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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봄봄
[페이지] F01
MBC창사 24주년특별기념공연
<우리가락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뮤지컬>
"봄 - 봄"
원작/김유정
각색/오태석
연출/오태석
기간 : 85.12.1 - 3
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페이지] F02
[막] 제1막
봄 봄
[페이지] 003
<인 물>
봉 필
빙 모
이 장
점 순
필 순
기 석
용 구
기 호
상 투
들 명 이
재 성
성 팔
일 렬
대장간댁
대 화 댁
평 수
할애비들
그외 다수
[페이지] 004
[막] 제1막 가을, 동구 앞 마당
[막] 제2막 초봄, 마을 당집마당
가을
동구앞 마당
어줍잖게, 제법 팔각정을 흉내낸, 퇴락한 정자가 뒤에 2,3백년 묵은 오동나무를 의지하고 서
있다
동네 머슴들이 봉필이네 나락을 타작하느라고 마당에 질펀이 늘어 놓고 한참 바쁘다.
채 윤전식 타작기가 나오기 전이어서 빗살같은 쇠붙이가 머리에 붙어 있는 받침대를 여럿둘러
세워 놓고 나락을 훑고, 한편에서는 절구통 가러 뒤어 놓고, 거기 벼포기를 후려쳐서 나락을
털고, 타작이 한창이다.
한켠에 기를 세워놓고, 농악군들이 퍼질러 앉아, 장단 맞춘다. 정자에는, 봉필이네 머슴
기석이가 저희
[페이지] 005
농사타작임에 불구 잔뜩 게으름을 피우면서 밉게논다.
한낮의 샛밥 때가 지나 밥오기를 기다리면서, 허기 고됨을 소리로 달랜다.
나락 훑고, 나락 내리쳐 터는 두가지 일에 구색을 맞추느라 농사찬가, 도리깨질요, 두루 섞어
엮어간다
상투꾼은 풍물잽이 중에 하나로 쾌자에 행전 둘렀다)
[상투꾼] 사해창생 농부들아
일생신운 원치마라
[모두] 어절시구 옹헤야
[상투꾼] 사농공상 생긴후
귀중할손 농사로다
[모두] 어절시구 옹헤야
[상투꾼] 만민지 청색이요
천하지 대본이라
[모두] 어절시구 옹헤야
[기석] (노래조로 버럭 소리친다)
뒷동산 살구꽃은
가지가지 봄빛이라
[페이지] 006
[기호] 좋다. 저 사람 좋은세월 혼자 사네, 여기는 나락 떨어지느만 저 세월에는 꽃이
피는구나
그 세월로 나 좀 취했다고 장리서말 붙여 주마,
[기석] (노래조로)
앞못에 창포잎은
층층이 움돋는다.
[용구] 기다려라
너 장개 보낼려구 나락 훑는거 보들 않냐!
[상투] 날 잡았디야?
[기석] 달 잡았수, 지난밤이
[기호] 간밤에 달 떴나?
[성팔] 그믐달 잡았는갑만
[상투] 그믐달도 있는가!
(웃음소리)
[상투] (도리깨질조로 신명지게 나아간다)
옹헤야 어절시구
잘도한다
[페이지] 007
[모두] 옹헤야
[상투] 단둘이만
[모두] 옹헤야
[상투] 하더라도
[모두] 옹헤야
[상투] 열쯤이나 하는듯이 하여주소
[모두] 옹헤야 에에헤야
옹헤야
[기석] (밉게 소리한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용구] 어허, 올 가을에 장가 안갈란가!
소리할라 말고 나락훑어, 나락훑어야 날 잡어
[기호] 우리가 넘일하냐, 느이집 일이여, 거그 그러고 미안지심도 없냐, 이.
[성팔] 놔둬, 빙장 어른한티 덜 맞아서 저려.
[기석] (밉게 군다)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간다
[용구] 그 소리 여그서 떠벌일 일이 아니네,
[페이지] 008
가서 빙장앞이서 내질러, 올가을이 성사시켜라, 아니면 야밤이 날잡아 갖고 점순이 들쳐업고
야반도주한다, 얼러
[상투] 맞어, 읍내 삼거리집 과부 판교사람이 업구 뛰었디야, 저 지난 장날
[성팔] 아이구 점순이 그것이 뉘게 업힌다우. 저 사람쥐고 놀아.
[기호] 쥐고 는 것이 아니여, 긁어대는 것이라 그게, 그러지 기석아.
(점순이 언동을 흉내내어)
밤낮 일만 한디야
밤낮 쇠죽만 쑤어
쇠죽 갖다 나먹일란가 서둘러
그게 자네 쫓겨날 때가 가차웠다는 소리여
[기석] 헹! 택두 없는 소리!
[기호] 아이구, 너 먼저 쫓겨난 인간은 너만 못해 쫓겨나고,
[상투] 저사람 먼저 사람이라서
[기호] 둘이나 먼저 있다가 떨려났단게!
[페이지] 009
삼대째여 저 사람이!
점순이 한테 세번째 서방이란게!
이제 열댓살 먹은 애가 서방 셋을 겪었네, 벌써
[상투] 앗다, 그양반 잊속밝다
[기석] (벌떡 상체일시고 소리친다)
두껍아 두껍아
너 등어리가 왜 그러노
[기호] (노래로 받는다)
두껍아 두껍아
너 손바닥이 왜 그렇노
[용구] 어이 시끄러 허기진다. 점심도 건너뛰고 가 저녁밥이나 챙겨오래.
해 기운거 본게 이러다간 저녁도 못챙기겠어.
[재성] (멀리 봉팔이 집을 건네보며)
통 기척이 없나?
[성팔] 뭐 삘건게 하나 나오다가 그냥 들어가느만
[용구] 뭐가 나오다가 들어가?
[성팔] (일꾼들의 고된 것 잊으려는 재담이다.
[페이지] 010
킬킬거리며)
봉팔이네 대문이 열리면서 머리꼭지 하나 삘겋게 나오다가 들어갔어
[용구] 어이구! 해전에 밥귀경 하기는 글렀네 왜냐! 점순이 엄니 호박잎 따러 갔어. 이제사,
그거 따다 삶어, 장독에 가서 된장 떠, 광주리에 담어, 머리에 이어, 팔자로 걸어,
말어, 한소금 자더라고, 시장한데는 잠이 약이라.
(팔각정 마루에 댓자 눕는다. 머슴들 제가끔 볏단 내던지고 제자리 찾아 쉰다. 종이 찢어
권련말고, 볏낱 손바닥 새에 비벼 껍질 벗기고 입에 털어 넣는다. 풍물소리 풍풍거리다 꺼진다.
일순 적막해 진다. 남의 집 사는 사내들의 퀴퀴한 살냄새가 손에 잡힐듯이 허허롭다.
재성이 풀잎 접어 삐리리 분다. 원채 잠방거리는 성미에 잠시 손발을 가만두지 못하는 기호가
소리라고 하는데 유행가조가 돼 버려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페이지] 011
[기호] 앵금삼삼 고운처자
진 - 고개 넘나든다
오면가면 빛만뵈고
장부가슴 다녹인다
[성팔] (그냥 늘어져있는 기석이 한테 소리친다)
이 사람아, 다 왔어
[기호] 놔둬, 저사람 오늘 날 잡았디야!
[페이지] 012
(하지도 못하는 소리, 또 내질러 노래라고 뽑는다)
[기호] 깨밭에서 깨노세
떼밭에서 떼노세
한이삼년 더노세
시집가면 못노네
참깨들깨 노는데
아주깨는 못노나
나도한번 노 - 자
(잔뜩 기다리던 봉필이 대신 열한살 먹은 봉필이 막내딸 필순이가 호리병들고 들어선다)
[용구] (맥이 풀려)
뭐가 온다구 난리재겨
[기호] (성재를 쿡 찌르고)
자네 각시 왔네
[성재] 어허!
[기호] 술병 받어. 서방님 목축이라고. 이고지고, 아이고 무겁것다 너, 받어 어서.
[성재] 앗다, 배고프다믄서 쓸데없는 소리는. 뭘로 자꾸 씨부렁거린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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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나서서 필순에게 꾸벅 절을 하고)
아이구, 멀리 기동하신게라우, 그새 며칠 못본새 새색시티가 탱탱하다 너
[필순] 아께 보구서라우!
[기호] (성재 가리키며)
서방님 말씀이, 나 먼저 들라고
(호리병 뺏어 연장인 상투쟁이한테 건넨다)
[상투] 먼저 들어.
[기호] 저그, 막내사위가 보내는 것이오. 드시라고.
[상투] 막내사위여? 거그도 짝맞췄나?
[성재] 사는 소리유 그냥
[기호] 아이고 딴소리 는거 봐!
일편단심 필순이란 적은 언제고.
[재성] 사람 죽이네.
[기호] (심심풀이 삼아 엮는다)
봉필이가 물어보드란 말이여.
[재성] 뭘. 물어?
[기호] 자네가 실지로 그런 마음이 있는거냐, 이거여.
