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살인 사건

[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1. 사건 경위

2015년 4월 23일, 대구광역시 금호강 둔치에서 윤용필 씨(당시 29세)가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이다. 부검 결과 윤 씨는 둔탁한 흉기로 머리를 17차례 이상 가격당해 타살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피해자 윤 씨는 주검으로 발견되기 18일 전인 4월 5일 새벽 다섯 시, 평소 근무하던 공장에서 야간 작업을 마치고 퇴근한 이후로 행방불명 상태였다. 평소 윤 씨는 오전 8시까지 잔업을 하다가 퇴근을 하곤 하였으나, 그 날은 약속이 있다며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하였다고 한다. 정황상 그날 윤 씨와 약속을 잡은 자가 윤 씨의 사망에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나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하던 차에, 경찰은 윤 씨가 발견된 사건 현장 주위의 CCTV 영상을 조사하여 어렵사리 윤 씨로 추정되는 사람이 한 남자와 함께 사건 현장 쪽으로 걸어가는 영상과, 그 남자가 사건 현장에서 혼자 빠져 나오는 영상을 찾아낸다.

그러나 얼굴이 드러난 영상을 찾지 못해 함께 있던 남자를 판별할 수 없었고, 상체도 우산에 가려져 있었다. 경찰은 사망한 윤 씨의 친구들 중 윤 씨의 실종 및 사망추정 시간에 알리바이가 확실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상인지 말하지 않고 해당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영상 속의 두 남자가 죽은 윤 씨와 윤 씨의 친구인 박 모씨(28세)라고 정확히 지명했다. 그들이 박 씨를 지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박 씨의 독특한 걸음걸이와 영상 속 남자의 걸음걸이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박 씨는 사망한 윤 씨와 중학생 때부터 함께한 15년지기 죽마고우로, 평소 매우 각별한 사이였으며 함께 쇼핑몰을 운영하며 윤 씨 실종 2개월 전까지 동거도 하던 사이였다. 쇼핑몰 사업이 실패로 돌아간 후, 동거는 그만두었지만 그 후에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박 씨와 윤 씨는 윤 씨의 실종으로부터 약 3개월 전 서로를 수익자로 하는 사망 보험금에 동시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박 씨의 보험은 박 씨가 가입 이후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 해약되었으나, 윤 씨의 보험은 박 씨가 보험료를 대리납부하여 유지되고 있었다. 박 씨는 당시 6천여만 원의 빚을 지고 있어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고액을 이체하여 수익자가 자신인 사망 보험을 유지해 왔던 것이다. 심지어 윤 씨는 어머니는 사망했고 형제도 없는 외동에다 결혼조차 하지 않았으며, 그나마 살아있는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마저 치매로 심신상실 상태였으므로 실종된 후에도 실종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윤 씨의 실종으로부터 약 일주일 후 박 씨가 윤 씨의 친척에게 연락하여 실종 신고를 하도록 한 정황이 포착되어 의심이 더욱 가중되었다.[1]

그러나 유사한 걸음걸이 외에는 박 씨가 범인이라고 특정할 만한 증거가 없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걸음걸이를 분석하는 법 보행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된 적도 없었다. 사건 당일 박 씨는 오전 두 시 경과 여덟 시 경에 자신의 자택이 있는 경상남도 거창에서 전화통화를 한 것이 증명되었으나, 그 사이 여섯 시간의 알리바이는 불확실했다. 거창과 사건 현장인 대구가 자동차로 편도 한 시간 가량 소요되는 것을 감안할 때 사건을 저지르고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은 있으나 박 씨는 자신이 그 동안 집에서 잠을 잤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경찰은 박 씨에게 자백을 받는 방법을 택했다. 경찰은 박 씨를 체포하여 박 씨가 윤 씨를 살해한 증거가 있다며 자백을 유도했고, 박 씨는 경찰이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줄 알고 범행사실을 자백했다.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건의 퍼즐조각이 맞춰지게 되었다.

자백에 따르면 박 씨는 사건 당일 새벽에 거창에서 택시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박 씨는 택시 기사에게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내가 목이 아파서 말을 할 수 없는데 대구까지 얼마냐'라는 요지의 메모를 적어 보여주고 탑승했다고 자백했다. 사건 당일 새벽 거창에서 대구로 향한 택시는 단 한 대뿐이었으며, 해당 택시의 운전 기사는 그 날 메모를 보여 주고 대구로 향한 손님을 기억하고 있었다.[2] 또한, 손님의 얼굴은 자세히 기억하지 못 하지만 매우 마른 체격의 젊은 남성이었다는 택시 기사의 기억 역시 박 씨의 용모와 일치했다. 또한, 사건 현장을 검증할 때 박 씨가 보여준 동선이 실제 CCTV에 찍힌 용의자의 동선과 완벽히 일치하였으며, 박 씨가 그린 사건 현장의 지도가 지나치게 자세하였으며, 경찰조차 눈치채지 못한 플래카드의 위치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등 박 씨의 자백은 실제 범인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자백이었다. 또한 박 씨는 사건이 검찰로 넘겨지기 전에 경찰에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돈 때문에 싸우다가 윤 씨를 죽였다는 2차 자백도 하였다.[3]

