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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원에 대한 수없이 난무하는 진실은 알지는 못할지라도
현대사에 있어서 아직도 잃어버린 역사라고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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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들의 편제를 무슨 무슨 부대로 알고 있지만,
우리는 민간인이고 군 업무와 다른 엄연한 회사 편제로 되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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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엔 현역중령, 전무는 소령, 과장은 대위, 계장은 중위 혹은 소위
그리고 회사원의 기본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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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구가 작고 민첩하며 운동성이 뛰어나야합니다.
2. 교육을 소화할 수 있는 기본적 학력(지식)이 있어야합니다.
3. 뒷조사에서 배경에 이북에 연고가 전혀 없어야 합니다.
(6.25때 남하 못한 친척이 있어도 안 됩니다)
4. 인성교육(평가)때 성격이 과격하거나 우유부단 해도 안 됩니다.
(교관들의 안목에서 불합격 판정이 나면 인사도 못하고 소리 없이 사회로 퇴출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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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건들 하에서 선발된 사람들로 구성하고 훈련은 자체 유격교육장서 받습니다.
지금부터 말해도 될 것만 하겠으며 곤란한 것은 (생략)을 달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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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의 기본은 긴 말 필요 없이 모래주머니 달고 모래조끼 입고
일 이 년동안 첨부터 끝까지 산으로 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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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기를 기본으로 야전삽(작은 것 따로 있음)으로 잠복호 파고 두더쥐숨기, 침투, 지뢰제거,
수영, 살인비술(소리없이 죽이는 것), 맨손격투(태권도, 유도, 별의별것) ,칼로 목줄 따기,
칼 던지기, 나무와 돌로 무기 만들기, 사격, 독도술, 사진 촬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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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인암살(실제 요인 암살은 하지 않고 배우기만 한다) 더불어 자물쇠따기, 담장넘기,
식량 훔치기,산나물 구별하기, 동물 산 채로 잡아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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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 3분 이상(숨 안 쉬고 3분은 기본이며 4~5분도 버틴다), 면도칼 이발 기술,
적 무기 사격과 분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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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과 실제상황서 아무리 배고파도 민가에 침투하여 표 안나게 일부분만 훔침.
훈련때는 일반 민가에 나중에 과장이 다니면서 우리가 말해준 민간인들에게 도난품 접수 받아
넉넉하게 모조리 변상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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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이 공작원들의 교육과정인데 당시 내가 맡은 주요 임무는 몇 번에 걸쳐
목표물 근접 사진 촬영이 주임무였으며 침투는 잠수정2회(돌고래인지 그것보다 작은 소형(생략)
(서부로 남포) (동부로 함흥) 그리고 휴전선 직접통과 2회였으며, 3회는 무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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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는 두 번째 북파때 남포에서 현지고정(생략)과 일하다 경비병에게 발각되어
(현지 고정의 목숨은 우리의 목숨보다 중요함) 현지 고정 피신 완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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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이서 필사의 탈출을 하였는데 이때부터 해주까지 미리 만들어진 탈출로를 가늠하여
지그재그로 북상하다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다 내려오고 일주일 동안 낮에 숨고
밤에만 산으로만 계곡으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
(황해도 해주부터는 생략해야 함)
이렇게 필사의 도망으로 적들과 조우하지 않고 무조건 도망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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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평양근교? 에서 적의 수색조에 발각되어 사격을 받아 일사분란하게 포위망을 구축한
적들의 틈에서 죽음 직전에 이르렀으나 잠복과 끈질긴 은밀 이동으로 모면하고 도망을 친 것이다.
(우린 적들 근처에선 낙엽도 밟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낙엽을 손으로 소리없이 밀어내고
발을 옮기고 다시 낙엽을 제자리에 옮겨 자국이 생기지 않게 반복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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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각이던 뭐던, 사격을 해오던말던 우리가 적을 확인만하면 아무리배고파도 절대 잡히지않는다.
(만약 잡히면 청산가리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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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기본 장비는 소음권총 3인1조에 하나, 자동카빈소총1인1정, 실탄100발, 수류탄 네알, 단도,
청산가리캡슐, 응급약(어지간한 건 혼자서 꿰메 버린다) 만능열쇠, 올림프스 망원카메라, 지도,
나침판, 머리빗, 면도칼, 뻰찌, 라이터, 수통, 숨쉬기빨대, 바닥 믿믿한 농구화, 이런 것들이고
식량은 날짜 계산하여 부족하게 가져간다 마른 걸로만.
(훔쳐먹고 잡아먹고 구해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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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술에있어서는 특전대와 예를들면 맨손이던 무기던, 그들중 누가 무술에 고수일지라도
절대로 북파공작원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린 실제로 목숨 걸고, 격투술을 같은 수준의 회사원끼리도 1대1부터 5대1의 실전을 익히고
(여기서 지면 죽기도 한다) 깡으로만 해도 그 누구도 적수가 안 되며,
뛰기에 있어서 산악구보와 험지의 구보는 세계적 마라톤선수보다도 훨씬 강인한 귀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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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대체로 설명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참고로, 현대의 특수부대일수록 전문성과 장비에
의존하는 것이지 무식하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체력만으로 임무 달성하는 것이 아님을
꼭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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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6년도 동해에서 잠수함 좌초되고 승무원들과 공작원들이 산위로 피해 올라가서 대책을 의논하다
무장공작원 아닌 잠수함 승무원과 일부 전문공작원들을 일렬로 앉혀놓고 전부 사살하고 피해버린 일을
기억들 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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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엔 그들은 사살당한 게 아니라 전체 의논 하에 도망칠 능력이나 교육을 받지 못한
잠수함 승무원과 잡혀서는 절대 안 될 비밀요원들은 자발적으로 죽기로 결정하고 일렬로 나란히 앉아
고향 생각에 처자식, 부모님 생각하면서 슬픈 마음을 품은 채 무장공작원들로부터 한발씩 총격을 받고
죽어간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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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장비가 좋아서 돌핀급이네 뭐네 호사스러운 잠수함으로 침투하고 도망치고 하지만
과거로 올라갈수록 선배들은 헤엄쳐서 아니면, 고무배로 침투해 임무수행하고 몸으로 때우며
누가 슬퍼하지도 않는 죽음을 당하며 사라져 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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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원들 중에도 돌아오지 못하는 동료들이 상당히 많았고 새벽녘이면 멀리서도 들려오는
북한군 확성기소리에서 어디서 몇 넘 잡아 죽이고 일망타진되었다는 말들이
내 귀에 직접 들려오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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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시한에 나타나지 않고 이후 회사에서 보이지 않으면 그는 죽었다고 봐야 하고
우린 그저 눈물과 함께 말없이 술 한 잔에 마음을 달래는 그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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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이북의 남파요원들은 장비가 좋고, 우린 알려지지 않은 몇몇이서 활동하고 그런 줄 알지만
제가 회사원이 된 그 시절부터는 이북보다 훨씬 나은 침투 장비가 활용되었고 공작원숫자도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숫자였고 그들이 임무 완수 후 돌아오지 못하고 죽어 사라진 분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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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조시절 북의 첩첩산중에 숨어서 가장 많이 나던 생각은 부모님과 가족들입니다.
물론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정해진 사이클대로 행동하지만
어린나이의 우리도 사람이기에 공포와 고뇌가 엄청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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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근무하던 민정경찰들은 공작조 북파 내용에 대해 잘 알겁니다.
사원들이 침투지역 수색대로 파견되어 며칠 동안 수색대로부터 침투경로며 제반사항들을
꼼꼼히 숙지하면서 망원경으로 근처를 이 잡듯이 살피며 관찰하고 며칠 후 시시때때로 행해지는
수색대 입출과정을 허수로 반복하고 어느 순간에 민정경찰의 선두안내로 이미 휴전선 깊숙이
잠복해 있는 수색대에 인계되고 적진을 살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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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안타까운 마음에 손을 만져 인사를 나누고 그리고 정해진 코스로 침투하고,
복귀 때도 휴전선 안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는 수색대 도움을 받아 그들 인솔 하에 오는 것이지
람보처럼 헬기타고 기관총 날리며 폭탄 터트려 가면서 요란하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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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성질나면 헌병이고 특전이고 시비 걸어 패버리는 싸움 엄청 많이 했지만
군인이라도 수색대 휴가병들한테는 조그만 시비도 하지 않았으며 거리에서 만나면
그들 델고 가서 밥 사 주고 술 사주고 용돈도 꺼내주고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으며
회사자체 훈련장 주변 마을 사람들과의 유대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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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출신들이 뭔 살인이나하고 괴물들이나 되는 걸로 사회적으로 인식들 많이하지만
우린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는 사원인 것이지, 깡패나 강도같이 그런 짓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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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공작원들이 남파될 땐 시기적으로 겨울을 택하는데 그것은 그들 작전이 성공하면
뒤를 이어 얼은 임진강을 돌파하여 전면 침공을 하겠다는 배경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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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공작원들은 녹음이 우거진 계절에 침투와 탈출을 하는 것이 그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왜 김신조 대원들이나 삼척,울진지구에 침투했던 무장공작원들이 그 추운 숨을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겨울에 내려왔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작전 목적이 전면남침의 선봉이었기에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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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서부지역에 주둔하던 미군들은 평시에도 얼어붙은 임진강을 무작위로 곳곳을
폭탄으로 터트리곤 했읍니다.
미군들에 의한 휴전선 쪽으로 포병사격연습 또한 사격도 하고 임진강 얼음을 깨는 일이기도 했읍니다.
