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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묵상글 ( 모든 성인 대축일. - 하느님 안에 숨은 성인들, 밀양의 삶.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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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모든 성인 대축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하느님 안에 숨은 성인들, 밀양의 삶
모든 성인의 날은 시성 되지 않은 모든 성인을 기리는 날인데
올해 저는 이 모든 성인이 바로 숨은 성인들이라는 묵상을 했습니다.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을 한 성인들이고,
사람들에게는 그 성성이 드러나지 않은 성인들입니다.
그런데 모든 성인은 왜 숨은 성인들이고,
왜 이런 묵상을 제가 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오늘 독서 묵시록을 읽다가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고,
저나 여러분이나 숨은 성인들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 묵시록을 보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
어좌에 앉아계신 하느님과 어린양 앞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들은 먼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뽑혀 인장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이고,
다른 모든 민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와 그 수를 다 알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순교자들을 보면 성인품에 올라 그 이름과 수를 알 수 있는
103위 성인이나 순교자보다 무명 순교자들이 더 많고 그 수를 알 수 없으며,
순교하지 않았어도 박해 때 신앙을 간직하며 숨어 산 사람들은 더 많습니다.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무명 순교자들이 성인품에 오른 순교자들보다 성덕이 부족하지 않다고.
그리고 박해를 피해 숨어 산 사람들이야말로 하느님 안에 숨은 성인들이라고.
지난여름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할 때 ‘공근’이라는 지역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그 마을의 형성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는데
박해를 피해 홍성에서 온 가족이 거기에 눌러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겁니다.
매우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가족이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곳에 온 거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피해,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오직 하느님 안에 숨은 분들입니다.
사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는 분들이 많고,
우리 재속 프란치스코회만 봐도 이사를 했으니 다른 형제회로 가라고 해도
거기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다니던 곳에 계속 머물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은 오직 하느님만을 선택하고 다른 모든 관계를 끊은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 숨은 삶은 그래서 현실 도피의 삶이 아니라
복음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의 삶이고
그래서 성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회개의 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재의 수요일에 듣는 복음이 있지요.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너는 단식할 때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이런 묵상을 하고 나니, 숨은 성인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아닌 옛날 우리 시골집 안 마당에 내가 있습니다.
문을 닫아건 고요한 우리 집 안마당에 햇빛이 들어오는데
내가 그 나만의 볕을 쬐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밀양密陽을 쬐고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 숨은 성인들의 삶은 밀양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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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모든 성인 대축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잘 익어 가는 11월의 가을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주님의 축복과 자비가 잘 익어 성덕의 열매가 맺혔으면 좋겠습니다.
정녕, 가을은 하나의 변화의 극점입니다. 자신을 찬란하게 꾸며오던 일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비우는 일에로의 건너감입니다. 그것은 붙들고 있던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바람 부는 대로 나뒹구는 낙엽처럼, 매여 있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영의 이끄심에 끌려 다니는 일입니다. 임을 찾아 바삐 달리던 일에서, 찾아 만난 임과의 속삭임에로의 건너가는 일입니다.
이제는 뒹구는 낙엽처럼, 강해지기보다는 약해지를,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무력해지를, 현명하기보다는 어리석어지기를 배워야 할 때입니다.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 생명의 길이요, 옳고도 지는 것이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비워지고서야 타인의 존귀함이 보이고, 허물을 뒤집어쓰고서야 자신이 비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해결 받기를 즐겨해야 할 때입니다. 자신이 해결사가 아니라, 해결 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다, 주님을 주님 되게 해 드려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주님 안의 자신과 홀로 고독할 줄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는 공동체에 힘입어 살아왔다면, 이제는 공동체에 거름으로 자신을 내어주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참된 행복”입니다. 그것은 ‘가난을 사는 일’입니다. 이미 그분을 차지한 까닭입니다. 그러면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할 것입니다.
그것은 ‘슬퍼할 줄을 아는 일’입니다. 자신과 세상의 죄를 슬퍼하되, 자비 안에서 위로를 받고 기쁠 것입니다. 이미 깨어, 항상 임을 바라보며 기도할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온유해 지는 일’입니다. 그것은 진정 있어야 할 하느님 품에 안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감미로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일’입니다. 곧 그분 외에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 않는 일입니다. 주님을 극단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 외에는 결코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비를 베푸는 일’입니다. 이미 주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그분의 손길에 매만져진 까닭입니다. 그것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일’입니다. 그분의 영에 끌려 다스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고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입니다.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진정,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클 것입니다.
오늘, “모든 성인의 대축일”에, 이토록 우리는 복된 삶에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 제4장 62절의 성구를 새겨봅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성인으로 불리기를 바라지 말고,
참으로 성인으로 불리어지도록 먼저 성인이 되십시오.”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행복하여라,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12)
주님!
