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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는 세계적인 언어학자가 자신의 교육관을 체계있게 들려주며,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오늘날 학교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폭넓은 시각으로 알려주는 책. 1장 길들이기 교육을 넘어서부터 5장 거짓을 가르치는 교육의 가면을 벗긴다까지 대담 형식으로 엮었다.
저자소개
미국의 언어학자, 철학자, 인지과학자이자 수십 권의 책을 쓴 저자. 1928년 12월 7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 가정의 2세로 태어난 노암 촘스키는 역사 언어학자이자 저명한 히브리어 학자였던 아버지 윌리엄 촘스키의 영향으로 언어학에 입문하게 되었다. 촘스키는 로 촘스키는 존 듀이의 교육 이념을 따르는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오크 레인 컨트리 데이 초등학교에서 창조적인 사고를 키웠지만, 대학 진학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경쟁적인 필라델피아 센트럴 고등학교에서는 의욕을 상실하고 불행함을 경험해야 했다.
이후에 그는 펜실베니아 대학교에 진학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언어학과 수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하버드 대학교 특별연구회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의 기초 연구를 수행했다. 펜실베니아 대학 시절 언어학 교수인 젤리그 해리스의 영향으로 언어학을 공부하게 된 촘스키는 생성문법 이론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그의 저술들은 1960년대 이후 학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시작했으며, 왕성한 저술활동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강의 활동을 했다.
그는 1955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변형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강의를 시작하였고 1960년에는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변형생성문법'이라는 새로운 언어학 이론으로 학계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의 수많은 논문들은 주요 연구 대상이 되었다. 1976년에는 MIT 석좌 교수가 되었으며 그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는 오늘날 단순히 한명의 언어학자일 뿐만 아니라 숱한 정치적 사건에 대해 발언하며 세계 여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 되고 있다.
촘스키의 삶은 언어학자와 실천적 정치평론가라는 두 개의 기둥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언어학자로서의 그는 구조주의적 언어학을 비판하고 변형생성문법이라는 새로운 언어분석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는 언어를 인간이 보편적으로 타고난 능력의 결과로 간주하였으며, 자신의 언어관이 17세기 합리주의자들의 사상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언어학에서의 그의 주요 저작으로는 『Aspects of the Theory of Syntax』『Reflections on Language』『Lectures on Government and Binding』『Barriers』 등이 있으며 이들을 통해 명시성과 엄밀성에 기초한 과학적 언어분석을 맛볼 수 있다.
한편 그는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강력하게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국제문제에서의 강대국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횡포를 지속적으로 드러내며 고발함으로써 '세계의 양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비판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주류 언론과 지식인의 유착에 의해 전개되고 있음에 특히 주목하고 있으며 그 본질을 폭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의 비판은 이제 신자유주의에 토대를 둔 오늘의 세계질서에 대한 비판으로 연장되고 있다. 관련서로『507년, 정복은 계속된다』『숙명의 트라이앵글』『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등이 있다.
1956년(29세) MIT 대학 부교수, 1959년(32세) 정교수, 1964년(37세) 석좌교수가 되었으며, 1974년(47세)에는 '인스티튜트 프로페서'(하나의 독립된 학문기관에 상응하는 존재)가 된 그는 지금까지 1천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70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어릴 때부터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그는 언어학도로만 머물지 않고 1960년대부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1966년『뉴욕 타임스』에 기고한「지식인의 책무」를 통해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기고문은 그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자칭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로서, 다국적 거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촘스키는 80세가 넘은 지금도 진실을 향한 지적 성찰은 나이를 먹을 줄 모른다. 촘스키는, 지배권력의 선전에 세뇌되어 왜곡된 진실을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적인 자기 방어법을 제공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제시한다. 타락과 탐욕으로 범벅된 세계 지배권력의 심장을 정면으로 겨누는 촘스키의 투쟁은 종종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진실을 도둑맞고 사는 약자'들의 열렬하고도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해가고 있다.