사격도 하고 공비 침투를 막기 위한 얼음을 파괴하는 실제 연습도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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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한은 북으로 전면전을 시도할 무력침공 의사가 없기에 침투조를 은신하기 좋은
늦은 봄부터 가을 이전에 행한다고 보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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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원들의 군사 전술은 상대의 편제와 수법을 알고 우리가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배우는 것이지
그들과 맞장을 떠서 격파하고 섬멸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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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들의 편제는 세계 어느 나라나 거의 같은 것이고 공작 목적에 따라 2인1조부터
칠 팔 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고정들로부터 전달받는 중요 사안은 저와 같은 회사원들이
침투하여 접선하고 넘겨주고 받아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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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위중한 굵직한 사안들에는 변수는 많지만 회사원들이 호송하여 현역 영관급들을 침투시킵니다.
체력과 안전 때문에 이런 작전엔 물고기를 타고 함흥지역으로 신의주로 침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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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용들은 이미 그들이 00년 전부터 알고 있는 것이라서 지금은 군사기밀도 아닐 것입니다.
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장거리 침투시엔 물고기(잠수정)를 타고 침투가 시행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더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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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회사에 들어가기 몇 년전 물고기타고 신의주로 침투하여 일하던 해군소속공작조가
전원 몰살당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너무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당시 대령과 전원 위관급 이상의 정보 요원들로 구성되고 전문 공작원들이 호송하여 작전하다
9명이 몰살당한 이야기는 내부에서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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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친구들은 훈련이 끝나면 미군수송기로 평양근교로 낙하산 침투시키기로 계획되었던 일이고
특공작원들이 김일성 궁으로 침투하여 개박살내어 보복한다는 시나리오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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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 생각엔 북한이 대공시설이 엄청나고 어쩌고 부풀려진 말에 의하여 대단한 걸로 평가하지만
남한과 북한 어느 곳이던 안전하게 침투하고 탈출할 수 있는 허술한 곳이 대단히 많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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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비행기침투는 허큘리스 프로펠러기가 위성 첩보에 의한 사전 검토된 안내에 따라
저공 침투하여 낙하산으로 뿌리고 남하한다는 치밀한 계획이 미리 있었던 것이고
특공작들은 평양서 김일성궁을 습격하여 뽄때를 보이고 전원 죽음으로 끝난다는 계획이었으나
남북화해 분위기로 그들의 문제가 폭발하여 버스 탈취하고 전원 사망하는 비극을 맞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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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산 개인화기들을 월남에서 무진장 들여와 분해결합부터 사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하였으나
공작원들이 지참하는 개인화기는 실미도처럼 전원 카빈소총이었는데 이유는 소형이며 총기휴대가
간편하고 고장이 적으며 자동과 조준사격이 가능하다는 장점 등으로 항상 카빈만을 휴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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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보 소총이 성능이 좋고 발각되어도 이북 군인인줄로 알게 될거고 어떻고 하지만
우리가 북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백주대낮에 걸어 다니는것도 아니므로
침투상황과 교전에 가장 효과적인 성능의총기가 카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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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독일군이나 미군처럼 기관단총을 휘두르고,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영화주인공들처럼
폭약 잔뜩 짊어지고 가서 파괴하고, 수류탄을 던져서 살상하고 부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작조는 고정들과 접선해서 주고받고 새로운 정보를 가져오고 위성으로 확인했으나 실체 구별이
잘 안 되는 것들에 대한 세밀한 근접 촬영 등이 목적인 것이지 뭔 이상한 무전기로 이불속에서
소리 죽이면서 무전치고 그런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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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원은 키 큰 사람을 쓰지 못합니다. (기밀이 아님으로 몇 가지 조금 쓰겠읍니다)
잘 먹지 못하고 사는 이북사람들 과거나 현재 평균 신장에 기준해서 공작원을 선발하고
침투시키는 것이지 어느 무식한자가 이북사람들 작은 체격에 당장 눈에 표가 나는
건장한 젊은 것을 선발해서 침투요원으로 쓰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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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원정대처럼 넘치도록 비행기에 짐을 실어 가지고 갈 수도 없고
목숨만 겨우 부지하도록 최소의 분량만 휴대하고 민첩한 기동성과 은밀이 기본인 침투공작조가
어이 그런 애들로 구성이 되겠으며, 만약 그런 애들 보낸다면 두더지굴 파고 숨는 데만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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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호(비트) 파는 것이 뒷마당에 김칫독 묻기 위한 굴 파듯이 푹푹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작게 신속히 파고 숨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장난이 아닌 눈몰 속에 이뤄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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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삽도 아닌 모종삽 비슷한 작은 삽으로, 적지에서 소리없이 파고 준비한 작은 자루에 조금씩 담아서
먼 곳으로 가서 사방으로 아주 조금씩 풀밭이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흐트려서 전혀 표 안나게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위장용 덮개만들 죽은 가지들 줏어서 발자국 다 지우면서 다시 와서 반복적으로 파고
버리는 것이고, 웬수 같은 발자국 그거 완전무결하게 없애고 밤새도록 구덩이하나 만들어 누가 바로
앞에서 오줌 누다가도 발견 못하게 위장하고 숨는 것인데 어이 장대같은 애들을 침투공작원으로
이북에 침투를 시킨다는 건지 웃지 않을 수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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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독 묻는 것도 힘든 일이건만 내 목숨 유지할 두더지굴 파는 것이 한 두 시간에 해결 되는게 아니고
군인들처럼 무지막지한 성능의 야전삽으로 부담없이 쉬어가며 잠복호 만드는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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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대에 섞여서 총과 몸만 들어가고 날이 어두워져 배낭이 도착해 잠복하며 운동화로 바꿔 신고
몇 시간을 대기. 이때는 수색대가 좌우뒤로 이선삼선 초비상경계하고 군인들도 철망 밖에서 비상대기.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시간이 지났는데 언제 있었는지 수색대 두 명이 앞에서 기어오고
적시라는 신호에 수색대와 인사 나누고 내가 가운데서 기어 침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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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 쪽은 훈련 때보다 침투가 너무 허술해서 쉽게 넘어갔다. 지뢰밭, 모래밭, 얼기설기된 목책,
철조망(철조망도 아주 허술해서 지뢰지대 빼고는 시골목장의 담장과 비슷한 수준이라 보면 비슷하다)
잠시 후 배낭 벗고 갔던 앞에 형이 다시 돌아와 배낭메고 앞서고 초병지대를 비켜 빠져 나간 것이
침투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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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백 미터를 조심스럽게 기고 오리걸음하고 이후부터 형을 따라 뛰기 시작하는데 두형들이
여기서부터 무조건 따라서 뛰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사주 경계없이 뛰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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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00까지(이런데 강계 땅이라고하면 놈들이 좀 헷갈릴건데) 밤에만 산으로, 짧은 들판을 달려
5일 걸리는데 무풍지대의 험준한 산에선 두더지굴이 필요없이 미리부터 나뭇가지 꺾어서 옆구리에
끼고 뛰다가 몇 키로 더 가서 그걸로 시야가 좀 확보되고 움푹한 곳에 깜쪽같이 이리저리 걸치고
쉬고 교대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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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갈아 신고 운동화 갈아신고 주식은 하나씩 포장한 돌처럼 단단하게 눌러 말린 라이터만한 소고기,
미룩구만하게 육 등분으로 떼어서 먹게 되어 있어 그냥 입에 넣고 우물우물거려 녹여먹듯 하면 된다.
절대 배 안 고프고 (이게 이북촌 애들 미숫가루하고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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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기밀도 아니고 다른 친구들은 미숫가루와 볶은 쌀 가지고 다녔다는데 난 이해가안감.
그거 먹고 어캐 뛰는지 (하루이삼일 단기공작조는 가능)
나물은 뛰다가 잠시쉬면서 뜯어먹고, 00형하는 말이 너 이거 산나물 잘 먹어야 오래 산다.
형, 이짓 하면서 오래 살 거 같지 않은데 우리 세명 모두... 형들이 이때 얼마나 킥킥거리면 웃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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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잘땐 약간 경사진 위쪽으로 다리를 놓고 머리를 낮게하고 자면 피로가 확 풀린다.
첨엔 불편하지만 숙달되면 아무렇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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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몇 날을 낮잠 자고 인적이 조금씩 길에 보이는 00서 몇 키로 떨어진 곳에 진출하여
위치잡고 두더지 굴을 만들고 때를 기다렸다. 하루를 교대로 실눈 뜬채 반잠을 자고
(대소변은 상황에 따라 쪼그리고 앉아서 해결하고 바닥에 흙 덮으며, 일반인들은 공작원이
맨날 구덩이나 파고 다니는 줄로 알지만 구덩이는 한번 장거리침투에 두 세 번이고 그나마
단기공작들은 팔 일도 없고 잠 잘 일도 없고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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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진 초저녁 모두 밖으로 기어 나와 형들이 하나씩 비닐과 헝겊에 싼 뭉치를
나에게 넘겨주며 그걸로 막걸리나 좀 사와라 (웃음)
00시까지 안 오면 성공한 걸로 알고 우린 기다리지 않고 떠날 테니 그런 줄 알고
00일에 00서 만나고 착오생기면 xx서 몇일몇시, 또 착오생기면 **서 몇칠몇시.
이렇게 세 곳을 정해놓고 입을 맞추어 숙지하고 형들과 작별하고 은밀과 신속으로 나르듯이
목적지로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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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가니 염려도 덜되고 잽싸게 다니고 이렇게 좋은데
저 형들이 날 보호한다고 델고 다니니 내가 돌지...
씨부렁거리며 그래도 형들이 지리는 확실하더만.
