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합병의 디딤돌이 된 을사늑약이 1905년 체결된 후 이완용이 고종에게 상소를 올렸는데, “새 조약에 대해 말하자면 제국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묘사직은 안녕하고 황실도 존엄합니다. 다만 외교상 한 가지 문제만 잠시 이웃 나라에 맡긴 것입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들은 유생들이 반발하자 외교권 박탈은 큰일이 아니며 지금의 평화를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입니다. 이완용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을 해서 이기지도 못할 것인데 굳이 인명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전쟁을 하느니 일본에 그냥 나라를 내주고 그들의 지배를 받는 게 낫지 않느냐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는 한일합병 뒤에도 자신들이 전쟁을 막았고 그래서 조선 백성들이 죽지 않고 살았으니 죽을 때까지 자신이 조선의 애국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 이완용의 후예들이 정치지도자가 되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들의 인식이 이완용과 뭐가 다른지 묻고 싶습니다.
2차 대전 직전에 영국의 처칠이 수상이 되지 않았다면 영국도 독일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독일의 식민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처칠은 막대한 피해가 올 것을 알면서도 독일에 맞서 싸우자고 국민을 설득했습니다. 처칠의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 유럽의 대부분은 독일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것이고 그 뒤에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 것인지는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일일 겁니다.
2차 대전 때 유태인은 엄청난 피해를 받은 민족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겐 죽기 아니면 살기일 뿐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자신들의 생존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자신들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게 된 것도 그들이 그동안 당해왔던 박해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마스의 기습으로 촉발된 중동 전쟁은 위협에 맞서는 국가 의지의 강렬함에서 이스라엘을 따라갈 나라가 없음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선전포고와 동시에 예비군 소집령을 내리자 36만 명이 모여 부대 배치를 마쳤다. 걸린 시간은 단 48시간이었다. 불과 이틀 만에 이스라엘 인구 936만 명의 4%가 군복으로 갈아입고 집과 일터를 떠나 전선에 집결했다.
소집에 응한 36만 명 중 6 만명은 해외에서 달려온 이들이었다. 베를린·마이애미·리마 등 텔아비브행(行) 항공편이 운항하는 세계의 공항들은 귀국 비행기를 타려는 이스라엘 젊은이들로 붐볐다.
미국 유학 중 전쟁이 터지자 소집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짐을 쌌다는 20대 여대생, 징집 연령이 지났지만 두 아들과 함께 자원입대하고 개인 제트기까지 띄워 예비군을 실어 나른 56세 기업인 등의 이야기가 꼬리 물고 외신을 탔다. 하도 입대자가 많아 일부 부대는 수용이 어려울 정도였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오직 이스라엘만이 가능한 가공할 국민적 에너지였다.
한국 민주당이 보기에 이스라엘은 바보 같은 나라일 것이다. 민주당은 ‘더러운 평화론’을 신봉하는 정당이다. 민주당을 이끄는 당 대표는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말을 반복해왔고, 그 당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은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피 흘리는 전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테러 세력과 적당히 협상하며 ‘더러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데도 전쟁을 하겠다며 젊은이들을 전장(戰場)으로 내몰고 있으니 말이다.
하마스 공격 이후 2주일 사이 5000여 명이 숨졌다. 이스라엘군이 지상전에 돌입하면 사상자는 급증할 것이다. 가자 지구는 하마스 전투원이 민간인과 뒤섞여 있고, 수백㎞ 땅굴이 미로처럼 펼쳐진 정규군의 지옥이다. 이란이 개입하거나 아랍권과의 전쟁으로 확대되면 인명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 시한은 하마스 절멸(絶滅) 때까지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발표처럼 “괴물과 이웃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다른 길을 가는 나라가 대만이다. 지난주 대만에서 나온 여론조사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전쟁 발발 때 ‘싸우는 것을 꺼릴 것’이라는 대만인이 54%를 넘었고, 20대 연령층에선 무려 69%가 총을 드는 데 거부감을 표명했다.
