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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봉준이 활동하던 시절의 블라디보스토크 고려인 거리. |
최봉준은 어릴 적 생명의 은인이자 대부인 야린스키가 임종 때 남긴 ‘처세정신 10조’를 바탕으로 세상의 큰 흐름을 내다볼 수 있었기에, 한말 소용돌이 속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선과 시베리아를 오가며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다. 사업의 출발점과 활동범위가 여느 장사꾼과는 달랐으며 큰 상인으로서의 면모나 기백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적어도 진정한 상인이라면 어떠한 불구덩이 속이라도 두려움 없이 뛰어들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곳에서도 그는 기회를 찾아냈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최 봉준은 1859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났다. 그는 본디 찢어질 듯 가난한 집 아들로 일찍이 어머니를 잃은 데다 12세 때 두만강 연안 경흥에서 아버지마저 잃고 혈혈단신이 되었다. 까까머리 어린 소년이 어떻게 두만강 살얼음을 타고 말과 풍속이 설고 사람 생김새까지 낯선 러시아까지 흘러들어 갔을까.
그 무렵 많은 함경도 사람들이 가을걷이가 끝나면 이듬해 봄까지 러시아 깊숙이 들어가서 품을 팔았다. 소년 최봉준도 그런 유민 인파, 가난한 품팔이꾼을 따라 두만강을 건넜다. 서넛씩 짝을 지어 품팔이터를 찾아가던 유민들은 간도 국자가(局子街)에 이르자 저마다 흩어졌다. 소년 최봉준이 국자가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철이 지나 일꾼을 뽑는 소개소의 문이 모두 닫힌 뒤였다. 최봉준은 다시 어른 몇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끝없이 펼쳐진 설원으로 새 일터를 찾아 들어갔다.
그렇게 7명의 함경도 유민이 온갖 고생을 하며 일터를 찾아 헤맸건만 러시아 사람들의 산판조차 강추위로 모두 문을 닫아 버린 뒤였다. 그러는 사이 일행은 하나둘씩 흩어지게 되고 고아 최봉준 홀로 남게 되었다. 추위와 두려움 속에 정처 없이 눈길을 헤매던 최봉준은 한 조선 여인을 만나 사라진 어른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모두 남의 산판에서 나무를 벤 도둑으로 몰려 러시아 산림 간수들에게 잡혀갔다는 것이었다. 최봉준은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면 우리 아저씨들은 어디로 잡혀갔습둥? 도대체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습둥?”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다만 산림간수 경찰서가 코란스키에 있으니 혹시 그리로 데려가지 않았을까?”
“코란스키요? 거기가 여기서 얼마쯤 되겠습매?”
“여기서 북쪽으로 70리쯤이지만, 말이 70리지 들판에는 늑대들이 우글거리고 지금은 너무나 추워서 못 가. 그 몸으로는 얼어죽고 말 거야. 날이 풀리면 찾아가 보는 게 어떻겠니?”
마 침내 최봉준은 조선 여인의 호의로 비상식량과 개 두 마리가 끄는 썰매까지 빌려 눈보라를 헤치며 코란스키를 찾아 떠났다. 그러나 러시아의 혹한은 소년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무섭도록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개들조차 길을 잃고 지쳐 버렸다. ‘설원의 미아’가 되어 버린 소년 최봉준은 엄청난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추위와 공포에 지친 개와 소년. 하는 수 없이 최봉준은 눈물을 머금고 썰매를 돌렸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마을로 돌아가고자 안간힘을 썼다. 개도 죽을힘을 다했다. 최봉준은 먼저 들판에서 개를 끌고 산굴 속으로 기어 들어가 서로 의지하려 했다. 개들과 빵을 나눠 먹고 서로 꼭 부둥켜안고 밤을 새우는 수밖에 없었다. 최봉준이 개를 몰고 산 밑 굴을 찾아 막 움직이려는 찰나 어둠 저쪽에서 날카롭게 울부짖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 늑대 떼다.’
등 골이 오싹했다. 늑대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썰매를 따라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늑대의 울부짖음이 캄캄한 하늘 저쪽 끝에 메아리쳐 왔다. 그러자 그 메아리가 사라진 쪽에서 더 팽팽하고 기분 나쁜 소리가 주위 공기를 흔들었다. ‘아! 얼어 죽기 전에 늑대 밥이 되고 말겠구나.’ 최봉준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절대로 죽을 수 없다. 이대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재빨리 품속에서 칼을 꺼내 늑대 떼 쪽으로 겨누었다. 순간 어둠 속에서 늑대의 시뻘건 눈들이 반짝 빛났다. 여기저기서 늑대들이 하나둘 움직여 최봉준을 둘러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재빨리 나무를 잘라 모으고 불을 지폈다. 어릴 때 고향 마을 어른들이 늘 말씀하시던 ‘짐승한테 쫓길 때는 불을 피워 방어하라’는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졸음과 피로감이 자꾸만 눈꺼풀을 무겁게 덮쳐 눌렀다. 한 시간, 두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 최봉준의 팽팽한 정신력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눈발 가득 휘몰아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 되뇌는 최봉준의 볼 위로 소리 없는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얼어붙는 눈물의 감촉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린 그는 불이 꺼지지 않도록 나무토막을 자꾸 던지면서 여기저기 고함을 질러댔다.
