향하여, 세계(世界)의 평화(平和)와 인류(人類)의 행복(幸福)을 위하여 단연코 민중의 완승(完勝)으로 장식해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박수)
〈제4회 본부간부회 하라다 미노루 회장 인사(요지)〉
2024년 9월 14일
https://www.seikyoonline.com/article/1497F25A854AF54DAE3F6B22156E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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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본부간부회〉 야나시마 히데아키(梁島英明) 남자부장 인사 (요지)
학회의 공감력은 대화 없는 사회의 빛
제 자신이 올해 ‘5·3’에 입회(入會)로 이끈 청년은, 신오사카역(新大阪驛)에서 만난 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意氣投合)한 그를, ‘생애(生涯, 평생)의 벗으로’라고 기원하며 교류를 계속, 후일, 시나노마치(信濃町)의 총본부(總本部)에서 대화(對話). 반응을 느끼면서도 ‘초조하지 않고 우정(友情)을 키우자’라며 역의 개찰구에서 배웅하려는데, 그 분으로부터 “어본존(御本尊)을 〈하부(下付)〉 받고 싶습니다만”라는 이야기가. “네!?”라고 놀란 저는, 그대로 그와 총본부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입회한 그는 교학부(敎學部) 임용시험(任用試驗)에 합격하고, 회사에서는 최연소로 승진. 예기치 못한 고난(苦難)을 당해도, “더욱더 기뻐하느니라.”(1720·전집1448)라며 생생하게 도전하는 모습에, 제가 감동하고 있습니다.
‘불연(佛緣)의 확대’는 ‘경애(境涯)의 확대’로 이어지는 ‘최고(最高)의 불도수행(佛道修行)’이라고 확신합니다.
一, 한편 일본은 최근 ‘대화(對話)가 없는 사회(社會)’라고 합니다.
상대를 부정하려는 ‘논파(論破) 붐’이나 SNS에서 악플이 쇄도한 사람을 사회에서 배제(排除)하는 ‘캔슬 컬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이 증가해 다른 사람에게 공감(共感)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는 살기 힘들고 마음의 부조(不調)를 일으키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사회에 필요한 것은, 차별(差別)을 두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열린 마음’. 서로 다른 의견(意見)도 이해(理解)하려고 하는 ‘공감력(共感力)’. 바로, 매일의 학회활동(學會活動)으로 길러지고 있는 힘입니다.
도쿄(東京)의 한 리더는 “종교(宗敎)는 믿지 않는다.”고 반발(反撥)하는 우인에게도 한 달에 한 번 만나자고 정한 이래 5년. 고경(苦境)에 계속 기대어주어 마침내 우인이 발심(發心). 입회 때, “어려웠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그의 얼굴이었습니다.”라는 한마디에 대화(對話)의 진수(眞髓)가 빛나고 있습니다. 이 리더는 8월에도 또한 새로운 홍교(弘敎)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간사이의 한 리더는, 직장의 동료로부터 학회 비판을 받았을 때, 상냥하게 “자신의 눈으로 보지도 않고 비판하는 것은 비겁하네.”라고 전하자, 동료는 “내 눈으로 보고 싶다”라고. 첫 학회의 회합(會合)에서 입회를 결정했습니다.
진실(眞實)을 말하면 진정(眞情)한 우정(友情)이 남습니다. “절복(折伏)은 재밌다!”라며, 올해 3월, 4월, 5월에 연이어 드라마 같은 홍교의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포교(布敎)야말로 ‘종교의 혼(魂)’입니다. 어떤 상대에게도 불성(佛性)을 발견하고 만나러 간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동고(同苦)한다. ‘고민(苦悶)을 사명(使命)으로’라며, 함께 결의한다.
이러한 도전(挑戰) 그 자체가, ‘대화부재(對話不在)’의 시대에 있어서의 ‘최고의 사회공헌(貢獻)’입니다.
우리는 눈앞의 한 사람을 향해 절복정신(折伏精神) 넘쳐흐르는 대화(對話)를 즐겁고 당당하게 펼쳐나가고 싶습니다. (박수)
一, 이 ‘창가(創價)의 대화운동(對話運動)’ 안에 ‘입정안국(立正安國)의 지원활동(支援活動)’도 있습니다.
제 스스로 우호를 넓히려고 참석한 대학원의 동창회에서 인상적(印象的)인 장면(場面)이 있었습니다.
