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네팔 참사에 할 말을 잃고… 기도합니다.
여름 가기 전에 얼른 핀 부추꽃,
하얀 별들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나비~
전에 달력에 실렸던 컷(장면),
서로 오래 좋아하나 봅니다.
‘사랑받는-무’(Loved-Nothing)
이번 주에 마주한 단어입니다.
젊은 시절, 침묵 가운데 껴안은 새로운 정체성이 ‘사랑받는-무(無)’!
<영성과 도덕적 삶>이라는 짧은 글에서, 제임스 키팅은 말합니다.
그 뜻인즉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즉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존재로 불렀고 유지시키고 있다!”
이는 우리 존재에 대한 유일한 만족할 만한 이유~
“우리는 존재로 축복받은,
그러나 항상 잠재적으로 비존재인 사랑받는-무였다.
얼마나 보잘것없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인간의 정의는 하이폰(-) 안에 사는 것!
삶은 자만(나는 대단해!)과 절망(나는 신이 아니야!) 사이의 창조적 긴장이다.
비법은 하이폰으로 사는 것,
겸손과 감사로 사는 것”
이러한 통찰로부터 선하고자 하는 갈망이 나온답니다.
사랑하는 힘은 사랑이신 하나님 경험에 의존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자기-증여(self-gift)!
표현이 독특해서 그렇지, 교회의 전통적 인간 이해와 겹칩니다.
노리치의 줄리안도
“나는 사랑하기 위하여 너를 창조하였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합니다.
인간이 ‘사랑받는-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죄,
자만하거나 절망하거나~
제랄드 메이는 <의지와 영> 8장에서 죄를
‘한 개인이 진리, 원인, 우주의 작용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독립적인고 분리된 개체가 되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분리라는 착각!
어거스틴은 원죄란,
‘아담 이후 모든 세대를 통해 전해 내려온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는 모두 원죄를 이어받았다’고 했지요.
“나의 동기가 집착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면, 그곳은 어디인가?”
알지 못함, 무지!
“하나님의 신비와 뜻을 감히 알려고 하는 것은
선과 악의 분별을 포함하기에,
에덴동산에서 자기 멋대로 의지(wilfulness)를 부렸던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신은 '사랑받는-무'인 우리가 신처럼 사랑하길 원하지만,
우리는 제멋대로 신을 꿈꿉니다.
집착을 내려놓고, 기꺼이(willingness),
샬롬~
2026.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