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자비도 ‘일곱’의 상징입니다.
2019/12/04/수
마태오 복음 15장 29-37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일곱’에 담긴 의미
마태오 복음은 두 가지 빵의 기적을 다룹니다. 한 번은 ‘오천 명’(마태 14,13-21)을, 다른 한 번은 ‘사천 명’(마태 15,32-39)을 먹이셨습니다. 오천 명 때 사용한 빵의 개수는 다섯 개고, 사천 명 때에는 일곱이었습니다. 여기 ‘일곱’에는 특별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교부들의 성경 주해』에서 감각을 상징하는 다섯보다 일곱이 더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이기 때문에 15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더 높은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라고 보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이 내놓은 빵의 개수 ‘일곱’과 남은 바구니의 숫자 ‘일곱’이, 완전한 ‘일곱’ 배로 빛의 선물을 주시는 분(이사 30,26 참조)과 연관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일곱’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다음 말씀에서 잘 드러납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마태 15,32)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왜 일으키시는지 동기를 기록하면서 굳이 ‘일곱’이라는 숫자를 명시합니다. ‘가엾은 마음’이 든 예수님의 내면을 묘사하면서 ‘일곱 개의 빵’을 가져오게 합니다. 이제 ‘일곱’이란 숫자는 예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상징하는 완전수가 됩니다. 따라서 ‘일곱’ 개 빵의 기적은 주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결정적 사건인 것입니다.
김정일 신부(의정부교구 고양동성당) |
생활성서 2019년 12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