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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질 부리고, 혼자 있고, 매사 흥미 없는 우리 아이, 무엇이 문제일까? 어린이 우울증의 원인과 대책 어린 아이가 무슨 우울증? 고개를 갸웃거릴 부모도 있지만, 우울증은 어른에게만 생기는 증상이 아니다. 초등학생 10명 가운데 1명이 우울증을 겪을 만큼 흔하다는 것이다. 말을 안하고 걸핏하면 짜증을 내며 깊은 무력감에 빠져 심하면 치명적인 장애를 부를 수도 있는 어린이 우울증의 원인과 대책을 알아본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을 둔 주부 김모씨(43)는 최근 딸이 밥을 안 먹으려고 해서 무진 애를 먹었다. 밥 때가 되어도 배고프다는 말이 없고 밥을 먹자고 해도 귀찮아하기만 하며 평소처럼 목이 마르다고 음료수를 찾는 일도 없어졌다. 집안 식구는 물론 친구와도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고 방에만 틀어박혀 혼자 지냈다. 곧 나아지려니 했지만, 보름 이상 증상이 계속되자 김씨는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아이가 어린이 우울증에 걸려있어요”라는 소아 정신과 의사의 말에 김씨는 깜짝 놀랐다. ‘내 아이가 우울증?’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의사는 친구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다. 7세 된 유치원생인 남자아이를 둔 주부 양모씨(35)의 사례도 비슷하다. 아이가 말이 거의 없고 한눈에 기운이 없어 보임은 물론 짜증을 부리거나 시비 거는 일이 잦아 친구들과도 자주 다투었다. 유치원교사로부터 유치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불안해하다가 아이가 밥을 안먹는 일까지 잦아지자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가 같은 진단을 받았다.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노경선 교수는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의 1%, 초등학생의 2%, 청소년의 4.7%가 병원에 가야 할 우울증 환자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초등학생 10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어떤 식으로든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서너살 된 어린이가 엄마와 떨어지면 그 불안으로 인해 우울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1970년대까지는 이것을 우울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우울증은 이른바 삶의 궤적이 깊이 서린 마음의 병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뇌의학이 발달되면서 어린 아이들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말로 표현이 어려워 두통, 복통 등 신체 증상 호소 영아기의 우울증은 엄마와 떨어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엄마에게 애착 관계가 생긴 아이를 엄마로부터 떨어지게 하면 처음에는 울면서 보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 소극적으로 수그러들게 된다. 좀더 진행되면 아이는 활동이 줄고 주위에 관심이 없어지고 위축된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소아기 우울증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춘기까지를 어린이 우울증으로 분류하는데 아이가 우울증에 걸리면 슬픈 표정을 짓고 자주 울며 평상시에 재미있어하던 많은 일들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상적인 활동까지 거부하게 된다. 식욕이 떨어지거나, 반대로 식욕이 증가하며, 잠을 잘 자지 못하거나, 반대로 잠을 너무 많이 자기도 한다. 이 시기의 우울증은 아이가 ‘우울하다’거나 ‘기분이 저하된다’는 느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아 두통이나 복통 등 모호한 신체적 통증을 호소한다. 또 아이가 쉽게 피로해하고 집중력이 감소하며 사고력도 떨어지며 성격에 따라서 부모에게 더 달라붙고 의존적으로 되기도 한다. 사춘기의 우울증은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행동상의 문제를 일으키는 등 활동량이 늘어나기도 한다. 사춘기의 우울증에서 무엇보다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이 자살이다. 이 시기에는 자살할 의사를 갖고 있거나, 실제로 자살을 기도하는 일이 발생한다. 어린이는 감정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른의 우울증에 비해 행동의 변화나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일이 많다. 때문에 은폐되는 일이 많아 진단하기가 어렵다. 아이가 쉽게 흥분하거나, 울적해 보이고, 우울한 기분에서 갑작스러운 분노로 기분의 변화를 자주 보이면 부모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를 ‘가면(假面) 우울증’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방치할 경우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야뇨증, 청소년의 경우에는 약물남용 등으로 이어져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방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성인이 되어서 우울증이 재발할 위험도 크며 심할 경우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급성 우울증은 부모가 아프거나, 부모와 이별을 하게 되었거나, 또는 친구나 애완동물을 잃었을 때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우울증은 대개 며칠 혹은 몇 주만에 자연적으로 없어진다. 