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한 마리아의 군인
하성호 요한 대구 Senatus 지도신부님
자기 딴에는 누구보다도 열심하다고 생각하던 어떤 할머니가 성모님께 자기 자랑을 할 겸 해서 이렇게 여쭈었다.
“제가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기도했다는 표시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성모님께서 대답하셨다. “묵주기도를 드릴 때마다 그 표시로 콩을 하나씩 독에 넣도록 하여라.”
그 할머니는 성모님께서 이르신 대로 그렇게 하였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할머니가 죽고 나서 독 뚜껑을 열었더니, 독 안에는 콩알 세 개만 달랑 있었다.
평생 정성으로 바친 기도는 고작 세 번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단장님의 지시로 까떼나를 바친다면 그것도 활동보고에 넣어도 되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단원들이 까떼나를 소홀히 하니까 단장이 까떼나를 하라고 지시를 내린 모양이다.
그 질문을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까떼나를 바치지 않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을 과연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맨 손과 알몸으로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 나서는 꼴이다.
군인들은 매일 점호를 받는데, 그 때마다 상관들이 부하들의 병기를 점검하며, “병기는 귀관들의 목숨과 같다.
병기를 소홀히 다루는 것은 목숨을 잃는 자살행위임을 명심하라”고 강조한다.
녹이 슬어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는 총을 든 군인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의무적으로 소총수들은 매일 소총을 분해해서 먼지를 닦고 기름도 친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기도를 바치지 않는다는 것은
녹슨 총을 가지고 전쟁하겠다고 나서는 꼴에 비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적과 싸워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해 군인들은 실전과 같은 훈련을 거듭하고, 각종 전술을 익히며,
자신들에게 지급된 병기들을 목숨처럼 아끼고 보관한다.
군인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가 군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고,
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군인의 의무에 속하는 것이다.
“각 레지오 단원이 지켜야 할 레지오의 의무” 네 가지가 있는데,
그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여긴다면, 이는 군인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군기가 빠진 군인과 같은 것이다.
그런 군인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군인이고, 군의 사기만 저하시킨다.
사기 충천하는 군인들이 열병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어 어떠한 적과 싸워도
단번에 승리를 쟁취할 것 같은 위풍당당함을 지니고 있지 않는가!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라고 신자들에게 권유하면, 핑계들을 되면서 그 권유를 뿌리친다.
그 핑계 가운데 가장 큰 핑계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까 주회에 나갈 시간도 없을 뿐 아니라, 더더구나 매일 묵주기도와 까떼나를 바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현대인에게서 기도를 빼앗아 간 현대주의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두려워 할 것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돈독한 신앙으로 기도하는 단원이 훨씬 더 많고,
그 단원들이 지닌 위력이 더 대단하기 때문이다.
“주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과 마리아께 때한 굳은 신뢰심을 주소서. 이로써, 저희는 세상을 정복하렵니다”라며
기도하는 단원들의 활동보고를 듣고 있노라면, 그 단원들 안에 성모님이 활동하고 계심을 금방 깨닫게 된다.
그분들은 조금도 교만하지 않지만, 그분들의 신앙생활엔 언제나 위풍당당함이 철철 넘쳐난다.
기도와 활동이 레지오 마리애의 생명이다.
우리가 바로 기도와 활동을 생명처럼 여기는 위풍당당한 성모님의 군사들이 되어 반드시 세상을 정복하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