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외딴 섬 초도(草島)에 들어갔다.
바다의 날씨 예보가 좋지 않았지만 무작정 들어갔다.
김진수 시인이 꾸려가는 '무작정(無酌定)민박'에 홀렸기 때문이다.
결국은 풍랑주의보가 내려 하루를 더 묵으며 고립의 낭만에 빠져들었다.
초도(草島)는 여수와 제주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여수에서 남쪽으로 77km, 거문도에서 북쪽으로 약 25km 지점에 있다.
여수에서 거문도를 다니는 정기 여객선의 중간 경유지로 하루 두 번 운항된다.
여수에서 아침 7시 55분에 출항하는 하멜호에 몸을 실었다.
하멜호는 금년 7월에 취항한 초쾌속 대형 여객선이다.
워터젯 4기를 장착해 최대 42노트(시속 80㎞) 속도로 달릴 수 있다.
하멜호는 약 1시간 반 만에 초도 대동항에 닿았다.
대동(大洞)마을은 초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마을이다.
각 행정기관인 출장소와 지서, 수협, 보건진료소가 자리잡고 있다.
마중나온 김진수 시인의 트럭을 타고 무작정민박으로 갔다.
민박집은 남해 바다를 정원으로 가지고 있었다.
원래 보건진료소였는데 시인이 불하받아 살게 되었다고 한다.
민박집을 알리는 '無酌定'이란 글자가 예사롭지 않다.
바닷가에서 주워온 나무판자에 서각 전문가가 새겼다고 한다.
무작정(無酌定)은 '어떻게 하리라고 미리 정한 것이 없다'는 의미다.
무작정(無酌定)에서 세상일은 걱정하지 않고 무작정 쉬었다 갈 작정이다.
무작정 내부에는 시인이 좋아하는 시가 여러 편 걸려 있었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시는 '풀섬아이'라고 하였다.
시인은 자기 부인이 세상에서 두번째 예쁜 여자라며 웃음을 달고 산다. ㅎㅎ
김진수 시인과 집앞에서 폼을 잡아보았다.
그는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산업학 석사를 받았다.
여수의 향토시인이자 시민사회활동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초도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고등학교 때 여수로 나갔다가 5년 전 다시 초도로 돌아왔다.
풀섬 아이의 해맑음이 남아있는 그의 미소는 백만불 짜리다.
숙소에 짐을 풀고 대동마을 탐방에 나섰다.
마을길을 따라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초도초등학교가 나온다.
초도초등학교는 1937년에 사립학교로 개교했다는데 쓸쓸하기만 하다.
교정에는 큼직한 구실잣밤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아늑한 정취를 더해 주고 있다
대동마을 보호수는 팽나무로 당시 수령은 300년 정도로 알려졌다.
당산나무 아래서 고기잡이 떠나는 배들이 무사히 돌아올 것을 기원하는 당제를 올렸다.
이제는 찾아주는 이가 없어 쓸쓸하지만 마을을 자애롭게 굽어보고 있다.
섬에서 돌담길을 걸을 때마다 애잔한 느낌이 든다.
바람의 침략 앞에서 섬 사람들은 늘 불안했을 것이다.
바람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사람들은 돌담을 저토록 높이 쌓았다.
텃밭에서 배추를 돌보시던 할머니를 만났다.
진막마을에서 자기 딸이 카페를 하는데 꼭 가보라고 하신다.
내일 진막마을 탐방할 계획인데 꼭 들러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초도에는 썩~ 괜찮은 민박집들이 있다.
두산민박(010-3566-6346) 에덴민박(010-9007-3563)
스쿨펜션(010-4390-3499) 몽돌쉼터(010-6201-4753)
내가 묵고 있는 무작정민박(010-5170-8588)
남서쪽 해안 도로로 가다 보면 대풍해수욕장이 나온다.
폭이 약 200m인 몽돌밭해변이다.
파도에 씻겨 내리는 몽돌의 구르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아름답다
대풍해수욕장 부근에는 나란히 기대고 있는 사랑바위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영감 할멈 바위'라고 부른다.
이 바위에는 금슬 좋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바위 사이에 앉아 사랑을 맹세하면 평생을 변치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12시에 숙소로 돌아와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오늘의 메뉴는 갈치회초밥과 갈치구이...럭셔리하였다.
