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배따라기>는 액자 소설로서 액자 밖은 1인칭 관찰자 시점, 액자 안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된다. 이 소설의 제목 “배따라기”는 뱃사람의 애환을 노래하는 평안도 지역의 민요를 가리킨다.
삼짇날 날씨가 좋아 나는 평양성 주위를 산책하며 완연한 봄기운을 만끽한다. 그러던 중 어딘가에서 배따라기 노랫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노랫소리에 이끌려 어딘가로 향한다. 그 때 나의 눈에 뱃사람인 듯 보이는 한 남자가 보인다. 배따라기를 잘 부르는 것으로 보아 고향이 영유인 듯 한데 그는 고향에 한 20년을 못 가봤다고 한다. 왜 고향을 못 갔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거저 운명이 데일 힘 셉데다."라고 탄식했다. 나는 그의 사연이 궁금해져 담배 한 개비를 같이 피우며 그의 사연을 들었다.
19년 전 영유, 그는 아우와 함께 어부로 살고 있었는데 그의 집안이 마을에서 제일 부유했고 배따라기 노래도 제일 잘 불렀다. 또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어 매우 사랑했지만 그의 아내는 질투를 유발하게 했다. 그의 아내는 예쁜 외모만큼 애교도 충만해 아무한테나 애교를 잘 부렸는데 그는 그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주 아내를 폭행했다.
그의 생일날 있었던 일이었다. 갖은 음식을 잘 차려 먹었는데 그에겐 좀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은 남겨뒀다 좀 있다 꺼내먹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좀 있다 먹으려던 음식을 아내가 그의 아우에게 줘버렸다. 화가 나서 트집 잡을 구석을 찾던 그는 아내가 상을 물릴 때 자신의 발을 밟자 그대로 발로 차서 폭행하고 온갖 욕을 퍼부었으며 말리는 아우도 같이 팼다. 그 후 집을 나가 술을 잔뜩 퍼먹은 그는 아내를 위해 떡을 사서 왔다. 그렇게 또 한 서너 달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
한편, 그의 아우는 성내로 오입질을 하러 가는 일이 잦아졌는데 이에 그의 아내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으며 동서와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이에 대해 그는 그 꼴을 매우 못마땅해했다. 하루는 그의 아내가 그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그는 니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듣기 싫어했다.[1] 그러자 아내는 그에게 아우가 그런 데 다니는 걸 막지도 못하는 ‘못난둥이’라고 조롱했다. 그 말을 듣고 빡친 그는 또 아내를 패고 내쫓았다. 좀 있으면 들어오겠지 했지만 아내는 오지 않았다. 그 때 아우 집에서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열받은 그는 아내와 아우를 죽이려고 식칼을 들고 아우 집으로 갔다. 그런데 막상 아우의 집에 가보니 아내가 자신을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기다리자 갑자기 넘치는 사랑을 느껴 칼을 던지고 이 년하고 소리치며 아내를 덮쳐 깨물고 빨고 하면서 뒹굴었다. 그렇게 그와 아내, 아우 세 사람의 삼각관계는 대략 이와 같았다.
한 달 후 8월 11일, 그의 아내는 그에게 예쁜 거울 하나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장에 가서 크고 예쁜 거울을 사서 평소 가던 술집도 안 가고 거울을 보고 기뻐할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며 바닷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갔다. 그런데....
집에 가보니 뜻하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집에는 아우가 와 있었는데 수건이 뒤로 벗어지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다. 아내 역시 옷매무새가 흐트러졌다. 그는 두 사람이 불륜을 저질렀다고 간주했다. 아우가 "그놈의 쥐 어디 갔나?"라고 하자 그는 "쥐? 훌륭한 쥐 잡댔다."라고 비꼬며 형수랑 그런 쥐잡는 놈이 어딨냐며 아우를 신나게 두들겨팼다. 이후 아내에게 달려들어 시아우랑 그런 쥐 잡는 년이 어딨냐며 역시 두들겨팼다.