2. 재판과 무죄 주장

2015년 11월 27일 1심 재판이 이루어졌다. 검찰은 윤 씨와 박 씨의 공동지인, 법보행 분석 전문가 2인을 증인으로 내세워 CCTV에 촬영된 용의자가 피의자 박 씨라는 것을 증명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박 씨와 CCTV에 찍힌 남자의 보행에는 외족지 보행, 내반슬, 좌측 원회전 보행[4]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특징적인 보행법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특히 박 씨처럼 젊은 사람에게 내반슬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므로 CCTV에 찍힌 남자와 박 씨가 동일인인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었다. 감정 결과는 증거로 채택되었으며, 이 사례는 국내에서 최초로 법정에서 법 보행이 증거로 채택된 사례가 되었다. 피의자 박 씨는 유죄 판결을 받고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그러나 박 씨는 1심 재판 이후로 계속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경찰이 CCTV 속 용의자와 자신의 걸음걸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범인으로 특정짓는 표적수사를 하였으며, 자백을 강요하였기 때문에 두려움에 거짓 자백을 하게 되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경찰은 진술 과정이 모두 녹취되어 있으므로 강압수사는 없었고, 박 씨의 자백은 거짓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디테일한 부분을 진술하는 등 그 내용이 정확하다고 반박하였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박 씨는 KBS, SBS, MBC 등 주요 방송사에 '나는 친구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 나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라는 요지의 편지를 보냈다. 이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2016년 1월 23일에 방영된 1,016회 방송[5](부제: 살인범의 걸음걸이)에서 해당 사건을 주제로 다루었다. 그러나 박 씨가 원하는 대로 결백이 증명되기는 커녕 출연한 법보행 전문 분석가나 프로파일러들은 모두 입을 모아 박 씨가 진범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특히 박 씨는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팀에 보낸 편지 말미에서 '증거가 나온다면 벌을 받겠다'고 했는데, 이러한 문장은 누명을 쓰고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범행을 저질렀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무죄를 받아보려 하는 사람이 쓸 법한 문장이라는 것.

2016년 5월 26일 열린 2심 재판, 8월 30일 상고심에서도 판결이 뒤집히는 일 없이 원심이 확정되었다.

3. 만일 자백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은 법 보행이 증거로 채택된 첫 번째 사례이며, 그 이외의 확실한 증거는 없다. 사건 현장이나 피해자의 몸에서 범인의 DNA가 채취되지도 않았으며, 범행에 사용된 흉기도 찾을 수 없었고, 범인이나 사건 현장을 목격한 목격자도 없다.

그런데 거의 유일한 증거인 법 보행은 단독으로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우선 걸음걸이는 DNA나 지문처럼 완벽하게 특정인을 지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우연히 닮았을 뿐'이라는 반박이 충분히 가능하다. 해당 사건 CCTV에 촬영된 용의자 및 박 씨의 걸음걸이가 지나치게 특이하여 우연히 일치할 가능성이 거의 배제되긴 하지만 법 보행 분석 자체가 이러한 불완전함을 안고 있는 데다가 국내에서는 첫 번째 사례가 되기 때문에 판결하는 입장에서도 보행 분석을 증거로 채택하는 것은 부담이 된다.

만일 박 씨가 경찰의 압박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 뗐으면 보행분석 이외에 박 씨를 범인이라고 볼 증거는 보험금 납입 사실 등 증거로 채택될 수 없는 간접적인 정황 증거와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되기에는 불확실성을 띤 보행 분석밖에 없었을 것이다.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무죄 판결이 가능할 수도 있었을 사건이었으나 결국 자백 덕분에 국내 사법 역사 최초로 법 보행이 증거로 채택되는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건이라 하겠다.

4. 여담

박 씨는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팀에 보낸 편지에서 '나의 신상정보를 공개해도 좋다'라고 했는데, 제작팀에서는 신상을 밝히지 않고 박 모씨로 방송에 내보냈지만 방송 이후 네티즌들에 의해 신상이 밝혀져 버렸다. 네티즌들은 피해자인 윤 씨와 복역 중인 박 씨의 페이스북 계정을 찾아 냈는데, 윤 씨가 사망하기 전 두 사람이 정말로 막역한 사이였음을 알려주는 사진과 동영상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더욱 안타까움과 분노를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