저자의 다른 책
- 촘스키와 푸코, 인간
의 본성을 말하다 - 2015.12
- 촘스키, 은밀한 그러
나 잔혹한 (서양... - 2014.09
- 촘스키, 만들어진 세
계 우리가 만... - 2014.01
-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2 (권력... - 2013.12
목차
서문 / 도날도 마세도
1장 / 길들이기 교육을 넘어서 - 도날도 마세도와의 대담
2장 / 민주주의와 교육
3장 / 조작된 역사
4장 / 신자유주의 질서 안의 시장 민주주의
5장 / 거짓을 가르치는 교육의 가면을 벗긴다 - 존 실버와의 토론
원주
출판사 서평
"나는 미국 국기와 그 국기가 상징하는, 하느님의 보호 아래 나누어질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와 정의를 베푸는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위에 인용한 글은 미국판 '국기에 대한 맹세(The Pledge of Allegiance)'이다. 몇 년 전 미국 보스턴 라틴 스쿨에서는 12살짜리 소년 데이비드 스프리츨러 군이 위의 충성의 맹세를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학교 당국에서는 학생에게 징계를 하려 했으나 미국시민자유연맹이 나섬으로써 징계를 면할 수 있었다. 스프리츨러는 "충성의 맹세가 억압받는 자와 억압하는 자를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다. 한쪽에는 멋진 자동자를 굴리고 멋진 집에서 살며 돈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 있지만, 다른 한쪽에는 못된 이웃과 살면서 나쁜 학교에 다녀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충성의 맹세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모두를 위한 정의는 없다"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촘스키와 이 책의 서문을 쓴 마세도는 위의 사건에서 오늘날 학교가 직면하고 있는 모순에 문제의식을 같이 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르쳐야 하는 학교가, 순종을 강요하고 독립적인 사고를 막는 통제와 억압 시스템으로 제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이런 시스템 내에서 교육을 받게 되면, 권력구조를 지탱하도록 사회화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사는 권력층에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다른 전문가 집단과 다르지 않다. 국가에서 봉급을 받는 교사는 지배계급의 의도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고 역설한다. 그러므로 12살의 학생도 알 수 있는 진실을, 교육받은 교사들은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훌륭한 교사란 진실을 가르치고, 행동하는 참여자로 나설 수 있어야 ….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교사만이 아니다. 공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의 정책과 언론이 모두 촘스키의 비판에 올라 있다. 그 동안 촘스키가 다른 저작물에서도 다루었던 미국 정치의 음모를 이 책에서도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국제 분쟁과 지역 분쟁에 미국 정치의 계산이 깔리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 중남미 국가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미군이 개입하고 폭력도 서슴지 않은 사례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이런 사실을 부인하면서 교묘하게 언론을 조작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발표하지 않았다고 그 진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가. 촘스키는 아니라고 말한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이면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캐어보려는 노력이 있다면 언제라도 그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촘스키가 서구 강대국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지만,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 촘스키는 그 대안으로 깨어있는 교육을 말하고 있다. 진실을 가르치고, 진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연대하고, '방관자'가 아닌 '행동하는 참여자'로 나서라고 말하고 있다. 촘스키가 말하는 훌륭한 교사란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고, 진실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학생들이 스스로 진실을 깨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교사라고 말한다. 민주적으로 살기를 열망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비판적인 안목으로 보라고 말한다. 현 사회의 지배계급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것 이면의 위선적이고 비인간적인 관행을 직시하면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지식인은 스스로 역사의 방관자로 남지 말고 역사의 참여자가 되라고, 그리고 그 대열에 학생들을 제외시키지 말고, 동참하게 하라고, 지식인 교사들에게 말한다.
책속으로
올바른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깨닫는 최선의 방법은 민주주의를 실천해보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학교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와 사회가 얼마나 민주적인가를 측정하는 척도는 이론과 현실의 근접성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이론과 현실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민주 사회에 소속된 개인은 누구라도 그들의 삶에 관련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세금이 어떤 식으로 걷히고 어떤 식으로 사용되어야 하는지, 그 사회가 어떤 대외정책을 추구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가 문자 그대로 민주적이라면, 민주주의의 상투적 선전문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킬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저 민주적으로 행동하고 처신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이상을 떠들어댈수록, 그 시스템은 덜 민주적이라는 증거입니다.
“역사를 가능성으로 생각하는 것은 교육 역시 하나의 가능성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교육이 모든 것을 해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약간의 것을 성취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략) 교육자로서 우리가 도전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는, 역사적 관점에서 세계의 변혁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어, 지금처럼 경직된 자세를 버리고 좀더 정직하고 좀더 인간적인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29쪽에서 재인용) 29
현재의 교육모순 속에서 프레리, 지루, 촘스키 등이 말하는 비판 정신과 가능성이란 양면에서, 우리가 역사의 참여자가 되어 "이 세상을 덜 차별적이고 더 민주적이며, 덜 비인간적이고 더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드는데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p. 29). 29
학교는 사회의 지배계급, 즉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만들어진 기관이기 때문에 “젊은이의 교화(敎化)를 책임진 기관”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교육의 장인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권력집단, 주로 기업집단을 옹호하도록 사회화된다. 이러한 사회화 과정에서 아이들은 부와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으면, 결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쓰라린 교훈을 얻게된다(pp. 33-34). 이처럼 아이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길들이기의 과정으로 편입된다. 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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