“사람 살립세! 사람 살려줍세!”
그는 시시각각 조여들며 엄습해 오는 한밤의 어둠을 향해, 모질고 악랄한 늑대 떼를 향해 오직 불붙은 나무토막 하나를 꽉 쥐고, 죽을 수 없다는 처절한 신념만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불 때문인지 늑대들은 좀처럼 덤벼들지 못했다. 최봉준은 그만 지쳐 버렸다. 나중에는 무엇을 분간도 못할 만큼 손발을 허우적거리다가 그만 의식을 잃고 나가떨어졌다.
새벽녘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소년은 무엇인가가 심하게 자기 얼굴을 핥는 뜨뜻한 감촉에 소스라쳐 번쩍 눈을 떴다. 소년의 휘둥그레진 두 눈 가득히 들어오는 짐승! 바로 늑대였다. 최봉준은 등골을 서늘하게 지나가는 한기를 느꼈다. 소년은 두 주먹을 휘두르며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이 썩을 놈의 늑대 새끼!”
그 러나 그 순간 최봉준은 겁에 질려 또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무언가 얼굴을 핥는 느낌에 다시 눈을 떴다. 날은 완전히 밝아 있었다. 그리고 얼굴을 핥으며 귀청이 찢어지도록 짖어대는 것은 늑대가 아니라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커다란 러시아 개는 주춤 물러서더니 다시 최봉준의 손등을 핥았다. 개는 목에 두른 방울을 절렁거리며 자꾸 고개를 흔들어댔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나운 들개가 아니었다. 분명히 잘 길들인 집개였다. 개가 목을 자꾸 흔들어대서 최봉준은 그 목덜미 쪽을 살펴봤다. 목 뒤에 병을 달고 있었다. 게다가 개의 몸뚱이에 털담요가 둘러져 있지 않은가. 순간 최봉준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최봉준은 그 개의 목에 달린 위스키병을 꺼내 한 모금 마셨다.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담요를 벗겨 몸에 두르자 그 개는 유순하게 한 번 ‘컹!’ 크게 짖더니 어디론지 빠르게 달려가 자취를 감추었다.
‘누가 보낸 개일까?’
- ▲ 일제강점기 최봉준의 고향 성진의 번화가 혼마치거리.
최 봉준은 위스키로 얼어붙은 속을 녹였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그를 살린 것이었다. 소년은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뿌듯한 감동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안도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렇게 춥고 황량한 무인(無人)의 설원 한구석에도 사람을 애정으로 감싸주는 인도주의자가 있었단 말인가. 소년은 새삼스레 삶의 찬란한 기쁨을 느꼈다.
최봉준이 담요를 두른 채 술로 조그만 몸뚱이를 녹이며 눈이 펑펑 쏟아지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은 지 거의 한나절이나 지났을까. 까마득한 설원 저 끝쪽에서 갑자기 요란한 말방울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외투로 몸을 감싼 키가 훤칠한 러시아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최봉준의 목숨을 구해 주었을 뿐 아니라 최봉준이 뒷날 억만장자로 성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러시아 귀족 야린스키였다. 겨울 한철 설원에서 홀로 사냥하며 지내다가 봄이면 돌아가는 야린스키는 독실한 그리스정교회 신자였다. 날마다 일과가 끝나면 자기가 데리고 다니던 사냥개의 몸에다 위스키병과 담요를 매어 밖으로 내보냈다. 혹시라도 길을 잃고 이 설원을 헤매는 나그네가 있으면 그것을 전해 주게 하고 그 개가 다시 나그네를 이끌고 오게 하려는 것이었다.
러시아 귀족 야린스키와 조선 소년 최봉준. 생명을 구해준 이 인연으로, 야린스키가 73세로 눈감을 때까지 7년 동안 최봉준은 그의 양아들 겸 별장지기로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야린스키의 교육을 받으며 19세의 어엿한 청년이 된 최봉준은 러시아말을 완전히 익히고 러시아 국적도 갖게 되었다. 야린스키가 별장에서 한겨울을 지내고 봄이면 도시로 나갔다가 다음 해 겨울 다시 돌아올 때까지, 최봉준은 홀로 별장을 지켰다. 별장에는 꽤 큰 산과 농장도 딸려 있었다. 최봉준은 여름에는 농장관리인으로, 겨울이면 야린스키와 함께 날마다 개의 목에 위스키병과 담요를 감아 길 잃은 나그네를 구하는 일을 했다. 그동안 야린스키와 최봉준이 보낸 개 덕분에 구조된 사람도 수십 명이 넘었다. 최봉준은 야린스키에게서 인도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사랑과 봉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세상을 떠나며 최봉준에게 지혜롭게 살아가라는 유훈으로 야린스키 처세정신 10조를 남겼다. 그리고 별장과 농장도 넘겨주었다. 실제 상속자가 된 최봉준은 밤마다 야린스키가 했듯이 사람 구하는 일을 똑같이 실천하며 근면하게 살았다. 최봉준은 야린스키 유훈 처세정신 10조를 첩(牒)으로 만들어 평생 머리맡에 두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세상으로 나아갔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무위는 권태로, 권태는 게으름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활동은 관심으로, 관심은 열성과 야망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일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불타는 열망을 품어라. 그리고 즉시 행동에 들어가라.