그런데 만성적인 우울증은 가족 중에 우울증이 있을 때 나타나기 쉽고 몇 개월 이상 지속되기 때문에 치료를 필요로 한다. 어린이 우울증 왜 일어날까?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시작될 수 있는데 이런 요인들에는 두뇌에서의 생화학적인 불균형과 심리학적인 불균형 등이 작용한다. 사람의 두뇌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난해하고 복잡하며 절묘한 소통의 중추다. 1백억개의 두뇌 세포가 1초마다 수십억 가지 이상의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데 이러한 소통에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생화학적인 전달자가 관여한다. 신경전달물질이 적정한 수준에 있을 때 두뇌 기능은 균형이 맞는다. 신경전달물질은 세로토닌, 도파민 같은 것들인데 감정조절, 학습 등과 관계가 있는 그 분비 시스템이 깨지면 우울증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에다 부모의 부적절한 양육방법으로 인한 고통,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 가정폭력, 스트레스, 부모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 풀리지 않는 비탄, 원망, 분노, 질병, 사회성 부족 등이 우울증을 부추기는 환경 요인이 된다. 특히 어린이 우울증의 경우 부모가 우울증의 시발점이 되는 수가 많다. 모든 일에 아이를 심하게 통제하려는 부모, 아이에게 절대 순종을 강요하는 부모, 양육방법에 일관성이 없는 부모, 아이에게 무관심한 부모, 주정뱅이 부모, 아이를 무시하고 심하게 욕을 하며 꾸짖는 부모, 아이에게 화를 잘 내고 충동적이며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하며 학대하는 부모, 자주 다투거나 때리는 부모의 자녀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이러한 환경에 놓인 어린이들은 문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능동적으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습관적인 무력감에 빠져 부정적이고 희망이 없으며 패배감에 사로잡혀 우울한 감정들을 강화시켜 가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데 우울증은 가족 내에서도 전달될 수 있다. 아빠나 엄마가 우울증을 앓고 있을 경우 아이에게 전달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유전적인 요인과 함께 부모가 질병으로 인해 아이의 욕구에 덜 반응하게 됨으로써 생길 수 있다. 또 어린이 우울증 환자들은 불안, 초조, 집중력 부족 등으로 인해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주의력 결핍 혹은 과잉행동장애로 오인 받을 우려가 있어 구별이 요구된다. 어떻게 치료할까? 관찰을 통해 아이에게 우울증이 의심된다면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치료가 필요할 만큼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아이의 슬픔을 알고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아이가 이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아이가 부담을 갖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지정해주어 실천하게 한다. 이처럼 작은 일의 성취를 통해 승리감과 자신감을 찾도록 도와준다. 또 아이의 의견에 부모가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준다면 일단 자신이 보호받고 도움을 받고 있으며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아이의 우울한 감정을 자신의 노력으로 조절할 수 없고 증상이 지속적이며 생활에 방해가 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치료는 아이의 증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으로부터 시작되며 가족 모두의 면접조사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적 질환을 구별해낼 수도 있다. ▶정신치료를 통해 감정표현을 하도록 한다 공감과 지지를 통해 우울한 감정과 증상 등의 감정표현을 제대로 하게 하며 스트레스에 적절히 대처하도록 도와준다. 이 치료법은 놀이치료와 면담치료로 구분된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나이라면 놀이치료를 통해 상실의 감정, 무력감, 공격성, 위험,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치료자와 교류하게 된다. ▶인지 행동치료를 통해 왜곡된 사고를 조정한다 이 치료법은 연령이 높은 아동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우울증과 관련된 잘못된 믿음이나 왜곡된 사고를 교정하는데 이용된다. 즉 왜곡되고 부정적인 사고를 알아내고 이를 교정하여 사고의 방법을 바꾸어주는 치료법이다. ▶집단치료를 통해 사회성을 키워준다 여러 아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회성을 발달시키고 성취감을 키우게 된다. 