[페이지] 014
[재성] (정색하고 불끈해서) 뭐가 있어,
[기호] 내가 그랬구만, 뭔 소리를 듣자고 이러시요, 헌게, 막내 사위를 둬야겠다는 거여
[재성] 이러구 어거지여
[기호] 실지여.
[재성] 뭐가 실지여 뭐가
(기호를 떠다밀며, 칠 기세다)
[용구] 어허, 기운없어, 고만들둬! 허기져서 실성들했는가, 지금.
[성재] 다시 말어.
[기호] 아이고 배고파.
[상투] (호리병 건네며 샛밥 기다리는 소리한다) 샛밥아 실었든 도복발이 어디만치 왔든고
[풍물꾼] 옹헤옹헤 옹헤야
[상투] 이등저등 건니다가
칡넝쿨에 걸려 못오는가
[풍물꾼] 옹헤옹헤 옹헤야
[상투] 오늘낮에 샛때반찬
무엇무엇 올랐든고
[풍물꾼] 옹헤옹헤 옹헤야
[페이지] 015
[상투] 강원도라 산골작에
칼치한치 올랐드라
[풍물꾼] 옹헤옹헤 옹헤야
[상투] 저게 가는 저구름은
님있는곳 가는마는
[풍물꾼] 옹헤옹헤 옹헤야
(이때 바람결 모양 봉필이가 썩 들어 선다. 훑어 보다가 정자에 누어 있는 기석이게 눈이
멎는다. 긴 침묵)
[봉필] 저기 자빠져 있는 건 뭐여.
[기석] (벌떡 몸을 일셨다가 오만상 찡그리고 배를 잡고 비명을 내지른다)
아이구 배야
[봉필] 그배는 어디보자! 어찌 나만 보면 소리를 내지른다냐!
[기석] 아아 배야
(봉필이 정자로 올라섰는가. 들고 있던 대지팡이로 후려친다)
[봉필] 일 한마당 벌여 놓고 이놈, 쥔 녀석
[페이지] 016
은 쳐 자빠져 자!
[기석] 아픈 사람도 일한다우!
[봉필] 일어나. 일하면 낫는다.
[기석] 그소리 삼년동안 들었수.
[봉필] 삼년?
죽을 때까지 듣는 소리여, 이것아!
[기석] 나 여그서 죽을 맘 없수.
[봉필] 누가 죽으래! 일하란 말이여, 누굴 망해놀 참이냐 이 답답한 것아.
[기석] 일한단 말이유.
[봉필] 옳지.
[기석] 헐팅게 먼져 약조허시유.
[봉필] 뭘 혀?
[기석] 올해는 성례시켜 주시우
[봉필] 어허!
아침내둥 그러구 맞구서 또 그 몹쓸 소리 꺼내고 있네. 이 사람.
[기석] 그런게 시켜 줘유.
[봉필] 이 녀석아 미처 자라야지.
(한켠에서 나락줏어 훑으며 장난질하고 있는 필순이를 가리키며)
[페이지] 017
조걸 데리고 무슨 혼인을 한다고 이려.
[기석] 저 애보다는 커라우
[봉필] 뭐가 커
[기석] 재 봐유 근게
[봉필] 도토리 키를 재!
[기석] 잴건 재야지유.
[봉필] 이러구 극성이야
[기석] 한가하게 됐수?
[봉필] 올해는 아직 이르구 그런게 단념하고, 한해만 더 두고 보자
[기석] 밤낮 부려만 먹고, 한 해 더 부려!
[봉필] 두고 보자, 내 약을 맥여서라도 느려 볼틴게 두고 봐.
[기석] 삼년동안 안자란 키 언제 자라!
[봉필] 글쎄! 이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단 말이냐.
왜 나보구 떼냐?
[기석]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난다우.
(기석이, 남 눈길도 있고 해서 오늘은 담판을 지으리라 결심하고 훌훌 털고 일어선다. 결의를
내보일양, 봉필이 어깨를 툭친다)
[기석] 갑시다
[봉필] 뭐여?
[기석] 구장 어른한티 가서 담판을 짓어유!
[봉필] 담판이 뭐여?
[기석] (거칠게 잡아 끈다)
가유, 어서.
[봉필] 어허, 왜 이려, 어른을.
[기석] 가유, 가.
(휙 나꿔챈다. 봉필이 마루에서 땅으로 나뒹군다. 기석이, 남의 눈 앞이라 허세를 부린다는
것이 지나쳤다 싶어 얼른 잡아 일으키려고 다가드는데, 봉필
[페이지] 019
이 대지팽이로 정수리를 내리친다. 어이쿠! 외마디 소리지르면서 기석이 정수리를 싸고
나뒹군다.
몸을 세운 봉필이 사정없이 내리친다)
[기석] (몸 싸쥐고 뒹굴며)
빙장님, 빙장님,
[봉필] (내리치며)
기껀 밥처먹구, 남의 농사버려놓면 이 자식아, 징역간다. 너!
[기석] 아! 아, 할아버지! 살려줍쇼, 할아버지! 다시는 안그러겠이유.
[봉필] 이 자식, 날 잡아 먹어라!
잡아 먹어.
[기석] 아아! 빙장님. 할아버지.
어이구 할아버지 빙장님!
(기호, 용구, 상투가 달겨 들어 떼어 말린다)
[기호] 고정하시우, 그만, 철없는 것이라 어른이 참으시유.
[기석] 나 가라우! 나 성례구 뭐구 고만두고 나 가라우
[봉필] 어딜 가 이놈아! 남 농사 망쳐 놓고
[페이지] 020
니가 갈 데가 있다. 이놈, 너는 징역 가야 혀
[기석] 나 금점에 금 찾으로 갈라우!
밤낮 부려만 먹는 이짓 고만 치울틴게.
[봉필] (다급하다)
어딜 가! 못간다, 이놈.
[기석] 가라우, 가라우,
[봉필] 내년 봄이 보자, 내년 봄이 보리 패문 성례하자!
[기석] 엎친 물이유! 나는 금점에 가라우.
[봉필] 너 이녀석 징역 살어!!
[기석] 징역 가두 좋아유.
(휑 나간다. 봉필이 불러 잡으려고 소리친다)
[봉필] 인정이 그러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 말하믄 듣는 법이여
내년 봄이는 꼭 성례하마, 딴 생각 말고 오니라!
아, 이녀석아 오라는데 어딜 가.
(마음은 가서 붙잡기라도 하련만 사람들의 눈이 있어 눌러 참자니 못견딜 노릇이다.
[페이지] 021
금점을 두고서 주고 받는 머슴들의 짓거리가 귀에 잔뜩 거슬린다)
[상투] 그것이 사람 망치는 것이여!
아예 염을 말어
[기호] 해도 상수리 광산은 버럭버럭 커만진다는 디라우. 일꾼이 3백이 넘는디야.
[성팔] 금점으로 허옇게 사람이 구더기처럼 몰려다니더라는디, 그것이 쫓아다니다가
농사버리고 떠나는 바람에 비운집이 한두채가 아니라더만 그류.
[상투] 그게 다 헛탕이란게!
[기호] 아이구, 해두 금점이서 버럭더미 하나 잘 받어 보소, 거그 토록이란 게 섞여 놓고
보면, 칠팔십전 꼴은 된답니다. 하루 칠팔십전씩 손에 넣어 보소.
아이구! 소 사고, 밭 사고, 논 사고, 떡하고 피륙 끊고, 장리 놓고 -
[용구] 그럼 너도 거기 가거라
[페이지] 022
[기호] (봉필이를 힐끔 보고)
인정이 그러는 것이 아니네, 기건 밥처먹구서 내속만 채리믄 누구 망하라구
[용구] 허, 저 주둥아리 철 들때도 있네.
[성재] 선동리서는 장정 넷이 빠져 나갔다느만 그래도 여그 장정들이 무거운데가 있는 가비여!
[성팔] 무겁기는, 다 숫기가 없어. 병신들만 있는기라.
[기호] 병신이여!
[성팔] 맨날 땅만 파기로 생기는게 없는디도 붙어 있은게,
[기호] 이 사람 보소. 땅 고마운 줄 알아야지, 이날 이때까지 널 먹여 준 것이 누구냐! 이놈.
[성팔] 사내가 세상에 남으면 한번 쥐어 보는 기라,
[기호] 낫쥐고, 호미쥐고, 일어나 해, 이것아
[성팔] 모르지, 기석이 갔은게 두고 보세
[봉필] (버럭 역정을 낸다)
누가 가 가기는
[페이지] 023
[성팔] 금점이 금캐러 간다고 안해라우.
[봉필] 아, 시끄러.
[성팔] 사람 운수는 모르는 법이유.
[봉필] 그만 둬.
(나락 훑는 소리
점순이와 빙모가 찬거리 큰 광주리 이고 들어 와 한켠에 채려 놓는다)
[기호] 아이, 더 있다가 저녁을 져내오지 그랬냐.
[점순] (한켠에 누어 있는 패거리를 가리키며 생글거리며)
누어 자는 사람도 있구만 그러시유?
