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지혜가 아직 분명하게 발현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감각과 감각의 대상을 적으로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일단 진정한 지혜가 일어나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통찰과 분명한 앎에 이르는 출구가 됩니다.
그 좋은 예로 이곳 숲속에 살고 있는 야생닭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닭들이 얼마나 인간을 두려워하는지 압니다.
그러나 나는 이 숲에 살게 되면서
그들을 가르쳐 왔고 또한 그들로부터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우리는 닭의 모이로 쌀을 뿌려 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닭들은 매우 놀라 쌀모이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익숙해졌고 쌀모이를 기다리게까지 되었습니다.
바로 이같은 사소한 사건을 통해서도 소중한 깨우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야생닭들은 처음에는 쌀모이를 두려워하여 적으로 여겼습니다.
실제로 쌀모이는 전혀 해롭지 않지만 쌀이 먹이인 줄 몰랐기에 그토록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두려워할 것이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자
아무 거리낌없이 다가와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닭들이 자연스럽게 배우듯이,
숲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배우게 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감각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여겨왔습니다.
우리 자신이 감각들을 적절히 다루는 데 무지하여
많은 말썽이 야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진리의 눈으로 감각을 보는 법을 배우게 되면 (닭들이 쌀모이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처럼) 감각을 다루는 법을 깨치게 됩니다.
그리하여 감각은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며, 모든 문제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주시하고, 이해하는 한, 감각들은 우리에게 장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르게 주시하게 되면,
닭이 깨닫게 된 것처럼 우리도 지혜와 명확한 이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빠싸나수행’인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진리와 일치하여 알게 되며, 이것이 다름아닌 통찰력입니다.
수행을 통해 감각들을 올바르게 다루게 되면, 그 감각들을 법을 깨닫기 위한 훌륭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모든 수행자가 잘 관찰해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가 이를 명확히 보지 못하면 끊임없는 갈등 속에 남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숲속의 고요함 속에서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감각들을 면밀히 통찰하여 지혜를 계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고요한 숲에서 살면서 약간의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자족하지 마십시오.
그것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 아짠차149 -
첫댓글 분명해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