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드로의 명령대로 행하려면 은혜를 받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 더욱 힘써야 한다.
(2) 6절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2) 우리는 더욱 힘써 절제에 인내를 더해야 한다!
저는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벧후 1:6)을 읽을 때마다 이런 의문이 들곤 했습니다.
'절제나 인내나 비슷한 말 같은데 왜 두 가지가 다 나오지? 왜 우리가 절제할 뿐 아니라 인내해야만 하지?'
이번에 주석들을 읽어보니, 마이클 벤트리도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연구한 후, 둘의 차이를 명쾌하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내란 말은 '절제 다음에 나오는데,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차이가 있는 어휘들입니다. 절제는 주로 인생의 열락들을 자제한다는 뜻이고, 인내는 인생살이의 압력들을 참는다는 의미입니다."
또, 더글라스 무는 인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죄악 된 쾌락의 유혹 만큼이나 지속적인 것은 온갖 종류의 고뇌가 가져오는 슬픔이다. ...
인내는 '아래에서 견뎌낼' 능력이다(헬라어 용어는, '휘포모네'로서, '아리'와 '유지하다'라는 두 개의 헬라어 용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약성경은 이 용어를 시험의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믿음을 견고하게 유지할 능력을 묘사하는 가운데 자주 사용한다(롬 5:3-4; 고후 1:6; 6:4; 살후 1:4; 약 1:3-4; 5:11: 벧전 1:6을 보라)."
또한, 진 그린은 인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내'는 KJV가 번역하는 것처럼 '참을성'(patience)이 아니고 '어려움에 직면해서 지속하는 혹은 견디는' 능력이다(BDAG 1039). 고난이나 시험에 직면해서 '인내'를 가진 사람은 확고부동하고 끈기 있게 버티는 능력을 보여준다(눅 21:19; 롬 5:3-5; 고후 1:6; 6:4; 골 1:11; 살후 1:4; 딤전 6:11; 딛 2:2; 히 12:1; 약 1:3-4; 계 2:2-3). 유대사상에서 이 덕은 박해받은 사람들이 순교에 직면했을 때 보인 특징이었다(마카베오4서 1:11; 9:30; 17:4, 23; 요셉의 유언 10:1; MM 659)."
여러분, 이제 절제와 인내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이시지요!
우리가 성경적인 지식을 통해 도전을 받고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할 때, 절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절제할 뿐 아니라 인내해야 합니다. 로이드 존즈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투쟁 속에 있는 문제는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외부에도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타인으로 인해 그리고 다른 일들에 의해 생겨나는 위험이 있습니다. 참으로 오래 참고 견디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 말에도 나타나 있듯이, 우리에게 절제뿐 아니라 인내가 필요한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이 세상에 살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시험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세상을 살다보면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 가지 시험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인내입니다! 왜냐하면 인내해야 시험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시험을 만났을 때 욥을 본받고 욥처럼 인내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둘째로,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한 이유는 세상에 살면서 만날 수도 있는 핍박 때문입니다.
아마도 여러분 중에 시험과 달리 박해는 우리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지척에 있는 북한이 세계 최고의 기독교 박해국입니다. 또, 우리는 북한과 대치 중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핵무장을 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초밀착을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트럼프의 언행이 보여주듯이 미국은 전처럼 믿을 만하지 못하고 여러 이유로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또, 편파적인 이유로 종교법인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재산을 국고로 환수시키려는 법을 제정하려고 한다는 말까지 들려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제 말은, 박해가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4-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신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또한, 예수님과 바울과 요한이 예언한 적그리스도에 의한 세계적인 대환난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 언제라도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박해가 우리와 무관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모두 혹시 있을 수도 있는 환난과 핍박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우리 모두 인내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험과 마찬가지로 박해도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우리는 시험을 만났을 때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나 박해를 만나면 더욱 인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인내에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마서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를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여기서 '소망'은 의의 소망과 복된 소망입니다. 궁극적인 구원에 대한 소망입니다. 인내해야 궁극적인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또, 성경에는 이 사실을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너무 많기 때문에, 그중 몇 개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히브리서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요한계시록 13: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마지막 구절은 지옥에 던져질 사람들의 리스트입니다. 그런데 "두려워하는 자들"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바로 박해 때 인내하지 못하고 믿음을 배반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끔찍한 주제이긴 합니다만, 순교의 형태 중 가장 끔찍한 것은 폴리갑과 존 후스와 잔 다르크처럼 화형을 당하는 것입니다.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너무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피하기 위해 배교하면 어떻게 될까요?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잠시 고통을 당하다가 죽는 것은 피할 수 있겠지만, 그 대신 계시록 21장 8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영원히 죽을 수 없는 상태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져, 쉼 없이 그리고 끝없이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2:4-5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 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한마디로, 박해 때 우리는 잠시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것과 영원히 더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것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니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지요! 그러므로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박해자보다 하나님을, 순교보다 영원한 지옥불을 더 두려워하는 자가 되십시오. 즉, 영원한 고통에 대한 큰 두려움으로 순간의 고통에 대한 작은 두려움을 이기는 자가 되십시오. 반드시 환난 당할 때 인내하십시오. 그리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