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입주를 앞두고
문구현
2010년에 해당 도내 출신이고 도내거점국립대를 나온 간접연고로 B지역으로 직장이동을 했다. 전에 8년간 근무하던 A지역은 유명인들도 많고 국내최고의 계획도시라 보이는 것들이 화려하고 사람들도 예쁘고 국내유일의 대형공공시설도 많았다. A지역을 떠나기 전 세종시의 청사진을 보면서 A지역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가졌는데 막상 떠나기로 확정되어 대기하는 보름의 시간동안에는 두 지역이 같다는 느낌은 없었다. 현재상황만 떠 오르며 논과 밭만 있는 곳으로 가는 것 같은 당혹감이 와서 잠을 못 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잘못 가는 것이 아닌가 문의하게 되었다. 보이는 것이 바뀐다고 걱정을 말했을 때 누나는 내 마음이 그래서 그렇다고 말하며 본뜻은 나의 생각을 고쳐야 한다는 식의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할 나의 느낌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극심한 고통이었고 전출을 취소해야 하는가까지 고민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가야할 곳은 세종시해당구역의 어느 면사무소였고 그 곳은 농업·공업 외에는 산업이 없고 사람도 산업도 전시, 국제회의, 방송, 각종 예술행사가 있고 사법연수원, 국립암센터, 노래하는 분수대, 영화회사, 호수공원 등이 있는 A지역과는 비교가 안 되는 곳이었다.
작년에 전출이 이루어져 면사무소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모든 것이 바뀌어 진 곳의 상황은 돼지우리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들 생김새부터 못 생기고 얼굴은 검고 나이들고 남루한 농부옷을 입고 다니고 있어 눈이 현상에 적응을 못하게 되었다. 내가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말도 나왔지만 나의 정신세계는 젊고 명품옷을 입고 예쁘게 생긴 사람들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계속 보는 것이 불편했고 몸베옷 입은 노년의 여성을 보면 보지 않는 아찔한 옷을 입은 여성이 오버랩되는 환영현상까지 겪게 되었다. 도시화된 뇌가 습관적으로 누리던 것을 잊지 못해 영상으로 겹쳐내는 것이었다. 세상이 두 개로 보이게 된 것이다.
업무시스템도 전통적인 곳에 적응하려니 피우지 않던 담배도 피웠지만 쉽사리 적응되지 않았다.
더구나 행정기관이 내려오지 않게 하려는 음모로 정국이 혼란한만큼 나도 혼란스럽고 수면제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좀 더 신중할 것을, 심리상담사나 현지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많은 조언을 안 구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직장이 인터넷동호회도 아니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부적응하는 뇌를 적응하게 뒤집는 것은 마음과 상관없이 무심히 새로 오는 하루들의 반복이 쌓인 오랜 시간이라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자마자 4월의 구제역, 한 해가 가는 시점의 12월의 2차 구제역이 있었다. 소독, 백신접종, 홍보, 초소근무의 책임자가 되어 석회가루를 마시고 소독약품냄새를 맡으며 경황없이 일을 하였으나 급격한 지구환경변화인 온난화에 병을 얻은 소, 돼지마냥 내 마음은 위기를 맞고 있었다. 한편 구제역업무는 내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되어 구제역이 지나가면서 업무능력과 노력을 기관에서도 인정하게 된 것 같았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B지역에서도 좋은 부서에서 좋은 사람들과 잘 생활하고 있고 논·밭만 있는 곳에 갔을 때의 당황감도 거의 사라졌고 A지역에 대한 그리움도 잦아 들고 소·돼지나 축사앞에서 잎 찢어진 채 침흘리는 할아버지를 봤을 때의 화성에 온 것 같은 느낌도 거의 사라졌다. 원래 농촌출신이었고 지역농협에 재직한 경력이 있어서 극복이 되었지 출생까지 도시였다면 어땠을까 가정하면 정말 아찔한 위기였다. 그러나 도시선호는 남아서 A지역으로 되돌아가고픈 환상은 낮밤으로 나를 충동질하였다.
내려오면서부터 세종시에 투자할 계획도 있었기에 세종시에 처음 입주하는 첫마을아파트에 청약을 했고 당첨되어 다음달 입주하게 된다. 첫마을아파트의 분양경쟁률이 처음에는 몇 대 1이었는데 지금은 50대, 100대 1을 하고 있는데 신축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리된 것이었고 이제는 건설회사들도 건설취소계획을 취소하게까지 되었다.
입주대비 사전점검일에 아파트를 방문하니 단지마다 다른 형태를 하고 있고 서울 어느 아파트단지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구조를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조경이 넓게 공원처럼 잘 되어 있었고 국제공모전에 당첨된 건축설계라 유럽풍으로 지어진 건축물은 각 단지별로 개성이 있었고 나의 눈은 B지역에서 2년여간 잃었던 풍경을 다시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세종시에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가지 알고 있던 교훈을 다시 깨우쳤다. 첫번째는 생각이 바뀌려면 들리는 것이 아닌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경험한 것이 뇌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행복을 주는 주변의 것들의 요건 혹은 수준에 차이가 있으며 그것을 누려야 참평안이 온다는 것이었다. 아니면 환경에 적응하고 불만족을 삭이면서 사는 것도 좋은 인생인 것 같다. 셋째는 사람은 놀라운 적응력을 가진 동물이라는 것이다.
테레사수녀처럼 빈민굴에서 선행을 베푸는 또 다른 영역의 가치가 있음도, 섬에서 살아도 행복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나는 신도시화로 즐거워하고 있고 그것은 나의 복구같은 느낌이었다.
2년간 정서복구를 기다리느니 그냥 옛 지역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잃어버린 시간만큼 인생의 교훈을 얻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낸 자신이 한껏 자랑스럽고 흐뭇하다.
세종시라는 것은 수도권에 모든 것이 있다는 국민의식을 바꾸는 것으로 한민족역사에서 역사적인 사건인데 한 사람이 역사의 수레바퀴에 실처럼 감겨들어갔다가 이제는 수레를 끄는 말위에 타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첫댓글 '2년간 정서복구를 기다리느니 그냥 옛 지역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잃어버린 시간만큼 인생의 교훈을 얻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낸 자신이 한껏 자랑스럽고 흐뭇하다...'
세종시에 입주하셔서 충만한 행복감과 더불어 선생님의 글쓰기의 성공도 이루시기를 빕니다.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세종시가 앞으로 좋아진다하니 후회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낯설은 곳에서 빨리 적응해서 나날이 기쁜 생활이 되기릴 기원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오~예! 글이 장족의 발전입니다. 기대가 많이 됩니다.
답글 고맙습니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네요. 이제는 좋은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예전의 어려움이 이제는 오히려 좋은 글감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많은 고민을 앉고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잘 이겨 내시고 적응해 가시니 참 다행입니다.
좋은곳에서 사는 부러움을 받으실 겁니다~더구나 터줒대감이시니 어깨힘도 들어가실듯ㅎㅎ감상 잘하고 갑니다^^*
세종시의 아파트에 입주하심을 축하합니다.
이제는 수레를 끄는 말위에 타신 세종시의 주역이 되셨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