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윤성길,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러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가 438장의 ‘내 영혼이 은총 입어’라는 찬송 1절 2절 3절 그 노랫말 전문이 그렇다.
죄 짐 벗어 가벼워진 영혼의 노래다.
철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 따라 그냥 불렀지만, 일흔 나이를 넘어선 지금에는, 그 찬송가를 듣거나 부를라치면, 왠지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두 눈을 적시고는 한다.
내 지은 죄가 너무 커서, 사함 받기 어렵겠다 싶어서 그런 것 아닌가싶다.
2019년 3월 8일 금요일인 오늘도 내 문득 그 찬송가를 떠올리면, 눈시울이 뜨거워져야 했다.
“오늘 영강회가 있는데, 오는 거야, 안 오는 거야?”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김용균 친구가 이른 아침에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 그렇게 묻고 있었다.
‘영강회’라면 우리 문경 출신의 고향사람들이 골프로 어울리는 모임이다.
바로 오늘 서울 근교의 명문 골프장인 뉴서울cc에서 그 모임이 주관하는 회원들 친선 골프라운딩이 있다고 하면서, 그 행사에 내가 참여할 수 있는지 여부를 그렇게 확인하고 있었다.
“나도 가고 싶기는 한데, 법무사 일 때문에, 갈 수가 없게 됐어. 다음 기회를 볼 수밖에 없네.”
내 그렇게 함께 하지 못하는 형편을 설명했다.
우리들 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모처럼의 전화통화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좀 더 주고받았다.
이 친구 저 친구 해서, 친구들 안부도 주거니 받거니 했고, 법무사로서의 사업은 어떻게 되는지 그 경기에 대해서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가을에 작고하신 우리 문경중학교 4회 동문이신 윤성길 대선배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게 됐다.
윤 선배님이 ‘영강회’ 발족에 큰 역할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세상 뜨시기 하루 전에, 고성욱 친구하고 둘이서 병상의 그 선배님을 찾아뵈었었어. 하모니카를 불어드렸었지. 잘 들었다면서 손을 꼭 잡아주시더라고. 그런데 지그시 감은 둔 눈에 눈물이 맺히는 걸 봤지. 나도 따라 울었었어. 그랬는데, 그 다음날로 세상을 뜨시고 만 거야. 그런 사연이 있었으니, 문득 문득 그 선배님 생각이 나곤 해. 그런데 오늘이 영강회 모이는 날이 되다보니, 더 그 선배님 생각이 간절하구마는 그래.”
김용균 친구의 회상이 그랬다.
그때 불어드린 연주곡이 세 곡이라고 했다.
처음 연주한 곡은 그 선배님의 애창곡인 ‘고향의 봄’이라고 했고, 뒤를 이어 연주한 두 곡은 찬송가라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선배님을 위해서 그렇게 찬송가를 연주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먼저 연주한 곡은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라는 찬송으로, 김용균 친구가 늘 마음에 담고 있던 곡이었다고 했고, 이어서 연주한 곡이 바로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라는 찬송이었는데, 그 곡은 그 선배님이 특별히 듣고 싶다고 원해서 연주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김용균 친구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 선배님의 그 죄 짐 벗어내는 그 순간이, 내 가슴에 뜨겁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전화를 계속하다가는 아무래도 흐느끼고 말 것 같아서, 그 즈음에서 적절한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고 말았다.
내가 그 선배님의 부고를 받은 것은 다섯 달 전인 2018년 10월 10일 수요일의 일이었다.
재경문경시향우회 강성주 회장이 문자메시지로 보내온 부고였는데, 그 내용이 이랬다.
재경문경시향우회 윤성길 명예회장께서 오늘 소천하셨습니다. 일시:10일(수) 09시. 발인:12일(금) 06시. 빈소: 서울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3층 특실. 장지: 고향 선영. 연락처 : 윤정대 010-8708-8900//
미어지는 심정으로 그 조문의 글을 띄워 보냈었다.
다음은 그 글이다.
정말 애석하게도 우리 고향땅 문경의 거목으로서 그 소임을 다하셨던 윤성길 선배님의 부고를 받습니다. 내게 남다른 애정을 주셨고, 삶의 의지를 북돋워주셨던 선배님이셨습니다. 어디서나 ‘문경인이여 영원하라!’라고 외치셨던 선배님으로부터 나도 고향사랑을 배웠습니다. 우리가곡 ‘나의 살던 고향은’을 손수 피아노 반주하시면서 두 눈을 촉촉이 적시던 참으로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선배님이셨습니다. 딱 한 해 전 이맘때로 거슬러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갈 때쯤에 아내와 함께 우리 고향땅 마원에 터 잡아놓으신 선배님 집을 들렀을 때, 그렇게도 반겨주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삼가 조의를 표하며, 이 작은 글 하나 남깁니다. 선배님 고이 가셔서 마원 그 집처럼 터 잘 닦아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