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했던 쪼꼬미에게
안녕! 엄마야
엄마는 지금 배에 손을 올리고 있어. 혹시 네가 아직 살아있을까. 지금에라도 엄마 나 잘 크고 있어요! 하며 엄마 몸에 신호를 보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나보다. 토요일 저녁부터 엄마는 엄마 몸의 느낌에 집중하고 있어. 지금에라도 입덧을 시작하길. 미열이 있나? 피곤한가. 가슴이 당기는 느낌이 아직 있나? 좀 더 일찍 그랬어야 하는데 말야. 아주 늦어버렸지?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생리를 안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다 테스트기를 해 본 게 지지난주 목요일이니 오늘로서 만 12일째인가. 처음엔 뜻밖에 찾아온 너의 소식에 당황스러웠는데 곧 엄마도, 아빠도 셋째! 새로운 생명이 생겼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뻤던지! 정말, 진심으로 기뻤다고 말해주고 싶어. 아빠는 일주일 전에 엄마가 병원 다녀오자 마자 너의 사진을 바로 양가 가족 카톡방에 올렸어. 까만 배경에 선명히도 보였던 너의 집과 난황. 그리고 그 속에 하얀 점 같던 너의 첫 사진 말야. 그리 바로 얘기할 줄 몰랐다만, 아빠가 입이 근질근질 했다네. 엄마도 좋았어. ‘어? 내년에는 복직인데? 나갈 때가 된 것 같은데 왜 복직이 늦어질까요?’ 하면서도 늦둥이 막둥이 너를 키우며 언니(누나)들과 오롯이 시간 보낼 것에 대한 기대가 되었어. 몇 년만에 보는 초음파 사진과 아기수첩을 받아들고 남편과 함께 온 젊은 임산부들 속에 앉아있는 것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설레였었더랬지.
그리고 아니? 네가 얼마나 환영받은 존재였는지. 아빠가 카톡방에 소식을 올리자마자 창원에서 진주에서 또 숙모까지 축하 전화가 바로 오더구나! 할아버지의 ‘대박!’이란 표현이 기억나네. 엄마 나이도 있고 일도 해야 하니 어른들 보시기에, 이웃 보기에 어떨까 하는 염려를 한 순간 날려버리듯 너의 존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 인기였단다. 언니(누나)들의 반응도 빼 놓을 수 없구나. 엄마 배를 만지며 아가야~ 부르고 동생 나오면 기저귀도 갈아주고 싶다 했는데. 잔잔한 일상에 선물같이 와 준 너로 인해 우리 넷은 새로운 미래를 얘기하고 꿈꿨어. 아빠는 체력이 좋아야 한다며 새벽 5시반이면 뒷산 오른다고 집을 나서고 저녁에는 설겆이는 아빠가 하겠다며 서두르셨어. 큰 차로 바꿔야겠네, 식기세척기 사야겠네! 일을 몇 년 더 해야한다고 가장의 책임감에 무게 느끼던 것보다 더 생기있게 아빠는 셋째 너에 대한 기대가 컸어.
8주가 되어야 태아라 한다던데, 오늘로서 6주 6일인 배아 상태인 너는 천국에서 만나볼 수 있을까? 이 정도 품고 있다 작별 인사를 하는 엄마의 마음도 이리 착잡한데, 출산해서 일주일 있다 아가와 헤어진 준이네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엄마 뱃 속에 생명이 있다는 게 정말 경이로웠는데, 그 생명이 사그라들었다 생각하니 엄마가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
아가야, 엄마가 더 몸조심을 했으면 네가 괜찮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나님께 ‘왜 생명을 주셨다 가져가셨나요’ 원망보다 엄마의 행동을 자꾸 되짚어보는 요즘이야.
아가야, 병원에서 확인을 하면 엄마 뱃 속에 있는 너의 집도 덜어내겠지? 너의 흔적을 지우고도 한동안 엄마는 너를 생각하고, 이 일의 의미를 생각하고.. 충격에서 바로는 헤어나오지 못할 듯하다. 또 바쁘게 일상을 살다보면 시간은 흘러가겠지. 불쑥불쑥 떠오를 너에 대한 기억을 무시하진 않으려 해. 화사한 봄과 함께 찾아왔던 너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간직할게.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지 모르겠네... 오늘은 이만 줄일게.
2022년 4월 4일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