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생명과 인권, 한족과 조선족, 한국인과 중국인 화합 위한 활동 펼친
서울중국인교회 창립 10주년 맞아
한국인 목사가 일궈낸 중국인 사랑방
한중 화평의 장으로 발돋움한다
“따자 주네이 핑안”(여러분 주안에서 평안하십시오)
“무스 주네이 핑안”(목사님도 주안에서 평안하세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환 서울중국인교회 예배는 중국어로 진행된다. 항상 첫 시작은 최황규 담임목사의 중국어 인사말에 중국인 교인들이 또 중국어로 화답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이루어진다.
“중궈자오천우디엔중, 촨라이치다오성/ 치우선다이라이 후싱허핑, 츠샤허이더성./ 중궈자오천우디엔중, 촨라이치다오성~~웨이중궈주후니우좐러밍윈, 자이거하오소우청。”
(중국 새벽5시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사람사람마다 모두 오직 중국을 위한 진심어린 사랑을 바칩니다. 중국새벽 5시에 기도소리가 전해집니다. ~~중국의 운명이 축복으로 바뀌고, 또한 좋은 열매를 거두게 하소서.)
이 노래가사는 중국인 교인들이 즐겨부르는 대표적인 찬송가 ‘中国早晨五点钟 (중궈자오천우디엔중)’이다. 중국 시간 새벽 5시에 일어나 중국의 평화와 중국에 대해 간절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내용으로, 이 찬송가가 서울 대림동 서울중국인교회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울려퍼진다.
지난 9월 26일 본지 기자에게 서울중국인교회 10년 발자취를 이야기해주는 최황규 담임목사(사진 가운데), 송명희 목사(사진 좌), 그리고 중국인 교인 짜오리휘(45)씨, 짜오리휘씨는 2007년 8월 한국에 결혼으로 입국해 어려움을 겪던 중 서울중국인교회 피난처에서 갓난아이와 함께 생활을 하며 안정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짜오리쉬는 "서울중국인교회를 피난처, 친정집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올해 9월 7일로 서울중국인교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서 그런지 중국인들의 표정은 더욱 밝았고, 목소리는 힘찼다.
난민보호 운동으로 시작된 사역이 조선족 → 한족으로 확대되다
1982년 의정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한 최황규 목사는 대학원까지 10년간 신학공부를 하고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그의 관심은 소외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가 되어주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역은 99년부터 2008년까지 외국인난민 보호활동에 앞장 선 것이다.
“대한민국은 1992년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한국정부가 난민을 받아들이는데 아주 인색했다. 99년 당시 중국, 미얀마, 콩고, 기타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90여명의 난민들이 한국땅에서 추방당할 위기에 놓이자 도움을 요청했다.”
최목사가 난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다. 당시 한국사회는 난민문제에 무관심했다. 그래서 최 목사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난민고등판문관에 직접 진정서를 넣는 등 국제 이슈로 만들어갔다. 그 결과 2001년 한국에서 최초로 에디오피아인이 난민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 후 도움을 청해 왔던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난민인정을 받았다. 심지어 가장 힘들었던 5명의 중국인 난민보호문제까지 해결해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낸 후, 난민보호활동에서 손을 떼었다고 최 목사는 말한다. 그때가 2008년 12월 31일이다.
그의 또다른 사역은 2000년 5월부터 2003년 5월까지 서울조선족교회 부목사로 있으면서 중국동포를 위한 활동이다. 대부분 불법체류자로 신음하고 있던 조선족 동포들을 위한 운동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2003년 초 홀연히 조선족교회에서 나와 가리봉동의 구석진 작은 공간에 한족을 위한 서울중국인교회를 세우게 된다. 그의 새로운 사역이 시작된 것이다.
“말 못하는 한족들이 의지하고 고난당한 중국인들의 피난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족교회를 세웠다. 특히 조선족과 한족 사이에는 미묘한 민족감정이 있다. 서로 ‘뙤놈’, ‘까오리방즈’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 한국에 사는 한족은 약자다. 조선족은 강자다. 같은 중국인이면서도 가끔 조선족한테 한족들이 사기도 당하고 그런다. 심지어 21살 된 한족여성이 한국인한테 성폭행을 당해 합의금으로 1천만원을 받기로 했는데 중간에 통역을 도와준 조선족 여성이 200만원인가를 수고비로 받는 것을 보면서 한족을 위한 보금자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한족과 조선족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10년전 최 목사가 중국어를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한족교회를 세워 투신하게 된 이유다. 그는 “조선족교회는 말 그대로 같은 민족인 동포들을 위한 교회고 서울중국인교회는 한족을 위한 교회다. 우리 교회는 중국어로 예배를 드린다.”고 말하였다. 당시 조선족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던 송명희 목사가 최목사를 도와 나섰고, 중국인 교인은 단 3명뿐이었다. 아주 미약한 시작이였지만, 10년 동안 중국어예배를 한번도 빼먹지 않고 해 왔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인 교인들의 기적같은 모금운동 일어나
2010년 4월 서울중국인교회는 가리봉동에서 대림동으로 옮기게 된다. 개척 초기엔 예배당이 없어 타 교회 예배당을 빌려 사용하다가 30여평 되는 지하 예배처소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인은 늘어나고, 가리봉동 또한 재개발 된다고 하여, 좀 더 크고 안정된 예배처소를 찾던 중 대림동의 적합한 장소를 찾게 되었다. 교회 이전에 드는 비용은 8천만원 가까이 들었다. 이 돈은 교회 형편으로 볼 때 큰 돈이었다. 그런데 이때 교회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중국인 교인들 스스로 모금운동에 불을 붙인 것이다.
