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하루 전. 오랜만의 여행으로 흥분했는지 점심 먹은 것이 체해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다. 손을 따고 약도 먹었지만 나아지지가 않아 가방도 챙기지 못하고 일찍 잠들었다.
드디어 D-day. 자고 일어났는데도 몸이 나아지지를 않아 다른 샘들에게 민폐가 되면 어쩌나 가지말까? 약간 고민을 하다 ‘얼마만의 여행인데.......’하며 서둘러 준비를 하고 늦지 않게 약속장소로 나갔다. 드디어 영통 출발~~~~
도착하기 전 잠깐 휴게소에 들린 후 너른 들판을 지나 전라북도 고창의 무장읍성에 들어섰다. 조선 초 왜구의 침입에 방비하여 새롭게 성곽을 쌓아 올리면서 무송과 장사에서 한 글자씩 따와 ‘무장’현이라 부르게 하고 새롭게 관아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복원공사가 한창이었다. 옹성을 통해 읍성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객사가 보였다. 오기 전 읽고 온 ‘갑오동학농민혁명답사기-신정일의 우리땅 걷기’에는 이곳에 진무루를 정문으로 쓰는 무장초등학교가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학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복원중인 토성을 따라 둘레를 걸었다. 부는 바람에 봄기운이 가득해 날씨도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다. 역시 음식은 전라도다! 속이 아픈 것도 잊을 만큼 너무 맛난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버스정류장 옆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동학농민군위령탑’을 본 후 모의장소로 걸어갔다. 이곳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항의하는 농민으로 인해 달아났던 조병갑이 다시 고부군수에 부임되자 농민군의 감정은 폭발했고 모여서 사발통문을 작성했던 곳이다. 그들이 통문을 작성하며 꿈꾸던 세상이 지금의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고부향교로 향했다.
명륜당과 경사 높은 돌계단의 대성전이 마주보고 있는 고부향교에는 가지만 무성히 남아있는 향나무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했다. 우리는 걸어 농민들이 말목장터에 모여 쳐들어간 지금은 고부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는 옛 고부관아터로 갔다. 아쉽게도 관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이 옛 지도와 안내문만 볼 수 있었다. 학교 정문을 지나 고부군수들이 풍류를 즐기던 정자인 군자정으로 갔다. 연못에는 시들어있는 연꽃이 가득하고 잘려나간 선정비들이 남아 쓸쓸해 보였다. 연꽃이 한창인 5월쯤 오면 풍류를 즐겼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차로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몇 몇 선생님들이 비 근처에서 무엇을 열심히 찾고 계셔서 비에 새겨져있는 글귀를 보고 오시나보다 했는데, 신명하샘과 고혜숙샘이 냉이를 들고 오셨다. 내일아침 식사 미션인 라면 끓이기에 넣기 위해서였다. 처음 맛보는 냉이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어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도착해 해설사분께 동학농민혁명의 발발 이유와 시대적 상황, 혁명의 의미 등을 들으며 관람을 하고 관군을 상대로 처음으로 대승을 거두었던 황토현전적지를 돌아본 후 전봉준장군고택으로 갔다. 인적 없는 초가집 툇마루에 방명록만이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농민군의 최초 집결지인 말목장터를 지나 만석보혁파비를 보고 만석보터로 갔다. 만석보터에서 정읍천과 동진천이 합쳐지는 것을 보며 농민들이 허문 만석보 위치도 생각해보고 드넓은 배들평야를 바라보며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동학농민들은 처음엔 탐관오리의 횡포 속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두 번짼 봉건주의에 반대해서, 그리고 세 번짼 외세에 항거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 희생은 100여년이 지난 2004년에서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특별법’에 의해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자료가 남아있는 498명뿐이었다. 후세들의 무관심에 나는 죄스러운 맘이 들었다.
문이 닫힌 태인 향교에 도착한 우리는 왕비나 정승 등 높은 사람이 출생한 마을에 세웠다고 하는 '공자의 도(道)로 만물이 교화된다.'는 뜻을 가진 향교 정문 ‘만화루’를 본 후 피향정으로 향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호남 제일의 정자인 피향정에 올라 지는 해를 바라본 후 동학농민혁명의 원흉 고부군수 조병갑이 아버지 조규순을 위해 세운 ‘조규순 영세불망비’를 찾아보았다.