한 번도 틀린 적 없이 정확하게. 고참이 달래 고참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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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근처에서 산 너머 쪽으로 빠르게 풀을 떠내고 땅을 파서 총과 배낭 감추고
(이땐 밟고 지나가도 모른다) 소음 권총 한 개와 뭉치돈만 가지고 미끄러지듯이 15리 정도를
나르듯 뛰어 그 시각 뭘 끌고 길을 천천히 걷는 사람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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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식으로 단 한 번에 알아보고 미리 가서 잠복대기하고 있다가 미끄러지듯 집안으로 잠입성공.
(암구호 이런 거 필요 없음)
돈 뭉치 전해주고 숫자로 알려주고 목욕하고 옷갈아 입고 된장찌개에 밥 배불리 먹고 이틀 동안
잠만 잤다. 형들이 떠나는 시각을 보고 이젠 형들이 돌아가고 있겠구나 무사히 잘 가야 할텐데...
(이번엔 중강진 어느 집이라면 이 넘들 헷갈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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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다음에 쓰기로하고 여기서 일단 줄입니다.
(아무리 이북 애들이 봐도 내가 어디 다녔는지 모릅니다)
어디의 어느 집을 어떻게 가고, 거리가 얼마이고 몇 집을 가고 이런 것은 그냥 알아서
혼자만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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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던 말던 골목길 걷던 얘기들이며, 시내 구경하던 뭐하던 사실은 말할 수 없는 것이므로
대충 뒤범벅으로 썼음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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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잠을 자고 몸을 추스리고는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목표를 찾아 다시 떠났다.
(이때부터 점조직)
북한도 마찬가지지만 접선은 그동안 북파되기 전 교육을 통해 수없이 완전무결하게 암기한 후에
각기 만약의 불행을 대비해서 장소와 시간을 달리한 1 2 3차로 나뉘어 시행되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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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 개떼들처럼 수 십 명이 다니는 것도 아니고 자세한지도가 뭔 필요 있으며 달달 외워버린
지형지물에 모두 두뇌속 암기력을 이용하여 공작이 전달되고 받는 것이지, 뭔 스파이영화처럼
무전을 주고받고 어쩌고? 허리띠 속에 집어넣는 사진 필림쪼가리 말고 가지고 올 것은 무엇이며,
기밀도 아닌 누구나 다 아는 공작금 전달해주고 오면 되는 것이고 나머진 갖가지 정해진 신호로
그들이 자체적으로 본사와 오가는 것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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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고 간 옷과 신발은 이미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 남김없이 아궁이서 소각되고 날이 어두워져
한뭉치 지참하고 눈 인사 후에, 이번엔 산 아닌 한적한 들길로 운동선수처럼 뛰어 두 번째 약속장소
근처로 이동해 아무도 모르는 신호표적 확인하고 다시 뛰어 두 번째 표적확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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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옆 어느 도시라하면 이놈들이 00년 지난 지금에 이 글 보고 머리 굴리고 난리치며 찾으려고
생고생 좀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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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으로 찾아들어가고 인사 나누고 휴대품 전달해주고 나누기곱하기 몇 개 맞춘 다음에 목욕하고
밥 먹는 사이 옷과 신발 소각완료하고 그 도시 학생복으로 갈아 입고
(여기서 부터가 기억력이 확실히 필요할 때임)
조심스레 나와 골목길로 골목길로 가방 둘러 메고 놀면서 천천히 걸어 표시된 곳으로 가
주위 살필 것 없이 당당하게 들어가서 내 방?으로 들어가면 그걸로 임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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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머무르며 공부? 하고 누나하고 거리구경에, 뭐에 지시된 곳을 미리 방문해보고 버스도
타보고 다시 이틀 머무르며 공부하고 다른 방향으로 된 도주로를 따라 되돌아가서 숨겨놓은 총과
소지품 꺼내고 복구해 놓은 연후에 형들과 만나기로 한 지역으로 이틀 밤을 나르듯 뛰어 안내를 받으며
복귀한 걸로 첫 번째 임무는 종결되었었다. 오고가는데 북한이나 남한은 공작원들이 휴전선까지 도달은
걸릴데 없고 허술했던 철조망과 지뢰지대만 잘 빠져 나오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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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은 인구밀도가 적고 산악이 많고 교통량도 적어서 온 사방천지가 무풍지대라고 보면 맞다.
북한의 전방지역은 남한보다 군사시설도 많고 북한군이 곳곳에 주둔해있지만
주둔지근처가 남한과 북한의 맹점이라고 이해하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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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차로 총 한자루만 들고 마중 나와 있는 접선과 연결되어 다시 그의 안내로 조심스레 철조망 넘어서
들어온 것이 나의 첫 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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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때나 갈 때 지뢰탐지 전문가 형이 앞장서고 나머지는 같은 행동으로 사주경계하며 소리없이
따르면 되고 각기 다른 세 개의 접선 시간 중 어느 하나에 맞추어 수색대의 안내로 재빠르게
따라붙으면 즉각 암구호 속에 문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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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공작조는 베테랑 중 베테랑에서 선발되고, 어느 경우라도 얼굴만 기억하는 것이지
두 번 다시 그들을 만나지 못하게 조직되어있고 매번 호송담당이 바뀌고 단기공작조처럼 폭파를 위한
팀웍이네 뭐네 이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임무가 끝나면 각자 악수하고 안아보고 마음속으로
이별의 눈물을 흘리고 각기 다른 차량으로 신속하게 헤어지는 것이며 여하한 경우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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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 말하길 주변에 정보부 다니고 뭐하고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말하시는 분들 있읍니다.
그냥 제가 좀 웃어드리고 넘어갑니다.
정보부 아닌 보안대나 그런 군인출신들이나 대공계 경찰출신들 그런 분들이 사회에서 말하길
엄청난 사람으로 보이려고 정보부가 어떻고 간첩이 뭐고 대북공작 이런 말 과거부터 항상 잘 하십니다.
물론 그중엔 정보부서에서 요원 말고 평사무원 혹은 평직에 근무한 분들도 있겠지만
그들 신원은 확실하지만 정보부사람이 아니라고 보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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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중요요직을 담당하거나 기밀사항을 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자신의 부인한테조차
직업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증할 수 있고 그것이 그쪽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의 특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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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부장이나 직급이 높고 사회활동 접하는 고위층들은 얼굴이 알려져 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일반사회에서 어떤 사진도 찍지않습니다. (자녀 졸업식에 가서도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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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제가 말씀 드리는 내용들은 이북에서 이미 알고 있는지 오랜 사항들로 기밀이 아닌 것만 올립니다
정보원들의 사회적 공식직업은 외무부직원, 해외지사, 학원강사, 공무원, 철도국원, 체신부직원,
00체육단체, 00사회단체, 00여행사 등 남북한 모두 이렇게 평범하게 되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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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명함이나 증명서도 그렇고 사용하는 대표전화도 00학원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지 뭔...
통금 위반으로 경찰서 잡혀가서도 큰소리 한 번 못치고 야단 실컷 맞고 뇌물주고 나오기도 하고
그렇게 철저히 사회 속 평범한 양민으로 사는 것이지,
뭔 때려 부시고 경찰서장이 와서 굽신거리고 어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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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모두 대북과 대남담당 공작부서는 정보부내에 이름은 있으나 유명무실이고 실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북한도 철저하게 이 문제를 독자적으로 따로 관리하고 남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의 정보요원들도 엔지니어, 컴퓨터프로그래머, 현장소장, 비서, 하청회사직원 등 이런 식으로
일반직원들이 전혀 알지 못하게 평볌한 직함으로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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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대기업의 정보수집능력이 국가중앙정보부를 상회해서 국가안보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직접적 연결 고리가 되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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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남정책은 절대 권력자의 후광으로 남한과는 다른 조건이지만 우리도 대북은 별개문제로
정책과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지속적이고 독자적인 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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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모두 대북대남 활동자금은 중앙정보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일반기업 융자금 형식을
취하고 이 부분에서 이북이 남한에 유입시키는 공작금에 훨씬 자유로울 것으로 판단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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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북에 가서 정치국외에 대남관련부서에 전화한다고 가정하면 네 00농장입니다. 00사업소입니다.
양측 모두 과거부터 앞으로도 이렇게 끊임없이 철저하게 자신들을 숨기면서 활동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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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들어서면서 이상한? 무전기의 신호체계는 없어졌읍니다.
탐전이 너무 발달하고 위험요소가 큰데다, 근자에 인터넷과 셀룰라폰의 발달로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보면 맞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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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6년도 잠수함 침투 좌초때 무장공작조가 산으로 북상하면서 비퍼형 발신기로 두 세 번
이북공작부에 이동위치를 알린 적 있읍니다. 한 번 누르면 0.1초가 소요되는, 아주 미세한전파도
탐전이 되는데 요즘 들어 누가 무전기를 사용하겠으며 첩자용무전기는 구시대유물로 이미 25년전
박물관에 안치됐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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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기 사용하지 않는 신호전달체계에선 남한이 절대적 우위에 있었는데 요즘은 남파공작들이
한국의 인터넷을 통하여 훨씬 자유롭게 직접적전달이 잘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 "간첩 잡아 용돈 쓰자"는 구호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간첩은 걸인 차림의 행색이 많았지만
요즘은 장,단기 남파공작이나 고정들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텔리젠트한 계층이 대부분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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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 교포들속에 상식적으로 상당한 숫자가 있을 것이고
위급을 요하거나 고위층이 직접 개입해야할 그런 사안이 아니라면 육상과 해상침투도 삼가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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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만이 아닌 중국 정보부의 대 한국첩자가 조선족들 틈으로 상당수 유입되었을 것이고
군사뿐 아니라 산업에 대한 첩보활동 이런 것이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판단됩니다.
