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사변 (루거우차오(蘆溝橋·노구교 사건)
중국 베이징 남서쪽 융딩강 위의 루거우차오(노구교`蘆溝橋)는
난간 위 수백마리 돌사자상의 생생한 표정이 인상적인 다리다.
마르코 폴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묘사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일 전쟁의 계기가 됐던 '7·7 사변(노구교 사건)' 77주년을 맞아
일제 침략자를 '일본 도적(日寇)'이라고 부르며
"침략 역사의 부정과 왜곡, 미화를 중국 국민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7일 말했다.
'르커우(日寇)'란 표현은 중국에서 일본인을 '왜구'라고 낮춰 부를 때도 쓴다.
일제는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蘆溝橋·노구교) 부근에서 훈련하던 일본군에 대한 정체불명의 총격을 구실로 중국 침략을 본격화했다.
☞ 7·7 사변(노구교 사건)
1937년 7월 7일 중국 베이징 남서쪽 루거우차오(蘆溝橋·노구교) 부근에서 훈련 중이던 일본 병사 1명이 총성이 들린 뒤 행방이 묘연해지자,
일본군은 병사를 찾는다며 부대를 출동시켰다.
일본군은 이 과정에서 다시 정체불명의 총격을 받자
“중국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면서 총공격에 나섰다.
이 사건은 中·日 전쟁의 발단이 됐다.
실종 병사는 용변을 보기 위해 잠시 이탈했으며
용변 후 바로 복귀해 자신을 찾는 수색에까지 참여한 것으로 훗날 밝혀졌다.
첫댓글 중국의 원료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일본군의 자작극.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은 전쟁 뿐인가봐요..
결국은 무조건 항복이면서...말이죠..
에이 쩝..
1933년 2월 27일 밤 ㅡ베를린 국회의사당에 방화
1933년 3월, 실시될 총선거에서 반대세력의 진출을 막기 위하여ㅡ 나치스는 이 사건을 독일공산당의 계획적 범행이라고 공표하고ㅡ 다음날인 28일, '민족과 국가의 보호'를 위한 대통령긴급명령을 공포하여ㅡ 공산주의자를 비롯하여 사회주의자-·민주주의자에게 탄압을 가함----- 이 방화사건을 나치스가 공산주의자를 탄압하기 위하여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음
지금 미쳐 광분하는 극우 일본넘중에는
핫틀러, 나치를 신봉하는 넘들이 있어니!!
한심한넘들!!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않가리는 지도자들!!
정말로 우리 민족 일본넘들한테
정신 바짝 채려야 할겁니다.
종갑형, 울분이 일어나요.
자위대 기념식을 롯데에서 연다고 할때 누가 똥물 한바가지 휘둘러 부었을거요.
정신 차려야 할때인가 봅니다.
시의 적절한 자료, 다시한번 찬찬히 잘 읽습니다~~.
subarashii는 -일본 왔다`갔다 하고 ㅡ ㅡ桐谷은 서남아시아 왔다`갔다 하고 ㅡ ㅡ 源坪齋는 미국 왔다`갔다 하고----------아 ! 本人은 어디로?
일구보다 왜구가 더 적절한 표현인것 같소이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