제가 가난을 살게 하소서. 비록 ‘쓸모없는 종’이지만, 당신 앞에서는 부유하게 하소서.
슬퍼할 줄을 알게 하소서. 측은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이 제 가슴에 부어지게 하소서.
온유하게 하소서. 겸손하고 양순하신 ‘당신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게 하소서. 당신 외에는 결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 않게 하소서.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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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모든 성인 대축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행복하십시오!
교회가 어떤 사람을 ‘성인’으로 선포하는 것은 ‘성인들의 생애에서 드러나는 은총의 위대한 업적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하느님을 흠숭하고, 성인들의 거룩한 생애나 업적을 일부라도 본을 받도록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미 하느님과 일치하여 영생에 참여하고 있는 성인들이 아직 현세에서 구원의 길을 순례하는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전구하여 주기를 청원하기 위한 것입니다’(정하권). 다시 말하면 현세를 사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인들의 모범을 우리가 살아감으로써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인을 올바로 공경한다는 것은 외적 행사의 복잡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사랑의 깊이에 있는 것입니다.
가경자 알베리오네는 “날마다 쉬지 않고 조금씩 주님께로 발길을 옮기는 것, 이것이 성인이 되는 비결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닮고자 노력하지 않는 한 결코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자 앙투안 슈브리에도 성인의 길을 말씀하십니다.“예수 그리스도님에 대한 앎이 모든 것의 열쇠입니다.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님을 아는 것, 바로 그것만이 성인의 길을 걷는 신앙인의 목표요, 지름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인은“어쩌면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을 이 세상에서 사신 분들입니다”(함께야).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 험난한 고난의 길,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사랑의 길을 묵묵히 걸으신 분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욕망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것(1요한 1,12-13)이기에 성인입니다. “행복합니다. 당신께서 뽑아 가까이 오도록 하신 이! 그는 당신의 뜰 안에 머물리이다. 저희도 당신 집의 좋은 것을, 거룩한 당신 궁전의 좋은 것을 누리리이다”(시편 65,4). 그러나 그 성인의 거룩함을 잃어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거룩함을 잘 간수하여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은 8가지 행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행복의 근원을 미래에서 찾아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약속된 미래가 있기에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가난해서가 아니라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에 행복합니다. 슬퍼함이 행복이 아니라 위로를 받음이 행복입니다. 땅을 차지할 것이기에 행복하고 만족할 것을 기대하니 행복하고 자비를 입게 되고 하느님을 뵙게 되니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되고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행복하고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으니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그 큰 행복을 차지할 기회를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행복은 천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뵈려고 애쓰고, 하느님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할 때가 행복의 순간입니다”(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그리고 “행복한 사람이란 하느님에 대한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자신 안에 모신 사람입니다”(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따라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알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며,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성 아우구스띠노). 주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행복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너희는 행복하다.”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마음을 다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1.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의 가난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희망을 두기에 그에게 온전히 의탁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것이기에 행복합니다.
2.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고 자기의 죄에 애통해 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행복합니다.
3.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 온유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황, 처지, 여건에 흔들림 없이 평상심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 자제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4.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진선미를 갈망하며 천상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5. 행복하여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자비는 사랑입니다. 애간장을 녹이는 안타까움을 간직하며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 이웃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사람입니다.
6.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주님은 ‘내가 완전한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함을 지닌 사람, 죄에 물들지 않은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은 행복합니다.
7.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외형적인 평온에 앞서 내 마음 속에 있는 욕심과 무질서, 불의와 미움을 거두고 화해를 전해주며 갈라진 사람을 맺어주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8.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선한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시기와 질투, 모욕과 중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도들은 주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하였습니다(사도5,41).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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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모든 성인 대축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우리 속담에 ‘뚝배기 보다 장맛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뚝배기는 음식을 담는 그릇입니다. 보온효과가 있어서 음식을 담으면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따뜻함을 유지하는 우리의 독특한 그릇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뚝배기가 좋아도 음식의 맛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의 맛을 내는 것은 우리의 전통 발효 음식인 ‘간장, 고추장, 된장’의 맛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장독대를 만들어서 ‘장’에 손을 타지 않도록 했습니다. 장독대는 어머니들이 가족을 위해서, 특히 먼 길에 나가 있는 가족을 위해서, 군대 간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는 지성소이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냉면 집을 보면 냉면의 맛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냉면을 담아내는 ‘육수’입니다.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육수는 냉면의 맛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냉면 집은 고유한 육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국을 끓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주방 자매님이 정성껏 만들어 놓은 육수를 사용합니다. 그러면 요리에 서툰 제가 만든 국도 제법 먹을 만 합니다.