장기적 안목에서 중국에 의한 대한 군사첩보가 이북의 대남첩보 수행보다 비중이 많아지고
중대하게 될 것이며 중국을 비즈니스 때문에 자주 왕래하시는 분들은 어느 경우도 현지인과의
대화에 자신의 군사경험 발설을 삼가야 하고 입단속에 유념해야 합니다
(정보는 국가간이면 어떤 것이라도 뭐든지 정보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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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금 이시간도 남한지역에 상당수 침투하여 있을 북한의 남파공작원들에 대해 저의 소견을
써 볼까 합니다. 공작원은 인간의 극한상황을 견디도록 훈련된 기계와 같은 사람이므로,
이런 남파공작원 포착하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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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이미 들어와 눌러 살고 있는 고정들이 여행을 가장하여 침투가 용이한 지역을 찾으러
항상 다니는 것이고 남한의 실정을 잘 모르는 북한의 정보처에 사진과 도표등 상세한정보가
전달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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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십 년 전부터 남한 전 지역을 이 잡듯 뒤져 휴전선부터 해안 일대 등 몇 천 분의 일의
아주 세세한 지도로 작성이 안 된 곳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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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들의 목표는 군사 시설뿐 아니라 사회의 일반적인지식도 고정의 목표이며, 일반인에겐 전혀
무관심한 도로와 교량부터, 등산로며 등산객 출입의 대충적 숫자와 등산로 파악등 사회일각의
눈엔 스쳐가는 모든 것이 대상이 되며 바다낚시꾼으로 가장한 고정의 정보를 토대로
해안 침투에 대한 정보파악, 이렇게 고정들로부터 파악되고 전달된 것을 토대로 작전수뇌부에서
계획을 세워 남한 일대의 고정들에게 명령이 시달되고 이차삼차 세밀한 분석과 실현가능성을
분석완료해서 성공 가능한 지역으로 침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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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막론하고 고정의 헌신적 정보를 토대로 하지 않는 침투는 실패확률이 너무 많으므로
공작들의 침투엔 반드시 고정이 있었다고 보면 맞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정들 잡아내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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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차량과 도로가 발달되고 레져가 발달해서 산으로 들로 해안가로 놀러 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실상 특정 몇 곳을 제외하고는 통제도 어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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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정보는 북한에 완전히 노출된 지 이미 오래전이고, 북한지역은 미국의 정찰위성과
산업위성들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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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선 정권들의 협약 이런거 상관없이 정보부처단위로 내부적으론
끊임없는 침투가 이뤄지고 누가 대통령을 하던, 김일성이 죽던, 정보부장이 잘리고
이런 것은 공작하고는 사실상 무관하다고보면 맞고,
위정자와 국회의원들에 의한 정보부의 기밀문제들이 심사되거나 결정되어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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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이나 5년짜리 임기의 한시적 월급쟁이인 국회와 대통령이 간여할 일이 아니란 것이 저의 소견인
것입니다. 그 애들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각 부서적체계로 연속되어 내려오는 문제들이라 깊은
지식없이 권력으로 정보처를 좌지우지 결정짓는다면 수 십 년동안 공들려 쌓아온 적지속의 국방의
촉각들이 우수수 무너져 내리고 적지의 정보망이 붕괴되면 국방의 안위와 국민의 생존이 즉각적으로
중대한 타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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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한민국의 실권을 잡던지, 정보부장을 자기사람으로 채우던 말던 대북 공작에 관해서는
간섭하지 말아야하고 예산의 삭감을 하거나 보직을 멋대로 인사처리해서도 안 됩니다.
대북공작은 몇 년 임기 후 짤리는 대통령의 자리와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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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에서 남한에 고정 만들기는 쉬워도, 남한에서 북한에 고정을 보존하기 위하여 자결하고 죽어간
알려지지 않은 애국적 목숨이 너무도 많고, 그들의 첩보를 토대로 국방의 지표가 되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정권들이 대북업무를 실적도 없고 정치에 생색도 안나는 구석이라 하여 홀대들 많이 했지만
그들이 현재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불가결하게 공헌한 것이 대북공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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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각 부분에 있는 말초 신경이 없으면 감각이 둔해져서 위험을 감지 못하고
위험 대처능력 부족으로 반사성이 둔화되어 죽음을 당할 공산이 큰 것과 같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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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요약해서, 각 부대 단위별로 일선의 첨병과 수색과 정찰없이 전투를 하면,
그 부대의 생존이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내무반 초병이 없이는 잠자는 사병들의 목숨이 없는 것과
같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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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 생각엔 첩자가 모르스 무전기로 소리내어 정보를 전달하고 007 처럼 변장에 능하고
소음 권총을 쏴대고 여자를 거느리고 이런 환상들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이 발생하는 지역이 따로 있을 것이지만 전 솔직히 대충 감으로
생각은 해도 그 방면은 전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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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투공작원이 필요한 것은 남북한 모두 대체로 공작금전달, 요원호송, 정보반출, 납치, 폭파, 암살 등
필요에 의해 이뤄집니다.(군 장성 납치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이런데 사안을
두는 것이 아니고 일반인을 납치하여 무장공작원 및 간첩교육용으로 사용한 것이 과거엔 많았읍니다)
지금은 탈출한 북한주민만으로도 쉽게 현지실정을 알 수 있는 기회도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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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북한의 공작원이 침투하여 그가 사회에서 암약하는 고정이 된다면 찾는 방법이 어렵겠으나
무장공비로 일컬어지는 호송과 정찰 및 파괴를 하는, 사회로 나오지 못하고 산 속에서 활동해야 하는
남파 무장공작원은 일반병사들이 이들을 다루기엔 단수가 너무 모자른 것으로서 근래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북파공작원들을 활용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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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고충을 각 곳 홈페이지에 들어가 살펴보니 짐승처럼 훈련시켜 국가가 목숨을 저당 잡아
이용하고 사용가치가 없어지자 개패듯 패기도하고 보수를 지불 않고 부상자에 대한 원호대책도 없고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뒷조사를 해서 직업을 갖게 하지 못하는 방해책동과 여권발급 불허해서
해외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도저히 그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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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출신들 중에 이 부분에 회의적인 분들도 많을 겁니다.
저는 그런 일 당해보지 않아서 수긍이 안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당했으니 사생결단하고 집단 시위를
벌이는 것로 판단됩니다. 공작원의 구성을 특성상 현역군인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국민들이 먼저
이해하셔야하고 국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들의 임기 후 뒷 조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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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에 다녔으니 혹시라도 북에 이중 등록된 첩자가 아닐까?
** 무장공작원으로 인간기계가 되었으니 퇴직 후 사회에 나가서 일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 저들이 북에서 파괴 공작하던 경험으로 남한을 부수지는 않을까?
** 침투하여 문서 절취하던 실력으로 남한의 정보를 빼가지 않을까?
** 직장 잡아 일하다가 사회에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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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여러 가지 염려되는 문제들로 인하여 그들을 이용 후에 사회에서 매장시키려는
황당한 짓들이 있는 것 같은데 간단히 말해서 그들이 폭력성이 좀 있는 사람이라 해도 내 나라
국민이고 그들을 그렇게 훈련시킨 것도 대한민국 사람이었고 그들이 대한민국의 사명을 받고
이북에 침투하여 암살하고 폭파하고 절취한 것인데 이후에 그들을 애국지사로 받들지는 못할 망정....
단기공작원 그들의 주장도 일리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자세히 각자의 주장을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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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의견은 가급적 그들을 퇴사 후에 대한민국의 인적자원으로 활용을 하되 그들의 체력과 절대적
경험을 바탕으로 남파 무장공작원을 색출하는 임무를 부여하고 활동케 하면 합당할 것 같습니다.
직업군인의 보수와 처우로 하고 직업군인에 적용되는 혜택을 부여하고 임기 중 사망하면 국립묘지
안장부터 사망시 지급되는 위로금 및 연금 등 각종 혜택을 차별없이 부여하면 그들 공작원 출신들도
좋고 국가도 좋은 방안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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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대북 단기공작이 축소되었다하더라도 북측에 대한 남한의 공작은 중지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물론 분위기상 파괴공작은 삼가야 할 부분도 더러 있을 것이나 물색하고 꼬임위주로 하던
과거의 행태를 버리고 북파공작원을 사회로부터 공개모집해서 지원자에 한해 정당한 보수를 지불하고
훈련을 시키고 그들을 그냥 놀고먹게 버려둘 것이 아니라 무장공비 출몰 가능성 있는 해안이나
산악지역에 투입하여 남파공작들을 사전에 분쇄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합당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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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군인들을 현역들이 교육하고 남파 무장공작을 색출시키는 경계병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과거 실력이 미숙한 국가 대표 중에 나이든 고참 순으로 축구국가대표감독을 연줄로 맡으며
허구헌날 같은 수준의 국가대표를 양성하여 단 일승도 하지 못했던 월드컵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공작에 관하여 히딩크보다도 훨씬 노련한 관록있는 북파공작원출신들을 구제하고
그들을 정착시킬 수 있도록 지혜를 좀 모아보시기를 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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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물에서 놀고 목숨을 저당하고 이북의 산하에서 산전수전을 겪어본 백전노장들로 소정의 교육을
이수케 하고, 그들이 직접 자신의 값진 경험을 토대로 현역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교육담당으로
활용도 하고 북파공작원훈련을 양성화해서 평시엔 젊은 그들로 하여금 남파 공작원 색출과 기도 은닉의
사전 분쇄를 위한 산악과 해안탐색 및 잠복 등으로 민생치안의 안정과 국방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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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오랜 경험으로 공작원의 가장 큰 적은 공작원인 것입니다.
