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쏟아지는 날, 선영 씨의 첫 구직활동이 시작되었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선영 씨는 지난번에 구매한 정장을 차려입고 나왔다.
구직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지다.
집에서 출발하며 짧게 연습도 했다.
“선영 씨, 제가 사장님 역할 해볼게요. 선영 씨가 저 보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어요?”
“일.”
“좋아요. 일하고 싶어요. 일 구하려고 해요. 이렇게 말씀하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일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아요! 혹시 말씀하실 때 어려우시면 제가 조금 도와드려도 괜찮을까요?”
“예.”
이렇게 말하고 나서 나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하염없이 머리를 굴렸다.
선영 씨 집까지 가는 차 안에서 수경 선생님이 여러 조언을 해주셨었다.
직원 채용은 안 하신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연락 달라고 말씀드리면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손님들이나 지인들에게 홍보를 부탁해보라고도 하셨다.
이 모든 내용을 짧은 담화 안에 녹여내기 위해 머릿속이 바빠졌다.
선영 씨가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선영 씨 집 근처에 있는 사거리였다.
여기에는 프랜차이즈 카페 두 곳이 마주 보고 있고, 작은 미용실도 여러 개 있다.
선영 씨가 카페 한 곳을 가리키며 묻는다.
“여기는 뭐예요?”
“카페에요. 저기 들어가 볼까요?”
“예.”
선영 씨가 요거프레소를 향해 걸어간다.
내 심장은 요동치는데 선영 씨 발걸음은 거침이 없다.
곧장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선영 씨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선영 씨를 도와 잘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다.
“선영 씨, 제가 준비가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조금만 이따가 들어가면 어때요?”
“왜요?”
“제가 할 말을 정리해야 할 것 같거든요.”
그렇게 몇 분 동안 문 앞에서 서성이고 난 뒤 마음을 굳게 먹고 안으로 들어갔다.
요거프레소 건물 1층에는 아르바이트 직원 한 분이 무언가를 하고 계셨다.
선영 씨와 나는 계산대 앞에 서서 잠시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 내내 앞서 연습한 말들을 되뇌었다.
직원분이 일을 끝내고 나서 우리에게 묻는다.
“네, 어떤 거 주문하시겠어요?”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선영 씨가 이력서 한 장을 건네 드리고 말을 꺼냈다.
“일... 하고 싶어요.”
선영 씨가 낯선 사람 앞에서 온전한 문장을 구사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선영 씨의 말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선영 씨 말을 듣는 직원분의 얼굴은 전과 다름없이 평이했다.
선영 씨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해주고 계셨던 거다.
이어서 내가 준비한 말을 했다.
“선영 씨가 직장을 구하고 있어요.
혹시 직원이 필요하시면 연락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사장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근데 여기는 조금 힘들 거예요.
직원을 따로 모집하고 있지는 않아서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신다.
“아 그렇군요.
그럼 혹시 나중에 직원이 필요하시거나, 아니면 직원이 필요한 다른 매장을 알고 계시면 연락해주시라고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렇게 할게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직원분께서 선영 씨가 건넨 이력서를 들여다본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친절하게 맞아주신 마음이 고마웠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풀리는 듯했다.
“선영 씨, 정말 잘하셨는데요? 우리 앞으로 이렇게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선영 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서 두 번째 카페에 문을 두드렸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아날’이라는 카페였다.
테이블에는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 분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사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셨다.
여느 손님을 대하듯 우리를 반겨주신다.
선영 씨는 성큼성큼 다가가 이력서를 건넸다.
“일하고 싶어요.”
이력서를 본 사장님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어? 아르바이트 이력서!”
“네, 선영 씨가 직장을 구하고 있거든요.
직원이 필요하거나, 직원이 필요한 다른 매장을 알고 계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의 눈웃음에 선영 씨와 내 마음이 밝아진다.
카페를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아, 세상엔 참 따뜻한 사람들이 많구나.
지레 걱정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낯선 이를 환대하는 마음과 만날 때 세상은 달리 보인다.
두 번째 방문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자 걱정이 한층 누그러졌다.
그래도 새로운 매장에 방문하는 건 매 순간 부담이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영 씨의 걸음은 한결같이 당당하다.
“여기는 뭐에요? 여기 가요!” 길을 걷다 마주치는 카페, 식당, 미용실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들어가겠다 한다.
그렇게 점심을 먹기 전까지 상림식육신당, 아리따운 미용실, Street 33 카페, 은비헤어, 시크헤어, 이화수 육개장 식당에 들렀다.
시크헤어 사장님은 선영 씨의 구직에 관해 진지하게 의논해 주셨다.
선영 씨 이력서를 살피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선영 씨 강점을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 신이 났다.
이전에 미용실에서 일한 경력도 있고, 청소하는 건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드렸다.
혼자 일하고 있어 직원이 필요하진 않지만, 일단 이력서를 받아 가셨다.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넘어가고, 거리도 점차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선영 씨가 슬슬 배가 고픈지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근처에 있는 햄버거집에 들렀다.
점원분께서 쟁반 두 개에 햄버거와 음료, 감자튀김을 각각 담아주셨다.
그리고 콜라 컵 위에는 플라스틱 뚜껑을 덮어주셨다.