아이는 문제 행동에 대한 대처방법, 긍정적인 행동의 강화법, 나이에 맞는 상호 대화법의 훈련을 통해 다른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한다. ▶가족치료를 통해 부모의 양육 태도를 교정한다 가족과의 면담을 통해 심각한 부부문제, 경직되거나 혼란한 가족 규칙,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과보호적이거나 무관심한 경우, 자녀와 부모간의 위계가 불분명한 경우 등을 교정한다. 만일 부모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면 별도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먹는 약을 이용한 치료, 우울증에 효과적 전문의의 처방으로 항우울제가 쓰인다. 깨어진 신경전달물질의 분비 시스템을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이들 약물을 복용하게 되면 한두달이 지나 두뇌가 조화로운 기능을 되찾고 안정적인 감정을 회복하게 된다. 우울증이 얼마나 오래 되었느냐에 따라 약물사용기간이 달라지는데 재발을 막기 위해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복용한다. 어떻게 예방할까? ▶아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인다 어린이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괜찮아?” “어려운 일은 없니?” “도와줄 일은 없을까?” “요즘 기분이 어때?” 등의 말로 자주 관심을 가져주고 상태를 묻는 것이 좋다.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후 학원 몇 군데를 전전하며 공부하는데 시간을 보내게 하기보다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건강하게 잘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남과 같이 재미있게 놀 수 있게 한다 우울증은 남자아이보다는 여자아이, 형제나 자매가 있는 아이보다는 외동아이에게서 발생확률이 높다. 많은 연구결과 신체, 정신적으로 잘 자라는 아이는 스스로 친구를 만들어 재미있게 논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단체 운동에 참여시킨다 운동은 우울하거나,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났을 때 그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 혼자서 하는 운동보다는 축구, 농구 등 남과 함께 하는 운동이 우울증을 예방하는데는 더욱 바람직하다. ▶터놓고 이야기하는 환경을 제공한다 아이가 자신의 일상생활이나 문제에 대해 부모나 다른 가족 및 친구들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준다. 주변사람에게 고민이나 고충을 이야기함으로써 아이는 기분이 곧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준다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 중 좋은 일과 긍정적인 일을 생각하게 만드는 일은 아이가 성장했을 때도 인생의 난관을 헤쳐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전문가 어드바이스 “아이에게 자주 웃어주는 엄마가 되자” 사람뿐만 아니라 개나 원숭이도 우울증에 빠진다. 우울증은 필요한 것이 충족 되지 못할 때 신체에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아이의 경우 ‘죽어 버려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안하지만 신체 반응이 나타나며 성장장애도 일어나는 등 여러 가지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 흔히 어린이 우울증이라면 맞벌이 가정의 자녀에게 많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엄마가 취업주부냐, 전업주부냐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가 얼마나 아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느냐에 좌우된다. 즉 좋은 엄마냐, 나쁜 엄마냐가 보다 중요한 사항이다. 아이에게 말로만 사랑한다면 그것은 공염불이다. 스킨십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향해 ‘웃는 것’이다. 이때 억지 웃음은 안 된다. 아이가 곧 알아챈다. 엄마는 아이를 보면 기분이 좋아야 한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갑고, 웃음이 절로 나고, 아이와 함께 놀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등을 두드려주고 싶어야 한다. 그러면 아이도 편안해진다. “피곤한데 또 나한테 오니? 아빠한테 가”,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한테 가”, 부모가 핑퐁처럼 아이를 내돌린다면 아이는 마음이 불편해지고 속상하며 “우리 부모가 나를 싫어하나 봐”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것이 심해지면 우울증에 빠져들게 된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다. 집이 가난하냐 부유하냐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뇌의 구조상 유전적으로 우울증에 취약한 아이도 있지만, 성장발달과정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자란 아이는 우울증에 안 빠진다. 반대로 유전적으로 취약하지 않아도 부모가 학대, 구박을 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만이 아이의 우울증을 막을 수 있다. 글·노경선(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