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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안식[ 편히 쉼] 마11;28-30절
한 유명한 랍비가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과제물을 주었답니다.
'네 일생에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의 목록을 적어 오너라.'
지혜롭고 똑똑한 한 학생이 숙제를 해 가지고 왔습니다.
심사숙고한 끝에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의 목록을 적어왔다고 했습니다. 첫째가 명예, 둘째가 건강, 셋째가 부인데, 자기는 명
예로운 사람이 되고, 건강한 사람이 되고, 부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랍비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명예도 귀하고, 건강도 귀하고, 재물도 귀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 그것은 샬롬, 평화다. 평화 없는 명예, 평화 없는 건강, 평화 없는 재물은 빈 껍데기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위로나 격려을 희망을 찾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이것을 일종의 망령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상태에 빠져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이 이 세상 에서 할만큼 다 해본셈 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온갖 부귀, 문화, 교육, 눈부신 기술, 있음에도 안식이 없고 불안정과 같은 투성이 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지쳐 있는데 더 힘쓰라고 세상은 요구 합니다.
더 많은 시도을 하라고 요청 합니다. 독해지라고,....
그런데 이제 더 이상 힘을 쓸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떠나서는 안식이 없다.
복음속 에는 우리의 모든 질문들과 우리들의 온갖 문제들의 해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죄의 결과 오는 냉담과 무관심과 약물중독과 같은 무기력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늘 피곤합니다. 피곤은 불안정한 상태을 수반 됩니다.
현대인들은 “ 늘” 바쁘다" 리는 말이 나온다.
100년전에도,,50년전과 비교해도,,,
우리들은 늘 바쁘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신문에서 불화, 다툼, 아우성입니다.
국제적 분쟁, 불안정한 경제. 갈수록 모든 것이 불안정 합니다.
이는 인간의 삶의 현장에서 문제는 항상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거칠고 신경질적이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불행을 자초 합니다.
오늘날의 삶의 특징 광적인 향음주의[술을 마시며 잔치하던 일]입니다. 이처럼 환락에 광분한 세대가 없습니다.
음주와 도박으로 쓰이는 천문학적 돈을 보세요...
그들 또한 이 세상에 대한 희생자라고 생각 한다면 동정의 대상이 됩니다. 사탄에게 속고 있는 이들의 불행은 늘 직면된 현실이고 그래서 도피처을 찾는 것입니다.
이혼, 가정의 관계의 파괴, 결국 불안정의 원인으로 소급할수 있습니다.
한 아이가 그의 어머니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왜? 남편과 잠시 떨어져 있었는데 그 남편의 외도로 그녀는 행복을 찾지 못하고 그런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런 실패사례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사람들은 안식과 화평을 원합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에 대한 어려움을 잘 알기에 이런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어둡고 거칠뿐만 아니라 병들고 지친곳입니다.
이때 주님은 우리 자신들을 포함해서 초청 합니다.
이 세상에 필요한 것 휴식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 나는 그리스도의 초대에 관심이 없다”
왜? 나는 안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장하지만 그들은 현실적 인생의 문제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이가 부모에게 꾸중을 들으면 싫어서 부모을 등지고 자기의 세계로 들어 갑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남감을 가지고 자기들만의 멋진 세계에서 즐겁게 놀면서 아주 행복해 합니다.
어른들도 그런식으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마약의 중독되어서 그 약으로 인해 온 세상이 마냥 즐겁고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느낍니다. 환락은 일종의 약입니다.
이런 가짜 안식을 누리는 사람은 허다 합니다.
예을 들면 거짓된 안식은 ...
계속해서 약으로 중독 시키면서 살수 없습니다.
만약에 돈이 떨어졌습니다. 당신의 터전이 무너진다면,,, 모든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때 자살을 시도 합니다.
현실에 직면하면 그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왜? 자기가 실패 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안식은 하나님을 아는데 있다고 선언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안식을 만들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식할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만족할 때 까지 우리는 안식 할수 없다.
과거 많은 성도들이 숱한 고통가운데 하나님을 찾고 그 과정 가운데 참된 안식을 누렸다.
어거스틴. 마틴루터, 존웨슬러 등 그들은 하나님을 찾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던자 들은 오히려 그들의 피곤한 어깨에 더 가중한 짐을 얻어 주었습니다.
그러던 수고 중 무거운 멍에 가운데 ,,갑자기 ,,혹은 서서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습니다.
이것이 우리앞에 놓인 복음의 성격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기서 “ 주님” 께 오라고 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주님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불신의 특징은 만족을 모르는 것입니다.
불신의 특징은 자기 나름의 요구들오 시작됩니다.
그것을 요청할수 있지만 만족을 찾지 못하고 안식과 화평을 얻지 못합니다. 성경은 죄에 빠진 인간의 운명은 만민처럼 지상에서 방황하기만 한다고 증언 합니다.
“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 사57;21]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기서 “ 주님” 께 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전쟁 하기전 [준비 다하고] 주님께 물어 봅니다.
할까요,,, 말까요
여호수아도 물어버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 가나안 사람에게 속고, 자신의 부주의가 많은 사람을 아이성 에서 패배을 경험 합니다... ]
좀,, 물어 보세요... 중요한 결정일수록,,, 작정 기도좀 해세요...
