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아시스
「오아시스」
학생들의 말라비틀어진 일상에 단비와 같은 곳. 꽉 막힌 마음속의 오물들을 쏟아내며 그들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느끼는 이 곳. 커다란 창고에 실내 장식이라곤 닳아빠진 무대와 사람 크기만 한 두 대의 우퍼스피커. 그리고 구석진 곳의 디제이 기계실이 전부다.
토요일 밤, 피에 굶주린 늑대처럼 비트에 취한 영혼들이 하나 둘 오아시스에 모여들어 텅 빈 영혼에 아드레날린을 충전한다. 하루 밤 사이에 스타가 태어나기도 하고 이미 스타가 되어버린 녀석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곤 한다. 그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잉태된다.
진마창의 실력 있는 고딩 랩퍼들이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을 겨루며 최고의 랩퍼를 뽑는 날. 매월 마지막 토요일은 랩배틀이 있는 날이었다. 해가 저물어 시작된 대결은 서로 물고 뜯어 마지막 두 고수들만 남았다.
무대 앞에 모인 사람들은 현란한 비트음에 맞춰 하울링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거친 몸짓의 파도를 만들어 내며 공연장을 삼켰다. 턴테이블의 스크래치와 격렬해지는 리듬은 폭풍우 치는 밤의 격렬한 사투와도 같았다.
불빛 속에 번쩍이는 눈동자들은 무대 위 두 명의 랩퍼에게 시선이 꽂혀있었다. 한 명은 J.J.K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져 있는 실력파 랩퍼였다. 몇몇 소속사에서 아이돌 그룹의 래퍼로 점찍었다는 소문이 허다했고 실제로 몇몇 가수들 노래에 녹음작업도 했었다. J.J.K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녀석은 가면을 쓴 마스크 투 맨이었다. 실제 얼굴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혜성처럼 등장한 랩퍼였다. 처음 마스크를 쓰고 왔을 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배틀이 진행되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의 카타르시스한 총알에 관중들은 열광했고 그의 몸짓에 저절로 빠져들었다. 실력파 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간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3연속 디펜딩 챔피언인 J.J.K.가 긴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배틀을 진행하는 라이더가 마이크를 잡았다.
“예~예~잘 봐.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전의 시간. 투 미닛 뒤엔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살어. 우린 그걸 보기 위해서 여기 왔어. 신나게, 잔인하게 한 판 뜨도록 해. 마지막 대결이니까 15초 더해서 45초야. 실컷 쏟아 부으라고. 살살 하다가 여기 있는 올빼미들 흥분할지 모르니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란 말이다. 예? 헤이 J.J.K. 유 퍼스트. 고!”
라이더는 J.J.K에게 마이크를 던졌다. 비트음악은 더욱 강렬하게 무리속에 파고들었고 J.J.K.는 리듬에 온 몸을 실어 어깨를 한 번 크게 들썩이고는 랩을 쏟아냈다.
예~잘 들어. 귀에 귀지 털고 잘 들으란 말 야.
다리 후달 거리지 말고 여기 서서 쫄지 마란 말 야.
네 마스크는 옆구리 터진 수도꼭지.
미친 듯이 쏟아지는 찌질이 땀에 여기 저기 썩어들지.
허! 헤이. 모두들 잘 봐. 자세히 보니 진짜 똥 싼 바지.
냄새나고 더러우니까 저리가 새꺄.
신성하고 거룩한 오아시스 네가 망쳐
너의 싼티 나는 랩에 우리 모두 지쳐
어이! 내가 한 수 가르쳐줄테니까 내 엉덩이 키스.
버리버리 버벅대는 찌질이 새끼는 패스.
허~내 손가락 지금 엠블런스에 원원나인 누르고 있어
혹시 넘어 질까 부축하고 싶은데 너의 입내, 암내, 발내가 쓰리 폭탄주란 말야.
네 얼굴은 슈렉이라 마스크에 기어들어가
그래도 너에게 고맙다고 얘기할 께.
그 마스크 땜에 내가 널 똑바로 쳐다볼 수 있으니까.
“예예예 굿. 와우. 크레이지 타임. 타임즈 업. 넥스트 마스크 투 맨. 아 유 레디? 고!”
그래 맞아 씨팔 나는 시궁창에서 기어 나온 쓰레기.
온 몸에 오물 덮어 쓰고 지랄하며 구걸하는 거지.
냄새 난다 쪽팔려 죽겠는데 이런 쉣! 나보다 구린 새끼 내 앞에서 깝죽대.
나는 젠장 두 다리가 마이 카
이 녀석은 삐까뻔쩍 진짜 카
돈에 쩔어 버린 돼지새끼.
쏟아내는 랩들이 꽥꽥되는 돼지 멱따는 소리.
금덩이를 쳐바르고 돼지목에 진주목걸이
뇌가 없어 삐져나온 입에서 깔짝깔짝. 지가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몰라.
오기 전에 마마차에서 내리는 것 봤어.
나한테 까였다고 오늘 밤 엄마 품에 안겨 찌질대지 마.
재수 드럽게 없으니까.
“와와와 와우. 예. 와우. 예예 스탑 스탑. 정말 후~끈해. 정말 간만에 보는 화끈한 배틀. 오아시스 생긴 이래로 이렇게 달아오른 건 처음이야. 자 모두들. 그래도 최고는 가려야겠지. 마음의 준비들 하라구.”
흥분한 라이더와 마찬가지로 관중들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 그럼. 시작하겠어. J.J.K. 소리 질러~~~~!!!"
곳곳에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중간중간 휘파람 소리도 섞이고 ‘오우 섹시 가이’라는 말도 간간히 터졌다. 오아시스가 한 번 들썩였다가 가라앉았다.
“역시~ 엄청나군. 넥스트. 치킨보이. 마스크 투 맨. 소리 질러.”
‘예~~~~~와우. 와우’ 함성을 넘어 절규의 목소리가 오아시스를 점령했다. 모두들 손을 들어 랩퍼에게 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디펜딩 챔피언 J.J.K.를 몰아내고 새로운 챔피언 마스크 투맨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오아시스 역사상 첫 출전에 챔피언이 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