교인들은 “최 목사님이 우리 중국인을 위해 너무 고생이 많다“면서 “교회 이전 비용은 우리가 감당하겠다”고 나섰다. 당장 돈이 없는 사람도 약정을 하고 일을 해서 벌어 100만원, 200만원씩 모금해 순식간에 6천만원이 모아졌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도림교회(정명철 목사)가 감명을 받고 부족한 돈을 채워 대림동으로 이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내에 외국인 이주민을 위한 교회가 많지만, 이런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마 서울중국인교회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되며, 중국인의 저력을 보게 된 것이다.
10년간 교회활동 뒤돌아 보다
최황규 목사는 “우리 교회는 한족들의 눈물을 닦아준 교회다. 동고동락하면서 왔다.” 면서 이루어온 일을 소개했다.
중국인 최초로 난민인정이 되게 한일, 위장결혼혐의로 억울한 누명을 쓴 중국여성을 위해 최초로 헌법소송을 해 승소한 일, 그 결과 출입국관리법이 바뀌어 국제결혼피해자들이 강제추방 당하지 않고 체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변화가 있었다.
최 목사는 이런 활동에 대해서 “우리 교회는 중국인의 생명과 인권을 위해 행동한 것이다”고 말한다.
또한 한족과 조선족의 화합을 위해 매년 설날 한족교인들이 1만원을 걷어 대림동에 있는 조선족 노인정에 쌀을 전달하는 행사, 2008년 사천성에 대지진이 났을 때 300만원을 모금해 중국에 전달하고, 2008년 북경올림픽 개최 시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예배도 드렸다. 또 西海에서 불법어로를 단속하던 한국해경이 중국어부의 흉기에 맞아 숨진 사건이 있다. 그때부터 교회는 매년 성탄절 헌금 전액을 故박경조 해경의 자녀들의 학비로 보내고 있다. 이는 “한국 국민과 중국인의 화평을 위한 활동이다.” 최목사는 말한다.
최황규 담임목사와의 일문일답
“배타적 민족감정 선동하지 않고 최선 다해 양국민 우의 위해 노력한다”
-먼저 창립 10주년을 축하한다. 10주년을 맞는 소감은?
“감사하다. 고군분투를 해온 것 같다.”
-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언어장벽과 ‘꽌시’였다. 한국인 목사라는 이유로 왔다가 간 중국인도 있다. 언어장벽으로 인해 시행착오를 여러 차례 겪었다. 요즘은 어느 정도 언어장벽을 극복했다.
나는 중국인을 돕다 여러 차례 한국인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당했다. 심지어 교회까지 찾아와 위협했다. 중국인들이 이런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최황규 목사라는 사람은 중국인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
- 서울중국인교회가 갖고 있는 대사회적으로 품고 있는 비전은 무엇인가?
“우리 교회는 한국과 중국의 화평관계를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배타적 민족감정을 선동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양국민의 우의를 위해 노력한다. 또한 21세기 중국의 시대, 미국과 신형대국관계를 논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우리 교회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10주년을 맞이하여,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중국인센터, 또는 중국인선교센터를 세우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9월 1일부터 중국인 3천만명에게 복수비자를 주기로 했다. 가히 중국인 ‘쓰나미’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센터가 필요하다.”
-국내 체류외국인 150만명 중 70% 이상이 중국인(중국동포 포함)이다. 중국인 체류자 수와 관광객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한국사회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된다고 보나?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 13억 인구. 한국으로서는 중국이 경제발전의 발판이다. 한국과 중국은 현재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해 협상을 하고 있다. 중국 측 입장에서 보더라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가 한국이다. 일본과는 역사, 영토 등의 문제가 있다. 미국과는 경쟁관계다. 인적 교류가 깊고 넓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중국어 학습열풍이 불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다. 한국은 한자문화권에 속한다. 한자 교육도 다시 해야 한다. 한국의 고대사, 중세사가 다 한자로 기록되어있다. 앞으로 중국과의 인문동맹을 위해서도 한자교육이 필요하다. 또 영어처럼 중국어도 필수로 하는 시대가 왔다.
취재=김용필 본지 편집국장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01호 2013년 9월 28일 발행 동포세계신문 제301호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