자기소개를 할 때, 관료나 재판관, 대학교수 등 사회 엘리트층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 후, 제 차례에서는 ‘서민단체·창가학회(創價學會)’를 어필해 공명당(公明黨)의 응원(應援)을 의뢰(依賴). 그러자 동석한 분들로부터 “괜찮아요! 저는 공명당의 팬이라서” “가장 공부가 되고 있으며, 말이 잘 통하고,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 공명당입니다.”라는 말이 나와 그 자리의 전원이 찬동한 것입니다.
다른 당과 비교해 스스로 선택받을 만큼 확실한 신뢰(信賴)와 실적(實績)을 쌓아 온, 창당 60년의 공명당 역사의 무게를 실감했습니다. (중략)
자, “벗의 기쁨, 벗의 슬픔을 같이 하는데”(어서신판1267·전집934)의 자비(慈悲)와 확신(確信)의 대화(對話)로 당당하게 불연(佛緣)을 넓히고 사제공전(師弟共戰)의 맹세를 반드시 완수하지 않겠습니까! (박수)
〈제4회 본부간부회 야나시마 히데아키 남자부장 인사(요지)〉
2024년 9월 15일
https://www.seikyoonline.com/article/8C21FE805D25E0EE94EC8CF16A7288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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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본부간부회〉 활동체험
아이치견루총현 지부여성부장 오제키 에미코(尾関恵美子) 씨 (요지)
자식의 등교거부를 타고 넘어
一, 저는 나고야시(名古屋市)에서 가족과 함께 입회(入會)했습니다. 스물여덟살에 결혼해서 고난시(江南市)로. 결혼식 전날, 함께 사는 시아버님이 뇌경색(腦梗塞)으로 쓰러져 간호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4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가족이 늘어날 때마다 가계(家計)라는 현실도 무거워져 갔습니다.
성실한 성격의 남편은 회사에서 잘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출근을 할 수 없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의 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직(移職), 휴직(休職)을 반복하면서 늘 가계는 빈곤에 쪼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9년간, 시아버님을 간병하고 임종을 지킨 그 2년 후, 이번에는 시어머님의 치매(癡呆)가 진행되어 간호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불안해지면 병원에 가고 싶었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 늦어졌을 때의 뒤처리에도 고생했습니다.
간호와 4명의 육아라고 하는, 어디로도 도망칠 곳이 없는 나날 속에서, 동지의 격려가 마음의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6학년이 된 둘째 딸의 등교거부(登校拒否)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침이 되면 ‘오늘은 갈 수 있을까’라고 마음을 졸였고, 밤에는 ‘오늘도 갈 수 없었다.’고 낙심하는 매일. 초조함과 불안으로 짓눌릴 것만 같았습니다.
등교거부에 관한 책을 읽고 카운슬링(상담)에도 다녔습니다. 학교의 선생님도 가족이 되어 지지해 주셔서, 5개월 후인 어느 날 아침, 둘째 딸은 오랜만에 란도셀(ランドセル: 초등학생용 책가방)을 메고 현관에 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쁜 것도 잠시, 딸은 밖으로 나가는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어깨를 드르르 떨었습니다.
답답함이 쌓여 저는 무심코 호되게 꾸짖고 말았습니다. 인생에서 이렇게 후회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둘째 딸은 울기 시작했고, 저도 울었습니다. 결국, 둘째 딸은 그 후에도 등교를 하지 못했고 중학교 3년간 등교를 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셋째 딸, 심지어 큰아들까지 중학교에 올라가자 등교를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장기(長期) 결근(缺勤)을 하는 남편, 치매인 시어머님,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로 저희 집은 매일, 일요일 같았습니다.
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날들 속에서 이케다(池田) 선생님의 『희망대화(希望對話)』의 한 구절과 만났습니다.
“언제나 나는 믿고 있다. 사명(使命) 있는 여러분(諸君)이,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질 리가 없다고. 여러분은, ‘이기기 위해 태어난’ 것이니까!” - ‘그렇다. 우리 아이가 질리는 없다. 선생님께서 믿어주시니까 나도 믿고 기다리자.’라며 철저하게 기원하고 학회활동에도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임했습니다.
자전거로 한낮의 태양을 가득 받고 활동에서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아이들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엄마, 햇님 냄새가 나네.” “진짜야! 태양 냄새가 나.”라고.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선생님의 지도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일가(一家)의 태양’으로 있자, 라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둘째 딸이 중학교 졸업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묻자 뜻밖에(생각지도 못했던)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부터 둘째 딸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찾아다녔습니다.