△뚜렷한 목표를 세워라. 배의 항해도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직선으로 똑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그재그식으로 나아간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행동하라.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라는 단순히 도덕적인 행동의 원칙을 넘어서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이로운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동력이 되어라.
△ 자기계발에 힘써라. 내가 세운 목표들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보상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나 자신이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어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아내려면 젊은 시절에 시련을 겪어보아야 할 수도 있으리라.
△기회는 역경의 시기에 찾아온다. 나의 삶과 내가 흠모하는 이들의 삶을 주의 깊게 연구해 보면 가장 훌륭한 기회들은 어려울 때 찾아오는 경우가 많음을 반드시 깨닫게 될 것이다.
△ 성공은 냉철한 자기분석에서부터 시작된다. 생각이 선행되지 않은 행동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지금 그대가 처한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생각의 힘으로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다. 긍정적 사고로 부정적인 삶을 사라지게 할 수 있듯이 말이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하라. 우리가 사는 우주는 질서와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유독 인간관계는 질서와 조화를 찾으려면 부단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한다.
△실패를 귀중한 교훈으로 삼아라. 세상에는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많지만 그것을 대하는 너의 자세만큼은 언제나 네가 지배할 수 있다. 실패는 네 용납 없이는 절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하루하루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만일 살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면 감성이 얼마나 예민해질까. 그러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소박한 기쁨에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이고 촌각을 다투어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터이며, 친구들, 아는 사람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유대를 돈독히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청년 최봉준에게 새로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뜻밖에 날아온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된다. 야린스키가 살아있을 때 블라디보스토크 어느 상점에 투자했던 주식이 차츰 불어나 꽤 큰돈이 되었는데, 그것이 야린스키 유언에 따라 최봉준 소유가 되었다는 통보였다.
최봉준은 23살이 되자 야린스키의 별장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그리고 러시아 국적의 야심만만한 청년이 되어 블라디보스토크로 나아갔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부터 한·러 무역장정에 따른 러시아와 함경도 무역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러시아 큰 상인들이 함경도와 무역을 하기 위해 한국말과 러시아말에 밝은 사람을 앞세울 것은 마땅했다. 1888년 ‘한·러 국경육지무역’이 정식으로 허용되고부터 함경도 사람들의 러시아 무역은 더욱 활발해졌다.
러시아인 세베레프는 재빨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원산·부산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와 중국 상하이까지 잇는 정기 항로를 열었다. 그때 세베레프 정기 항로는 15년 기한으로 조선의 원산·부산항에도 들르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때부터 러시아 무역은 화물선을 이용해 엄청난 물량을 교역하기 시작했다. 세베레프의 원산·부산 항로가 등장한 것은 1891년부터였는데 그 뒤에도 러시아 선박은 해마다 30척쯤 머물러 왔고 1892년에는 40~50척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조선·러시아 무역계의 샛별로 최봉준이 등장한 것이다. 그 무렵 조선 정크선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45척쯤 오가고 있었다. 조선 정크선들의 척당 적재량은 약 1000파운드였으며 10~30명씩 승객들을 싣고 다녔다. 함경도 지방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배가 드나들 수 있던 시기는 겨울을 뺀 연중 8개월. 그들은 바다가 꽁꽁 얼어붙지 않는 그 8개월 동안 보통 5~6회씩 오갔다. 이때 최봉준은 갑판에 올라 직접 정크선들을 진두지휘하며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경도 사이의 검푸른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다음 호에 하편 계속>
1940 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국문과 졸업. 2000년 소설 ‘청계천’으로 ‘자유문학’ 수상. 1956년~현재 동서문화사 발행인. 1977~1987년 동인문학상운영위집행위원장. 저서 ‘한국출판 100년을 찾아서’ ‘장진호’ ‘이중섭’ ‘매혹된 혼 최승희’ ‘폭풍 속에서’ ‘대하소설 불굴혼 박정희’. 한국출판학술상 수상, 한국출판문화상 수상. |
첫댓글 대하소설 불굴혼 박정희 ?
고아였으나..천운으로 낯설고 모르는 이에게서 상속을 받아.. 그걸로 출세의 발판을 만든...후속적 금수저군요....홀홀단신으로 거부가 된 게 아니였넹.......진정 홀홀단신으로 거부가 된 그런 인물 이야긴 줄 알았더니.... 아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