북한은 과거부터 북파 공작원이 포착되면, 남파공작 전문부대인원이 출격하고 그들의 지시와 참여로
추격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일반병사들로는 대량의 인원투입으로 차단과 잠복과 수색이 이뤄지지만
공작 부대가 출격하면 그들은 북파공작을 맞상대로 자신들의 고도화된 훈련 방식을 적용해 사냥개가
되어 추격전을 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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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전 지역을 꿰뚫어보고 도피 가능한 지역을 파악하여 북파들을 생고생하게 만드는 주요 임무를
그들이 맡는 것입니다. 그들의 숫자가 적어 그들로부터 직접 잡히는 공작들이 많지는 않겠으나
그들의 지략에 포착되어 섬멸된 북파들이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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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파괴공작원들은 포착시 그들과 조우하게 될 일이 드물겟으나 장거리 침투공작원들에게
가장 치명타가 이 애들의 두뇌와 체력과 경험입니다. 제가 00년전 몇 번째? 침투중
(평양근교라고 하겠읍니다)
평양근교의 보통 야산6부 능선에서 초저녁 해질 무렵에 포착되어 죽음직전에 간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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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발각된 지는 모르나 이상해서 살펴보니 북괴군이 아래에서 수색하며 좁혀오고 시야에 들어온
것만도 상당한 병력이라 간단히 이제 죽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읍니다.
비트 속에선 항상 위급시 어떤 행동방향을 미리 설정해놓고 상황 대처를 하며 헤어져도
다시 만나는 지점들을 여기저기 설정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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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선 단독으로 각자 적지를 탈출해야 효율적이지만 동료들과 삶과 죽음을 언제나 같이
해야기에 머리 굴려 일단 남으로 뛰고 어느 지점?에서 서부해안가로 탈출시도를 노출시키자
결정하고 세 명이서 동시에 배낭은 포기하고 식량을 주머니에 휴대하고 카빈과 실탄과 수통,
지도만 소지하고 구르며 뛰기 시작한 적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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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상황을 참고적으로 약간 기술한다면, 반잠을 자던 나와 형은 아주 골아 떨어졌고
외부를 살피던 형이 톡톡 건드려 일어났더니 걸린것 같다 해서 다릴 주므르며 혈액 순환을 도운며
숙의하고 각자 뚜껑을 조금 열어 보며 확인 후 의견이 걸렸다고 결정되어 튀기로 한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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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산중 시계가 좋은 곳이라 6부에 발길 닿지 않을 곳 낮은 지점을 보수하여 나무와 풀로 깜쪽같이
위장하뒤 잠을 자고 있었는데 출발 몇 시간 전에 발각이 된 겁니다. 지금도 그때 왜 포착됬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당시 생각에 형 하나가 미련하게 대소변 때문에 밖으로 기어나갔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본인이 아니라 해서 덮어두고 모른 체 했던 일이고, 그때 두더지 굴도 아니고
얕은 곳 적지를 골라 누워있을 정도였는데 대소변도 누운 채로 해결해서 땅을 파고 처리해야
하는 건데 그게 잘못있던 걸로 두고두고 생각나던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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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기어 나와 중턱을 타고달리다 그들의 시야에서 안보이면 산 넘어 무작정 남으로 튀기로 하고
실행하는데 산 아래서 올라오던 놈들로부터 직접사가 시작되어 총알이 사방에 박히는 겁니다.
일반병들 그때나 지금이나 뻔한 것이 이런 상황서 엎드려쏴, 앉아쏴가 아니고 자신들 숫자가 많으니까
흥분해서 뛰어오며 쏘아댑니다.
하도 급해서 뛰며 뒤를 돌아봤더니 잘하면 살겠다 생각이 드는데 딱 들어 맞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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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를 돌아서면서 형 하나는 산 넘어를 살펴 판단하기로 하고 00형하고 둘이서 어차피 죽은 거
저것들하고 같이 가자는 맘에 육안으로 들어오는 한 놈씩 조준사격으로 사살하고
이때 우리 살겠다고 죄 없는 일반 북괴 군인들 참 많이 죽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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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보이는 대로 정확하게 잡아버리니 흥분해서 정신없이 올라오다가 나중엔 머리도 못들고
굴러서 도망가는 난리법석 떨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선 합니다.
일반사병들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대체로 마찬가집니다
하여간 공작원은 발견 즉시 사살 못하고 놓치면 이후엔 도망치는 산짐승이라고 생각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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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신속히 산 넘어 어두워지는 사방을 살피고 도피로 정해 놓은 쪽으로 보니 북괴군들이 몰려들고
있어 완전히 어두울 때까지 산속서 있기로 하고 이동 중 도피로 쪽의 북괴군이 그물망이 아닌
분대 대형으로 분산되어 수색하며 오는 그곳으로 정면 돌파로 빠지기로 결정하고, 내려가며 그들의
틈새 쪽으로 은밀 이동하다가 그들을 좌우쪽 이십여 미터로 지나게 하고 숨죽이다가 빠져나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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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이 완전히 오질 못해서 5분 대기조 정도 병력이었기에 살아난 것이지만 공작은 죽는 순간도
기도은닉의 대담함이 목숨을 지탱해 준다) 위험한 순간에는 나를 죽이고 숨으면 살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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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빠지면서 뛰는데 대규모병력들이 차량으로, 구보로 집결하는데 과감한 순간적 결단이 없었으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이후 사방팔방서 병력이 분산 배치되는데 오로지 체력과 죽음을 불사한 돌파로
살아남은 거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현역들이 공작원들의 기동성을 간파 못해 지나고 난 뒤에서 찾는 건
어쩔 수 없을 때였다)
모처로 신속 돌파하여 서부로 방향을 틀고 서해 쪽으로 향하여 뛰다가 다시 북쪽으로 새벽까지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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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고지의 산속으로 숨어들어 도피처구축을 했는데 그때 그 일대를 탐색하던 무리들이 있었고
이 애들이 분명 북한의 정예남파공작원들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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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우리가 탈출하여 서쪽으로 뛰었다 허를 찔러 북상했을 때 우리의 계산대로는
탈출지점서만 직선거리로 50 키로가 넘는 그곳 산악에 수색대가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인데 어쨌던 수 십 명이었던 그들에게 발각은 안 되고
동해쪽으로 방향을 틀어 중부전선으로 넘어와서 귀환했지만 이렇듯이 공작조를 잡는덴
상대의 노련한 공작조의 적중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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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 것이고 과부심정은 과부가 홀아비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하면
이해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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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침투해 보진 않았지만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나 경험자들을 사시사철 어느 곳에나 있는
무장공작원 토벌에 사용한다면 그들 사기에도 좋고 현역 군인들 경험에도 좋고 나쁠 일은 전혀
없을 것으로 판단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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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착 는 나를 죽이면 산다 !
24시간 중 어느 때나 깨어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지금도 어느 하늘 아래에는
꿏다운 청춘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음식도 아닌거 조금씩 먹어가면서 반 잠들어 있을 것이고
어느 청춘의 불꽃은 산비탈 어느 곳에서 산짐승이 되어 뛰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 참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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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짐승이 그렇듯이 공작원은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눈을 절반 뜨고 자는 반 잠이고
그것도 깊은 잠들까봐 1시간정도씩 교대로 자야 하고, 토끼의 귀를 하고 사방의 소리를 감지하면서
수시로 손톱으로 귀를 꼬집어 깨어놔야 하고 각자 서로를 잠 못 들게 고문을 해야 합니다.
비 오는 날은 작업모자 하나로 하늘을 받치고 덜덜 떨면서 그렇게 반 잠을 자고 간혹 생각나는 것이
언제나 두 다리 길게 하고 엄마다리 베고 늘어지게 자 볼까나... 이런 저런 생각이 산중생활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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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왜 그들을 죽였지? 내가 조금만 조심했으면 그들과 만나지도 않고 죽일 일도 없었을 텐데
나보다 나이 많은 형들 일텐데, 그**들도 부모가 있고 형제자매 다 있을 텐데...
병신 놈**들 그냥 수풀이나 뒤지면서 옆으로나 다닐 것이지 왜 횡렬로 곧장 올라올게 뭐냐
**새끼들...날이라도 어스름해서 그나마 덜 죽고 그 정도지, 대낮이었으면 너들 모두죽고 나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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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공작조는 남북한 모두 기본이 3인조인데 1인이나 2인보다 가장 효율적이라 그렇게 한다.
앞- 전방침투 중간-전방과 좌우경계 맨 뒤- 엄호와 뒤를 담당.
철조망 통과도 3인이 가장 효율적이고 유사시 맨 앞을 달리던 정탐이 정지엄호
중간이 계속 달려 나가 정탐, 맨 뒤가 달려 나가 엄호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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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반복행동에 용이하고, 산악 곳곳에 있는 장애지대들 넘어가고 내려가는데도 가장 효과적이고
누구도 동료를 그렇게는 못하지만, 심각한 부상시 사살 또는 자결하게 하고 나머지 2인으로 공작완료
하기 위해서도 3인이 되는 이유고, 탈출시 2인을 보호하기 위해 1인 도피로 유인하기 위함도 있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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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초저녁 북괴군을 처음으로 다수 사살하고 북으로 방향을 틀어 00지역 700 고지로 잠입하여
은신하고 죽은 나뭇가지들 주워 모아 풀을 덮었는데 이때가 3시경이었고 형의 의견으로 1급지를
선택하기로 했는데 형의 의견은 누구나 1급지와 3급지는 피하고 2급지를 택하는 것이 기본이므로
여기 산세도 좋고 무성하니까 1급지에 은신하자해 조용히 숨어 말린 쇠고기를 입에 하나 넣으며
풀잎사이로 사주경계 속에 눈을 번득이는데 한 시간 정도 후 산중턱을 타고 저쪽서 수색하는 무리들이
보이는데 북괴 남파 전문부대 애들입니다.