[기호] 자는 게 아니여.
기운이 돼서 몸가누기가 어렵디야.
[상투] (풍물패거리들 한테)
와 들.
[봉필] 자네가 몇인가?
[일렬] 여덟이라우!
[봉필] (짐짓 눈을 내리감고, 엄지로 손마디를 헤아려 본다)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하여 그 성세 장히 웅장하다.
[대장간댁] 좋아라우?
[봉필] (흔쾌한 마음이라 소리가 절로 난다)
삼십여간 줄행랑을
일자로 느려 지었는데
한가운데 솟을대문
대문안에 중문이오
중문안에 벽문이라
종놈들이 오락가락
번잡하고 수직하고
볏섬이 줄을잇고
들어가고 들어가고
아이고 평생 볏섬만 들어가네, 이사람
사통팔달 막힌데가 없어
아 - 해보게
[페이지] 028
[일렬] 예?
[봉필] 아 -
(하면서 입을 쩍 벌려 보인다. 일렬이 대장간댁을 본다. 대장간댁이 쿡 찌르는 바람에 입을
벌려 보인다. 봉필이! 아구를 벌려 잡고 아래 위를 살펴본다. 우시장에 봄직한 거동이다)
[봉필] 그 성세 장히 웅장하다.
[대장간댁] (때를 놓칠세라 끼어든다)
누가 여그 누가 힘좀 써 볼라우.
[봉필] 힘을 쓰다니?
[대장간댁] 이 사람 기운 당할 사람있거든 나서 보게
(잠시)
[기호] 뭘 거실라우
[대장간댁] 걸다니?
[기호] 황소 한마리 겁시다.
[대장간댁] 황소가 어딧어!
[기호] 도야지 낼라우?
[대장간댁] 누가 내기 하자는가, 기운 써 보잔게.
[페이지] 029
[용구] (봉필을 보며)
벼 한섬 걸믄 해보겠구먼이유?
[봉필] (나서더니 연설조로 일렬이를 소개한다) 오늘자로 우리집 식구가 될 사람이니, 이
사람이, 그래서 장차 서로 일을 같이 해갈 마당이니 만큼, 우애있게 지내라고 들, 그런게, 벼
한섬 내가 낼틴게 우애로 겨뤄보드라고 들.
[기호] (박수치고)
식구라우?
[대장간댁] 사위여! 근게.
[빙모] 사위라니?
[봉필] 내가 한번 보자구 했구만
[기호] 누구 서방이라우?
[봉필] (빙모를 의식한다)
그것은 뭐냐! 날자를 두고 의논을 해서 - 그런게 두고 볼 일이여, 인간 대사이니만큼 나중에
볼 일이고. 어디 누가 볏섬을 가져 갈란가.
(풍물이 소리를 치고 나선다. 한편 상투의 선창에 쫓아 소리하면서, 한편 간편한 겨룸판을
만드느
[페이지] 030
라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한편 풍물소리 듣고서 동네 촌노들, 아낙들, 처녀들이 모습을 보인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추수를 모두 풍요로운 마음 가운데 새사람 구경삼아, 히덕거리고,
촌평하는 산골 사람들의 대합창이다)
(용구와 지게진 기호, 풍물을 앞세우고 상투를 쫓아 모들 마을 돌기를 하려고 몰려 나간다.
노래소리 멀어지며 이어진다)
[페이지] 034
[상투] 장사장사 황애장사
걸머진게 무엇인가
[모두] 아기네들 굴레다리
각시네들 낭자댕기
[상투] 장사장사 황애장사
걸머진게 무엇인가
(진작에 소쿠리이고 들어와 이 모냥 모두 보고 있던 점순이, 정자 마루에 소쿠리 내려 놓는다.
봉필이, 빙모, 일렬, 대장간댁 서로 민망하여 외면 중이다)
[점순] 점심드시우
[대장간댁] 와, 우선 먹고 보드라고, 허기져서 진것이여, 근게 기운채리고
(숱가락드는데 봉필이 버럭 소리지른다)
[봉필] 말어
[빙모] 시장하단게 밥이나 먹거든!
[봉필] 그모냥 해갖고 넘집을 사나.
남 밥그릇이나 축낼 작정이라면 나 그런 사람 소용없네, 저 큰 사람 배채
[페이지] 035
울 양석 우리집에 없어!
[대장간댁] 근력이사 읍내서 당할 장사 없구만유
[봉필] 그만 가더라고
[대장간댁] 근력으로 씨름을 한다우, 그게 요령을 피울줄 알아야 하는디, 사람이 통 우직해
갖고 그저 일만 알지
[봉필] 파여! 가.
[대장간댁] (불끈해서, 나가다가) 부아가 나서 내지른다)
논은 몇섬지기가 된다믄서 속알머리는 밴댕이 속모냥 이랬다 저랬다.
오라 가라.
가더라고, 가란게.
(둘이 나간다)
[빙모] 요기나 하고 가게유
[대장간댁] 그 쉰밥 뒀다 저양반 주구랴
[점순] 쉰밥이 아니라우 데쳤구만
(일렬이 점순이를 보다가 따라 나간다)
[빙모] 불러들여 농고 밥 한그릇 안먹이고 보내면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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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필] 밥 그릇이 아니여! 내 볏섬, 볏섬 축내고 간단말이여
[빙모] 볏섬이야 어른이 내 놓으신거구,
남들한테 식구라고 한 마당에는.
[봉필] (정자마루에 놓인 소쿠리를 뒤집어 엎는다)
갖다 먹여 이거 갖다 먹이라구
(빙모 그 자리에 몸을 풀석 꺾듯이 쭈구리고 앉아 밥그릇에 밥 긁어 담고, 찬그릇에 반찬 줏어
담는다 점순이가 놀라서 훌적거리면서 거든다.
빙모가 서낭당을 빌듯이 서방님의 경솔함을 용서하시라고, 간곡히 소리한다)
[빙모]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님전 비나이다
인간이라고 하옵는건
쇠술로 밥을 먹고
의식이 망막하여
촌부일사를 모를러니
입은 덕도 많거니와
새로 새덕을 입어보세
[페이지] 037
(이후 점순이도 따라 불러 병창이 된다)
[점순] 상봉일경에 불복만제
아하 -- 에헤헤이요
에헤 느려서 어험이로다
느려서 오십소사
[봉필] (내심 미안지심을 역정으로 나타낸다) 모녀간에 기럭지는 짧달막해갖고, 소리는 제기
한정없이 빼네, 화통을 삶아 먹었나, 소리지를 기력있거들랑, 너, 너는 키나느려. 그놈의 키
자꾸 줄어드는 바람에 기석이 도망쳐 버렸어.
나락갖다 한마당 늘여 놓구서는, 봐라! 일할 놈은 내빼고 동네놈들은 볏섬 져내가고 두눈
멀쩡이 뜨고 있는디 볏섬져내가는 거 봤지야! 너.
밥처먹는 거! 다 엇다 버리는지 몰라!
[빙모] 올봄하고 또 틀리구만 그러시요, 손마디나 더 자랐드만유, 본게.
[봉필] 내일부터는 물동이 이들 말어, 무거운 거 들지도 말어, 이고 들고 일절 말어,
[페이지] 038
알았냐?
[점순] (앵도라져서)
누가 애를 가졌나
[봉필] 키질도 말고, 절구질도 말고
[점순] 나 다 컸이유!
[봉필] 말라믄 말어.
[점순] 내가 엄니보다 커라우.
[봉필] 그냥 쫑알거려!
(귓쌈을 치려고 달려드는 봉필이를 빙모가 어프러지듯 종아리를 부여잡고)
[빙모] 나를 죽이시오, 저 애를 치려거든 나를 쳐, 저를 생겨나게 한 것이 이 몸이니 죄는
내게 있소
(간절히 소리한다)
나어릴 때 저를 낳고
배고플까 치워할까
다칠세라 병날세라
손톱으로 띈일 없고
가시 아니 긁히고서
[페이지] 039
진주모냥 길렀더니
에 -- 고 불쌍한 거
[봉필] 어이 시끄러
좋은소리 쌨구만 골라하는 소리마다 울어.
(두 모녀 쿡쿡 눌러 참으며 주섬주섬 소쿠리에 그릇 챙긴다.
이때 호리병을 든 필순이 앞세우고, 기석이가 이장을 달고 들어선다.
봉필이네 논을 부쳐먹는 이장은 봉필이를 보자 난처한 기색이다.)
[봉필] (반가움을 미운소리로)
나락갖다 한마당 늘어놓고 선유 다니냐. 너, 뭐여 뭐하고 쏴다녀 이놈아.
[기석] 나 그만 갈테유.
[봉필] 내 아께 말한대로 내년 봄에 성례하자.
[기석] (점순의 뽀루퉁한 낯빛에 올가을로 땅기라고 응원하는 듯이 보인다. 결판을 내자,
그러한 모습 보여주고자 당당하다) 그동안 만삼년 뼈 아프게 일한 거 사경 쳐 주시유
[페이지] 040
[봉필] 사경이 뭐여. (이장에게)
뭐라는 게여?