대한민국은 어느덧 선진국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문화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정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삶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 의료시설, 음식문화, 예술, 문학, 건축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오랜 만에 한국에 다녀온 분들도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의 시대를 지내면서도 한국의 의료체계와 시민의식은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2022년 대한민국이라는 ‘꽃’이 활짝 피기 까지는 발효의 과정을 거쳐서 ‘장’이 되듯이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온 몸으로 겪어냈던 분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가족들을 위해서 버스차장을 하였던 누나들이 있습니다. 가발공장에서 일하던 누나들이 있습니다. 공장에서 기름범벅이 되면서 일하던 형들이 있습니다. 베트남에 가서 일하고 싸웠던 군인도 있습니다. 독일까지 가서 일하던 간호사와 광부들이 있습니다. 멀리 중동에서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일하던 근로자들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정치인, 경제인들이 뚝배기라면 눈에 보이지 않던 그분들이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80년대부터 10년에 100만 명씩 신자가 들어나는 성장을 하였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의 수도 증가하였습니다. 신학교도 7개가 되었습니다. 예비자 교리에 등록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성지도 개발하였고, 많은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당 신설도 늘어났습니다. 저는 82년에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91년에 사제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성장을 저의 눈으로 보았고, 사목의 현장에서 체험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뚝배기라면, 우리의 모습이 아름다운 꽃이라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그 뚝배기를 채웠던 장과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어두운 땅에서 양분을 찾는 뿌리와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는 103위의 성인과 124위의 복자를 모시고 있는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우리는 만 명 이상의 순교자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켜온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뚝배기가 아닌 장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교회의 역사에 드러나는 성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숭고한 삶과 희생 그리고 순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 했던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던 지도자 모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았던 베드로 사도가 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고, 초대교회의 신학적인 기틀을 마련했던 바오로 사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분들만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이웃을 사랑한 분들이 있어서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본당도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 있습니다.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있습니다. 신앙의 향기를 전해주는 수도자가 있습니다. 본당에는 지체를 이루는 봉사단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당은 그런 건물과 조직, 봉사자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 일찍 성당에 오셔서 기도하는 분들이 있기에, 주보를 나누어 주면서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있기에, 나눔과 희생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분들이 있기에 본당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들이 나의 몸을 지탱하는 것처럼, 드러나지 않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있기에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몸의 세포들이 늘 새롭게 태어나듯이, 우리의 생각도 새로워져야 합니다. 낡은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두려움, 좌절, 원망, 미움,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내 생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뚝배기보다는 구수한 맛을 내는 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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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모든 성인 대축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자동차경주 선수가 승부를 거는 구간은 직선 구간일까요? 아니면 곡선 구간일까요? 사실 차들의 성능은 거의 비슷해서 직선 구간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아 추월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앞차를 추월할 수 있는 구간은 곡선 구간 뿐입니다. 이 구간에서만 자동차경주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 삶도 직선과 곡선 구간이 있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직선 구간만 계속 있으면 좋겠지만 곡선 구간도 계속해서 우리 앞길에 놓여있습니다. 자기 개인의 문제, 가족 문제, 직장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 문제 등등 너무 많은 곡선 구간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입니다. 그런데 자동차경주처럼 이때가 나의 실력이 진정으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자동차경주에서 승리를 위해 곡선 구간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곡선 구간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속도를 내야 앞차를 앞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고통과 시련을 가져다주는 많은 문제를 담은 곡선 구간과 같은 순간에 속도를 내서 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 자리에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까?
직선 구간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차이는 곡선 구간에서 결정됩니다. 고통과 시련 등의 문제는 내가 다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가치를 알리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에 대해 말해줍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많은 돈을 갖게 되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아직 세상의 재화에 대해 잘 모르는 어린이가 엄청난 유산을 갑작스럽게 물려받았습니다. 과연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어린이는 돈보다, 자기를 보호해 주는 부모와 따뜻한 가정, 그리고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와 친구가 행복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드디어 능력을 인정받아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이제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때 높은 지위는 행복의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건강해지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우리는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입니다. 성인은 이 세상에서의 상이 아닌, 하늘에서 받을 상만 바라보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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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자아에 국한된 세계를 벗어나는 것(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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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모든 성인 대축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인이 됩시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성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는
그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흰옷을 입고 어린양을 따라가는도다."