감사하게도 여자부(당시) 분들도 매주처럼 격려로 찾아와주어, 사람을 잘 대하지 못했던 딸의 표정도 서서히 밝게 변해갔습니다. 중학교 선생님들의 도움도 있어서, 둘째 딸은 고등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박수)
一, 고등학교에서는 좋은 친구를 만나, 딸은 충실한 학교생활을 보냈습니다. 성적도 학년에서 톱이 되어 최우수 학생 표창을 받아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교사가 되어, 현재는 특별지원학교(特別支援學校)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셋째 딸도 둘째 딸과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 성적 톱으로 졸업.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벤처기업에 취직, 개발한 상품이 특허를 취득하여 텔레비전과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장남도 소카대학교(創價大學校)·대학원을 수료(修了)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장녀는 소카대학에서 공부, 대학원을 수료하고 해외의 대학에서 일본어 교사를 맡았으며, 현재는 도쿄(東京)의 일본어학교의 교단에 서 있습니다. (박수)
남편은 집에 있는 동안 계속 아이들의 성장을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딸은 성인이 된 후, “고등학교 다니는 것이 불안해질 때, 집에서는 아버지가 기원해 주신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났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목(題目)만은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 저희 집의 최고의 자랑입니다.
흔들림 없는 신심(信心)의 저희 집도 가옥을 내진진단(耐震診斷)받았더니 너무 낡아서 붕괴의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웃음)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저희 부부가 계속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넷이 함께 집을 개축해 선물해 주었습니다.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사명(使命)을 완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매일입니다.
一, 고민이 컸기 때문에 중학교 ‘등교거부 부모회’의 운영진 등을 맡아 많은 사람들과 서로 격려해 왔습니다. 활동을 통해서 알게 된 분들이 지금은 깊은 이해자(理解者)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꾸준히 이해를 넓혀 온 시부모님 덕분에 지역에서 어린이회 회장을 두 번, 여성 최초로 마을회장도 맡았습니다. 지금은 “마을의 오제키입니다.”라고 하면, 근처에 열리지 않는 문이 없을 정도입니다.
얼마 전에는 이웃분이, 이쪽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세이쿄신문(聖敎新聞)」 구독을 신청해 주셨습니다. 4월에는 30년 이상, 교제하고 있는 인근 분에게 홍교(弘敎)도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녀는 6월의 교학부(敎學部) 임용시험(任用試驗)에 합격하고, 좌담회(座談會)에도 기꺼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코치노미나미지부(古知野南支部)의 지부여성부장(支部女性部長)이 된 지 10년, 어쨌든 지부의 한 분 한 분에게 다가가는 것에 철저해 왔습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민도 함께라면 반드시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의 완승을 위해, 전에 없던 확대에 용감하게 임해 주시는 지부의 동지(同志)와 함께, 반드시 행복해져 이케다(池田) 선생님께 보답하겠습니다.
우선은 영광의 ‘11·18’을 목표로,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주부(中部) 영원한 지침(指針)을 이름에 붙인 ‘아이치견루총현(愛知堅壘總県)’의 승리(勝利)를 위해 전력으로 끝까지 싸워 나가겠습니다. (박수)
〈제4회 본부간부회 활동체험담〉
2024년 9월 18일
https://www.seikyoonline.com/article/ACAB5FB1CBDB3AD0E3B41403E88F31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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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본부간부회〉 해외활동체험
아르헨티나SGI 여자부장 플로렌시아·리소 씨 (요지)
청년의 스크럼에 사회가 공감
一, 저는 탱고의 발상지로 유명한 아르헨티나(Argentina)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의 라 보카(La Boca) 지구(地區)에서 신심(信心)을 하고 계시던 부모님의 슬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는 소극적이어서 좀처럼 친구를 사귀지 못했지만, 12살에 고적대(鼓笛隊)에 들어가면서 자신에게 자신감을 갖게 되어 멋진 우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18년에 개최된 청년평화문화총회(靑年平和文化總會)는 잊지 못할 신심(信心)의 원점(原點)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고민을 털어놓아준 친우(親友: 절친)과 함께 출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심의 환희를 알게 된 우인은 자진해서 어본존(御本尊)을 수지(受持). 숙명(宿命)을 타고 넘어, 지금은 그의 아버지, 여동생도 입회(入會)해 함께 광포(廣布)의 제일선(第一線)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박수)
자타 함께의 행복을 여는 신심(信心)의 훌륭함을 실감한 저는, 여자부(女子部)의 활동에도 힘써, 2020년에는 전국뱌쿠렌(白蓮)그룹위원장, 이케다(池田) 선생님의 아르헨티나 방문 30주년이 된 지난해에는 전국여자부장에 취임(就任)했습니다. 이 중요한 1년을 승리(勝利)로 장식(裝飾)하고자 광활한 아르헨티나를 계속 달렸습니다.