[기석] 한해 쌀 석섬씩, 삼년치 쳐내시우.
[봉필] (이장에게)
내가 평생에 머슴을 부려 본적이 없네. 자네 우리집 머슴두는 거 언제 봤나?
[기석] 지난 삼년동안 내가 일을했지 그럼 놀구 먹었다우?
(봉필의 이장의 도움을 바라고 옆구리를 쿡 찌른다)
[이장] 어디 계약서 좀 보세.
[기석] 계약서라우?
[이장] 한해 벼 넉섬 지급하기로 돼 있다면서?
[기석] (궁지에 몰린다. 정자 마루판으로 손바닥을 치면서 대든다)
계약은 안했어도 일을 한건 사실아니유?
[봉필] (버럭 소리친다)
사실이여, 사실은 니가 내 데릴사위지냈지 언제 머슴했냐?
(자신이 사위를 위해 준 내력을 빠르고 구성진 소
[페이지] 041
리로 엮는다)
[봉필] 사위는 백년지객이라
이날 이때까지
궂은 일, 힘든 일, 젖은 일 말리고
꼬풀베다 낫에 빌까
고랑파다 쇠스랑 찍힐까
오물푸다 뒤집어 쓸까
염소몰다 뿔바칠라
여물쑤다 바지 태울라
방아찧다 허리 다칠라
사위상을 채리거든 수란올려라
조기대갱이 칼치도막
국한그릇 끓이더라도
장독에 진간장 묵은간장
섞은 된장 보리고추장
죄퍼다가 너 다 먹어 놨더니 이놈
(아니리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뭐 사경쳐내거라
아이고 이를 어쪄
[페이지] 042
[점순] (때맞추어 감동을 이르키면 기석이 따라가게 보내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간곡하다)
그런데 이내 여식은 소박을 맞은 푼수라우?
(봉필에게 큰절하듯 이마를 숙이고 비통한 소리로)
아버님 애고 아버님
나를 낳아 무엇하자
산제불공 정성들여
그 고생이 어떠하며
그 구로가 어떠시었소
아버님 정성으로
이 몸이 아니 죽고
혈혈히 자라나서
십세가 넘삽기에
내 속에 먹은 마음
길일을 택하여서
성례를 올리거든
아들낳고 딸낳고
철따라 옷해입혀
[페이지] 043
떡해 갖고 아버님전
문안하오면 그로 효행이라
아버님 은혜를 만일이나
갚쟀더니 이제는
하릴없어 수중고혼 될 터이니
불쌍한 우리 부친
나없으면 보리밥 한그릇을
누가차려 놓아주며
때절은 바지 저고리
대님 버선 누가 챙겨 빨래하며
수중에 궁글리는
내 넋은 누가 챙겨 위로하나
애고 서운지고
(눈물 훔치고 큰절올리면서)
불효여식 아버님전 면목없어
수중고혼되려 떠나오니
괴씸히 여기지 마시고
조석끼니 거르지 마시고
[봉필] (때맞추어 기석이 마음을 움직여 놓으면 제가 잡히지 싶어)
못가리라 못간다
[페이지] 044
너 가면 나죽어
(비통해서 소리한다)
네가 가면 절그렁 절컥
베짜는 소리 어디서 듣고
추야장 일편월에
다그닥 다그닥 다음이 소리
어디서 나고
날새도록 침재하는 모냥
어디서 본다는 말이냐
가지마라 가지를 마
(두 부녀 마주잡고 사뭇 비감하다)
[기석] (다급하다)
그런게 얼른 성사시켜 주시유?
딸자식 물에 안 빠져도 되고,
사경 안쳐내도 되고.
[봉필] 내년 봄에 보자.
[기석] 당장 사경을 쳐내던가, 성사시키던가
결단을 내야겠구만유.
[봉필] (불끈해서)
[페이지] 045
오냐 사경도 성사도 고만이다
어이 시원하다
[기석] 답답하구만
[봉필] 이 사람 갑자기 청맹이가 됐단 말이냐 어른이 말을 하거든 대답말고 들어!
(이장 옆구리를 쿡 찌른다)
[이장] 아이구! 그 당최, 당초 계약이 머슴을 살기로 계약서 작성이 된 것이 없으니 사경은
부당하고,
(점순에게)
몇년 생인가?
[점순] 경술년이라우!
[이장] (손가락마디로 헤아려보고)
생시가 언제여?
[점순] 시월 열 이례 미시라우.
[이장] 만 열여섯이 채 못됐네.
(다짐하듯이)
경술생이 맞는가?
[페이지] 046
[점순] 맞어유.
[이장] 미성년이여, 그러믄.
[점순] 예?
[이장] 성례는 불가하네.
나이가 차지 않은 어린처자하고 성례를 올렸다가는 징역살아, 요새 새로 법이 그래.
[기석] 그런 법이,
그러믄 성례하는 사람 모두 징역을 간다는 말씀이라우?
[이장] 요새 새로 미성년자 약취라는 법이 생겨 가지고서는 양부모간에 합의가 없는데 갖다가
성례를 올렸다가는,
미성년자 겁탈한 죄가 돼 갖고 징역산다 그렇게 돼 있어, 볼란가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쪽지 꺼내 펴 보인다. 글자 읽을 줄 모르는 기석이 몹시 당황한다.
이장이 크게 읽는다)
기성년자가, 이거 자네야
미성년자를 저 애, 점순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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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지로 또는 꾀어서 약취할 시에는
[기석] (다급하고 겁이난다)
그러면 점순이가 몇살나야 성사해도 징역 안가라우?
[이장] (쪽지를 가리키며)
기성년자는 만 18세를 하루라도 넘긴자를 지칭한다
(기석이 철퇴를 맞은듯 머리 싸쥐고 주저 앉는다. 놀래기는 봉필이가 더 놀랜다. 이장한테서
종이쪽지 건네받고 훑어보며)
[봉필] (희색 만면)
만 열여덟이상이면, 근게 열아홉이구만 허어 별일인로고
(공중에 쳐들고 비쳐 본다)
이거 군수가 이러고 정했나?
[이장] 군수? 나라법이여.
[봉필] 시상이!
(문득 기석이를 본다. 등을 두들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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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낙심받소, 세상 일 다 수가 있은게 무슨 궁리 없겠는가?
[이장] 딴 궁리없어 법은 따르는 게 상수여!
[봉필] 달리 방도가 없어?
[이장] 달리 갔다가는 징역이여!
[봉필] 달 벼락이구만,
내가 여식보다 자네를 더 아끼었더니 청천에 이게 뭔 난리여
(짐짓 이별가를 짓는다)
이별이라 이별이라
군신이별 부자이별
형제이별 붕우이별
다 내력이 있을거구먼 혼자 당하는 일 아닌게 너무 마음 상하지 마소
[기석] (떠날 밖에 도리없이 되었다 점순이를 두고 가는 비통한 마음 부탁조로 바꾸어 결연히
소리한다)
불초한 이자식은 떠나가거니와 어서 사람구해서 보막고 오줌주고 두엄쌓고 망굿놓고 망초뜯고
할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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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게 서둘르고, 아이고 어디 실감이 나야지 농담만 같아 갖고,
(침묵)
[빙모] (봉필이 눈치보며)
보게 이러구 마음 상하느니 미끄러진 김에 쉬어 간다고 여그서 그냥 지내세.
(사이)
[기석] 사년 오년 더 부려먹을라구 그런데유.
[빙모] 그러게, 그것도 인사가 아니고.
[봉필] (점순이 눈치 살피고)
그렇다고 몰래 성사 올리자니 후제 말이라도 나면 자네 귀양보내는 꼴 돼버리고 이러고
지랄맞을 데가 있는가.
(기석이 문득 점순의 안색을 살핀다. 사랑의 빛이 알륵거리는 모냥을 본다. 저 모습 곁에서
보며 살자 맨손을 씻고서.)
[기석] 나 안가겠시유
[봉필] (골리려는 소리로 들린다)
[페이지] 050
재담 놀 일이 아니네
[기석] 갈 맘이 없이유
[이장] 이 댁에서 4년 더 보내겠다는 말인가?
[기석] 맘 정했시유
[점순] (측은하다. 사년을 지내놓고 또 사년동안 자기만 바라보고 뼈빠지게 일하는 모냥을
매일같이 곁에 두고 보기란, 사랑보다 고역일 터이다. 마음 독하게 먹고 내뱉는다) 그만
고생했으면, 이제 훌훌털고 갈 일이지, 뭔 미련이 있다고 더 살어 가시유 나는 더 지낼 맘
없이유.
[기석] 법이 그렇다고 한게.
