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공원 가봐라… 노인의 날 있긴 있나?”
‘노인의 날’이 더 씁쓸하다는 이달형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장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는 이달형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장의 반응은 의외로 무덤덤한 편이었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의 파워는 날로 늘어나고, 이에 비례해 노인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상으로 노인의 날을 앞두고 이 회장을 찾았지만, 그의 이런‘시큰둥한 표정’은 솔직히 뜻밖이었다.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노인단체장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유일무이한 노인연합체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단체의 수장인 이 회장은 노인의 날을 맞아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았는데, “일반 노인들한테 가서 물어봐라, ‘노인의 날’을 알고 있는지….”라는 다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까지 했다. 이 회장은 왜 이러한 반응을 나타낼까. 그 이유를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말 어렵고 힘든 처지의 노인들은 노인의 날에도 외면 받고 소외당한다. 노인의 날이라면, 전국의 노인들에겐 정말 축제의 장이자, 기념일인데 일부 단체와 소수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지금이라도 서울 종묘공원에 가봐라.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이 회장은 “취약계층의 노인들이 보호받고 안식해야 하는데, 갈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는 노인들이 너무 많다”며 “올해로 열네 번째 노인의 날을 맞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에겐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노인들이 ‘노인의 날’을 알고, 즐기기에는 너무 척박한 환경이라는 것이 이 회장의 설명이다.
“삶에 지쳐 기념일에 축제 즐길 여력 없다”
“나도 나이가 들어보니, 외로움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겠더라. 흔히 노인의 3대 문제가 고독과 질병, 경제적 궁핍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자유로운 노년층이 얼마나 되겠느냐. 극히 일부 노인을 제외하곤, 최소 한가지의 시름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회장은 노인들이 처한 현실을 조목조목 얘기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폐지 줍는 할머니서부터 자식들에게 학대당하는 노인들의 상황까지, 그의 얘기는 끝이 없다.
“매번 하는 얘기지만 노인들이 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정부도 노인일자리 창출을 사회적 과제로 선정, 시행하고 있지만 미흡하다. 노년층에게 고작 몇 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은 역부족이다.노인일자리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용돈수준의 일자리도 필요하지만, 생활에 보탬이 되는 일터가 더 중요하다.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정부뿐 아니라 지자체, 기업, 지역사회도 노인일자리 창출을 고민해야 한다.”
이 회장은 현재의 노인일자리 창출 시책에 대해 불만이 많다고 했다. 규모도 적을 뿐 아니라 노인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인맞춤형 일자리’창출로 노인들의 경륜을 살리고, 보수도 그에 합당한 만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경로당도 문제다. 경로당에서 할 일은 누워있거나, 화투를 치거나 바둑을 두며 소일하는 정도다. 이렇다 할 프로그램이 없다. 노인들이 경로당에서 유용한 시간을 보내려면, 노인들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을 개발, 시행해야 한다. 솔직히 경로당도 창살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집에서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이니까 일차적으로 찾는 도피처라는 얘기다.”
이 회장의 비판은 신랄하다. 작심한 듯 불만을 쏟아낸다. 그만큼 노인들이 사회에서, 가정에서 소외받고 있다는 역설이다. 그는 “여가 프로그램과 일자리 전진기지로 경로당을 활용해 노인들에게 여가와 경제적 활로를 뚫어줘야 한다”며 “전국 수 만개의 경로당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우리나라 노인들의 삶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노령연금과 장기요양보험에 대한 이 회장의 지적도 따갑다. “노령연금이 10만원도 되지 않는다. 생색만 내는 꼴이다. 최소 2,30만원은 지급해야 되지 않는가. 지금의 노인들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쓴 것이 없다. 자식 양육을 위해,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세대다. 그렇게 키워놓은 자식들이 또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노인들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가.
자녀로부터 제대로 부양받지 못하고,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신세 아닌가. 노인세대는 ‘노후보장’이라는 용어도 모르는 시대를 헤쳐 왔다. 자식만 잘 키우면, 그들이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부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연금 세대도 아니다. 그런데 노령연금 지급액수를 보니, 기가 막힌다.”
“노령연금·요양보험도 불만… 발상 전환해라”
이 회장은 노령연금이 실질적인 연금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현행보다 지급액수를 대폭 올려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국가와 사회, 가정에 이바지한 노고와 수고를 생각한다면‘재원’운운하는 반복지적, 반노인적 발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는 장기노인요양보험에도 메스를 댄다.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하려면, 본인부담금 뿐만 아니라 간식비 등 이래저래 소요되는 돈이 6,70만원 된다는 대목에선 “병든 노인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에는 한국경로복지회, 한국은퇴자협회, 가정보건복지연구소, 한국효도회, 사랑채, 한길봉사회, 한국노인복지회, 연꽃마을, 한국노인의전화, 한국치매협회, 한국노인복지학회 등의 단체장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전국 최대 규모의 노인단체인 대한노인회와 노인복지시설의 중심인 한국노인복지중앙회는 회원이 아니어서 이름만큼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다 할 재원이 없어 정책개발도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돈이 있어야 노인전문가를 채용, 노인정책을 내놓을 텐데 빠듯한 살림살이 탓에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에게 절실한 정책이 얼마나 많겠느냐. 그런데 전국 유일의 노인단체 연합체가 손을 놓고 있으니, 정말 답답하다. 우리는 노인 당사자단체로 구성되어 있어 누구보다 노인의 입장과 욕구를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 정부가 우리에게 일할 여건을 만들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잘 해낼 자신이 있는데….” 이 회장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함께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정부를 향한 원망도 살짝 내비쳤다.
인터뷰가 너무 ‘뜨거워’화제를 돌려야 했다.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는 오는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3박4일 동안 경기 용인 등 경기도 일원에서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국, 베트남 등 15개국 40여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국제노년문화예술제를 열 예정이다.
국제노년문화예술제는 각국의 노인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고전무용, 현대무용, 스포츠댄스, 합창, 연극 등의 공연과 함께 교류와 친교를 다지며 국제친선을 도모하는 세계적 예술축제다. 국제노년문화예술제는 2000년 3월 중국에서 동북아 3국 노인지도자가 매년 1회씩 노인문화제를 개최하자는데 뜻을 같이 하면서 2001년 베이징, 2002년 서울, 2003년 도쿄, 2004년 베이징, 2005년 싱가포르, 2006년 몽고, 2007년 중국, 2008년 속초, 2009년 서울에서 열려 세계 각국의 노인들의 예와 기를 겨루었다. 올 국제노년문화예술제는 노인관련 학술세미나, 각국 전통 문화공연, 축하공연, 어울림 한마당, 민속촌 등 경기도 관광지 탐방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이 회장은 “노인들도 즐길 권리가 있다. 국제노년문화예술제는 각국의 노인들에게 문화향유권리를 주는 유일한 행사다. 노인들이 문화생활을 통해 행복해한다면 우리의 역할을 그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혼잣말로 “노인들의 삶이 어느 정도 보장 돼야 문화생활도 즐길 텐데….”하며 한 숨을 내쉬었다. 노인들이 처한 척박한 현실이, 노인의 날을 맞는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 출처 복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