우리는 숨가쁘게 동학의 흔적을 따라 돌아본 오늘 답사를 마무리하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한 후 숙소인 상두산 자연휴양림으로 갔다. 저녁식사 중간에 한 짝찾기 게임 결과로 방을 정하고 짐을 정리한 후 한 방에 모여 2014년 결산보고와 2015년 수원지기 활동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인생그래프를 그려 자신을 소개하며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진 후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우리방 샘들은 일찍 일어나 밥도 하고 어제 캐온 냉이라면도 끊이고, 김치와 김치부침개로 한 상을 꾸며 인증샷을 찍고 맛나게 나누어 먹은 후 짐을 정리해 밖으로 나왔다. 마침 차가 도착해 짐을 차로 옮기고 아직 나오지 않은 옆방 샘들을 기다리며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9시가 조금 넘어 우리는 오늘의 첫 답사지인 김동수 가옥으로 향했다.
김동수의 6대조 김명관이 정조 8년(1784년)에 지은 집으로 주변에 지네산이라 불리는 창화산과 닭산이라 불리는 독계산, 코끼리머리란 뜻의 상두산이 있으며 시어머니와 며느리 부엌이 각각 다른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99칸 집으로 12년 동안 지었다고 하며 부엌의 살창(파수)의 곡선이 아름다운 모양이었다. 다락의 높이가 157cm로 아주 높다고 하는데 안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꽃피는 봄에 오면 더욱 아름답다는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무성서원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무성서원 주변을 둘러보는데 기타를 어깨에 맨 해설사분이 나오셨다.
김개남을 밀고한 임병찬을 중심으로 유생들이 외세에 항거하기 위해 모인 장소를 기리며 세운 비를 설명한 후 백제가요 ‘정읍사’를 들려준다며 무성서원 안으로 들어가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기타 선율에 맞혀 부르는 정읍사는 물기어린 아침기운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느낌이 들며 행복한 추억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들의 앵콜 요청으로 두 곡을 더 들은 후 우리는 완주군 삼례로 향했다.
삼례는 순조 때 우의정을 지낸 이서구가 이곳을 지나다가 세 번 절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백제 때 거찰의 터로 고금을 통해 삼례 합장하는 곳이라 해서 삼례라 불렸다는 설이 있으며, 1894년 2월 2차 봉기가 일어나 곳이다. 언덕을 올라가니 ‘동학농민혁명봉기비’와 돌무지 위로 솟아오른 쇠스랑을 들고 있는 팔뚝 조각이 눈에 띄었다. 장소가 외지고 찾는 인적이 없어 쓸쓸해 보였다. 우리는 시간이 여유 있어 우금치로 가기 전에 공주 송곡리에 들리기로 했다.
송곡리에 도착해 안내 표지판이 잘 되어있지 않아 유적지를 찾아 이리저리 조금 헤매다 움집을 발견해 그 쪽으로 다가갔다. 목책과 기둥이 세워져 있었을 것 같은 흔적들을 보며 복원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느끼며 동학농민군의 최후의 결전장인 우금치로 향했다.
터널 위 언덕을 따라 오르니 동학혁명위령탑이 세워져 있고, 더 오르니 사람형태의 쓰러져 있는 커다란 조형물 몇 개가 보였다. 전라도를 지나 이곳을 향한 동학농민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거라는 걸 알았을까? 관군과 일본군의 신식 무기에 맞서 철 농기구와 낡은 화승총으로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 다른 시체들과 모여져 송장배미에 매장되리라는 상상이나 했을까? 그들이 힘겹게 올라왔을 언덕너머를 바라보며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렸다.
농민군의 한을 품은 우금치를 끝으로 1박2일 ‘갑오동학농민혁명답사기’를 마치고 공주시내에 들려 조금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근처 유명한 떡집에서 집에 있는 식구들에게 선물할 떡을 산 후 수원으로 출발했다.
어렵게 느껴지는 근대사의 한조각 갑오동학농민혁명. 답사 전 책도 읽고 답사도 끝냈지만 여전히 어렵다. 아마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우울한 역사를 알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번 답사를 끝내며 나는 다짐해본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이름 모를 많은 이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는 건 열심히 사는 것, 암울했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알아야한다. 알아야 바로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아팠다는 사실도 잊은 채 흠뻑 빠졌던 답사를 이런 다짐으로 마무리했다.
p.s : 처음으로 글을 올려야지!하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써서 카페에 들어오니 벌써 김민나샘의 글이 보였다. 아쉽지만 그럼 다음 순서로.........사진 때문인지 용량초과로 글이 올라가질 않는다. ㅠㅠ
사진을 포기할 수 없어서 '어떻게올리지???'이리저리 고민만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어쩔 수 없이사진을 포기하고 글만 올려본다.
첫댓글 참 잘했어요~~^*^
오래 기다렸어요~쌤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