[점순] 법이 아니고 내 맘이라우 맘이 아께 변했시유
내 키도 더 자라지 않을 것이구 행실이 바르지도 않구
(밉게 소리한다)
행실을 듣초시오
밤이면 마을돌기
낮이면 잠자고
[페이지] 051
양식주고 떡사먹고
의복저당잡고 술사먹고
젊은 중보면 웃고
코큰 총각 술사주고
지금 행실이 이럴바에 더 두고 보고
기다리고 할거 하나 없수 가시유
[기석] (꾸며하는 짓거리이나 옳은 구석없지 않다. 오냐 사,오년 뒤에 돌아오마 눈이 번쩍
트인다. 산넘어 광산촌에 눈앞에 아른거린다. 점순이가 가라는 곳이 거기인 것이다)
알았네 가지
(양양한 앞길을 바라 볼 때에 아랫배에서부터 치미는 것이 있다. 지게 작대기, 공중돌리며
젊음과 사랑을 노래한다)
(볏단을 잡아당겨 훑는다)
- 막 -
[막] 제2막
봄 봄
[페이지] 059
[막] 제2막
당집 저녁
한쪽으로 둔덕이 있고 (세 네단의 층계로 오를 수 있는 높이) 걸맞지 않게 크게 을시년스런
당집이 보인다.
불에 시달린 이력도 있는 듯 한켠 용마루가 잔뜩 끄을렸고 뒤로 돌며 둘러쳐진 회벽도
두세군데 개구녕모냥 뚫렸다.
그렇기는 해도 뒷벽 제단 위에 내붙여진 신화, 두루미 끼듯 새끼줄에 줄줄 꿰어 내걸린
백색조화가, 마치 꽃상여같은 치장을 하고 있어, 조잡한데로 당집의 기세를 일궈주고 있다.
마당 한켠에 여럿이 둘러서서 밟는 커다란 풀무받침대가 놓여있고, 풀무끝에 7, 8척 떨어져
불씨를 받는 화로가 있다. 의례용들이다.
풀무제 - 음력 이월 보름, 전국 각처 영산의 도깨비들 도움을 받아 얻어진 불로, 그해 농사
짓는 새모습(농기구들)들을 구어내는데, 서로 풍농을 기원하고, 천기의 순탄, 마을의 안위를
비는 산골제이다.
마을 사람들이 너나없이 힘을 모아 같이 풀무질을
[페이지] 060
하여, 빨갛게 끓어오른 쇳물을 대지(흙으로 빚은 농기구의 틀)에 쏟아 붓는 생식적인
의식으로, 새해 농사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풍요, 새로운 정신을 얻으려는 산골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이다.
한켠에서 아낙들이 솥뚜껑 뒤집어 놓고, 지짐 부치고, 밤참 마련하고, 상 보면서, 그림자들
모냥 희끗희끗 움직인다.
아낙들 모인 자리가 그러하듯 두서없는 말들이 오간다.
보이지 않지만, 당집으로 드는 길목, 삼거리에서 길씻음하는 소리 - 풍물소리, 두런거리는
소리가 간간히 끼어든다.
[정선댁] 방앗간을 낸다는디유.
[빙모] 누가?
[정선댁] 성지가 금점을 크게 잡았다는구만유. 그 금점 판 돈으로 내보겠단게유.
[빙모] 성지가 누구여?
[대장간댁] 내가 들은 소리는 또 틀리네.
[빙모] 성지가 누구여?
[정선댁] 신틀메 감나무집 두째 있잖어라우.
[페이지] 061
[대장간댁] 그 왜 맨날 튀전판으로, 들병이나 밝히고 도는 망난이 있잖어유.
[빙모] 뭘 찔란가, 뭐 찔 것이 있어. 이 산중에.
[대장간댁] 내가 듣기로는 방아간 낸게 거기가 아니고 외삼촌이라드만.
[정선댁] 아니유, 금점을 찾기는 거기서 찾았는디. 빚쟁이들 몰려들까봐 돌려친 거래유. 앙이,
그집 내력은 어찌 그리 환한가.
[대화댁] 성지하고 뭐가 맞었지, 한때.
(아낙들 키득거린다)
[정선댁] (불끈해서)
뭐여?
[대화댁] 예전 일이구만.
[정선댁] 뭐가, 예전이여, 뭐가?
[대화댁] 다 아는 얘기 한마디 했구만, 그만 둬유.
[정선댁] 뭘 다 알어.
[빙모] 그만둬들.
[단양댁] 하이고, 여그저그서 들병이들 깨나 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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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 그집
[점순] 들병이가 뭐랫우
[빙모] 말어, 저리가러가 넌.
[대장간댁] 주막이 떠도는 여자들 있잖든가.
[단양댁] 방아는 돌겠다, 끼니 걱정 없고, 사람 잘 놀고, 잘 생겼고, 장차 거그 바쁘것네.
(아낙들 키득거린다)
[정선댁] 아이, <점순이 한테>
기석이는 통 소식이 없나?
[점순] <딴전 피운다>
기석이가 누구라우?
[정선댁] 무소식이다 그말인가?
[단양댁] 그 새서방이 있는디 갖다가 전이 떠난 사람 기별은 뭘 할러 뭇소, 묻는 쪽이
잘못이구만
[정선댁] 아, 둘이서 사이가, 금실이야 오죽 좋았가디.
[단양댁] 앗다, 애 심난한게 간 사람 얘기는 고만하시우
[페이지] 063
[대장간댁] 사위야 이번이 우리 일렬이 잘 두었지, 그만 사람 어디서 만나.
[단양댁] 사람은 참 순하데유.
[대화댁] 말 없구.
시상이, 지난 가을이 동네들어 와갖고 벌써 몇달이여, 누구하고 말하는걸 보들 못했네 여태.
[빙모] 지난장에 벼 두섬 지워냈구만, 넉배재를 쉬들않고 넘어.
[점순] 밥을 바가지로 비우는디,
그만도 못한다우.
[정선댁] 하이고, 신랑이라고 역성드는거 봐.
[점순] 언제 성례했다고 신랑, 신랑 그래쌓는디야.
[정선댁] 오매!
[대장간댁] <빙모에게>
올봅 보리 패거든 날 잡으시유.
[점순] 오년 뒤에 잡을틴게 남 걱정 말어유.
[정선댁] 할멈되서 시집갈래, 오년 뒤가 뭐여.
[대장간댁] 아이 실지유. 일렬이 오년이나 부려먹고 성례시켜줄 참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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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모] <역정을 낸다>
쓸데없는 소리 말어!
[대장간댁] 그런 소리도 들리더만.
[빙모] 그만둬.
(침묵, 일손들만 움직인다. 빙모가 당집에 제물상을 가져다 놓고 촛불을 켠다.봉필이가
나들이를 다녀오는지 두루마기 차림으로 정장을 하고 들어선다. 꽃같은 들병이가 뒤따라 숨듯이
들어선다. 동네 아이들의 시선을 받자 봉필이 크게 활개짓을 한다. 풍물소리 들리는 곳을 넘짓
넘겨보고)
[봉필] 저 사람들은 여직 저기서 저러고들 있는가.
[대장간댁] 대가 안내린다드만유!
[봉필] 평수가 안 왔는가?
[대장간댁] 저게 평수라우.
[봉필] 갈수록이 어째 션찮어.
저 사람.
[단양댁] 심신이, 뭐냐, 전만 못해라우
(들병이 노래를 풍물소리가 이어 잡는다. 평수가 대를 잡고, 불씨를 내는 할래비들이(도깨비의
모양으로 꾸몄다.) 타오르듯 붉은 색에, 흰 보로 머리, 앞면을 싸고, 숨구녕만 터놓았다. 검은
행전을 두르고 맨발이다. 팔뚝만한 대통을 들었는데, 뒤에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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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받는 씨불을 이 대통에 옮겨 살쿠도록 채 있다. 우선 3명이 독특한 몸짓으로 춤을
추는듯한 형세로 평수를 싸돌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선다. 풍물이 뒤따르고, 점순아, 필순이,
동네 사람들이 꾸역 꾸역 모습을 보인다. 당집에 오른 평수가 집사하는데 따라, 봉필이 첨화에
대고 제주 올리고 재배한다)
[평수] (경을 매우 빨리)
에처치 부인 적으시시
경상도 경주는 진부왕 제옥이요, 두번 제옥 잡으시니 전라도 전주는 공민왕 제옥이요. 세번
제옥 잡으시니 충청도 부여는 백제왕 도읍이라
(첫번, 두번 부르는데 따라, 할래비들이 길길 뛰면서 - 진부왕 제옥이요 - 공민왕 제옥이요
하며 후렴을 사처에 대고 외쳐댄다. 이 소리에 쫓아 화답이라도 하듯 본관 전주로 놀아계시오.
본관 부여로 놀아계시오. 소리 치면서, 각도의 할레비들이 사처에서 불쑥 불쑥 불덩이들 모냥
튀어든다. 뛰어 들고서는 서로 엉키고 일어서고 앉고 궁구르면서 마치 덤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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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불모냥 섬뜩 섬뜩, 너울너울 움직인다. 요괴스럽기도 하고 한편 무섭게 아름다운
형상이다)
(풍물소리 치솟는다. 소리 쫓아 들병과 할래비들 춤을 춘다. 허튼 춤 같지만, 매우 잘 안무된,
정갈맞은 춤판이다. 들병이, 할래비를 하나씩 번갈아가며 대무해준다. 한참 신명을 돋구는데
이장이 동네 사람들 눈치를 살펴 나선다)
[이장] (평수에게) 저, 잠간 얘기를 나눠야겠구만.
