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터 지킴이 되고 나서 두번째 졸업식이다. 내가 가장 많은 관심을 주고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준 아이들의 졸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점심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나는 지킴이실을 떠나지 못한다. 혹시라도 누군가 마지막 인사를 하려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보고 섭섭함으로 발길을 돌릴까 두려워하기때문이다.
현직 교사 시절 스승의 날에 우리들의 날은 우리들이 자축하자며 회식을 가자는 동료 교사들을 뿌리치고 홀로 교무실을 지키던 그때의 그 마음이다. 스승의 날만 되면 교사들의 뒤를 탈탈 털어 욕을 해대는 세상에 대한 반감이 절정에 달하던 그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교무실을 지키고 싶었다. 단 한 명이 나를 찾아오더라도 반가운 웃음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강제로 끌려가면 점심만 얼른 먹고 다시 교무실로 돌아오곤 했다.
졸업생들을 위해서라면 하루쯤은 의리없는 동료가 되어도 좋았다.
도대체 누가 이 중요한 날에 한낱 배움터 지킴이를 기억하겠는가마는 나는 그들을 기다려줘야 한다. 아무도 저 문을 열지 않을지라도 나의 부재로 인해 학생들이 섭섭할 가능성은 없애주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불행에 내 죄만 없으면 충분하다.
나의 기다림도 그리 헛된 것은 아니어서 남학생들 두 팀이 문을 연다. 순간 내 가슴의 섭섭함도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의 대사가 서글픈 감동이 되어 내 가슴을 친다.
"첫 모의고사 치고 징징 짜면서 들를께요."
딸 아이를 입시의 무게로 허덕거릴 고등학교에 보내면서 눈물을 흘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누가 너희들을 이 무한 경쟁 속으로 떠밀어버렸나? 굶고 사는 사람 하나 없는 천국에서 충분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로 서열을 만들어 상대를 노예화하는 인간들의 본성이 그 주범이다.
왜 점심 시간에 늦었느냐는 가족들에게 이유를 설명하니 딸이 말한다.
"와! 우리 아빠! 오늘 감동했겠네."
"무슨 소리? 열 팀은 문을 열었어야 했는데 단 두 팀이라서 실망했구마는..."
졸업생들을 길에서 만나면 내가 먼저 반가워서 방방 뛰겠지? 그러면 아내는 우사스럽다며 내 옷을 잡아끌 것이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첫댓글 ㅋㅋㅋㅋㅋ
그림이 눈에 훤~히 보입니다.
천혜 선생님 마음까지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학교 떠나면 바보가 되는 사람입니다.
카페에서도 약간 그런 모습이 보이죠?
교사다우신 교사셨네요
FM!
철이 없는 어른이다 보니 애들이랑 더 잘 맞습니다.
어른들의 세상은 너무 더러워요.
@천혜
어린이를 닮으신 선생님
존경합니다
아이는 어른의 부모이지요~
@베베 어른이 잘하는데 아이가 잘못하는 경우는 없지요. 아이는 아무리 잘해도 어른들은 개판치는걸 멈추지 않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