아내는 그에게 시동생이 왔기에 떡 줄려고 내놓았더니 쥐가 와서 같이 쥐 잡는 중이었다고 말했지만 그에겐 변명으로밖에 안 들렸다. 그는 아내에게 "샹년! 죽얼! 물에라도 빠데 죽얼!"하고 소리치고 내쫓으며 "고기 배떼기에 장사해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아내와 아우를 내쫓고 난 뒤 그는 화를 가라앉히고 있었는데 정말 옷 속에서 쥐새끼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는 아내를 때린 걸 후회하면서 불안해했지만 '그래도 에이, 좀 있음 들어오겠지'하고 애써 자기 위로를 했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아내는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으며 아우는 그를 원망하듯이 쳐다봤다.
그 날 이후 아우는 뱃사람이 되어 영유를 아주 떠나버렸으며 그는 아우를 만나 지난 일에 대해 사과하려고 역시 뱃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록 그는 아우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배가 풍랑을 맞아 파선하면서 그는 조난당했다. 정신 없이 바다를 표류하던 그가 정신을 차려보니 아우가 자신을 건져 주어 간호하고 있었다. 그가 담담히 '어떻게 여기 왔느냐'고 묻자[2] 아우는 "그저 운명이다"라고 대답한다. 이후 서로 모습이 많이 변했다는 말을 주고받았으나 그는 사고의 피로로 인해 잠들어 버리고, 아우는 옆사람 말에 의하면 형의 얼굴을 조용히 쳐다보다 다시 어딘가로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 그의 배가 강화도를 지날 무렵 어딘가에서 배따라기 노랫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아우의 목소리였고 곡조 또한 아우의 것으로 변형된 그 배따라기였다. 그러나 그의 배가 강화도에는 정박하지 않으므로 어쩔 수 없이 지나쳐야만 했고 강화도 바로 밑의 인천에 배가 정박했다.[3] 그리고 급히 강화도로 건너가 아우를 수소문했고 마침내 어느 객줏집에서 아우와 닮은 사람이 묵었다는 걸 확인했다. 급히 그 객줏집에 가보았으나 생긴 것도 아우요, 이름도 아우인 사람이 묵긴 묵었는데 사나흘 전에 도로 인천으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인천으로 건너와 아우를 찾았으나 그 좁은 인천에서도 도무지 아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나도록 아우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젠 어디로 갈 거냐고 그에게 물었고 그는 "것도 모르디요. 덩처가 있나요? 그저 바람부는 대로 몰려댕기디요."라고 답하고는 다시 배따라기를 부른다. 이렇게 아우를 향한 한을 풀어낸 그는 먼저 갈 길을 떠나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의 뒷모습만 바라다보다 숙소로 돌아온다. 나는 그의 숙명적인 경험담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 일찍 평양성을 향해 달려갔다. 어디선가 배따라기 노랫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들리는대로 부벽루, 을밀대, 모란봉 등을 쫓아갔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평양에 잠깐 들렀던 그는 또 다시 회한의 유랑을 계속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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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감자와 함께 김동인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이다. 향토적이고 낭만적인 정서가 담긴 수작으로, 작가 자신이 "여(余)에게 있어서 최초의 단편소설인 동시에 조선에 있어서 조선글, 조선말로 된 최초의 단편소설일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단편의 기본 형태를 갖춘 한국 최초의 작품이다. 한편으론 대체 무슨 근거로 '실제로' 한국 최초의 단편소설을 만들었다는 자신감을 품었는지 의혹을 품고 친일파 행적을 근거로 삼아 표절 등의 음모론을 제시하는 의견도 있지만 지나친 비약이라 하겠다.
비슷하게 운명을 다룬 우리나라 단편소설로 역마가 있으니 함께 읽어보는 것도 큰 참고가 되면서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다만 운명에 맞서 싸우는 느낌은 이 쪽이 강한 편이다. 역마가 '이루어지면 안 되는 사랑을 포기하고' 방랑길을 떠난다면, 배따라기는 '어떻게라도 용서를 받기 위해' 방랑길을 떠나기 때문. 한편 둘 다 영원히 소원을 이루지 못할 거라며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