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조금 앞당겨 선보인 스노보드룩은 스노보드를 온 국민적인 스포츠로 만들어 놓았다.
장비가 고가에다 한국에선 그리 쉽게 행해지지 않던 스포츠 였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끼친 영향은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스노보드도 예외일 수 없었다.
게다가 서태지가 쓰고나온 S로고의 모자는 없어서 못 팔정도였고 그들의 협찬사인
292513스톰,펠레펠레,보이런던은 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가 되기 이르렀다.
그들이 입는 옷과 말투 하나하나 마저 핫 이슈가 되었다.화해를 하고 나니 일도 쉽게
풀려 가는 것 같았다.폭풍전야 처럼 너무 고요한게 탈이었을까....
"제가요?"
"아깝네 우리 지민이 그쪽으루 데리구 가두 잘 해줘야돼."
"누구 당분데 어련 하시겠어."
"...자,잠깐요....설마..."
"그 사람이 여간 깐깐한게 아니야.고생좀 하겠다 지민씨."
"그..사람 이란게....혹시.."
"누구겠어.서쿠르지 말고.이제 지민씨 밥도 못 얻어 먹겠네."
얌전히 내 일 잘하고 있었더니 이제 현석오빠 파트에서 빠지고 태지 파트로 가랜다.
물론 나에게 나쁠거야 없지만 당사자한테 한마디 의논도 없이.....
쳇..아무리 고용되서 일하는 쪽이 나라도 이거 좀..찝찝한데....
그래 당신 잘난 서태지다.
깔끔한 커트단발에 검정 수트를 입은 경민 언니가 할 얘기가 있다며 나를 따로 불렀고
나는 조금은 불안한 기색으로 그녀를 따라 갔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음..이지민씨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포트폴리오도 봤구.실력이 대단 하던데?"
"..감사합니다."
"학교 졸업하면 이 일 계속 할 생각이야?"
"네..."
"잘됐다.우리 팀에 인재가 들어와서 기쁘고...또 그 실력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저..무슨 말씀인지....."
"중메인자리 정도면 어때?"
"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해봐."
"..아..네..."
서태지는 그런 사람인가?뭐든지 대가를 치뤄야 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인가...?
난 분명히 진심으로 사과했고 그날의 그도 진심인 듯 보였다.
이제야 조금 가까워 졌다고 느꼈는데....
하긴..일급비밀을 알고 있는 나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을 수가 없었겠지.
좋은 자리 하나 꿰어 찼으니 이젠 입 다물라는 거야?
차라리 내 앞에서 직접 말해주면 좋잖아.사람 비참하게....이런 식이면 뭐든 다
해결될줄 아나보지...?내가 당신 잘못 봤어.....
내가 좋아하던 서태지는 이럴 사람이 아닌데...
역시 내가 쫓은건...그의 허울좋은 그림자일 뿐이었어....
아직도..나를 믿지 못하나....?
"오빠 모자요."
"아 맞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억지로 참고 있었다.
대체 나를 뭘로 봤으면...하..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민아!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현석오빠...저기..있잖아요"
"어."
"태지씨...아,아니예요."
"너네 화해 했잖아.왜?태지가 또 뭐래?"
"아,아니요..."
"일...어때?할만 해?"
"...그렇죠 뭐."
"저기 이따가...."
FD하나가 급하게'서태지와 아이들 준비해 주세요'라고 외쳤고
대기실 안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 졌다.현석은 끝내 맘에 있는 말은 하지 못하고
무대에 올랐다.
잠적까지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었고 태지도 양군도 주노도 모두 수척해진 얼굴이
눈에 띄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무대에 최선을 다했다.항상 시간은 모자르기만 했고
우리 사이의 거리도 좁혀지지 않았다.갈수록 그가 미웠고 이 일만 끝나고 나면
그와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쫓은건 그의 허상일테니까...내 삶을 다시 살게되면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만이다.이제부터라도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기다림이 믿음이되어 믿음을 저버린 그에 대한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믿었던 만큼 실망도 컸다.
태지가 가짜라면 그가 지배한 내 지난날 자체가 모두 거짓인것만 같아서...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평소에 내가 입에 달고 다니던 성공성공...이대로라면 서태지와 아이들이
내가 이 쪽 일을 하는데는 엄청난 백그라운드가 되어줄 것이다.난 조금더 쉽게
원하는 걸 얻어내겠지...하지만 뭐야...이거야 말로 정말 입막음 같잖아..
