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히메노 코토리
메디치 가문 이야기
메디치가의 유니콘 같은 남자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083049
천재 을은 갑에게 고집부려도 됨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083768
줄리아노 메디치 살인사건의 전말 1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084421
줄리아노 메디치만 억울하게 죽고 끝난 파치 사건 2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084464
메디치 터틀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084589
아 망했어요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085113
안녕 여시들.
할 말이 있어.

정신차려보니 내일이 메디치 가 이야기 반납일이더라고ㅎㅎㅎㅎㅎ 잊고 있었는데;;;
그래서 오늘을 마지막으로 메디치가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쓰기로 함;;;
이미 예약한 도서가 있어서 그거 다 보고 다시 대출할게
대출 연장까지 했는데도 다 못 읽다니..ㅎ
메디치 가 이야기 말고도 메디치 가 관련 도서도 몇개 더 빌릴 생각임....
메디치 가문 이야기에 흥미 있던 여시들 있다면 미안합니다
1503년, 피에로 데 메디치가 강물에 빠져 익사했음.
피에로에겐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둘 다 아직 어렸음.
그래서 이제 메디치 가문의 수장 자리는 피에로의 동생 조반니에게 돌아감. 조반니는 어릴 적 부터 똑똑해서 로렌초가 큰 기대를 걸었던 아들이었음.
똑똑했으면 피에로 말고 조반니에게 가문을 물려줄 것이지... 싶을 수도 있지만 조반니는 벌써 다른 직업이 있었음.

조반니는 성직자였음.
일반 수도사ㄴㄴ 추기경이었음.
13살에 이미 추기경 자리 예약받고 16살에 추기경 임명을 받은 탑급 사제였음.
뭐 조반니가 특별히 신앙심이 뛰어나서 그런건 아니고 조반니의 영특함을 일찍 알아 본 로렌초가 아들을 사제로 꽂아 준 것이었음.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쉽게 추기경 자리에 오른 조반니의 인생은 평탄해 보였지만 추기경으로 임명 된 16세에 아버지 로렌초와 자신을 교황으로 임명해 준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가 죽고 2여년 만에 형 피에로가 가문을 말아먹으면서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음.
교황청 내에서도 교황청 밖에서도 의지할만한 세력이 없어진 조반니는 잠시 몸을 피신해 있는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음.
조반니는 당시 교황이던 알렉산데르 6세에게 허락을 받고 피사의 대학에서 공부하던 사촌 동생 줄리오와 함께 알프스 근방, 벨기에, 영국 등등으로 도피 겸 여행을 다녔음.
그리고 1500년에 로마로 복귀함.
로마에 복귀한 이후로는 메디치 가문 사람답게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보냈음. 하지만 한편으론 이탈리아 정세도 놓치지 않았는데...
알렉산데르 6세가 죽고 교황이 된 비오 3세는 교황이 된지 불과 26일만에 세상을 떠났음. 그 뒤를 이은 교황이 율리오 2세인데

율리오 2세는 전투 종족이었음.
미켈란젤로가 그의 조각상을 만들면서 어떻게 조각해 드릴지 묻자 '나는 학자가 아니니까 손에 책 대신 칼 들려줘.' 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는 사람임.
율리오 2세가 전투종족이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음.
당시 이탈리아는 주변국들과는 다르게 아직 도시국가 단계였음. 춋또 만만하달까www 이를 잘 알고있던 주변 국가들은 이탈리아에서 땅따먹기를 하는 중이었음.
율리오 2세는 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교황인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이탈리아를 무력으로 통일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음ㅇㅇ
당시 피렌체는 친프랑스 정책을 사용하고 있었음.
그때 프랑스와 교황은 갈등을 겪고 있었음. 프랑스가 피사에서 독자적인 종교 회의를 열려고 했기 때문이었음. 그리고 피렌체는 이 회의를 지지하고 있었음.
교황은 매우 화가 났음. 그래서 피렌체를 공격하여 적국을 지지하는 피렌체 정권을 바꾸기로 마음먹었음. 조반니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임.
교황은 동맹이었던 스페인 군대에게 피렌체를 공격하도록 명령했고 그 군대에 조반니가 교황 사절 자격으로 참여했음.
스페인 군대는 씩씩하게 진군을 시작함.

그들이 진군을 하던 시기는 8월이었음.
그리고 피렌체는 분지 지형이라 여름엔 대구 뺨치게 덥다고 합니다.
결국 군대는 피렌체 공격을 포기하고 협상을 해 보기로 했음.
스페인 측은 공격하지 않는 대가로 세가지 조건을 내걸었음.
1. 메디치 가문을 복귀시킬 것. (조반니가 특히 주장함)
2. 친프랑스 정책을 그만 둘 것.
3. 스페인 측에 조공을 좀.. 아니 우리 군대가 지금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러는데 먹을 것이라도....
피렌체 정부는 (특히 1번 조건에) 코웃음치며 무시로 일관했음.
당시 피렌체의 시뇨리아를 이끌던 소데리니는 이렇게 주장했음.
1. 메디치 가가 다시 돌아와서 독재 안 한다는 보장 어딨음?
2. 로렌초야 정치 잘 했지. 근데 걔 아들이 했던 짓 기억 안 남?
3. 피에로 아들 로렌초말이지. 걔가 피렌체 떠났을 때 아기였던 거 기억 안 남? 걔가 가문에 대해 뭘 알아?
소데리니는 이 주장으로 지지를 얻었음.
한편 스페인 군대는 피렌체 측의 거절에 굉장히 빡쳐 있었음.
아니, 스페인 군대의 상태가...!
스페인 군대는 굶어 죽느니 싸우다 죽기로 마음먹었다!
스페인 군대가 [무적]으로 진화했습니다.
스페인 군대는 피렌체에서 20마일 떨어진 프라토에서 전투를 치렀고 압도적으로 승리했음.
그리고 프라토가 격파되자마자 조반니와 내통하던 메디치 지지자들이 들고 일어나 소데리니의 하야를 주장했음.
소데리니는 시에나로 망명을 떠났고 조반니는 드디어 피렌체에 무혈 입성을 할 수 있었음.

피렌체 사람들은 메디치 가의 귀환을 화녕했고
피렌체 공화정은 이대로 막을 내리게 됨ㅂㅂ
한편 조반니는 율리오 2세의 뒤를 이어 교황 레오 10세가 됨.
메디치 가문 사람답게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를 후원했지만 교황청 돈을 너무 아낌없이 63코스짜리 음식을 먹고 코끼리를 키우며 펑펑 쓰다가 돈을 벌겠다고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고
루터가 나타나 종교 개혁을 부르짖게 만들고 말았음.
그 이후의 역사는 구교와 신교 비슷한 애들끼리 치고 받는 존잼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음.
사실은 국부 코시모 혈통이 끊어지고 그 이후의 메디치 가를 방계인 코시모 1세가 잇기 직전까지 쓰고 싶었지만 시간 없을것 같아서 일단 여기까지.
이후 상황은 나중에 책 다시 빌려서 씀.
문제시 문제가 있으니 메디치 얘기 여기까지 쓸까 고민
안문제시 문제 없으니 곧 다시 책 빌려서 읽겠음.
첫댓글 와 개존잼 여시는 진짜 아는 것도 많다♡ 그리고 레오 10세가 메디치가문 사람이라니 헐 신기해
진짜 존잼 ㅠㅠㅠㅠㅠ어려운 얘기 재밌세 풀어줘서 고마워요 !!
그 레오10세라니 대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잘 봤습니다 진짜 재미지다
메디치!! 신혼여행 때 바티칸 가서 본 그거구나!!!
재밌다