그러나 매일의 식탁에 갈치구이가 나오는 바람에 거시기하였다. ㅋㅋ
점심식사를 마치고 상산봉 등산에 나섰다.
숙소에서 마을 안길을 지나 산행의 들머리 바람재까지 걸었다.
대동마을에서 의성으로 넘어가는 재를 바람재라 부른다.
여름에 태풍이 불거나 겨울에 북풍이 불면 바람이 쎄서 바람재라 했다 한다.
상산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잘 만들어져 있었다.
군데군데 쉬어갈 수 있는 정자도 있었다.
뱀과 멧돼지가 두려워서 스틱을 두드리며 조심조심 올랐다.
아침이슬 소바탕길로 상산봉에 오르면
낮고 낮은 햇살에도 퍼덕이는 금바늘
희망은 가슴 터질 듯 수평선에 이르고
달빛 수줍은 갯바탕길을 따라
은하수와 시거리 이야기꽃 정다운
초도, 그 아름다운 풀섬에 가면
아직도 총총한 별들이 뜬다........................................................김진수 <초도에 가면> 부분
상산봉 정상 북쪽 아래에 대동마을을 내려보는 듯한 바위가 서 있다.
생김새가 마치 호랑이 같다 하여 '호랑돌광'이라고 부른다.
옛날 상산봉에 호랑이 한 쌍이 살던 중 숫호랑이가 병들어 죽었다.
암호랑이가 항상 이 바위에 올라 육지를 바라보며 울었다.
어느 날 밤, 자신의 울음소리 놀라 혼비백산하다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드디어 상산봉(上山峰·339m)에 올라섰다.
남해 일원의 여러 산 중 최상급에 속한다 하여 '상산봉'이라 유래한다.
초도의 조망을 360도로 아름답게 보여 주는 상산봉은 다도해의 최고 조망처다.
상산봉에서의 하산은 지옥길이었다.
중간에 길이 없어지는 바람에 이리저리 헤매다가 무사히 내려왔다.
여기저기 멧돼지들이 파헤친 흔적이 보여서 더욱 두려웠다.
갈증이 심해서 캔맥주를 마시고 싶어 의성마을로 내려왔다.
그러나 이 마을엔 점빵이 없다고 해서 실망~
고흥 녹동항에서 거문도를 거쳐 여수로 나가는 쾌속선은 의성항을 이용한다.
마을의 담장에는 다양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타일 조각을 붙여 꾸민 벽화들이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포구 대합실 쪽 벼랑에 분재처럼 서 있는 나무는 ‘은혜 갚은 팽나무’다.
팽나무는 오래전 사라호 태풍 때 부러져 고사될 처지에 놓였다.
정치망 사업을 하던 김사장이 막걸리를 나무 밑동에 부어 주자 다시 살아났다.
훗날 김사장이 병이 들자 팽나무 목신이 꿈에 나타나서 한약방 한 곳을 알려줬다.
물론 김사장은 그곳에서 약을 지어 먹고 완쾌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진막마을로 발걸음을 옮긴다.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이 진을 쳐 ‘진막’이라 했다고 한다.
가운데 보이는 섬은 안목섬인데, 물이 빠지면 바닷길이 열려 육지가 된다.
포구에서는 마을 어민이 외국인 선원을 데리고 작업중이었다.
말귀를 못알아듣는 외국인 선원에게 연거푸 호통을 치고 있었다.
어제 대동마을에서 만난 할머니 따님이 운영하는 카페에 들렀다.
교육공무원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섬에 들어왔다고 한다.
카페의 이름이 '박장대소'인데 위치가 기막히게 좋은 곳이다.
지북산 몰랑에 뻐꾸기 울면
산비둘기 구구대는 장사슴목골
달랑 한 마지기 옹사리밭에
아부지는 들컹들컹 쟁기질하고
어무니는 쪼락쪼락 풋콩을 딴다
가다 한 모금
또 가다가 한 모금
촐랑촐랑 줄어가는 막걸리 심부름
한 쪽박 샘물로 덧채우던 아이가
아지랑 묏등 앞에 바알갛게 엎드렸네
한 사발 거뜬 비우신 아부지
“오늘 막걸리는 왜 이리 싱겁다냐?”