一, 지난해 상반기의 초점은 청년부(靑年部)에서 6월에 개최한 ‘창가평화서밋(創價平和Summit)’이었습니다. 국내 굴지(屈指)의 이벤트 홀에는 1만 명이 넘는 출연자·참석자가 결집. SGI의 평화운동에 깊은 공감을 보내는 내빈(內賓)들도 많이 참석해 주셨고, 세계적인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도 훈훈한 영상 메시지를 보내주었습니다.
대성공한 서밋에 즈음해, 이케다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지구민족(地球民族)의 청년(靑年) 스크럼의 선두(先頭)에 서서, 새로운 ‘광선유포(廣宣流布)’ 즉 ‘세계평화(世界平和)’의 효종(曉鐘)을 쳐 드높이 울려주길 바란다.”라는 메시지는 아르헨티나 청년부의 영원한 지침(指針)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영산(靈山)으로 떠나신 여행을 알게 된 지난해 ‘11·18’, 우리는 깊은 슬픔을 타고 넘어 선생님의 유훈(遺訓)을 반드시 완수(完遂)하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성장하자고 서로 격려했습니다. 청년부에서는 광포후계(廣布後繼)의 달인 3월에 ‘청년평화서미트’의 개최를 결정. 선생님의 위대함을 제자의 승리로 보여주고자(나타내고자) 모두가 확대에 끝까지 싸웠습니다.
一, 서밋 당일의 회장(會場)에는 칠레(Chile), 우루과이(Uruguay), 파라과이(Paraguay) 등 이웃 나라에서도 청년들이 모여, 라이브 방송을 포함해 약 3만 명이 참석. 1500명의 출연자가 역동적인 연기·연주를 선보일 때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신 에스키벨(Adolfo Pérez Esquivel) 박사를 비롯해 종교계(宗敎界), 정재계(政財界), 학술계(學術界) 등에서 참석해 주신 유명한 내빈들도 만뢰(萬雷)의 박수로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제(師弟)의 서원(誓願)에 끝까지 사신 이케다(池田) 선생님의 생애(生涯)를 표현한 뮤지컬에서는, 우인만으로 구성된 200명이 압권(壓卷)의 노래와 댄스를 선보였습니다. 연기를 해낸 한 사람 한 사람이 선생님의 평화투쟁에 깊이 공감(共感)해, 종료 후에는 90%이상이 입회(入會)를 결의했습니다. (박수)
또한 청년의 달인 7월에는 ‘신심즉생활(信心卽生活)’을 모토로, 전 블록(반)이 회합(會合) 참석자 10명을 목표로 활동을 개시. 저도 우인이나 친척 10명을 결집(結集)할 수 있었고, 그 중 2명은 지금 창제(唱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장년부(壯年部)·부인부(婦人部)에서도 응원을 해주셨고, 기원과 단결을 근본으로 노력한 결과, 1만 5000명의 목표를 웃돌아, 전국에서 1만 6210명의 청년의 참석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박수)
8월에도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오래 활동에서 멀어지셨던 아버지가 20여년 만에 회관에 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더욱 순수한 신심(信心)으로 제 자신을 닦아나갈 결의입니다.
一, 우리 아르헨티나의 창가가족(創價家族)은, 학회 창립 100주년의 2030년에 15만의 지용(地涌)의 진열(陣列) 구축을 목표로 희망의 전진을 개시했습니다.
불법(佛法)의 인간주의(人間主義)의 철학(哲學)에 대한 이해(理解)를 넓히기 위해, 30년에 걸쳐 임해 온 종교간(宗敎間) 대화(對話)에도, SDGs(지속가능발전목표)의 달성 등 세계적인 과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단체와의 연계(連繫)에도, 더한층 다각적(多角的)으로 임해, 좋은 시민으로서 선(善)의 연대(連帶)를 사회에 크게 넓혀 갈 결의입니다.
‘제2의 일곱개 종’이 끝나는 2050년을 향하여 여자부 한 사람 한 사람이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문화(文化)와 평화(平和)의 대도(大道)를 걸어 아르헨티나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선생님의 구상(構想)을 실현(實現)하는 진정한 제자(弟子)로 반드시 성장하겠습니다. (박수)
〈제4회 본부간부회 해외활동체험담〉
2024년 9월 18일
https://www.seikyoonline.com/article/0A2B1D405B6D9B461BF05450215F842C
첫댓글 노고가 많으십니다.연찬 잘 했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항상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