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전 장면의 경우 영화적인 장치로서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해전 도입부, 대장선에서는 포격전을 벌여 진입해오던 구루지마의 선봉을 저지하는 설정이지만, 난중일기에서 묘사한 홀로 남은 대장선의 극적인 연출을 위하여 후속 부대의 돌격을 포격전으로만 막지 못하고 작전상 후퇴하여 피섬이라 불리는 무인도를 등지고 일종의 배수진을 치게 된다.
이 장면 자체가 총체적 난국의 시작이다.
근본적으로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은 스스로 내가 여기서 배를 물리면 진열이 붕괴되어 모든게 무너져 돌이킬 수 없다.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작전상 후퇴고 뭐고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고, 이순신은 오직 한척의 대장선을 가지고 역류하는 해류 속에서 적진을 향해 닥돌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오히려 영화에서 억지로 백병전을 끼워넣음으로써 실제의 비장미가 떨어진 것이다. 작전상 후퇴를 할 여력이 있게 묘사된 영화와 달리 이미 붕괴된 대열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역류하는 해류를 거슬러 적의 진영 한 곳으로 자신과 부하들을 밀어넣는 실제 역사쪽이 훨씬 비장미가 넘치고, 위기를 알 수 있다. 제작진의 연구와 고증이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본적으로 그 원균에게마저 어떤 구체적인 위해행위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은 그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의 이순신은 김응함을 베어 효수하고싶다고 생각했고, 이는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고 위태로웠음을 알게해준다.
거기에 난중일기의 기록과는 달리 영화상에서 아군의 피해도 상당한 수준으로 묘사되는데, 처절한 전투씬을 통해 관객들에게 명량 해전의 절박함을 보여주려는 제작진의 의도로 보여진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난중일기에 적힌 대장선 피해는 사망자 2명, 부상자 3명으로 실제로 백병전 보단 공성전에 가까운 전개였을 가능성이 큼에도, 아무리 영화적인 연출을 위해서라지만 엄연히 사서에 저렇게 기록된 전투를 '대장선의 격군실에 물이 차 기동불능 상태가 된 채로, 왜군이 무더기로 승선해서 백병전을 벌이고 화포는 갑판에서 굴러다니며 병사들은 그 포에 깔려서 다치는' (영화에서 묘사된 해전의 모습) 처절한 난전으로 묘사한 것은 실책이다. 극적인 비장함은 고조시킬지 몰라도 이는 전투 자체의 성격을 아예 바꾸고야 만다.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선박과 화기의 우위에 있다. 이순신의 공훈도 조선이 쌓아올린 이러한 성과 위에 비로서 자리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제작진은 명량해전, 그리고 이순신과 참전했던 수병을 강조하기 위해 섣불리 일본 수군을 과장하고 조선군의 승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던 백병전을 강조함으로서, 승리의 숨은(그리고 상당 부분에서 '참된') 주역이었던 바로 그 조선 수군의 저력을 깔아뭉개는 묘사를 해버린 셈이다. 2차대전 전차전 영화를 찍는데 티거를 론슨 라이터로 묘사해버린 꼴이다.
그리고 아무리 영화적으로 극적인 연출을 가미하더라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대장선에서 한번은 공황에 빠진 병사가 갑판위의 화약통에 불을 붙여 자폭하는 설정과 중후반부에는 상당히 과장된 거대한 회오리에 의해 구루지마 안택선의 충파공격에서 벗어난다는 설정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또한 회오리에 휘말려 너덜너덜해진 판옥선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초들의 어선 몇 척에 의해 구해진다는 설정도 작위적으로 보여지는 부분.
이러한 부분은 제작진의 사전 연구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건 몰라도 사상자가 실제 기록보다도 더 많이 나오는 연출을 한다는것 자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무리하게 삽입하여 생긴 인위적 고증오류라고 볼 수 있다.
난중일기 9월 16일자 기사를 읽어보면 충분히 백병전 없이도, 긴장감과 두려움이 가득찬 연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적선이 우리 배들을 에워싸자 여러장수들이 그 수에 겁을 먹고 도망갈 궁리만 했다.
- 그래서 내가 탄 배를 앞으로 돌진시키며 지자포, 현자포 등 각종 총들을 우레같이 마구 쏘아대게 하니 군관들도 배위에 가득 서서 총과 화살을 빗발같이 어지러이 쏴 댔다. 그러자 적들은 머뭇거리면 나왔다. 물러갔다 했으나 몇겹으로 둘러 쌓여 어찌될지 알 수 가 없다.