인간들이 하나님을 대항하고 죄를 짓는한 ,
이 세상은 항상 요란하고 불안정할 것입니다.
이 현상을 정확히 이해 할수 있는 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전쟁과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온 세상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인생관을 가지고 담대히 살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을 쓰실 때 “ 내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왜? 80년 동안 내길을 내 마음 대로 살았지만 이제 그 길을 벗어나서 하나님이 인도, 지시 하는 삶을 살아라....
그리스도 가다는 의미는 무엇 입니까?
그리스도의 멍에를 우리가 메는 것입니다.
멍에을 상상 한다면 ...두 마리의 황소가 멍에을 매고 쟁기을 끄는 모습이라고 할수 이다.
그 멍애의 의미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의미 합니다.
어떤 스승이 제자을 가르칠 때 그 스승의 멍에을 메다는 것은 제자는 그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을 멍에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평안과 안식을 알고 싶다면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기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의 모든 생각, 철학은 포기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작정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의 제안입니다.
“ 배우는 것”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기다리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벤 시라서(집회서)는 예수님의 시대보다 100년 앞선 시기에 나온 책으로 헬라어 외경 가운데 하나다.
거기에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아주 흡사한 구절들이 있다.
"너희 무지한 자들아 내게로 가까이 와서 배움의 집에 머물러라.
너희 혼이 매우 갈급한데 너희는 어찌하여 더디며, 너희가 이 일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겠느냐?
내가 입을 열어 말한다.
"너희를 위하여 그녀(지혜)를 값없이 사라.
너희 목을 (그녀의) 멍에 아래에 넣고, 너희 혼이 가르침을 받게 하라.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찾으라.
내가 어떻게 적은 수고로 많은 쉼을 얻었는지 너희 눈으로 보아라""(벤 시라서51:23-27).
벤 시라서의 구절들은 마태복음 11장 28-30절과 같은 주제들을 가지고 있다.
그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 가르침의 근원으로 가까이 가는 것
* 멍에나 짐을 메는 것
* 배움의 수고로 안식을 얻는 것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 하나님 왜? 이렇게 하십니까?
왜? 이런일이 일어 납니까?
왜? 저런일은 저런게 하지요....
주님은 우리에게
출3;5]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거룩하시고 완전하시분입니다.
주님은 “ 내개서 ” 배우라..
그리고 또 주님은 “ 내 멍에는 쉅고 내짐은 가벼움이라”
사람들은 도대체 “평안과 안식은 어디에 있는냐?
왜? 이렇게 합니까?
이미 지쳐, 실패, 절망의 상태 이기에...절박 합니다.
“평안과 안식은 어디에 있는냐?.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 하실까.
1. 주님이 이땅에 오신이유...
“그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정말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즉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죄의 용서입니다.
나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먼저 해결하셨습니다.
모든 고통은 자기 멋대로 하고 싶어하는 무서운 자아에서 비롯 되는 것입니다.
만약 죄을 무시하고 인간의 괘락만을 위해 살아 가다면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옭고 그름이 아닌 괘락만을 위해 살아 간다면
복음이 주는 참된 자아가 주는 기쁨, 평안, 확신을 없습니다. ‘
자신의 정욕과 쾌락에 대한 열망만을 만족키면 살기 원합니까?
세상은 인간을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전락시키고,
거룩한 재판관을 대항해 그분을 거스리게 만들고 , 결국 영원한 죽음으로 이끕니다.
그런 이런 생각은 “ 지옥으로부터 초청장이 올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감당하셨기에 당신을 안식을 주실수 있습니다.
롬5;1 ]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며 긍휼이 넘치셔서 죄의 삯인 사망과 지옥의 권세를 직접 이기셨습니다
2.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다고 말씀 하십니다.
“ 내가 너에게 다른 보혜사를 주겠다 나는 네속에 있으면서 너와 함께 머물겠다.
주님은 자신의 삶[생명]을 우리속에 사시면서 우리들이 주님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멍에는 쉽고 그의 짐은 가벼운 것입니다.
이것을 주신 것이 주님 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을 초대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
계발된 마음,
그리고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함께 종합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을 때는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그리고 이것을우리 안에 계십니다.
6.25사변 때 남대문 시장을 전전하는 한 거지 소년이 밥도 얻어 먹기 어려우니 길에 서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한 미군 병사가 그 소년을 보았습니다.
“얘야, 왜 우니?”
“저리 가세요. 귀찮아요.”
“아니? 얘야, 왜 우느냐고?”
“상관마세요. ”
“얘야, 나도 너 같은 아들이 있어서 그래. 왜 우니?”
그는 군의관이었습니다. 소년의 형편을 알게 된 그는 소년을 미군 부대로 데리고 가서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아들로 삼아서 미국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비록 의사의 아들이 되었지만, 낯설고 물선 미국 땅에서, 그때는 인종 차별이 심했으니 얼마나 서러움이 컸겠습니까? 더구나 그는 열여덟 살이 되도록 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부터 ABCD를 배우며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기도하면서 공부하고, 또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석사가 되고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워싱턴 주의 하원의원이 되고 또 상원의원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폴 신(신호범) 장로님입니다. 거지 소년이 미국 상원의원이 되고 장로님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약속도 하십니다.
요6;37]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