사람들 말이, 나도 같은 소견이네만, 오늘 보름을 맞아서 받는 불씨가, 이것이 올해 내등 이
마을 아궁이서 때질 불이 그게 아니냐 이거여.
[단양댁] 이 불씨 받을려고, 아궁이 불 다 껴쳤은게, 남겨논 집은 없구만유.
(모두 대장간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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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수] 올해 불씨를 처음 받아 보는가, 매년 하는 짓거리 내 몰라서 할까봐 일러주고 있는가,
지금.
[이장] 그것이
이 마을 사람 밥해 먹이고, 국 끓이고, 일년 내등 이 사람들 음식장만하는 온불인데 갖다가
올해는 불 받기가 좀 유별나다 이거여.
[대화댁] 유별난게 아니고 통 못마땅해라우. 어디서 불을 못 구해서 들병이 한테 얻는다우.
[이장] 정갈해야 될 불이 부정을 타면 나중에 탈이 날게 아니야. 그러구 걱정들인디 말이여.
[단양댁] 들병이 불은 나 안받아라우. 선동리 가서 불 취해 올 것인게.
[대화댁] 그 불 나도 좀 취해주시유.
[빙모] 내게도 취해주소.
[봉필] (버럭 소리친다)
뭐여, 뭐하는 짓이여. 마을이 쑥대밭이 되믄 좋겠는가. 그러구 빌어 볼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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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설 일을 두고 나서야지들.
(잠시)
그 염병할 금인지 먹인지 그놈의 바람이 이 동네 그냥 놔둘 거 같지가 않다 이 말이여. 저
산만 넘어 가보소. 금점 찾는다고 소 팔았다. 손바닥많나 채전하나 옳게 제것이라고 가지고 있는
사람 있는 줄 아는가. 다 날려버린디야 밤새 온 식구가 없어진 집이 한두 챈 줄 아는가. 젊은
사람 치고 일할만한 놈 하나 남아 있는 줄 아는가.
모진 바람 저 산 넘어 이 마을로 들이친단 말이여.
(침묵)
[평수] 올해가 윤달이 들어서 조짐이 좋지가 않어. 올해 불은 그런게 내화, 아궁이는
염려없고, 외화, 밖이서 짝을 맞추는 불이 그게 탈이네
(잠시)
[페이지] 077
들병이를 구해오란 것은 이 사람이 불막이 노릇을 해줄 거구만.
(침묵)
[들병] 불 막이라우?
[평수] 이 동네로 금점 바람이 들어 못오게 하는 게여.
[들병] 그러기 그걸 나같은 것이 어찌해라우.
[평수] 저그 동구에 삼거리 있잖은가. 거기서 석달 열흘간 지내주게. 동네서 움막지어 줄걸세.
[들병] 움막이 뭐유
[평수] 부모님 돌아가시면 묘 곁에 묘막 지어 놓구서 삼년 묘직이 하지 않던가. 그런 푼수여.
석달 열흘이면 백일이네. 백일간 임자가 거그서 지내주면 되네.
[들병] 싫어유. 싫어. 나 뭇해유. 이 치운날에 움막 지어놓고, 그 속에서 얼어 죽으라고. 나
못해라우. 나는 그런 거 몰라유. 장바닥에 술병이나 들고 다니는 여자라우. 나는 돌아갈라우.
[페이지] 078
[봉필] 나좀 보드라고.
[들병] 나 보내지라우.
[봉필] 말이 움막이지, 이 사람아.
[들병] 움막 아니고 기와집이라도 그러지, 혼자서 거그 못살아라우, 나/
[봉필] 나좀 보드라고.
(봉필이 들병이를 당집 한켠으로 데리고 간다. 그동안 평수하고 의논끝에 이장이 나선다)
[이장] 그런데 전이 동구에 액막이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깎어 세워둔 것모냥 무슨 수를
써야 된다는 것이여. 그런게 초가 삼간이야 장정 몇이 며칠 돌아 가면서 품을 내면 설 것이고,
양석이 문제구만 마침 봉필이 어른이 반은 맡기로 했은게 우리가 한집이서 보리나 콩이나 두되,
석되 내면, 어려운 일도 아니네. 이게
(두되 두되란 말에 안도하면서도 들병이의 효혐에는 의구심이 없지 않은 기색들이다)
[페이지] 079
[단양댁] 보리쌀 한줌 저 여자 먹이는 거 그거사 동냥 삼아 내놓겠구만. 그거 그걸루다가
효혐이 있다우, 들병이가 남정네들하고 술이나 하던 여잔디 갖다가
[이장] 그래서 저여자가 좋다는거여.
[대장간댁] 술맥여서 재운단 말인갑다.
[이장] 백일동안 남정네 발걸음 일절 금지여.
[대화댁] 누가 밤새 지키고 섰는다우.
[단양댁] 내가 지켜볼 거로구만.
[대장간댁] 솥구경 못해서 밤새나.
(웃음소리, 당집 곁에 쭈그리고 앉아 봉필이하고 귓속말을 주고 받은 들병이 헤실거리며
나선다)
[이장] 진정이 됐는가.
[들병] 불이고 바람이고 나같은 것이 그런 걸 어찌 막는다우. 그저 타관 사람이면 된다고 한게
소리 하나 빗간 소리 할줄을 아니 노래 벗삼아 한철 지내볼까 해라우.
(객주가로 떠돌며 소리다)
[들병] 아주까리 피마지 열지를 마라 촌놈의 가시나 놀아들 난다.
(할래비들이 뒤를 밀어준다)
[할래비들] 어허, 친구 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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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병] 낙동강 칠백리 공굴을 놓구서 하이카라 잡놈이 손질할다.
[할래비들] 어허, 친구 내하고.
[들병] 아리랑 고개다. 정거장 짓고 전기차 오기만 기다린다.
[할래비] 어허, 친구 내하고.
[들병] 불국사 연실봉 신작로 되고 자동차 타고서 님 찾아가자.
[할래비] 어허, 친구 내하고.
[들병] 엽서 한장에 일전 오린데 정든님 소식이 무소식이란말가.
[할래비] 어허, 친구 내하고.
[들병] 네 잘났나, 내 잘났나, 뉘 잘났나, 꾸리백통 은전지화 제 잘났지.
[할래비] 어허, 친구 내하고.
[들병] 시집살이 못살믄 친정 가 살지
술담배 끊고는 내 못살래
[할래비] 어허, 친구 내할라.
(풍물, 할래비들과 들병이 어우러져 춤을 추며 한참 신명을 돋구는데 난데없이 기석이가
자전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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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들어와서 맴을 돌며 판을 깬다.
기석이, 제법 윗저고리는 양복을 꿰었고, 목에 명주수건 목도리모냥 둘렀고, 검정 운동화도
얻어 꿰었다. 바로 들병이 노래 속의 어설픈 잡놈이 되어갖고 나타난 것이다.
금점에서 돈 줄이나 만졌나보다. 봉필이네 줄려고 명태 한두름 점순이 줄려고 아래 위 한벌
비단 떠 자전거 뒷판에 싣고 온 것이다.
사람들의 탄성가운데 자전거 받쳐놓고 휘둘러보고 봉필이 앞으로 나서더니, 그 자리에 풀썩
몸을 꺽어 큰절 올린다)
[기석] (외운티가 나게)
불초 하직하고 기체후 만강하십니까?
(자전거 뒷자리에서 명태 두루미 옷감 뭉치를 끌러 빙모한테 건넨다)
[기석] 불초 하직하고 만강하지라우.
[빙모] 코다리(명태)가 아닌가. 한마디로 과하구만. 너무 과혀, 나눠줘들
[기석] 과소하구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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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기보다 번듯해뵈는 기석이 모습을 훑어보면서 봉필이는 내심 혀를 찬다.
금점이란 과연 사람의 성도 바꿔 놓는 괴력을 지녔는가 보았다. 하수한테 크게 당한 것도
같고, 터무니없이 샘도 나고, 저항할 수 없는 커다란 바람을 마주하고, 밀리는 듯한 무력감에
부아도 나고 그래서 봉필이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역정섞인 소리가 되어버렸다)
[봉필] 말어.
[기석] 과소하구 만유. 유치하구만유.
[봉필] 도루 가져 가게.
[기석] 진노하시유.
[봉필] 가져 가.
(잠시)
(봉필이가 달겨들어 빙모 손에 들려있던 명태 두름뺏어 던지고, 비단 뭉치는 포장을 뜯어 공중
날린다. 점순이 옷한벌 맞춰온듯, 쪽빛과 진자주빛 비단이 황홀하게 퍼지며 날린다.
어른답지 않은 봉필이 행패에 모두 숨죽인다.