(판별교육의 기본사항이고 선임조장이 그렇다면그런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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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일반사병들은 데스캅이 기본이고 공작원은 작업모를 사용하므로 단번에 알아봤는데
xx형이 나를 기대 누으라고 살그머니 미는 것입니다.
얼굴은 진흙을 묻혀 위장색해서 뻣뻣한데 눈만 깜빡이고 죽기 살기로 도피했을 때
그들 지근거리서 수색해오면 단번에 들키는 것이 땀 냄새 때문에 위험하고,
이런 상황서 발각되면 튀어도 살 가망이 적은 것이, 우린 지치고 숫자도 안 되고 실력이 같은 상황이라
가장 좋은 방법이 공작원들의 은밀 은신입니다. 언제나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나를 죽이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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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위급상황선 내 자신 현재의 위치에서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아무동작도 취하지 말라는
얘깁니다. 살아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중지하고, 가렵거나 무섭거나 뱀이 혓바닥으로 얼굴을 핥아도
움직이지 말고 침도 삼키지 말고 모든 동작중지하고 죽었다고 생각해야 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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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들이 신기한 것은, 사람이 한 두 명 반듯하게 누울 자리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이삼백고지 야산은 누울 자리가 더러 있는데 큰 산일수록 그런 자리가 없읍니다.
언제나 조금 움푹한 곳 찾아 비트를 만들지만 칼잠으로 쪼그려 눞거나 그런게 전부입니다.
등산 좋아하거나 산악훈련 뛰어보신 분들은 이해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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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몸도 힘들고 기어봐야 수색조한테 걸릴 수 있으니 아예 낮을 보내고 행동하기로 했는데
그 상황서 잠이 오겠읍니까. 그리고 평시 산악 돌파땐 이렇게 힘들진 않았는데
배낭도 버리고 총과 실탄만 지니고 뛰었는데도 온몸이 너무 아픕니다.
긴장이 너무 심한상태서 뛰면 원래 힘든 거라고 말해주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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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종일 엎드려 위장한 풀잎나뭇잎 틈새로 늑대를 피해 숨은 산토끼신세로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9시가 되니 00형이 손짓으로 나갈 준비하란다.
기어가는 뱀처럼 소리없이 나가 살펴보고 다시 기어와 나가도 된다고 하는,
지뢰에 대해선 모르는게 없다고 늘 말하던 00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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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 지뢰를 어디에 깔아놔도 지형을 보면 감으로 어디에 묻었는지 칼 없이도 안다는 전문가인데
침투 때 가장 위험한일담당이 전방의 지뢰담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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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줄기를 타고 중부 **로 가서 거기서 지그재그로 남하해서 중부전선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끄덕..
지리시간에 배우는 서산대사가 은거하던 그 묘향산자락을 삵괭이처럼 타고 넘어 이때 하룻밤 뛰는
거리만 대략 60~80키로 정도는 되는데 북한전국의 모형물에 무풍지대가 표기돼 있어 그 지역을 만나면
들길로 뛰어도 조심만하면 별 문제 없습니다.
-남북공작원들 공통된 도피전술이 일직선이 아니고 상황판단해서 동서로 헛걸음 많이 하고
아무리 안전하게 갈 수 있어도 반복적으로 회피운동 후에 휴전선에 접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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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북에서 공작조가 포착되어 도피중이면, 북한군의 이동과 토벌작전으로, 남한 전 휴전선 경계지역에
비상 걸려 발칵 뒤집히고 남한에서 미리 다 알고 수색조들 휴전선 내부요소요소에 바글바글합니다.
어딘가에 있는 고정들로부터 북괴군의 색출작전이 모종의 신호로 전달되고
어느 곳으로 복귀하던 들어오기만 하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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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서 군대 조금만 움직여 휴전선지역으로 작전 나가면 낮이던 밤이던 도착하기 전에 이북 애들이
방송합니다. 00부대 장병들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읍니다 ~~ 슬픈 유행가 팡팡 틀고~
공작원들 침투 전 철망가 벙커에서 수색대에 섞여, 비무장지대 며칠씩 들락거리면서 기회를 포착하러
다니다 듣게 되는데 근처에 작전 나온 부대며 교체된 부대 귀신같이 알아내고 이런거 남북이
똑같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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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공작들은 휴전선 가까운 곳에서 공작완료 후에 쏜살같이 남으로만 달려 순식간에 넘어가겠지만
장거리공작은 이런 회피도주가 양측 다 기본으로 채택되어 조장형의 움직임에 따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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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침투를 가장 효과적으로 추적하는 방법은, 도피가 완전히 확인되면 현역들 다 빠지게 하고
공작들을 그 자리에 투입시켜 흔적을 찾으며 추격하게 하여 그들이 육감과 흔적으로 추적가능하고
포착시간부터 40키로 정도의 동서남북 외곽지대에 현역들을 배치해야하고 배치는 분대단위로
들판에 하는 것이 효율이 좋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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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수색할 것이 아니라 현역들을 산에서 떨어진 들판에 잠복시키고 산과 산이 이어지는 작은들
이런데 곳곳에 배치하면 이동 중 걸리게 되어 있는데, 전문성이 없이 산짐승의 뒤를 쫓고 산속만
훑어 놓고 지나다니니 잡기가 어렵고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들로 튀면 산에서 봐야 하고, 산으로 튀면 들에서 봐야 식별이 잘 되고 들에서 육안수색하면
아무리 우거진 산속에서라도 도피가 쉽지 않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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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래전이지만 잠수함사건 96년도 북한무장공작원 색출 때 특전대들 산속으로 뒤지고 다니는 걸
보고 옛 생각 참 많이 했읍니다. 공작원들이 투입되어 지휘해서 수색하면 저렇게 안 할텐데...
저렇게 하면 모두 놓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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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공작들은 지도를 소지하지만 지도 없어도 지형을 보면 대충 어딘지 다 알게 교육되어
있기 때문에 포착하면 먼 거리로 포위망을 구축해야 하는 건데, 어린애들 물고기 잡듯 들어가서
그대로 첨벙거려 흙탕물 만들어 버리니 공작들이 도주하기에 얼마나 좋을 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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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한 공작을 육안으로 숲을 뒤져서 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그들이 산을 타고 뛰어 지칠만한
거리에 들판과 산과 산이 연결되는 그런 곳에 병력을 잠복 배치해야 하는 겁니다.
아마 남북한의 경험 있는 공작원출신들이 색출을 지휘하면 제 의견대로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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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공작원은 상대공작원으로 추적시켜야 한다는 글을 보신 분은 대충 이해가 가실 겁니다.
북파출신 노련한 인원들 썩히지 말고 그들이 공비색출을 전담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 부상으로 불구가 되신 분은 현역수색부대에 작전지휘를 맡기고 건각들로 수색조 편성해서
체력 좋은 특전용사들을 지휘해 대간첩작전에 운영해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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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작 부대가 하는 것을 우리는 따를 수 없다면 저는 할 말이 없읍니다.
무장공비는 이 시간 우리 대한민국의 산속에 상당수 항시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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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일기 예보가 뭘까?
뭔 말이지 하며 좀 궁금해 할 수 있읍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라면 이북 방송 중에 밤새 지겹도록 암호를 방송으로 내보내는
"동해바다17호 323726975" 이런 숫자방송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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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방송용 목소리는 톤이 카랑하고 알아 듣기 쉬운 여자요원들이 합니다.
암호방송이라도 상대측 암호해독에 혼란을 주려고 헛된 숫자 방송이 많고 그중 자신의 암호가
공작원 암호명과 함께 두 번씩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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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암호 해독반들이 상당수 있는데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항상 철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암호는 수학계산 방법으로 풀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도피시 주로 사용하는 암호는
방송자와 청취수신자만이 아는 것으로 해독반이 수 백 명이 붙어도 해독 불가능한 것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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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전담반들이 각 군마다 있지만 공작암호는 필요에 의하여 대낮에도 더러 일반방송으로
아무도 못 알아 듣게 방송되기도 하고 주로 야간특정시간에 암호를 대량으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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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문법이던 조합식이던 여러 종류가 있지만 연연하지 않고 공작원들이 다급하게 도피시
방송하는 일기예보 암호가 있는데 조심스럽게 약간의 혼동을 드리면서 올리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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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이라 불리는 고정에 가까운 장기 숙박자는 일일이 기억을 다 못하기에
난수표-숫자로 0~9번까지 조합해서 숫자로 지령을 받고 숫자로 보고하는데
그것을 자신만이 해독하는 수첩을 가지고 있지만 침투공작원들은 침투 전에 암호를
완벽하게 외워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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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알아듣지 못하도록 약간 변형해서 말씀 드리겠읍니다.