지난해 대만 지방선거 때는 시민단체가 출마자들에게 ‘중국의 침공 시 항복하지 않겠다’고 서약받는 캠페인을 벌였지만 서명한 후보는 30%뿐이었다. 10명 중 7명이 ‘불항복 서약’을 거부했다. 이런 나라를 겁낼 적(敵)은 없을 것이다.
대만 해협은 세계의 지정학 요충지 중 가장 전쟁에 근접한 곳으로 지목받는다. 중국이 공공연히 무력 침공 의사를 밝히고 있고, 미 공군 기동사령관이 ‘2025년’ 시점을 못 박아 “대만 전쟁에 대비하라”고 지시한 사실까지 공개됐다. 그런 나라에서 군 복무 기간은 4개월에 불과하다.
20여 년 전까지 2년 복무였던 것을 포퓰리즘 정치권이 계속 선심 써 이렇게 줄여놓았다. 중국 위협이 고조되자 내년부터 ‘1년’으로 늘리기로 했지만 야당은 ‘집권 시 4개월 환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분열된 대만 정치는 국가 안보를 진영화하고 있다. 전쟁 위기 앞에서도 민진당의 반중(反中)·독립과 국민당의 친중·통일 노선이 대립하며 국론을 양분시키고 있다,
2년 전 대만해협 위기 때 미 월스트리트저널이 대만의 실태를 심층 분석하는 기사를 냈다. 기사에 등장한 대만 청년들은 “4개월 군 복무 중 잡초 뽑기, 낙엽 쓸기만 했다” “4시간마다 햄버거 먹기로 체중을 불려 군 면제를 받았다”는 등의 얘기를 쏟아냈다. 1~2년에 한 번 소집되는 예비군들은 “전쟁 영화를 감상하거나 책 읽고 그림 그리며 훈련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기사의 결론은 ‘대만은 전쟁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였다.
한국 민주당의 ‘더러운 평화론’은 대만화(化)의 길을 가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권은 대북 전단 살포를 막고, 9·19 합의로 정찰 자산 운용에 족쇄 채우고, 서해 공무원 피살을 월북으로 조작하면서까지 북한 비위를 맞춰주었다. 그렇게 더러운 평화를 구걸했지만 돌아온 것은 ‘삶은 소대가리’ 모욕이었다.
모든 전쟁은 비극적이다. 이스라엘 국민이라고 피 흘리는 전쟁이 두렵지 않을 리 없다. 그래도 싸워야 하는 그들의 절박한 생존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평화도, 안보도 말할 자격이 없다.
김정은이 계룡대 타격 훈련을 지휘하며 “남반부 영토 점령”을 지시했다는 북 발표를 보고도 ‘더러운 평화’ 운운한다면 양심이 없거나 뇌가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조선일보. 박정훈 논설실장
출처 : 조선일보. 오피니언 칼럼, 이스라엘은 왜 ‘더러운 평화’를 거부했나
지금 대한민국도 김정은이가 전쟁으로 겁박을 한다면 일부 세력들은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구걸하자고 나설 것 같습니다. 그 평화가 바로 ‘더러운 평화’일 겁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민당 대표는 지금도 그런 자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신문에서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호전적’이라 나라가 걱정이 된다고 주장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호전적이라는 말도 납득이 가지 않지만 북한의 위협에 굽신거리는 대통령이 과연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왜 임시정부를 받들자고 떠들고 국군의 뿌리가 광복군이라는 주장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더러운 평화를 원한다면 굳이 국군이 있어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인데 왜 앞뒤가 안 맞는 말들로 우리 국민들을 현혹시키는지 궁금하니다.
싸우다 죽는 것보다는 그냥 항복해서 비굴하게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만 못한 삶이 될 거라는 사실을 직시했으면 좋겠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