그런데 기석이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환히 웃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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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비단을 줏어 들고 비단타령을 한다)
[봉필] (일렬이 잡아 점순에게 밀치며 소리친다) 니 각시여, 집으로 데려 가, 가둬,
남새스럽다. 떼매다 광에 가둬.
(일렬이 점순이를 들쳐 업는다. 기석이 소리친다)
[기석] 거기 놔둬. 그 사람은 놔둬.
(달려다는 기석이를 할래비들이 눌러 잡는다)
[일렬] 두들겨 패게.
[기석] 가면 안돼.
[봉필] 어서 가. 이 미련한 것아.
[점순] (업혀가서는 광에 갇힐지도 모른다. 꾀를 피운다. 업힌채)
어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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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짓 멀리보는 시늉하고)
창파만경 가이 없어.
저게 모두 물이라우?
[일렬] 물이 어딧다고.
[점순] 깊기는 얼마나 된다우. 나 저기 데려갈라거든 여기 내려주시유. 쑥잎 뜯어 콧구멍
귀구녕 막아야 가지.
(버둥거린다) 내려, 나 내려줘유.
[빙모] 저것이 아주 실성을 했버렸네.
저 정상이 웬 일인가.
(구르듯 달겨들어 점순이를 끌어 잡고)
내려 놓거라.
이 사람아, 사람이 이모냥이 됐는디 그냥 그러구 섰어.
[점순] 엄니, 쑥좀 뜯어 줄라우. 쑥으로 막아야지. 아니면 나 죽는다.
(끌려내리자 짐짓 뻗뻗해져 의식을 잃은 듯 눈 감는다. 영낙 숨넘긴 거동이다)
[빙모] 얘까 왜 이려. 야이. 정신 채리거라. 점순아. 에고 에고. 무심하네. 요 방금 멀쩡하던
애를 이 모냥을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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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렬이의 도움을 받아 점순이를 당 집으로 옮겨 눕힌다)
아가, 여그 반듯이 눕거라 잉. 거그 애 목축이게 술 한대접 가져 올란가.
[일렬] 여기 있이유.
[평수] 세상살이 다 허망한데 황금인들 무슨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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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에 닿겠느냐, 이거여.
[봉필] 그래서.
[기석] 하도 고마워서 눈물로 하직하고 발밑을 내려다본게.
(침묵)
[봉필] 그래서 어쨌어?
[대장간댁] 아이구 헷가리는구만.
(잠시)
[기석] 쥔한테 찾아갔구만유.
[대장간댁] 쥔이라니?
[기석] 밭임자 찾아서 자초지종을 털어놨구만유.
[대장간댁] 그 좋은 꿈을 남한테 뭘하러 털어놔, 아깝게.
[기석] 남이 아니유, 밭 임자가 그쪽인디.
[대장간댁] 근게 자네 그 헛소리 듣고서 멀쩡한 밭 갖다가, 파뒤집어라 그러고 나오겠는가
말이여.
[봉필] 소견머리하고는, 뒤엎었은게 호박이 굴렀지, 가만 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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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기석] 금이란게 그거 참 별거 아니데유, 그냥 흙이라우. 황금이니 번쩍번쩍하는 것인줄만
알았구만, 그냥 찰흙인디, 곱색줄이라고, 그걸 갖다가 채에 담거갖고 물에 헹구니까
싸래기만한게 누런게.
(움찔, 겁에 질리는 기색이다)
이상 더 발설 않기로 돼 있구만유.
(침묵)
(도무지 뜬 얘기인데, 그 뜬 얘기의 실체가, 걸친 양복저고리, 비단, 코다리, 자전거로 눈앞에
버젓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목화밭이라, 봉필이는 여수뱀의 콩밭을 눈앞에 그리면서 입을 연다)
[봉필] 그리 찰흙이, 그게 뭐라고?
[대장간댁] 곱색줄이라고 안해유, 여태 뭐 들었디야.
[봉필] 그 찰흙을 갖다 처음으로 알아본게 자네구만, 근게.
[대장간댁] 신선이 가르쳐주더라고 안해유. 꿈에.
[봉필] 그거 지나가다 보면 알아보겠네. 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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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디서두.
(기석이 눈빛이 달라진다. 당집에 누어있는 점순이 쪽을 힐끗 본다.
내심 자전거를 몰고 들이닥친 까닭이 그런거였다. 봉필이 여수뱀에 콩밭이 있다. 거기를
뒤엎어보라고 얼르면 봉필이가 필경은 대어들 것이다.
그러면 어영부영 점순이 가치히 지낼 수 있고, 때를 보아 점순이 데리고 야반도주하리라.
그런데 봉필이가 예정대로 대어든 것이다. 기석이는 짐짓 딴청을 한다)
[기석] 금줄이 아무데나 널려 있는 것이 아니유, 그게.
[봉필] 그러게 그러겠지, 해도 그 찰흙은 알아볼거 아닌가, 내말은 그거여.
(기석이 알듯 모르듯 고개를 젓는다. 침묵. 평수가 나선다)
[평수] 금줄이 여기두 있네.
(모두, 말없이 탄성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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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수] 저그 천방산 왼쪽 쭉지 넘배재를 타고 금줄이 한가닥 넘어왔어, 지맥을 본게.
[봉필] 아이. 실지로 넘어 왔어?
[평수] (기석이를 보며)
이 사람이 여그 찾아온게 그래서 온 것이여.
[봉필] 맞나.
(기석이 평수의 속마음을 헤아려 본다. 평수가 지관으로도 영험하니, 사람이 그러한지도
모른다.
어쨌든 점순이를 취하자면 밭으로 파 뒤집도록 유도해야만 한다. 그래서 기석이는 잔뜩
경계하는 거동 끝에 끄덕여준다)
[봉필] 그 금줄이 어디루 뻗쳤나.
(기석이 휘둘러 본다. 밭 임자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하다. 반명 기호네 머슴 패거리들은
시샘으로 잔뜩 부아가 나 있다.
기석이는 기호네 패거리가 마음에 걸린다.자기 한마디로 생고생을 할 사람들은 바로 그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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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필] (기석이는 꿈적 않자 평수에게 다그친다)
어딘가?
[평수] 그거는,
(눈을 감고 손마디 짚어가며 한참 헤아리는 듯하더니 눈을 뜨고 기석이를 본다)
(침묵)
[기호] (부아가 났다)
아니 타관여자 데려다 불막이 바람 막이 액막이 해쌓더니, 난데없이 바람이 어디로 부는
거라우, 지금 여기서는 땅 파뒤짚는 짓 말자. 삼거리다 바람막이 집을 짓자 면서.
[용구] (기석이 가리키며)
저놈의 자식, 그만 다시 못오게 다리 분질러 내쫓읍시다. 그만.
[성재] 자초지종을 들어 보드라고.
[용구] 그래서 논 밭 다 뒤집어 엎을래.
[성재] 뒤짚으나마나 자네 논인가.
[용구] 누가 뒤짚냐, 뒤짚는게 누구여.
[기호] (기석이 곁에 위협하듯 쭈구리고 앉으며 툭 건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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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불거릴 거 없네. 금점있는 데로 도루 가더라고
[상투] 말어, 저 살던거 찾어왔구만, 그러믄 못써.
(잠시)
[평수] 거기가 어딘가?
[기석] (봉필이를 본다. 고개를 젓는다)
[기호] 나는 아네.
[상투] 앗다. 나서기는.
[대장간댁] 어디여?
[기호] 여수뱀이 콩밭이, 거기 흙이 차지지라우
(기석에게) 안그런가.
(기석이 낯빛이 바뀐다)
[대장간댁] 맞나.
(기석이 완강히 고개 젓는다)
[기호] 뭐가 아녀, 뻔하구만.
[봉필] 나중에 해야겠으면 나중에 하게나.
[기호] 아니거든 내 손에 장을 지지네.
[상투] 콩밭이서 금을 딴다는 말이냐, 그럼.
[기호] 목화밭이서두 따는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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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수] (넌짓 봉필이, 기석이 들으라고)
멀쩡한 밭을 갖다가 파 뒤집고 곡식을 안내면 그게 곡식갖다 버리는 거나 매한가지로
징역살데,
그러니 신중히 살펴서 혀.
[봉필] (펄쩍 뛴다)
택두 없는 소리.
누가 멀쩡한 콩밭 갖다 뒤엎는단가 천벌을 받을라구 택두없는 소리 말어.
[평수] 그럼 염려없지.
(썩 나선다)
불 받으러 가더라고 그럼.
(풍물이 차고 나선다. 할래비를, 물만난 피라미들 모냥 펄떡 펄떡 궁그르고 뒹굴면서 문득
대열을 지어 웅아한 몸짓으로 춤춘다. 할래비 하나가 대통을 들병이 손에 쥐어 준다)
(할래비들에게 쌓여서 같은 짓거리 하고 있으려니 딱이 남경 뱃군에게 끌려가는 심청의 신세
영낙없다 울울한 심사 풀고 겁도 치울 겸 소리한다.