공작원은 다음 방문 예정지가 설정되면, 축소된 입체지형 지물 표본을 놓고 암기 교육을 받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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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아주 세밀해서 지형이 한 눈에 들어오고 현지에 가보면 정말 똑같을 정도로 정교한 표본인데
공중촬영을 토대로 입체감을 살려 만든 것으로 낙하산부대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품질이 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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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수일동안 세세한지형까지 지도와 함께 비교하면서 암기를 시작합니다,
1차 침투예정지, 2차 침투예정지, 3차 침투예정지 등 예비로 준비하고 상황에 따라 예정지를
변경도 하는데 이와 더불어 일기예보를 청취문제로 교육담당이 준비한 지형들을 전부 익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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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투목적지(이북)의 침투와 도피가 예상되는 지역곳곳을 뒤바꿔서 이름을 붙여놓는데
묘향산을 개마고원이라 하고 금강산지역을 청천강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모든 것을 완벽할 때까지 외워야하고 틀리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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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에 침투한 공작원이 발각되어 도피가 시작되면 공중정보로(우주 정찰?) 이후에 도피를 돕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오는데 북한군의 공작원보다 우리측 공작들의 안전이 좀 나은 것은 요것이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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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이 포착되어 신속, 은밀한 도피가 시작되면 해당 기관서는 거의 같은 시간 대에 공작원이
추적당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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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고정들이 즉각 군대의 이동을 감지하는데 북한에 있는 남한고정은 열악하고 남한의
북한첩자들은 숫자도 많고 행동 자유가 많아서 북한이 훨씬 유리하지만 우리는 하늘위에 뭐를
사용할 수 있어서 서로 장단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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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은 임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발신하는 무전기를 저는 지녀본 적이 없고 그게 필요하지도 않고
작은 수신기 하나에 의지해서 긴급시 이어폰을 끼고서 튀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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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에는 남침간첩들이 무식하게 모르스 무전기로 소리 내다가 걸리기도 하고
탐전반에 포착되어 체포되고 하였지만 그런 건 좀 무식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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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기에서 들려주는 일기 예보를 들으면서 세세하게 구분되어진 이름 들중 개마고원쪽으로
비구름이 몰려오고 비구름이 벽산지점으로 이동한다고 방송이 나오면 북수색조들이 개마고원이라고
명명된 지역으로 오는 것이고 공작원은 도피방향을 가짜로 이름붙인 벽산으로 알고 그리로 튀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른 것이 개발되었겠지만 거리를 알려주는 방법과 어디로 튀고 이런 건 생략 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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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반드시 상관없는 거짓 방송이 나오지만 내가 암기한 것만 듣고 모르는 것은 그들을 속이느라
나오는 것으로 그냥 지나버리면 되고,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방송을 하며 어떤 상황에선 다급하면
일반방송에서 느닷없이 임시방송처럼 일기 예보를 하면 그게 그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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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전문 공작원들은 반드시 암기해야하는 일기예보를 만약에 기억 못하면
적발시 도주 중에 죽을 확률이 많아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달달 외워야 합니다.
공작원들 교육수준이 부족하고 흉폭한 자들로 구성되고 어쩌고 낭설이 많지만
일반인들이 말하는 새머리와 닭 머리들은 절대 공작원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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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실미도처럼 김일성궁전을 침투하여 폭파하고 전원 옥쇄한다는 정해진 수순이라면 모르지만
장거리 전문공작원은 교육수준과 두뇌가 체력과 더불어 수준이상이어야만 할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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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가 어린 시절에 형들과 도망치던 글 쓴걸 기억하시는 분 계실 겁니다.
그때 묘향산(개마고원)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달리던 시절에 조장형이 일기예보 들으며
앞서 달리고 저는 항상 가운데, 다른 형이 뒤에서 사주경계하며 달리던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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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중에 앞사람은 지리를 잘 알아서 안내역이고 뒤에 서는 사람은 흔적이 생기면
흔적 없애는 전문가이며 가운데가 기밀 중 기밀을 요하는 요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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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하게 뒤죽박죽으로 지형지물에 이름을 붙이고 일기예보를 들으면서 튀기에
어느 암호해독가도 풀 수 없읍니다.
이북 어느 곳에서 공작원이 발각되어 도망을 하게 되고 북한군이 추적에 동원되면
이게 금새 남한에 정보가 들어오고 불과 얼마 후부터 일기예보가 흘러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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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북 일기예보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과거엔 방송으로 이북 일기예보가 나오면
북한군도 추적당하는 공작들의 도피 안내가 시작된 걸 감 잡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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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의 하늘이 멀쩡한데도 황당하게 비구름을 동반한 폭풍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간다는데
그들이 모를 리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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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의 일기에보가 나오면 숨바꼭질이 결사적으로 벌어지는 것임을 공작원 출신들은 압니다.
해당부서의 기간병들 완전히 비상 걸리고 휴전선지역이 긴장으로 숨넘어가고
무사히 도피가 완료되어 안전해질 때까지 그렇게 지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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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좌초로 도피하던 북한공작들이 자신들 위치가 노출되는 발신기를 왜 사용한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 자신들 위치를 보고하고 방송으로 도피위치를 지령받느라 그런 것 같지만
남한의 탐전 능력을 잘 몰라 그런게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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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미세한 0.5초의 전파발신도 포착되는 건데, 도피하며 자신들을 노출시키며 도망한 것이
너무 이상했는데 잠수함 사건때 북한방송도 일기예보 아니면 그들의 암호체계로 계속 도피안내
방송을 내보냈을 겁니다. 안 들어봐서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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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국민들은 그 시간 친구들과 어울려 술잔도 기울이겠지만
관련자들에겐 다들 안타까운 순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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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한순간 실수와 방심과 부상이 따르면 최후에는 자결해야하고
혹은 동료를 적지에서 살해하고 도망해야하는 절대 절명의 순간들이 너무 많은데
그걸 다 지혜롭게 넘기고 지금까지 사는 걸 생각하면 목숨이란게 끈질긴 것이라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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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부대의 시간당 구보력의 신뢰성은?
저의 경험담에 기준해서 쓰는 것이니 그냥 편하게 보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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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김신조124부대 청와대 습격 사건 때 한국군 수뇌부들이 북한남파공작들의 기동력을
간파 못하고 한국군의 구보력에 기준해서 시속 삼사킬로로 계산하고 포위선을 구축하느라
뒷북만 치고 청와대까지 진출하게 만들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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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신조가 붙잡히고 티비에 나와서 피곤한 모습으로 현장서 잠시 중계가 됐었읍니다.
청와대를 까러오고 박정희 목을 자르러왔다고 담담하게 말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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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남파된 124군 북괴특수부대원들이 훈련시 완전군장으로 시속 10키로 미터를 달렸다 해서
국군수뇌부들이 아연 실색 했었습니다. 이유는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실제로 그들이 휴전선 침투 후
야간 돌파한 시간대를 재어보니 맞았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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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이 완료된 이후에 이들의 구보력을 따라잡는다고 낙하산 부대가 완전군장에 산악훈련으로
불과 얼마 후 공식 발표로 나온 것이 시속12킬로가 발표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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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략 4키로미터 정도가 국군의 구보력인데 이것을 3배의속도로 진전시켰다고
구보하는 군인들 사진과 함께 국민들 사기 진작을 위한 기사가 크게 나왔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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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전 어느 분이 하루 얼마나 뛰냐고 물어 보시길래 30킬로 군장 메고 100킬로 뛴 적 있다고
햇읍니다. 연속적으로도 가능하다했는데 오늘은 따져가며 구보력에 관해 글을 좀 쓸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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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뛰는 국가 대표급 육상선수가 몇 십 년전 팬티바람으로 10키로미터를 31분에 뛰던 것이
한국 기록이었습니다. 요즘은 제가 관심을 덜 가져서 모르지만 대략 27분대 정도 나올 겁니다.
42키로 마라톤 풀코스는 당시 국가대표급 선수가 2시간30분대였으면 요즘은 2시간10분대정도
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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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낙하산부대가 완전 군장을 하고 워카신고 군복에 총에 다 들고
국가대표 육상선수의 절반속도인 시속 10키로미터로 돌파했다 이렇게 나왔읍니다.
아마 10키로미터만 아스팔트길에서 실시한다면 거의 가능할 수 있을 겁니다만
연속적으론 절대 될 수가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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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들이 죽기 살기로 모래주머니에 쪼끼에 입고 배낭 메고서 기본훈련이 주야로 뛰는 것만 하는데
정확한 거리계산은 없었고 대략 시간당 10키로 정도 뛴다 이런 겁니다.
우월감을 갖기위해서 항상 과장된 발표가 나오는건데 실제로 산길서는 이런 기록이 나올 수는 없읍니다
오르막 내리막길에서 군장을 다하고 평지에서 달리는 육상선수의 절반 속도가 나온다는 것은 분명히
거짓이지만 그만큼 많이 뛴다고 발표가됩니다.
일반 아스팔트도 아니고 완전군장하고 산악구보가 그런 속도로는 이뤄질 수 없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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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훈련받을 땐 모래주머니 조끼 다 벗고 배낭만 메고 뛰면 거의 그 정도 속도가 붙기는 합니다.
독종 만든다고 하루에 100키로 뛰고 다음날 또 뛴 적은 있읍니다. 이런 날은 온 몸이 너무 아파서
잠을 못 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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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북파되면 속도를 많이 줄이는 것은, 오로지 야간 은밀 기동으로 돌파를 하고
밤 시간부터 비트 구축하는 새벽3시 정도까지만 뛰기 때문에 훈련 때만큼 계속적으로 뛸 수가 없고
유사시 힘을 비축해야하니까 항상 적게 달립니다.