그 소웃음소리 지금도 들린다..................................................................김진수 <풀섬 아이> 전문
포구 위 언덕에 박정남 선생 공적비가 있었다.
박정남씨는 주민들의 기금을 모으고 군의 지원을 받아 수력발전소를 세웠다.
1년 내내 한 번도 끊기지 않고 펑펑 쏟아져 흐르는 계곡물을 이용했다.
1976년 당시에는 대단한 일이었다.
지금은 폐허가 된 1976년에 세워진 수력발전소다.
한 집에 전등 2개만 허용되고, 밤 11시면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다 한다.
한 사람의 선각자로 인해서 온 마을에 전깃불이 밝혀진 것이다.
섬의 특성상 경작지가 비좁다.
집 앞에 있는 손바닥만한 텃밭이 귀엽다.
수미수퍼에 하나밖에 남지않은 캔맥주를 사다 마셨다.
카페 주인이 예약해준 스쿨펜션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폐교를 구입하여 펜션으로 운영하고 있다.
해군에서 35년 복무하다 퇴직한 남편의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초도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예미마을로 갔다.
아늑하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포구에서는 남정네들이 덫으로 잡은 멧돼지를 손질하고 있었다.
시간이 있으면 고기를 먹고 가라 하였지만 발걸음을 돌렸다.
포구 앞에서 문어 통발을 말리고 있었다.
붉은 통과 하얀 끈이 어울려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도 교회가 들어와 있다.
개신교의 선교 본능은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감동적이다.
남해 전 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내렸다.
결국은 하루를 더 묵을 수밖에 없었다.
가로등이 깜박거리는 항구의 밤은 쓸쓸하였다.
다음날 아침, 바다는 다시 잔잔해졌다.
다시 들어온 하멜호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바다의 설렘, 고립의 낭만을 모두 내려놓고 떠나왔다.
첫댓글 <김진수 시인과 내 친구 최기종 시인과의 대화>
여수 김진수 시인에게 전화가 왔담.
어이 김 시인... 초도에서 잘 있는감.
그런데 성님.. 여기 누가 왔는지 아요? 누가 왔는디?
긍게 성님을 잘 아는 가객이 오셨당게요?
그게 누구야.. 아니 고등학교 동창이라는디요?
누군디? 저는 이름 잘 모르지요? 그럼 바꿔 봐.
아니 누궁지 알아맞쳐보래요..
아니 누구야.. 가만있자...
그럼 연규 아니야? 아니 어찌게 맞춰버렸종?
그래? 연규야?
그렇지 거기까지 빨빨거리고 댕길 놈은 연규 밖에 없징..
연규 바꿔봥.. 아니 연규야 방가방가..
그렇게 거기까지 흘러갔냥?
그래.. 이제는 높은 산 못 오릉게.. 이렇게 섬들을 투어허징..
그나저나 이리 방가울 수가 없다..
나는 지금 당상리에서 추수 중잉 게..김 시인과 놓은 시간 가져랑?
김 시인? 나를 봐서 잘 대접해 줭.
그렇지 않아도. 싱싱헌 갈치 초밥에다 갈치 조림으로 깨가 쏟아징게 염려마쇼.
그래 계속 깨가 쏟아져랑.. 바이
초도에서 기종이 목소리를 듣다니...정말 조타 조아~
초도 민박집 검색하다 김진수 시인이 운영하는 민박집 이름에 반해서 와부럿다
민박집 이름이 "무작정'이야. 얼매나 시적이고 낭만적이냐?
인생은 무작정 내지르는거야. 무작정 떠나는거야.
역쉬 시인을 만나보니 말하는 폼새가 글쟁이 냄새가 풍겨서 기종이 얘기를 꺼냈지.
아다마다 좋은 형이라고 하면서 바로 전화를 걸드구만.
근디 초도에 온 칭구가 연규라는걸 알아맞춘 네 혜안은 놀랍다.
쥔장은 지금 건너마을로 갈치 낚시 갔다.
낼 아침도 갈치 먹을 각오 해야것다. 이제 질리네 ㅋㅋ
기종이 풍성한 수확하기 바란다.
기종이 목소리가 초도 여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세상 멋있게 사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