파트 옮긴것도 부족해서...승진으로 나를 매수하겠다...
정말..나쁜놈 아냐??난 자길 구하러 여기까지 왔는데!!!!물론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일찍 보네요"
"나랑 얘기좀 해요."
"왜요?"
"좀 따라와요."
그의 얼굴을 보자 난 머리끝까지 돌아버렸다.심장박동이 증가하고
머리로 피가 몰리는게....하여튼 이게 어떤 감정이든 분출해야 한다는게 내 결론 이었고
난 복도로 그를 끌고 나왔다. 그도 순순히 따라 나와 주었다.
그래..내가 쉬워 보인다 이거지..?내가 어제 자기 앞에서 무릎 꿇었다고
내가 이정도면 입 다물줄 알았나보지????난 애써 분을 가라앉혔고
태지는 어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봐요 서태지씨...왜 이렇게 제 멋대로예요?"
"왜요.또 파트 옮긴거 가지고 그러는 거면 이제 그만...."
"아무리 잘나가는 가수에,옆에서 다 입에 발린말만 하니까 나도 그냥 넘어갈 줄 알았죠?
천만에요!당신은 제멋대로에 이기적이라구!!"
"그게 그렇게 큰 일이예요?파트 바꾼게?난 그냥.."
"힘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게 아니예요."
"무슨소리예요!!!"
"내가 말했잖아요,날 믿으라고 아무 한테도 말 안해요.근데 사람 비참하게
왜...왜 이래요...다른 사람도 아니고...당..신이...나한테....우..우욱..."
서러웠다.그동안 내가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힘들 때마다 내가 지칠 때마다 위로가 되어주고 희망이 되어주던 그가...
내가 믿고 있던 그의 모든 것이 다 껍데기 일뿐이라는 생각이 한 순간에 나를
무너지게 했다.세상이 다 거짓이라고 해도 그만은 진짜일거라 생각했는데...
유일하게 믿고있던 그마저 나를 배신한 것 같아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울 수 밖에 없었다.속물...당신도 속물이야....인공위성도 아니고 별은 더더욱 아니라구..
서태지....넌 속물이야...
"무슨 소리예요?지민씨 말좀 해봐요."
"놔요...이제 다 끝났어요."
몇차례 방송이 있었지만 나는 태지팀과는 따로 떨어져 행동했다.
나의 일방적인 폭발에 한참을 견디던 태지도 지쳤는지 화가 났는지 나에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따로 떨어진 나를 위해 현석은 손수 운전을 하겠다고 나섰고 우리 둘은
벤과 떨어져 현석의 그랜저를 타고 방송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입을 열면 말보다 울음이
먼저 터질 것 같았고 현석에겐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으니까.내가 울면
나보다 더 마음 아파하던 현석이었다.물론 지난 일이지만....
나에겐 과거인 일들이 이들에겐 미래이기에...
말을 할 수도 없고...이해할 수도 없겠지.
모르는건 아니지만..난 힘들다.왜 하필 내가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된걸까...
"...무슨일 있는거야?"
말이 없던 현석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내 눈은 아직 붉은 채였고 난 그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니가 그러니까 난 마음이 별로다."
"..."
그는 내쪽을 보지 않았다.난 그게 나를 위한 배려라는걸 안다.
그는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따뜻한 남자였다.
그래서 난 항상 그에게 기대기만 하고 투정만 부렸던 건지도 모른다.
"...일..많이 힘드니?"
"네...?"
"그냥 그래보여서..."
"...일보다...사람이 많이 어려워요."
"지금도 그래..?"
"네?"
"너 좀 힘들어 하는거 같아서...기왕에 파트 옮긴거 경민씨한테 신경좀 써달라 그랬지."
"오...빠..."
"태지가 좀 무뎌서 파트만 바꿔 놓고 그대로 내버려 둘게 뻔하잖아.내쪽 사람 데려갔으면
잘 해줘야지.그렇지 않을 바에야 왜 너 데려가냐구 내가 압력을 좀 넣었지.
근데도 아직 힘들어?"
"...맙소사....."
"왜 그래?안색이 않좋다.차 세울까?"
"또 실수했어요.내가 또...태지오빠 한테.. 알지도 못하면서 막 말해 버렸어."
내가 그를 의심하다니...
세상에....
내가 그에게 소리치고 화를 내고 의심하고....
있을 수나 있는 일이야?