발소리 적게 하고 가볍게 달리기위해 운동화를 많이 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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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하루 밤에 오십이나 육십키로쯤 달린다 보면 되고 그리고 새벽에 은신장소물색해서
위장하는 것을 새벽 동트기 전에 다 끝내야 해서 3시정도에 정지하고 주변을 샅샅이 뒤져본 뒤
적격지를 찾아 은신지를 구축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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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많을 땐 일곱여덟시간 거의 달리기만 하는데 이때 거리가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략 50킬로에서 70키로정도 잡지만 보통 50키로 정도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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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엄청 잘 뛰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들의 구보라서 야생동물같은
민첩함이 나옵니다만 만약 산악구보라도, 길 아닌 수풀로 돌파한다면 속도는 현저히 떨어집니다.
산길로 주로 뛰는데 산길은 사람이 다니며 만들어진 자연길이라서 아무리 깊은 산이라도 험한 길은
많지 않다 보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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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 경험으로 시속10키로던 12키로던 이런 것이 부질없는 게 정해진 코스가 아니라서
환경에 따라 다른 속도가 나오는 겁니다. 급하게 도망할 땐 배낭 버리고 총하고 실탄 이런 것만
챙겨서 뛰는데 이땐 나르듯 뛰어서 속도가 얼마 나왔는진 모르지만 엄청나게 뛴 적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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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오늘은 군장하고 얼마나 뛸 수 있나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 봤읍니다.
북파공작원은 일반군인들과는 너무나 다른 훈련을 하기에 괴력이생기지만 군인들은 불가할텐데
발표는 항상 시속12키로의 속도로 달린다 해서 저의 의견을 좀 적어 보았읍니다
낙하산 부대던 일반보병들이건 완전군장으로 산악구보하면 실제로 시속 5킬로 정도일 걸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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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포 생포공작원들이 서울까지 삼일에 돌파한다는 것은 육로를 지칭한듯 하지만
군장을 메고는 산악돌파가 절대 불가능하지만 국로를 달렸던 어디를 달렸던
자료가 있다하니 그냥 넘어가고, 참고로 비포장과 들길을 이용한다 해도 삼일은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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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이 인적이 있을 도로와 들길의 구보로 이동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낮시간 행동정지와 반잠을 자기 때문에 위의 자료에 의한 것은 그들 말 그대로 믿고
우리측 병사들만 힘들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작원들이 말하는 시간당 주파는 평균적 산길 뛰기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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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임진강을 80키로 수영해 왔다는 것은 수영이 아니고 그냥 물에 잠겨서 물 흐르는 대로 내려와서
그렇습니다. 우리 장거리공작들이 경우에 따라서 배낭을 부유물로 사용해 강의 중간지점을 이용해서
내려오고 하류에 이르러 아군 측에 귀환하는 방법이 있으나, 유영탈출이 육상탈출과 장단점이 있어
대부분 육상 귀환을 선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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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에서 80키로 수영은 말이 안되고 위의 설명을 참조하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유영에 의한 도착지점은 ** 부터 ** 지역까지의 귀환이 가능하지만 이하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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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인간은 하루에 60키로 이상을 연속으로 뛰게 되면 전투를 하지 못하고
이후 맨몸 도주도 불가능 해집니다. 식량의 수급이 원활한? 여름에는 무리해서
단축돌파가 불필요하며 위급시 상황을 타개하기위해 무리하지 않게 돌파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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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 그룹은 단거리 폭파공작조의특성이라 삼 일 만에 서울로 침투했지만 장거리 공작조의 경우는
40키로 군장으로 지속적인 침투는 불가하며 배낭과 총기휴대는 20키로를 넘지않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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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 경우는 대전차지뢰 등 대량의 무기를 소유하고 폭파와 살해를 목표로 넘어온,
지척으로 침투한 단거리 공작조이고
다대포의 경우와 그 외 이삼인으로 준동하는 공작원은 폭파무기를 소지하지 않는
경장비 공작원(안내원)입니다.
안내와 침투공작원의 기본 장비는 소총, 실탄, 수류탄 두개, 구급약, 단도, 마른식량 이외
속옷과 양말하나씩 여벌정도로 약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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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년 초인지 겨울 서부전선의 **부대 관할지역 모기지에서 각 군 별들이 참관한가운데
공세 훈련하는 야전훈련의 본격전이 벌어지는데, 그전에 뭔 시범을 보인다고 가 본 적이 있읍니다.
작전에 참가하는 육군보병들의 돌파에 비교하여 우리공작조가 차출되어 측정 시범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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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록과 비교하여 자체적으로 일반보병들의 돌파전투력을 평가해보기 위한 일에
우리가 먼저 시범을 보이게 된 것으로 이런 강아지 같은 경우가 전에 없었는데
보통정도의 산 정상을 뛰는 일에 어이 우리를 부려 먹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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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군의 대규모훈련에 더러 참관한 경험자인데, 이때 초저녁 전투훈련장 전체를 살펴보니
얕은 야산을 뒤로하고 전차들이 줄지어 있어 참가한 동료들과 함께 개울 뚝방으로 차를 몰아
돌아보는데 평생 이렇게 많은 전차가 밀집한 것을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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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육안으로 들어온 전차의 숫자만 150대 가량으로 보이고 보병장갑차가 대거 참여하여
진용을 갖췄는데 모습은 방어개념 아닌 돌격 전투대형의 웅장한 모습으로 굉음들을 내며
전, 후퇴의 훈련이 소,중대 단위별로 실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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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 측에서 돌파해 들어가야 할 목표지점을 쌍안경으로 관측하는데 별다른 장애는 없고
논두렁밭두렁을 지나 개울건너 거리 대략직선으로 3킬로 남짓,
험하지도 않은 뽀족한 300고지 상까지의 산세는 가파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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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이 정상탈환훈련이라서 그들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돌파에 부려먹고
일만하다 죽으려나 부다 궁시렁 거리면서 별로 힘든 건 아니라서 희희낙락 잡담으로
시간 때우면서 보내고 한 바퀴 빙 돌아 구경하고 돌아오며 면소재지로 차를 돌려
일찍 저녁식사마치고 돌아와 차안에서 대기하는데 시간은 우리 편한대로 하고
돌파예정지와 산 정상에 군인들을 곳곳에 보내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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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이 우리가 헬리콥터타고 올라갈까봐 의심하나 어쩌고 한바탕 웃으면서
이제 퇴사말년인데 끝까지 우려먹으려는 군! 우스개 소리하며 23시에 출발하기로 결정하고
군인들이 길목곳곳에 측정을 위한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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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부대가 왔다는 소문이 들기만 하면 군인들은 뭐가 신기한지 근처서 구경거리가 되기 시작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장교들이나 사병이나 말은 부치지 않고 좀 떨어져서 구경을 한다.
(우리 무서운 사람이 아닌데 애들은 늘 저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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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가볍게 하기위하여 작업복에 특유의 운동화를 신고 양말 속에 아대 끼워 넣고
작은 배낭을 어깨에 바짝 메고 카빈총을 들고 초반부터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하며
작은 논길을 따라 4인조가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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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돼 큰 개울이 나오는데 이게 문산천일 것이다. 개울은 뛰면서도 밤에 비치는
물결과 물의 폭을 보면 깊이가나오니 그대로 뛰어 들어가 백 미터는 될 개울을 통과해
논두렁으로 타고 올라보니 주변에 군부대 들어가는 야전도로도 보였으나
원래 길이 체질이아니라서 그대로 논과 밭으로 미끄러지며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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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동네가 나오고 마을 뒤편으로 뛰는데 산 아래 턱에 군부대 사격장이 나온다.
편편한 사격장을 지나 바로 쳐 오르며 산을 오르는데 단거리지만 이렇게 힘들기는
정말 드물었는데 그 가파르기가 산짐승도 당연히 거부할 정도였다.
(이런 급경사의 야산특징은 짐승이 없고 먹을 게 없으며 누울 자리가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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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수풀이 우거져도 산자락을 달리는게 기본인데 오늘은 일직선으로 뾰족한 정상을
다 올라가보고 별 고생한다며 가는데 중턱에 이르자 기운이 빠지는데 대충 3키로 뛰며
이렇게 힘들어보기가 그때 처음이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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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시범이라서 최선을 다해서 뛰어오르긴 했는데 산 정상에서 군인들이 건네 주는
물을 마시는데 이거 자존심 있어서 누워버릴 수도 없고 그때 난감했던 생각을 하면...
우리는 땀범벅이 되어 산 아래를 향해 널부러져 앉아있는데 군장교들 저들끼리 하는 말이
이거 엄청난 속도네요 32분 나왔읍니다~ 무전으로 들려오는 소리 수고하셨읍니다~
이어서 한 마디씩 하는 소리들이...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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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넘들 저들은 시계나 들여다보며 오르지도 못할 것들이 병사들 엄청 고생 시키겠구나
생각하면서 내려왔지만 일반보병들이 군화에 배낭 메고 오르려면 한 시간 안에 못 올라가고
중간에 쉬면서 물 마시지 않고는 오르지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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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높은데 얼마나 뾰족한지 정상이라야 불과 너댓평 정도 되는, 고지로서는 용도가 없는 산이었는데
왜 그곳을 작전목표의 고지탈환 목표로 정한 건지 이해를 못한 채 내려온 적이 있었다.
그때 군단장교들이 길목을 지키고 손에 클립 보드를 들고 기록을 재느라 서있고
힘은 들지 눕지는 못하지 이런 황당한 기억이있는데, 올라가며 뒤꿈치가 땅에 닿지 않아서
산을 직선으로 올라가며 인대가 늘어나서 좀 고생한 그런 추억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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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정합니다. 글을 다 쓰고 며칠 지나면서 생각해보니 돌파시범 했던 산 높이가 300고지였네요.
사격장 아래에 175mm 8인치 자주포부대 있는 곳인데. 하도 오래전이라서 지역이 혼동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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