- 배를 돌려 중군장 김응함의 배로 가서 그의 목을 베어 매달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탄 배를 돌리면 여러 배들이 점점 더 멀리 물러날 것이다. 따라서 적선이 점점 접근해오면 끝장이다.
당시 문집이나 기록들을 찾아보면 단순히 함포를 사격해서 왜선을 격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근본적으로 단순히 적선들이 몰려오는 과정에서 대장선이 함포사격을 한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물살에 밀려서 제 위치를 잃기도하고, 함선의 화포의 응사력에 비해 적선의 돌격속도가 빨라 대처하기 곤란했다던지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백병전을 우선시 한 것은 무조건 맞부딪치지 않으면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기존의 통념에 따른 편협한 연출이다. 애초에 백병전을 지나치게 중시한 결과 명량에서만 보여줄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의견도 나오는 판이다. 당장 적아군 할거없이 한데 뒤엉켜서 카메라 흔들며 싸우는 이런 씬은 한국 사극에 굉장히 흔하다. 반면 명량해전'이기에' 비로소 연출할수 있었던 전투씬은 따로 있었다. 당장 크게 두갈래로만 뽑아봐도 원거리에서 왜군을 격멸시키는 포격전, 그리고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차이에서도 오는 공성전에 가까운 접근거부 전투가 그것이다. 접근거부 묘사는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높이를 거의 같게 왜곡한 시점에서 이미 불가능했고, 포격전은 대장선의 최초 출진시 양현을 활용하여 최초 조우한 왜선들을 신나게 격침시키긴 했으나 그것뿐, 나머지 몇십분은 거의 백병전 일색으로만 전개되서 조선 수군의 특기였던 포격전은 명량에선 거의 '맛보기'로 전락했다는 평이다. 둘다 불리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상황을 타개해나갈수 있는 해결책이었는데, 명량의 전투 묘사는 적군에게 아무리 둘러쌓여도 칼로 다 베어가면서 이기는 충무공 킹왕짱이라 영화의 격에 맞지않게 전개가 매우 단순하며, 전투전개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아 현실성조차 떨어진다는 것.
근본적으로 해류가 원체 거세었기 때문에 격군들이 몇번씩 노를 놓쳤다던지 심지어 급작스럽게 놓쳐진 노에 의해 배가 순간적으로 롤링을 한다던지, 왜선이 대들보에 매달아 쏜 포탄이 위력은 적으나 최소한 충무공의 곁에 떨어져 위기를 고조한다던지 여러가지 선택지가 충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백병전이라는 고리타분한 방식을 선택한 것은 비난의 소지가 충분하다.
특히 이러한 백병전 연출 부분에 있어서 해전사 관련 및 화포 연구 관련 전공자들이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간혹 백병전을 옹호하기 위해 당시에 화포의 명중률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백병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주장 역시 어폐가 있는 말이며, 충무공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발언이기도 하다.
이순신은 낮은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자주 화포 사격을 했을 뿐더러 항시 명중률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화망의 구성과 뭉쳐있는 적을 우선적으로 타격하는 등 최대한 명중률을 높이는 훈련을 포함해서 어떤 경우라도 최대한의 명중률을 확보하기 위해 학익진과 같은 포위섬멸 진형을 선호했다. 특히 명량 해전에서 화포 명중률을 운운하는 것은 당시에도 일자진을 굳이 선택한 이유가 함선을 나열해서 함포사격을 최대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수단이라는 점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거기에 명량해전 당시에 좁은 해역으로 몰려들어오는 일본수군에 대해서 조선수군이 최고의 명중률을 보였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학계에서는 이견이 없다.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는 사극에서 백병전씬이 대열싸움이 아니라 개싸움으로 연출되고 날아차기와 벽타기같은 과장된 액션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밀한 고증을 원하는 입장과는 무관하게 제작에 관여하는 업계 관계자나 스폰서측은 '연출하기 쉽고 눈에 쉽게 띄는 확실한 볼거리'를 찾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백병전은 극적 연출과 다양한 볼거리를 위한 의도적인 고증 무시로서 인정될 수 있으나 불가피한 선택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백병전 없이도 세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전투를 표현할 수도 있었음에도 그러하지 않은 점은 상업성을 중시했거나 혹은 감독 역량이 그에 미치지 못했거나, 혹은 둘다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