예전 같았으면...건강하기만 하라고 다른거 필요없으니까 제발 건강하기만 바란다고
했었잖아.뭘 바라고 원하지 말고,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할 수 있단 사실에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그랬었잖아...
너 왜 이렇게 변한거니 한지민...
아무리 그래도 넌....수많은 팬 중에 하나라고....왜 그렇게 멍청해?
나야말로 제멋대로에 최악이야....
난 왜 자꾸 내 생각만 하는걸까....왜 내 기분에 휘둘려서 멋대로 혼자 생각하고
혼자 화내버리는 걸까...
그가 내게 어떤 사람인데....
그가...그럴 리가 없는데...
"나 땜에..입장 곤란해 진거야?"
"...아니예요.내 탓이예요.오빠가 미안해 할거 없어요."
"지민아...."
"오빠도 내가 이상하게 보이죠...나도 이런 내가 싫어요."
"요즘 들어서 니가 좀 변한거 같긴 하지만...그게 이상하게 보이진 않아.
그냥 남들에 비해 조금 특별한 거지..."
"오빠는...왜 안 물어봐요.그때 일...?내가 어떻게 은퇴 얘기 알고 있는지 안 궁금해요?"
"어차피 내가 이해할 수 없을거야.그러니까 나중에 니가 말하고 싶어지고
또 나도 이해할 만큼 시간이 흐르면..그때 말해줘."
"오빠..."
그의 얼굴은 너무나 천진했다.아이 같이 맑은 눈망울을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감동적인 말을 해댄다.내가 믿지 않을 수 없게....또 감동 하지 않을 수 없게...
그래서 그가 날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한번도 의심을 품지 않았고
또 당연하게 그가 내게 하는 만큼 나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묻기전에 내가 원하는 걸 말해주는 현석과는 달리
태지는 항상 내게 의문을 가지게 하는 상대였다.처음부터 지금까지 주욱 그래왔다.
항상 나를 궁금하게 하고 대답도 안하고 멀리 가버리고.
현석이 항상 그 자리에서 지친 나를 받아 주었다면 태지는 자꾸만 그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며 한발자국씩 멀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태지가 아닌 현석을 만나며 이 사람을 사랑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했었다.
태지를 사랑했다면 나는 황량한 들판에 버려진 화초처럼 이파리부터 누렇게 말라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그의 사랑을 갈망하며 혼자서 원하기만 하다가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현석을 만나 따뜻한 햇볕이 드는 창가에 놓여지고 목이 마르지 않도록 일정하게
시원한 물줄기를 내려주고 뿌리를 내리도록 더 넓은 화분으로 옮겨주는 현석이었기에
부족한 것 없이 그저 이 작은 세상에 만족하며 살았었다.그 편안함에 안락함에
다른건 생각하기도 싫었었다.하지만 불현 듯 찾아오는 생각들...
거친 땅에 뿌리를 박고 모진 가뭄을 견뎌내고 시원스레 내리는 빗줄기에 몸을 맡긴다면
그 빗물이 햇볕이...더 소중하게 느껴질텐데...
진정한 소중함을 알텐데...
주인 없이 들판에 홀로 자라나는 이파리들은 생명력이 있다.
예쁘진 않지만 화초보다 훨씬 더 매력이 있다.
사랑할 기회가 찾아 왔음에도 불과하고 현석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건
때론 메마른 땅과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비,누구에게나 한결 같은 태양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영원히 몰랐다면...그를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그를 사랑한다면 난 아무런 부족함 없이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보이는 길밖의 세상을 찾아 나선 누구를 사랑해서...
나 마저 쉬운 길은 걸을 수 없는 까닭이었다.
태지를 사랑한 이후로 지나친 애정에는 뿌리가 썪어버리는 선인장이 되어버린 나...
세상이 두쪽 나도....
태지가 변할리 없기에...나도 그럴 수 밖에 없다.
백번 천번 시간이 뒤집어 져도 나의 맘이 변할리 없다.
그걸...이제서야 깨닫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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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은 전개가 좀 엉성하죠..ㅠㅠ
사실 어제 컴터가 고장난 채로 글을 복사하다가
6편전체를 다 날렸어요.지금 올린 6편은 사실 7편에
조금 살을 붙인거죠.앞으론 꼭 파일 복사본을 만들어
놓아야 겠어요.ㅜㅜ.....
6편아~돌아와~
태지의 그녀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