모든 성인 대축일 저녁기도 '마리아의 노래' 후렴의 가사와 곡이 참 흥겹습니다. 오늘 하루 끊임없는 기도 노래로 바치고 싶습니다. 방금 “김수환 추기경이 전하는 논어 이야기”, 도올 김용옥 선생과의 재미있는 대담 동영상을 보다가 잠시 멈추고 강론을 씁니다. 다 쓴 이후에 보려고 잠시 멈춰놨습니다. 추기경님이 건강하게 살아 계실 때 동영상인데 추기경님이 문득 많이 그리워집니다. 추기경님 모습을 뵙는 순간, “아 이 시대의 성인이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소탈하고 자연스럽고 유머가 풍부한 우리 추기경님이셨습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회색빛 우울과 허무의 어둠을 일거에 날려 버리고 희망의 빛으로 11월 위령성월 첫날을 환히 밝히는 모든 성인들입니다. 오늘은 천상에 있는 모든 성인들, 지상에 살아 있는 모든 성인들 대축일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만이 아시는 성인들도 참 많을 것이며, 바로 오늘은 이 모든 유명, 무명의 성인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성인들 존재자체가 하느님을 증명합니다. 하느님 모상 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요, 바로 이런 하느님을 닮은 참 나를 실현한 분들이 바로 성인들입니다. 그러니 성인들은 우리의 궁극의 희망인 하느님을 반영합니다. 이런 성인들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요 위로가 되며, 11월 위령성월은 희망성월, 위로성월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하느님과 모든 성인들이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젊은이들은 물론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하늘 나라에서 함께 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위령성월, 한달은 이분들을 위해 연미사를 봉헌합니다.
욕심이, 열정이 다 나쁜 것도 아닙니다. 좋은 욕심, 좋은 열정은 성인이 되는데 필수입니다. 잘 살고 싶은 욕심과 열정, 기도 잘 하고 싶은 욕심과 열정, 정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싶은 욕심과 열정, 끊임없는 진리 추구의 욕심과 열정, 주님을 닮아 참나의 성인이 되고 싶은 욕심과 열정은 청정욕淸淨慾으로 너무나 좋고 열렬히 권장하고 싶습니다.
이런 욕심과 열정없이 살아가다보면 아까운 인생 탕진이요 영혼없는, 생각없는 좀비같은, 유령같은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좋은 욕심과 열정이 없어 삶의 중심과 의미를 잃고 좀비처럼, 유령처럼 방황하는 이들도 꽤 많을 것입니다.
성인이 됩시다. 아니 이미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성인입니다. 이제 성인으로 살기만 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의 가르침이 고무적이고 힘이 됩니다.
우리의 신원이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지요! 비상한, 놀라운 성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모두가 평범한 참나의 성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만나는 모든 하느님의 자녀들을 성인을 대하듯 합니다. 사실 존재 깊이에서는 모두가 성인이기 때문입니다. 존엄한 품위의 삶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성인의 삶입니다. 그러니 자녀답게, 성인답게 산다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모든 성인들의 영원한 꿈이자 희망이 바로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항구히 한결같이 사랑한 이들이, 하느님 사랑하는 맛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성인들입니다. 이런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그리스도처럼 순결한 성인다운 삶이겠는지요?
바로 오늘 복음의 참행복 선언대로, 즉 진복팔단대로 살면 됩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의 대헌장이 바로 산상수훈의 참행복입니다. 이렇게 산 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이요, 예수님을 뒤따른 모든 성인들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여러분도 성인입니다. 과연 어느 정도 성덕에 도달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2.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3.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4.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5.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6.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7.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8.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바로 평생 이렇게 사는 이들이 성인들입니다. 하느님만으로 행복한 이들, 하느님만으로 만족한 이들, 하느님만으로 부자가 된 이들이 바로 성인입니다. 완성된 성인이,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영원한 현재 진행형중인 미완의 성인들인,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임을 깨닫습니다.
한 번 성덕 점수를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본점수 20점에다 각 항목별 10점 만점, 도합 100점중 몇점쯤 되는 성인인가 말입니다. 성인들이야말로 참 행복한 분들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말씀이 우리를 사기충천, 용기백배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그러니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자녀다운 삶, 성인다운 삶에 온힘을 다기울이십시오. 우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큽니다. 바로 이의 생생한 희망과 증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제1독서 묵시록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명의 천상 성인들입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이 성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는 분들입니다. 바로 이들의 우리의 궁극의 미래요 희망입니다. 이 성인들과 천사의 주고 받는 구원의 고백과 찬양이 고무적입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이십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바로 이런 천상 비전이, 천상 희망이, 천상 꿈이, 지상에서 주님을 닮은 순결한 영혼이 되어 성인답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인들의 정체가 한 원로의 설명을 통해 명쾌하게 드러납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일상의 크고 작은 환난을 끝까지 잘 겪어냄으로 날로 정화되고 성화되어 더욱 주님을 닮은 자녀가 되어, 성인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시편24,3-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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