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종소리를 들으며
새벽을 열어 세상을 깨우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난한 고학생의 신문 돌리는 발걸음 소리,
아직도 푸른 파도가 묻어 펄떡이고 있는 수산 시장의 경매 소리,
삶의 푸른 꿈을 이루기 위해 수험생들이 차가운 물에 세수하는 소리,
지식을 혹은 그 무엇을 위해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우리네 어머님들의 떨린 목소리----.
이 모든 것들 가운데 숭고하고 아름답지 아니한 것들이 없다.
하지만 잠들어 있는 산하를,
무명에 덮혀 있는 사바세계를 흔들어 깨우는 산사의 새벽 종소리야말로
그 모든 새벽 소리를 감싸 안고 승화시킬 수 있는 가장 수승한 소리일 것이다.
세상의 존재하는 온갖 고통 소리를 감싸 안고자,
아니 그들에게 온힘을 다해 무명을 벗어나는
진리리 범음을 들려주고자 지금도 온 산하의 새벽을 흔들어 깨우고 있는 것이다.
천지의 가장 맑은 기운이 생동하는 새벽,
만물이 고요히 숨죽이고 생명의 찬가를 경청하는 이 시간,
이 신새벽에 길을 나선 한 청년이 있었다
십칠 년 전 바로 오늘, 결코 풀리지 않는 존재의 근원을 풀고자
새벽이슬 함빡 머금고 있는 둑길을 따라 끝없이 걷고 또 걸었던 그 길.
출가 出家!
그 긴장된 떨림의 순간들.
풀잎에 맺혀 있던 보석같이 빛나던 이슬 방울들.
바지 끝을 촉촉이 적셔오던 푸른 달빛 조각들.
강둑을 휘감아 발목을 잡아끌던 물안개.
그리고 뿌옇게 흐려지던 눈빛-----.
선지식을 찾아 구름처럼 흘러다니다,
통곡할 힘조차 빠져나가 버린 빈 몸에 그득그득 차오르는 고요한 슬픔
마침내 쓰러진 새벽 월정사에서 내 지나온 모든 업장을 녹여 내리던,
내 갈기갈기 찢어진 영혼을 따뜻이 감싸 안던,
내 온 몸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그 울림을 스며들게 하던 새벽 종소리.
그 새벽 종소리!
아, 그때 내가 토해냈던 통한의 울음들, 설움들, 아픔들----.
그날 그 새벽의 종소리는 내 생애 결코 잊지 못할 순간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 후 난 새벽 종소리를 참 많이 좋아했다.
그렇게 소원하던 종을 처음 내 손으로 쳐본 순간, 그 감동. 그 웅장한 떨림.
내 몸속으로 전해오는 전율.
아마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 가운데
이보다 장엄하고 영혼을 울리는 소리는 없을 것이다.
세계적인 보물로 알려진 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신라 성덕여왕
신종(일명 에밀레종)의 소리를 어는 학자가 정밀 조사했보았더니,
그 울림이 인간의 감성을 가장 잘 자극할 수 있는 주파수대였다고 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모든 중생의 아픈 이야기들을,
가슴 저미는 고단한 삶의 조각들을 따뜻한 부처님의 진리로 인도하려는 우리의 종,
그 종의 간절한 새벽 울림.
태초에서 시작되어 중생계가 다하는 그날까지 삼라의 만상을 제도할 저 새벽 종소리.
지금 남도의 강진 땅 만덕산 아래 백련사에 새벽종이,
첫새벽을 열고 있다.
저 소리 한 울음 한 조각에 새벽 숲이 깨어나듯,
무시겁래 (시작도 없는 겁으로부터 시작된)
칠흙같이 덮인 내 무명도 어둠을 벗듯이 한 껍질씩 꺠어났으면 좋겠다.
마침내 자성불을 만나는 그날까지----.
이! 참 좋은 새벽이다. 내 츨가하던 그날의 새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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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번째 허물 벗고 출가한 날,
십칠 년 전 그날 새벽만큼이나 기운이 청량하다
해무 가득한 강진만 . 축대 위로 다람쥐 한 마리 쪼르르 오더니 뭘 열심히 먹는다.
자세히 보니 풀꽃을 먹는지 풀씨를 따 먹는지 입이 볼록할 정도로 참 맛있게도 먹는다.
다람쥐가 꽃을 먹다니----.
오후에는 뜻깊은 오늘을 자축하며 두 시간 동안 차를 마셨다.
가끔 산뜻한 바람도 불어주고 멀리 죽도도 잘 보이고 참 좋다.
그런데 자꾸만 왜 이리 가슴이 미어지는지----.
낮에 실컷 바다 보며 망상 피웠으니 제대로 한번 정진해 보자.
아픈 무릎 끌어당기며 외출했던 화두를 불러들인다.
6.6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