쟁반을 옮기면서 흘리지 않게끔 세심히 배려해주신 거였다.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배려해주신 마음이 감사했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선영 씨가 지순 씨에게 전화를 건다.
언니와 대화하는 선영 씨 목소리가 상기되어있다.
대화를 이어가다가 전화기를 건넨다.
갑작스레 전화를 받은 내게 지순 씨가 질문한다.
“많이 덥지 않아요?”
지순 씨는 더운 날씨에 구직에 힘쓰고 있을 동생이 걱정스러웠나 보다.
구직 선배로서, 구직의 부담과 두려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지순 씨다.
지순 씨에게 응원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지순 씨가 선영 씨에게 ‘화이팅’을 외쳤다.
점심으로 기운을 회복하고 구직을 재개했다.
가장 먼저 들어간 미자 카페 사장님은 우리를 웃으며 반겨주셨다.
선영 씨와 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웃는 얼굴이셨다.
“지금은 혼자 있어서요. 나중에 직원 구하게 되면 연락할게요.”
오늘은 모두가 친절히 맞아주셨지만, 이렇게 환한 얼굴로 맞아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또 힘이 솟는다.
이어서 양평 해장국, 무지개 미용실, 카페 사이로, 호야 식당, 희 헤어, 성은 헤어 갤러리에 방문했다.
희 헤어 사장님은 물 한잔이라도 하고 가겠냐며 우리를 격려해주셨다.
무더위 속에서 세 시간을 거닌 끝에 오늘의 구직활동을 마쳤다.
온몸에 땀이 쏟아져 옷이 축축했다.
그러나 선영 씨 마음은 조금도 꺾이지 않은 것 같았다.
“선영 씨, 이제 집에 갈 거예요?”
“집에 안 갈 거예요. 뭐하러 갈까?”
선영 씨는 지치지도 않은 것 같다.
계속 다음 일정을 생각한다.
오늘 구직활동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별달리 할 말이 없을지도 모른다.
채용에 관해 긍정적인 답변을 주신 사업장은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나절 동안 거리 위에서 선영 씨가 한 일은 이력서 내고 환대받은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선영 씨가 한 일은 작지 않다.
선영 씨를 만난 직원분들과 사장님들은 내가 일하는 직장, 내가 운영하는 사업장에 장애인도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장애인 직원을 채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장애인 손님이 불편함 없이 매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변화를 꾀하게 될지도 모른다.
선영 씨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면식도 없는 사장님과 대화한 덕에, 지역사회는 약자에 대한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선영 씨는 오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씨를 뿌렸다.
일을 구하는 처지였지만, 사실 선영 씨는 사람들 마음속에 선한 것을 심고 있었고, 선한 씨앗이 자라도록 부드러운 햇살과 비를 내려주었다.
누군가의 마음 안에 있는 선한 의지를 일깨우며 타인을 돕고 섬길 기회를 선물하는 것.
그것만큼 큰 사랑이 어디 있을까.
지역사회가 선영 씨를 도운 것 같지만 선영 씨가 지역사회를 도왔다.
선영 씨는 온종일 사랑을 선물했다.
나 역시 약자도 살만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 사람들 속에 선한 마음을 틔우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하루를 보냈다.
선영 씨 덕분에 그런 자부심으로 충만한 하루였다.
몇 곳을 돌아다녔다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한 곳이라도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는 것, 그곳에서 구직의 소망과 선한 마음을 담아 우리의 이야기를 전한 것,
그렇게 한 사람이라도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운 것.
그것이 우리 실천의 의미고 성과다.
2022년 7월 25일 월요일, 전채훈
첫댓글 1. 김수경 선생님이 경험에서 우러나는 조언을 해주셨군요. 정선영 씨, 전채훈 선생님에게 큰 힘이 되었겠어요. 든든했을 것 같습니다.
2.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아요! 혹시 말씀하실 때 어려우시면 제가 조금 도와드려도 괜찮을까요?” -> 이렇게 정중하게 부탁하는 게 좋아보입니다. 귀해요.
3. 내 심장은 요동치는데 선영 씨 발걸음은 거침이 없다. -> 심장이 요동친다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네요. 저도 입주자분들 구직 도울 때 그랬던 것 같아요.
4. “일... 하고 싶어요.” -> 첫 시도에 완전한 문장~!! 놀랐습니다. 전채훈 선생님이 선영 씨를 온전히 믿어주었기에 잘해낸 것 같아요.
5. 지역사회가 선영 씨를 도운 것 같지만 선영 씨가 지역사회를 도왔다. 선영 씨는 온종일 사랑을 선물했다. -> 그렇구나. 선영 씨가 지역사회를 도왔구나. 선영 씨가 사랑을 배달하러 다닌 거구나. 전채훈 선생님 글 읽으며 감탄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차려입은 정장, 거침 없는 발걸음, 선영 씨의 구직 의지가 느껴집니다.
이날 구직을 다녀온 선영 씨가 한껏 톤이 올라간 목소리로 "일하고 싶다고 내가 말했어요."라며 저에게 자랑했어요. 그러면서 휴대폰에 기록된 걸음수를 보여줬어요. 9천 걸음...와...!
9천 걸음, 방문한 사업장 수 만큼 선영 씨는 오늘 자신감을 얻었을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