당집의 정화를 보며 큰절하고 가긍한 신세 한탄한다)
남경장사 선인에게 인당수 제수로 이몸을 팔았더니 행선이 오늘이라.
선인들이 왔아오니 함께 따라 갈테오니.
불초한 이자식은 조금도 생각말고 어서 수히 눈을 떠서 여생 복락 누리소서.
[평수] (재치있게 신명조로 하고 나선다. 신선하며 장중하다)
불매불엉 담배나 먹자. 요만하면 할만도 하다.
[할래비] 아아 에에에용
[평수] 춘색이 돋는구나
튼눈으로 날을 새자.
이놀래여 산을 넘자.
[할래비들] 아아 에에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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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수] 낮에는 낭고지고
밤에는 요일일러라
어하고도 상사데야
[할레비들] 아아 에에에용
(할레비들이 풀무를 밟는 거동을 바탕으로 해서 안무된 춤을 춘다. 단조로운 듯하나 전문적인
기교로 해서 감동을 이끌어낸다)
[평수] (독무를 춘다. 처연하리만큼 다듬어진 몸짓이다)
불매불엉 담배나 먹게
요불매는 된 불이여
자배남에 유년목을
[할레비들] 벌러질까 염려말고
부서질까 걱정마소
[평수] 하루 한끼에 다지치느냐
지치겔랑은 하지덜마라
진진밤으로 새울지라도
명심하여 디뎌보자
[할레비들] 어허엉 상사데야
아아 에에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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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수] 강남닭은 목소리 좋아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들병] 꼬끼요이 울어오면
[할래비들] 멀리 새벽 터온다.
[평수] (보습을 벼르는 시늉하며)
요놈의 돈 아까운 돈이여
아깝고도 원수일러라
[할래비들] (도리깨질 하듯)
두돈 오푼 빌을량하면
두 어깨가 다빠질로고나
어허엉 상사데야
아아 에에에용
[평수] (나갈 채비로)
직대장 저걸음보소.
[할래비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거동으로 나아가며)
물에 빠진 달기로구나
[평수] 오싯대장 저걸음보소.
[할래비들] 백사장에 진자래 걸음
(할래비중 하나가 자래걸음으로 나아간다)
[평수] 청방천 내리는 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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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 녹는 냇물이요
[할래비들] 내몸으로 내리는 물은
오장 녹이는 물일러라
[평수] 얼시구 절시구 상사데야
[모두] 어어어헝 상사데야
[평수] (들병이 앞세우고 당집 뒤로 나간다) 잘도 잘도 넘어나간다.
[모두] 얼시구 절시구 상사데야
어어어헝 상사데야
(봉필이 - 이장 - 풍물, 동네 사람들이 뒤를 쫓아 나간다.
불매노래가 이어져 들린다. 기석이 흩어진 명태, 비단을 주섬주섬 챙긴다.
당집에 빙모, 점순이, 일렬이 남겨진 모습.
점순이 벌떡 몸을 세운다)
[점순] 나 봐유.
[기석] 잉, 괸괸찮은가
[점순] 와유
(기석이 명태며 비단을 빙모앞에 밀어 놓고 걸터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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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순] 아니유, 앉지말고 어서 내빼시유.
[기석] 내빼다니.
[점순] 다 알어유.
[기석] 뭘 알어.
[점순] (일렬이에게로 옮겨 앉으며)
나는 여기하고 정혼이 됐은게 단념하고 가시유.
(사이)
[빙모] 자네 그러구 가고 난게 누가 농사 질 사람이 있어야지.
[점순] 뭘하고 섯데유, 꾸물거리다가 잡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징역살라우.
[기석] 누가 징역 살라고 왔는가.
듣기 싫구만 징역 징역 그러는가.
[점순] 그런 남 멀쩡한 콩밭 뒤집어 놓구서 성할 줄 아시유.
어서 가유 근게.
[기석] 누가 아는가, 파 봐야 알지.
[점순] 파보나 마나 콩밭에서 콩나지 여태 농사짓고서 모르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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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석] (비단을 들어 뵈며)
농사가 이것 준 줄 아는가.
[점순] (불끈해서)
울 아버지 미운게 화 입으라고 행패 부리러 왔지유.
[기석] (흠칫 머뭇거린다)
뭔 소리를 그렇게 하나.
[점순] 삼년 살은거 사경쳐 받으려거든 말로 하시유, 어먼 콩밭 망치고 징역 살고 하이고,
손해는 누가 보나.
[기석] 그 애맨 소리 작작하소.
[점순] (울듯 소리 친다)
징역사는 꼴 나 못보겠단게유.
아버지는 또 날 패실거구, 거기서는 징역 살러가고,
(일렬이를 보고)
나보고 어쩌란 말이라우, 내가 어쪄
(사이)
[빙모] 콩 밭이서 콩난다는 이애 말이 옳게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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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석] 옳지유.
[빙모] 사경쳐 받으려고 왔는가,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볼틴게 이애 말마따나 자네가 이
자리를 피하게.
[기석] 사경이 아니라우.
[빙모] 아니면.
[기석] (당집 마루를 주먹 쥐어 내리 찍는다.) 나 성례할라우, 점순이 하고 성례해야겠수
성례할려고 삼년을 살았지 누가 콩밭이나 뒤엎자고 성례시켜 달랬더니 징역 간다구 내쫓구, 이거
세상 이런 경우가 어딧다우.
(모녀간에 일렬이 존재가 느껴져서 숨을 죽인다)
[일렬] 그렇거든 데리고 내뺨지.
[빙모] (사이)
이 사람아.
[일렬] (불끈해서 소리친다)
경우야, 입이 열개라도 저사람 경우가 옳구만이유.
[빙모] 이 사람아.
[일렬] 뭘 쳐다보고 섯디야, 지 사람 지가 찾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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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것인게 잘못된거 없구만.
(점순이를 일켜 잡아 마당으로 밀친다)
어서 가소, 어이 가.
[점순] 아니여, 이러믄 징역 살어라우.
[일렬] 여기서 콩밭 결단 내도 징역 살기는 마찬가지네.
그런게 멀리 기별 닿지 않게 내빼.
[빙모] 자네는 어쩌는가 그럼, 재가 가면 자네도 내뺄라고 이러는가.
[일렬] 나 줄 딸도 있소.
[빙모] 필순이 밖에 더 있는가.
[점순] 그애는 너무 어려라우, 이제 열둘인디.
[빙모] 너두 열둘에 그 사람 만났어, 그전이 살던 그게 누구냐, 이제 이름도 잊어번졌네
거기는 니가 열살때 만나고.
(이때 멀리서 <불 붙었다>하는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 떠들석 하고 풍물소리가 뒤를 잇는다.
일렬이 당집 뒷쪽 언덕에서 멀리 본다)
[일렬] 얼른 가들, 오느만,
[점순] (일렬이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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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데로 갈 것이오? 가믄 나 안갈라우, 나 여기서 둘이 살고 싶은디.
[일렬] 내가 필순이 바라보고 살틴게 걱정마소.
[점순] (믿기지 않는다. 다짐한다)
일년만 살아 줘라우, 내가 꼭 올틴게, 돌아와유.
[일렬] 어이 가게.
(기석이 자전거 잡아 세운다. 일렬이 등을 밀어대는 바람에 점순이는 자전거 뒷판에 올라
앉는다.
기석이 자전거 끌고 마당을 건너 지른다.
빙모가 상여 쥐잡고 따르듯 치마 깃으로 눈물 훔치며 타이른다)
[빙모] 아가 아가 잘자거라.
전생 인연으로 배필되었으니 백년고락이 이 사람에 매었니라 죽기까지 대접하여 노인까지
공경해라.
앞을 보아 걸음 걷고, 함부로 말대답 말어 인정이 끊어지면 남만도 못하니라,
버린정이 다시 들며 엎친 물을 담을소냐.
부대부대 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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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렬] 상여가 나가나, 이러믄 안좋아유.
[점순] 나 가기 싫은디, 갖다가,
[일렬] 싫기는 매한가지네.
(자전거 미끄러져 나간다. 빙모는 그자리에 무너지듯 앉아 훌적거린다)
[빙모] 에고 에고, 불쌍한 거, 옷 한벌 못해 입혀 보내고 이부자리도 없이 한디서 어찌
지낸디야.
(문득 놀랜다)
내 정신좀 봐,
야이, 거기 좀 섯거라 잉, 야이.
(일어서 자전거 나간 쪽으로 쫓아 나간다)
[일렬] 어딜 쫓아간데유, 맘편케 가게 그냥 놔둬라우.
[빙모] 아니여, 솥 하나는 빼줘야겠네, 잠은 한디서 자도 끼니 걸르면 죽어, 쟈들.
(뛰뚱거리며 나간다)
[일렬] (뒤에 대고 소리친다)
솥 뽑아줘 보내놓고 내밥은 뭘로 지을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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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모] (소리만 들린다)
대야에 지어.
[일렬] 뭐라우, 어쩌요.
아이구, 어지러워 어지러울 줄 알면서 소리는 왜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